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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하나님의 생각 (렘29:10~14)

by 【고동엽】 2022. 9. 19.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으십니까? 어떤 이는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
벌주시는 하나님, 때리시는 하나님. 징계의 하나님으로 압니다.
그러나 오늘 시련 역경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주님은 누가복음 11장에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기도할 때에 한 밤중에 친구를 위하여 떡을 빌리러 간 친구처럼 기도하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열릴 것이요.”
“세상에 어떤 아비가 자식이 떡을 달라는 데 돌을 줄 아비가 어디 있으며, 자식이 생선을 달라는 데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느냐? 세상에 못된 아비라도 자기 자식이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독생 하신 아들 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아비란 세상에 못된 아비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십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구하시려고 독생자 까지 내어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권고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10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일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권고란 ‘돌아본다.’는 뜻입니다. ‘다시 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을 포로 생활합니다.
장장 70년입니다. 이들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70년간을 포로생활 할 때 이들의 마음에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실까?’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실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여기서 반드시 돌아보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 모두가 다 버리고, 외면할 지라도 주님은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75세에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100살이 되도록 아들이 없습니다. 100살입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아니하시고 다시 찾아오십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살에요, 그의 아내 사라가 89살에요. 그리고는 약속하십니다. “내년 이 맘 때에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89살인데요? 예, 하나님은 89살이라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을 반드시 돌아보십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빼앗아 도망자의 삶을 사는 야곱에게도 20년 만에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아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형들에게 미움을 사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생활하는 요셉에게도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합니다. 손대는 일마다 잘 됩니다.
결국은 보디발 집의 가정총무가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순간 ‘하나님은 요셉을 버리셨는가?’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옥 안에도 찾아오셔서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거기서 요셉은 나를 다스리는 국무총리의 수업을 다 마치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의 때가 되어 요셉은 애굽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 민족을 이루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이들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온 백성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깁니다. 말씀을 버리고 악한 일만 합니다. 그때마다 주의 종들을 통해서 수없이 경고를 하지만 듣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들을 때리시기를 작정하신 겁니다. 뭐 하시기로요?
때리시기로! 아버지가 아들을 왜 때립니까? 잘되라고 때리시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바벨론이 침공하여 왕과 쓸 만한 사람들을 붙잡아 갑니다. 그 후 10년 만에 또다시 침공을 하여 수 없는 사람이 죽고 잡혀갔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10년만에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하기를 “칠십년이 마치면 돌아오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없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백성들을 미혹하는 겁니다.
“괜찮다 괜찮다 앞으로 2-3년만 있으면 나라가 회복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왜 하나님의 백성을 바벨론을 통하여 때리셨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의 사람들을 때리시기도 하십니다. 건강을 때리십니다. 물질을 때리십니다. 사업도 때리십니다. 가정도 때리십니다. 왜 때리시느냐는 겁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잘 하라는 겁니다. 바로 살라는 겁니다. 가만 두면 안 되겠으니 때리시는 겁니다. 그러기에 때리신 하나님은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보신다는 겁니다. 권고 하신다는 겁니다.

언제요? 칠십년이 마치면입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보아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고치시고, 싸매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을 주시는 생각이십니다. (11-)
11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이랍니까?
“평안을 주러 왔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무서움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재앙입니다. 포로로 잡혀갔으니 평안할 리가 있겠습니까? 온갖 멸시와 천대, 학대를 받아 가면서 죽지 못해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재앙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본래 너희가 망하고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재앙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재앙 뒤에 있는 평안을 주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 끝났다고 하는 절망과 좌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절망과 좌절 뒤에 있는 희망과 소망을 주려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택함을 받은 민족입니다. 은혜와 축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우상이나 섬기고 있습니다. 죄악을 물 마시 듯 합니다. 하나님 알기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돈의 팔촌” 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이스라엘을 가만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저러다가는 세상에 쓸모없는 백성이 되고 말겠다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매를 들어 그들을 멸망시키고 포로 생활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결국의 의도는 재앙이 아닙니다.
고난이 아닙니다.
그 재앙을 통해서, 그 고난을 이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목적이요, 그들에게 참다운 평안을 주시려는 게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70년이 차면 회복시켜 주신다는 겁니다. 70동안 고난을 받으면서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난을 만난 사람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주의 말씀이 두려워 말라 입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시편 42편 5절에 보니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자는 결코 불안해하거나 피곤해 하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을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시련과 역경이 있다 할지라도 마음에 늘 소망이 넘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은 일을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은 언제나 승리하는 삶을 살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장래에 소망을 주시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 11절을 보면,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 주지 않고 잘 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주님의 생각은 장래입니다. 미래입니다. 내일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은 내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미래가 없는 사람입니다. 내일이 없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 미국에 썬더슨이란 사람이 있는데, 사업가로서 사업을 하는데 사업하는 족족 실패로 고민 고민하다가 중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입원을 하게 됐고 번민과 좌절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자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송가 소리가 그의 귓가에 은은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는 마음에 감동을 받고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찬송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찾아가 봤지만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여전히 어디선가 바람결에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썬더슨은 찬송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니 70세가 다 된 노인이었고 그는 전쟁터에서 다리를 잃었기 때문에 의족을 했고 지팡이를 집고 다니면서 병원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썬더슨은 깜짝 놀랐고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그리 좋아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십니까?” 그 때 노인이 대답하기를 “예, 저는 다리를 잃고 절망 속에서 헤매다가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천국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이렇게 기뻐 찬송을 한답니다.
나는 내 마음이 너무 기뻐서 찬송을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답니다.” 하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저렇게 기쁘게 살아가는데 나는 양 손, 양발을 가지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 그때 그는 예수를 믿고, 꿈과 소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서 다시 사업을 시작해서 미국에 거부가 됐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항상 어제보다는 오늘을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보다는 내일의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일 보다는 모레의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항상 응답하시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12절에 보니까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믿고 주님께 나오라는 말입니다. 나를 전심으로 찾고 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르짖으랍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서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마태복음 8장에 보면 갈릴리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날 때 제자들이 두려워 떨면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주님만 깨우면 됩니다.
그때 주무시던 예수님이 일어나서 “어찌해서 불안해하며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믿음 없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그 즉시로 잠잠해 졌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항상 좋은 것을 준비하고 예비하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궐이 있는데 그 궁궐에 들어서면 벽과 기둥이 수정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이 번쩍번쩍 거리는데 무지개가 아롱거리는 것처럼 휘황찬란하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왕궁을 짓기 위한 원래의 계획은 거대한 통유리를 사용하는 것인데 유리를 수송하던 차가 실수를 해서 그만 그 유리가 몽땅 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실망을 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연구를 한 끝에 깨진 유리조각을 이용해서 모자이크를 해야 되겠다고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유리를 과감하게 망치로 부수어서 조각조각 다 부셔 버리고 그 조각조각을 붙였더니 휘황찬란한 오색을 발하는 더 아름다운 궁전이 됐다고 합니다.

여러분 살다가 때때로 실패 할 수 있습니다. 역경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깨질 수도 있습니다. 망할 수도 있습니다. 길바닥에 나 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창조해 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말씀하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러므로 쉽게 낙심하지 맙시다. 쉽게 좌절하지 맙시다. 쉽게 포기하지 맙시다.

여러분 우리는 만능자가 아닙니다. 아니 가장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미물만도 못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삽니다. 이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을 돕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 이십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반드시 우리를 권고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좋은 것으로 준비 하고 계십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셔서 도와주십니다. 일으켜 주십니다. 세우십니다.

출처/개혁교단 홈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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