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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 붙들어 주시는 주님 (마 14:22-33)

by 【고동엽】 2022. 9. 17.

고난 중에 붙들어 주시는 주님   (마 14:22-3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태복음 14:22-33)

인생에게 없었으면 좋을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질병이나 실패, 고난같은 것은 없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각각 정도는 다를 뿐 동서고금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통해 절망과 죽음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난 중에 희망과 생명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이 파도를 만나 고난당한 이야기와 그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고난은 예외가 없습니다.
24절을 보면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풍랑으로 고난당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나 나쁜 사람들이 주일 날 예배 안 드리고 뱃놀이나 밤낚시 하다가 폭풍과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며 전도하러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왜 좋은 일을 할려고 하는데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예수 믿고 봉사했는데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 말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고난은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고 제자들도 고난을 당했습니다.
죄악 세상에 사는 날 동안 고난은 언제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고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신앙입니다
26절을 보면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보고 무서워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을 몰라보았다는 것이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다녔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믿음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1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실상을 볼 수 있습니다. 육안이 어두워도 하나님을 보고, 천국을 보고, 약속된 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이 닫히면 함께 다니던 예수님도 유령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 닫히면 함께 자란 친구도 적으로 보이는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눈이 닫히면 함께 사는 부부도 원수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눈이 닫히면 존경하던 스승이나 선배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난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신앙인 것입니다.
실패보다 무서운 것, 고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신앙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불행은 고난보다 더 가까이 계시고 절망보다 더 가까이 계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고난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해결하시는 문제의 해결사이신 주님은 고난보다 더 가까이 내 곁에 계시는줄 믿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주님보다 고난을 더 크게 바라보며 겁내고 두려워하는 것이 나의 문제요, 나의 불행인 것입니다.

3. 고난만을 바라보면 더 깊은 고난에 빠집니다.
드디어 믿음 좋기로 소문난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29절을 보면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30절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바라보고 갈 때는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물결과 바람을 보는 순간 베드로는 물 속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고난의 파도를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지만 고난을 바라보면 더 깊은 고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바라보면 고난을 이기지 못합니다. 절망을 바라보면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조용히 내 곁에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주님께 속삭이십시다.
‘주님, 저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지요?’ ‘지금 저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주님, 이 짐이 제게는 너무 무겁고 감당하기 힘듭니다.
제 이 고달픈 인생의 짐을 주님 맡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4. 예수를 찾으면 고난은 물러갑니다.
30절에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31절에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32절에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고 했습니다.
고난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적은 것이 문제입니다.
고통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 중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을 부르짖어 찾으십시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는 순간 고통의 바람은 잔잔해 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해결사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바라보면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부르면 고난의 바람은 그치고 평안의 기적이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적이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의 기적이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내 마음의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내 가정의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내 사업의 풍랑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역사의 풍랑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죄악의 풍랑도 예수님만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셨던 것처럼, 우리가 타고 가는 배에도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소리 질러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믿음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리 질러 주님을 찾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가면 스칼렛길리아라는 야생화가 있답니다.
그런데 이 꽃은 잘라내고 뜯어낼수록 더 번성하고 잘 자란다고 합니다.
고난을 맛보아야 더 성숙하고 번성하는 인생의 꽃인 셈입니다.
장미는 가시 때문에 더더욱 그 명성을 떨치고 꽃 중의 꽃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백합화는 가시에 찢겨야 그 향기가 진해지고 바람이 불어야 멀리멀리 향이 퍼집니다.
일부러 고난을 자취하거나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난은 예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왕 당하고, 겪고 있는 고난이 있다면, 기도합시다. 고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신앙입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만을 바라봅시다. 그는 우리의 고난을 위해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체험하셨습니다.
고난을 바라보지 말고, 그 고난을 평정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물위를 걸으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인생의 모든 문제위에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을 내가 타고 가는 고난의 배에 모십시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문제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주님과 동행합시다.
주님이 도우십니다. 주님이 지키십니다. 주님이 모두 다 해결하십니다.
통성기도-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 고통, 건강문제, 경제문제, 자녀문제, 진로문제를 주께 맡깁시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읍시다.
이미 해결 받은 줄로 믿고 감사와 찬양을 드립시다.

출처/박광현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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