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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속의 기쁨 (하박국 3:16-19)

by 【고동엽】 2022. 9. 20.

두려움 속의 기쁨   (하박국 3:16-19)

하박국 선지자는 ‘포옹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요시야 시대의 예언자입니다. 하박국은 요시야 왕 말년부터 여호야김(B.C. 609-598) 왕 초기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이 시대는 종교개혁을 시도한 요시야 왕이 애굽의 바로느고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B.C. 607년), 그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를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하박국에 앞서 스바냐 선지자가 일어나 하나님께 대한 거짓 경배와 우상숭배, 그리고 불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때문에 심판이 속히 임할 것이라고 선포했으나 유다는 돌아서질 않았습니다. 특히 하박국은 이 시대를 가리켜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1:4)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시대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부패와 함께 정치적으로는 요시야 왕이 바로느고에 의해 패배를 당한 때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또 다시 애굽의 세력 아래 들어간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다는 표식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더욱 악을 행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하박국은 “어찌하여 이 나라에 간악, 패역, 겁탈, 강포가 날뛴단 말입니까?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1:3-4) 하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멸망의 전주곡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인 갈대아 사람들(즉 바벨론)을 일으켜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운 민족입니다. 얼마 후 이 사나운 갈대아 사람들이 마치 식물을 움키려고 날아드는 독수리와 같이 달려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6-8).

이제 오늘 봉독해 드린 3:16을 다시 읽어봅시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왜 이렇게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겠습니까? 사납고 성급한 바벨론이 침략해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기뻐하고 환난 속에서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형편이 어쩌면 당시 하박국 선지자의 시대와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세상을 바라보면 앞이 캄캄합니다. 장차 이 나라가 어찌될꼬 생각을 하면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심을 보면 또 힘이 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두려움 속의 기쁨’이라고 한 것입니다.




1. 세상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조금 전 말씀 드렸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형편이 당시 하박국 선지자의 시대와 너무 닮았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세상을 바라보면 앞이 캄캄합니다. 장차 이 나라가 어찌될꼬 생각을 하면 두렵기만 합니다.

지방의 모(某)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쓴 엽서 한 장이 어느 신문사에 전달되었습니다. “지금 종전의 학교 분위기는 간 데 없고 참교육한다는 전교조와 한교조 교총 등 3파로 분열을 가져와 ‘교무실은 싸움판’, ‘교감은 눈치판’, ‘교장은 미칠 판’, ‘학생은 놀자판’, ‘교사는 죽을 판’, ‘교실은 난장판’입니다. 이를 제재하면 보수적인 권위라고 하면서 ‘반통일’, ‘반개혁’, ‘반민족’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로 대항하고 나서니 어찌 교권이 바로 서겠습니까?……지금 정치․경제․사회․교육 등이 총체적인 ‘깽판’현상입니다.”

사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과거의 위기 위식은 때때로 안보에 관한 것이었고, 한 때는 경제 때문이었으며, 지도자들의 통치력 부족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그것들과는 다릅니다. 지금의 위기의식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이념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정체성 위기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요즘 취해지고 있는 각종 사회․교육․의료 정책들의 방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여소 야대의 정국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의약분업, 적자투성이인 건강보험, 파산지경에 이른 연금보험, 회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천문학적 공적자금……. 그렇게 퍼주고도 무엇이 모자란지 남북철도 연결에 필요한 경의선․경원선․금강산선 복원 및 북한 구간의 복선화 사업 예산으로 30조2,083억원(99년 불변가격 기준)을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철도 사업비 중 북측이 직접 부담하는 것은 1,732억원에 불과한데 우리는 1년 국가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사업비를 예산하고 있다는 겁니다.

IMF의 빚은 다 갚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국가채무는 모두 119조7000억원이나 된답니다. 그것도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은 포함시키지 않고 말입니다. 이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1997년 1조8773억원이던 이자가 지난해는 7조4154억원으로 급증하는 추세라고 합니다(국정감사자료).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 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합 1:2-4).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합 3:16).

2.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움 속에 기쁨이 되십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을 바라보면 앞이 캄캄할 뿐, 이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될꼬, 걱정스러운 것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기쁨이 되십니다.

첫째, 하나님이 옆에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경제가 나아진 것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는 무성치 못합니다.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감람나무를 둘러봐도 소출이 없습니다. 밭에는 식물이 없습니다. 우리에는 양이 없고 외양간에는 소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곁에 계십니다.

이게 지금 우리 나라의 경제현실입니다. 희망이 보이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출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값싼 물건은 이미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에 빼앗겨버렸습니다. 도무지 가격 경쟁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싼 고급제품을 만들어낼 기술력은 모자랍니다. 쌀 소비가 10년 동안 30%나 줄었다고 합니다. 몇 년 동안 벼농사가 풍년이라지만 소비가 되지 않습니다. 점점 창고에 쌀 재고는 쌓이는데 국제시세와 맞지 않기 때문에 내다 팔 수도 없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옆에 계십니다. 돈이 있고, 건강이 있고,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고, 자녀가 있고, 다 있어도 하나님이 곁에 게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도 없고, 몸은 병들었다 해도, 직장은 잃어버렸고 사업에는 실패했다 해도 하나님이 곁에 계시면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해 주셔서 기쁜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옆에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 행복한 것입니다. 꼭 그 사람이 영화를 보여주고 맛있는 것을 사 주어야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저 우리 곁에 가만히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뱀의 유혹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홍수 심판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롯을 소돔성의 유황심판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셨고 뒤따라오던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셨습니다. 아말렉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고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죽이시고 그 기업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저를 모든 절망의 늪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경제적 위기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여호와는 나의 힘이 되시니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2).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정탐꾼들은 왜 두려워하였습니까? 가나안 땅에 사는 대장부들만 보았지 힘이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 14:8-9).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힘이 되십니다. 여러분의 앞길을 날뛰는 사슴의 발과 같이 힘있게 하실 것입니다. 동서남북 어디나 마음껏 뛰어 달리게 하실 것입니다.

누구나 평탄할 때는 쉽게 감사합니다. 이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거센 역경에 부딪쳐 절망적인 문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별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극한 고난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빌립보 옥속에 갇혀서도 찬송을 부르던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 우리는 그들을 통해 이런 참된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마케도니아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로마 관원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도록 매를 맞고 나서 그 유명한 빌립보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들의 발목은 차꼬로 채워졌습니다. 밤이 깊어졌으나 그들은 통증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습니다. 거기다 습기와 허기가 그들을 극한 고통 가운데로 몰고 갔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상황에서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위해 일하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갇힌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했는데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원망 불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기도하며 찬미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찬양하자 하나님께서 영화로움을 얻으시고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결과 큰 지진이 일어나고 옥터가 움직이며 옥문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풀렸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늘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절망의 감옥을 무너뜨려 주시고 고통의 쇠사슬을 풀어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바꿔 주실 것입니다. 절망의 밤이 깊을 때,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출처/황의봉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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