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하는 자마다. (요한 1 : 6 ~ 13)
역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역사를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눕니다.
또 성경의 중심도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성경에는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주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도록 도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크게 도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12절에 있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란 말씀을 중심으로 [영접하는 자마다]란 제목으로 말씀드릴 때에 우리 모두가 주님께 대한 바른 관계가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성경이 중심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1)먼저 [태초에 계셨다]고 했고, 계속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의 대명제는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이라고 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초대교회 당시 헬라사람들에게는 메시아니 구세주니 하는 말이 너무도 생소했기 때문에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헬라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 즉 [로고스]란 말입니다.
로고스란 말의 뜻은 [말씀, 이성, 질서]란 뜻입니다.
잠언 8장에 보면 [지혜]란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말씀이란 말은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소리를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말씀이란 모든 것의 [근본이요 권능]이란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계시]란 말입니다. 우리는 남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이란 그 사람을 아는 지식]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빌립이란 제자가 예수님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하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인격으로 나타난 [계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처럼 묵상을 하거나 혼자서 생각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신 [역사적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14:6).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이란 뜻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 자체]라는 뜻입니다.
우리만 예배하고, 우리만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표현하시고,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모습이요 얼굴이요, 뜻인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예수님을 말씀이란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우주의 [근본]이시오 [창조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당시 헬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로고스 즉 말씀이란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이란 말의 뜻은 (로고스란 말은) 헬라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 세상의 중간적 존재란 뜻입니다. 중보자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고스 되신 주님을 영접하고 그가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2)다음으로 1절 마지막에 보면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한분이시요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그는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셨고, 창조된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창조자]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바로 삼위일체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흔히 아버지 하나님 혼자서 창조하셨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합작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는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께, 즉 삼위일체께 드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3절에 보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하나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창조된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26절에 보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했습니다.
단수가 아니라 복수형으로 사용한 것은 바로 성부 하나님 혼자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의논하시고 계획하셨다는 뜻입니다.
(4)또 예수님은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여기서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한 것은 크게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란 뜻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주님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존재의 의미요 [목적]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서기에는 예수님의 태어난 해를 중심으로 날 자를 기록합니다.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은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은 [완성]이시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요, 생명의 진리이십니다.
(5)끝으로 예수님은 우리 [사람들의 빛]이십니다.
본문에 보면 참 빛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거짓된 빛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예수님만이 참 빛이십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빛의 근원이십니다. 빛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빛은 나타냅니다. 빛은 인도합니다. 빛은 보여줍니다. 빛은 밝혀줍니다. 빛은 생명을 줍니다. 따라서 오직 예수님만이 어두움을 밝힐 수 있습니다. 어두움을 정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땅의 모든 악은 바로 이 어두움의 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근원은 바로 사탄 마귀입니다.
우리의 불행이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바로 어두움입니다. 왜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집니까? 어두움 때문입니다.
요8:12절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믿습니까?
2. 그러면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몇 가지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소와 불신이 있었습니다(7:1-9).
유대인들은 진리를 찾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했습니다(7:10-19). 사람들은 귀신이 들렸다고 했습니다(7:20-31).
권력자들은 민중의 선동자로 예수님을 기소했습니다(7:32-53). 그러나 우리들은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비추시는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고 세례 요한이란 선구자를 먼저 보냈습니다. 요한이란 이름의 뜻은 [은혜로운]이란 뜻입니다.
본문에 보면 그는 보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명을 가지고 왔다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이 온 것은 두가지의 목적을 위해서였습니다.
첫째는 빛이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들이 빛되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자인 것을 믿으십니까?
우연히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떤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도 두 가지 목적이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생활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향해서 살아야 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믿도록 하고, 교회 나오게 하고, 섬기에 하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기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주님을 대신하고 있는데 마음대로 느낌대로 함부로 말하고 다닙니다.
그것이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인지 아닌지도 생각도 없이 방향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부패로 인해 영적 소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심지어 자기 백성들도 예수님을 영접치 아니하였습니다.
주님이 어두움에 속한 세상에서 배척을 받는 것은 혹 이해가 될지 모르지만 그의 백성들에게서까지 주님은 배척을 받았습니다.
3.끝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값없이 우리들에게 주셨지만 그러나 그 선물은 놀라운 것입니다.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것이고 귀중한 것입니다. 복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값을 지불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다 값싼 것입니다. 참으로 값이 비싼 것은 다 공짜입니다.
공기도 공짜이고, 비도 공짜이고, 개울과 강과 바다의 물도 공짜이고, 빛도 공짜이고 산도 바다도 다 공짜입니다.
음식은 돈을 주고 사서 먹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관리한 사람들에게 수고한 관리비를 주는 것일 뿐입니다. 음식도 관리비만 내는 것이고 사실은 하나님이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십니까?
(1)첫째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누구의 자녀가 되느냐에 따라 영광이 될 수도 있고 큰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해 전에 이완용의 증손되는 학생이 서울에 있는 모 중학교에 신분을 숨겨가며 다니다가 그것이 노출이 되어서 일본으로 간 일이 있었습니다. 동급생들이 돌을 던지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손가락질 하며 이완용하고 놀리기도 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손자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러나 누구의 자녀이냐가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이 되기도 하고, 영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민주당 시절에 [귀하신 몸]이란 이름으로 가짜 이기붕 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름만 듣고도 사람들이 쩔쩔매고 대접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것은 변하지 않아서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하면 다들 쩔쩔 맵니다.심지어 인척간이라고만 해도 돈이 그냥 들어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말입니다.
역사가 변하는 말입니다.
우리 아들 보니까 돈하나 내지 않고 우리 집에 삽니다. 잘나서, 고와서가 아니라 단순히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함께 여행도 합니다. 그 아들은 심지어 유산까지도 받을 것입니다. 아들이 된다는 것이 이처럼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축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2)둘째는 [거듭나게] 해주시고 [구원]을 주십니다.
중생이란 인간의 결심이나 감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 없이는 안 됩니다.
우리의 출생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없이는 안 되지만 우리의 중생이나 구원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없이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오늘 교회에 나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자신의 뜻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치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거듭남이란 무엇입니까? 중생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새로운 출생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육체적 출생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어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출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위로부터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야 우리는 천국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모두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거듭나야 변합니다. 거듭나야 행복해집니다. 거듭나야 나도 살고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사회도 삽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 다같이 예수님을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내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서 주님이 왕이 되시고 주님이 살아계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3)주님을 영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문제가 있습니다. 외로움의 문제, 배신을 당할 때 오는 아픔의 문제, 오해를 당할 때 당하는 괴로움의 문제, 사업에 실패했을 때의 문제, 병들어 누워있을 때의 문제 등등.
모든 문제가 영접하는 자마다 해결됩니다.
또 주님을 영접하면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어두움이 살아집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합니다.
무엇이 영접입니까?
믿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를 내어맡기는 것입니다. 나라는 옛 사람은 죽고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고통이 있습니까? 어두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만족이 없습니까?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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