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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생애 (역대상 29:26~30)

by 【고동엽】 2022. 9. 19.

  존귀한 생애    (역대상 29:26~30)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성공한 사람을 두고 오복(五福)을 다 갖추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대체로 오래 사는 것(壽), 부요한 것(富), 존귀한 것(貴), 편안한 것(康寧), 자손이 많은 것(子孫衆多)등을 일컫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이 모든 것을 골고루 다 갖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다윗을 두고 모든 복을 다 갖춘 성공적인 인물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본문말씀 28절에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나이 많도록 장수하였고 부요했으며 존귀했습니다. 그리고 왕위를 솔로몬이 이어 받았으며 그의 혈통에서 열 왕이 배출되므로서 가장 큰 축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 하면서 복음서 초두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마 1:1). 다윗은 아브라함과 예수님을 연결하는 중간 인물인 동시에 장차오실 예수님의 특징을 계시해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 유대인의 왕, 만왕의 왕

성경은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2).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유다 지파의 정통성을 가지고 그의 후손들로 이어지는 유대 왕조의 뿌리가 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지만(계 18:16),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심으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마 27:37).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로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 9:7).


2) 고난과 영광의 생애


본문말씀 26절에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아비 이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평민이었습니다. 그는 이새의 막내아들로서 목장에 나가 아비의 양을 지키고 있다가 어느 날 선지자 사무엘에게 발탁되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삼상 16:13).
그가 블레셋 전쟁터에서 골리앗을 죽인 후 유명하게 되었고 이후부터 사울왕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모함으로 그는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위기 때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시 3:1). 훗날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 들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지상생활에 대한 예언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빌 2:6-11).


3)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다윗은 그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나타내었고 또 그의 신앙과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역을 예언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후손으로 오시게 될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이라고 호칭했습니다(시 8:4-5). 시편 16:10에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였습니다. 시편 110:1에는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다는 사실을 예언한 말씀입니다(히 1:3).


2. 신실한 성도의 표본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생애를 통하여 경건한 성도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도의 생애는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는 만큼 숨 막히는 시험과 고난의 과정이 있는 법입니다. 다윗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지만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일관하였습니다.



1) 투철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행 13:22).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그의 생애를 통하여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저를 죽음의 자리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가 옛날 아비의 양을 지킬 때 사나운 짐승이 와서 양을 유린하면 맨손으로 그것을 쳐서 죽이고 양을 구해 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삼상 17:34-36). 목동출신인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자기는 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시 23:1-6). 양은 목자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2) 은혜에 감격하였습니다.

시편 8:4-5에 “사람이 무엇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 하시나아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7:18에도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하고 감격해 하였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성공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고전 15:10).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집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면서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리나이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4).


3) 하나님께 헌신하는 생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그 이름을 찬양하였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글들은 대부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찬송과 감사로 이어집니다.
그는 평생소원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른 다음 나단 선지를 불러놓고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가운데 있도다”고 하며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삼하 7: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2:8). 이에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성전 부지와 모든 자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대상 21:26, 29:1-9).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 찬양하며 성전예배에 수종들게 될 모든 부서와 조직도 체계를 갖추게 하였습니다(대상 22장-25장).



3. 영광스러운 축복의 상징입니다.



경건한 성도는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기업과 함께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행사하는 자입니다. 본문 말씀에 기록된 다윗의 시종행적을 보면 그가 누렸던 축복의 존귀함을 나타내 줍니다.
1) 육신의 축복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모두 40년간 재임하며 모든 영광을 누렸습니다. 28절에는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의 주권에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온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장수의 복과 부귀의 복을 주셨고 또 그 이름이 존귀하게 여김 받도록 최상의 복을 주셨습니다.


2) 자손이 계대(繼代)하는 복입니다.

다윗의 말년에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름으로서 순리대로 왕위가 계승 되었습니다. 솔로몬 이후에 다윗의 왕통을 배반한 북조 이스라엘은 불과 200여 년간 19명의 왕이 집권하면서 아홉 번이나 왕조가 바뀌는 등 정변의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은 다윗의 혈통을 이은 열왕들이 나라를 다스리며 그 족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연결되었습니다(마 1:1-16).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게 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출 20:6).


3) 교훈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29-30절에 “다윗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또 저의 왕 된 일과 그 권세와 저의 이스라엘과 온 세상 열국의 지난 시사가 다 기록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사무엘을 위시하여 나단과 갓과 같은 선지자들이 다윗의 일대기를 기록하여 신앙생활의 교과서로 삼게 하였습니다.
다윗왕 때 사관(史官)이라는 공적 직함을 두고 궁중의 일기와 왕조의 실록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삼하 8:16). 이와 같은 공적인 기록 외에 계시 받은 선지자들이 신앙적 척도를 가지고 그의 삶과 업적을 기록으로 보존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거울이 되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역사에 길이 남는 교훈적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3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



목회자 칼럼 - 버릇 고치기
                

한번 잘못된 습관이나 버릇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교육적으로는 스스로 생각하여 고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될 때는  강제적으로라도 고쳐야 되는 특단의 방법도 필요할 때가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지만 오늘날의 신세대에게는 그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부모들의 잘못된 자식 교육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젊은이들이 부모를 홀대하는 것을 빗대어 풍자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서울에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가운데 외우기 어려운 이름을 붙이거나, 단지 내에 있는 아파트의 동수를 찾기 어렵도록 배열해 놓은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유인즉 시골에 사는 부모들이 자식 집에 찾아올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서울의 아들네 집에 올라온 어느 노인이 며칠 지내는 동안 며느리의 등살에 주눅이 들어 더 이상 있지 못하고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 노인이 가면서 아들 앞으로 편지를 써 놓았는데 그 내용인즉 “넷째야! 잘 있거라. 일곱째는 떠나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노인이 자식 집에 와서 지내는 동안 가족의 비중에 따라 나름대로 서열을 매긴 것이다. 첫째는 당연히 며느리이고, 둘째는 손자들이고, 셋째는 며느리의 친정 엄마이고, 자기 아들은 넷째였다. 다섯째는 가정부, 여섯째는 강아지, 그리고 시아버지인 자기는 겨우 일곱째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위에 두 가지는 모두 나이 많은 부모가 시대를 탓하며 체념해 버린 경우이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도 있다.
경남의 어느 지방에 홀아비로 사는 노인이 있었다. 아들과 자부가 안방을 쓰고 아버지는 뒷방에 거처하도록 해 놓고 좋은 것이 생기거나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저희들끼리만 먹을 뿐 아버지에게는 기별도 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일주일이 멀다하고 아버지만 남겨둔 채 저희 식구들만 나가서 외식을 하고 오는데 그때마다 갈비를 뜯고 뼈다귀를 가지고 와서 개집 앞에 쏟아놓는 것이다.
괘씸하게 여긴 아버지가 단단히 벼르다가 결국 버릇을 고치기로 결심하였다. 아들네 식구가 외식을 나갔다가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올 때 노인은 개를 자기 방에 가두어 놓고 자기가 개집에 들어 앉아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들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개집 앞으로 다가가서 개 이름을 부르며 소 뼈다귀를 쏟아 놓았다. 당연히 꼬리를 치며 반갑게 나와야 될 개가 나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개집 안을 들여다보는데 안에서 아버지가 “멍~멍!”하고 개 소리를 내었다. 놀란 아들이 “아니! 아버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식구들 알기 전에 빨리 나오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절대로 못 나간다. 너희들이 나를 개만도 못하게 취급했으니 지금부터 나도 개 팔자 만큼 늘어져 봐야겠다”고 하며 버티는 것이었다.
낌새를 챈 며느리가 다가오더니 돈 십 만원을 꺼내 보이며 “아버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 돈 가지고 내일 친구들과 식사 하세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때다 싶어 “고작 십 만원! 내가 그걸 받고 나갈 것 같으냐?”고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결국 며느리와 시아버지 사이에 몇 차례 흥정이 오고간 끝에 백만 원을 받고 타협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런 일은 재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손상률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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