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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감사와 기적 (요한복음 6장 5~11절)

by 【고동엽】 2022. 9. 16.

예수님의 감사와 기적   (요한복음 6장 5~11절)


찬송가 작가 아이작 왓츠(Issac Watts)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 두 곳 있는데 그 한 곳은 천국이요, 다른 한 곳은 감사하는 심령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장애인 과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또 그 힘 때문에 산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분은 “감사하는 마음보다 더 존경할 마음은 없다”라고 했고, 또 어느 분은 “감사는 가장 위대한 덕일 뿐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했고, 감사할 때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저히 감사할 조건이 아닌데도 감사하셨고 그 때마다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1. 지극히 작은 것에 감사했습니다
   (요6:5~11)

5병2어의 기적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고 또 다 “감사했다”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1절에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축사했다”라는 말은 “감사했다”라는 말씀입니다. “Jesus then took the loaves, gave thanks”는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상황이 악조건이었습니다. 음식점이나 구멍가게 하나 없는 빈들, 광야인데다가 군중은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도 5,000명이나 되었으니 모두 합하면 2만 명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때는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저녁때가 되었는데 그대로 보내면 가다가 기진맥진하여 쓰러질까봐 걱정이 되셔서 제자, 빌립에게 “먹을 것을 주라”라고 했습니다. 빌립을 시험한 것입니다. 얼른 계산하기를 200데나리온어치 빵을 사와도 조금씩밖에 안 돌아갑니다. 200데나리온이면 200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인데 그나마도 살 수 있는 가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가난한 소년이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작은 것, 형편없는 것을 가지시고도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감사기도(gave thanks) 하시고 나누어 주실 때 그 많은 군중이 실컷 먹고도 남아서 열두 바구니를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오늘날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수 있는 분이며 적은 것이라도 제자들의 손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맡길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과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며 살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축복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유명한 말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도 햇빛도 필요없는 천국의 영원한 빛을 주신다”라고 한 말씀은 너무나 훌륭한 말씀입니다. 가령 부모가 자식한테 작은 선물을 주었을 때 고맙다고 하지 않고 “에게, 겨우 이거야?”라고 하면 “이리 내놔”라고 도로 빼앗고 싶어집니다.
  어떤 거지가 길가에 엎드려 구걸을 하는데 이상한 행동을 하며 구걸을 했습니다. 100원짜리나 500원짜리 동전을 주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데 1,000원짜리나 5,000원짜리를 주면 극구 사양하면서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은 즉 적은 것을 받고 감사하다고 해야지 자꾸 주지 큰돈만 좋아하고 큰돈만 받겠다고 하면 한두 번이나 주지 자꾸 주지 않을 것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참 지혜 있는 거지라고 봅니다. 작은 것에도 참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큰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5병2어의 작은 것에 감사했을 때 5,000명 이상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게 거두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2. 절망적인 상황에서 감사했습니다
     (요11:17~44)

  요한복음 11장에도 향유를 부어드린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돼서 냄새가 났다고 했습니다. 39절에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4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시고 41절에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돼서 썩은 냄새가 나는데도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영어로는 “I thank you that you have haerd me”라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라고 한 말씀대로 하셨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도저히 살 가망이 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주님은 감사했습니다. 살리기 전에 미리 감사부터 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감사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좋게 만들어주실 것을 믿고 불안해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 환경이 썩어 냄새가 나는 것같이 절망적인 것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철저히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결코 절망하거나 낙심하면 안 됩니다. 마르다가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시면서 냄새나는 송장만 보고 낙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섬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아시는 분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다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배후에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와 뜻이 계심을 믿고 낙심대신 감사해야 합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으로서 당시에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나님께 참소하여 큰 불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치기 시작하는데 양 7,000마리, 약대 3,000마리, 소 500마리, 암나귀 500마리가 하루 아침에 불타 죽고 도적 맞고 많은종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들이 일곱, 딸이 셋 있었는데 하루는 맏아들의 집에서 잔치를 하고 있는데 태풍이 불어와서 그 집을 쳐 집이 무너지면서 열 남매가 폭삭 깔려 죽었습니다. 그 때에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라고 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이 취하여 가시는데 찬송할 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앙입니다. 게다가 온몸에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줄줄 흐를 정도로 쑤시고 아픈데다가 마누라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하지요, 가까운 친구들은 찾아와서 위로는 해주지 않고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런 고통을 당하느냐. 빨리 회개하라”라고 다그치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욥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찬송했습니다. 찬송했다는 것은 감사했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모든 것의 갑절로 축복을 받았고 더 예쁘고 잘생긴 10남매를 받았습니다. 왜 20남매를 안 주셨는가 하면 먼저 죽은 10남매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 있기 때문에 10남매를 주신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신앙이야말로 훌륭한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썩어 냄새가 나는 송장 앞에서 응답해 주실 줄 믿고 감사하며 기도했더니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3. 극심한 죽음의 고통 앞에서
     감사했습니다 (막14:22~26)  여러분,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예수님이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처절하고 극심했는지를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런 고난을 눈앞에 두시고 첫 번 성찬식을 행하시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그 귀하신 몸이 찢기우시고 상하시는 것을 상징하는 성찬떡을 나누어주시면서 감사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22절에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라고 한 말씀에서 “축복하셨다”라는 것은 “감사했다”라는 말씀입니다. “Jesus took bread, gave thanks” 감사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 잔을 드시고도 감사했습니다. 23절의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한 말씀도 감사했다는 말씀입니다. “Then he took the cup, gave thanks” 온몸이 찢기우시고 피를 다 쏟으시며 십자가의 고통을 앞두시고도 감사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 결과 세상만민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지옥 갈 죄인이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가는 일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처절한 실패와 고통, 슬픔 가운데서도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며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94년 10월 감독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되기 얼마 전, 총회 몇 일 전에 기도하는 가운데 “당선된다”는 응답 대신 낙선되리라는 영음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동족에게 버림받고 하나님께도 일시나마 버림받고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았느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느냐’ 하고 비웃고 조롱하지 않았느냐. 너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오더라도 잘 참아야 한다”라는 음성이 들려오더니 설마 했는데 정말 떨어졌습니다. 그때, 참담한 심정으로 차를 타고 오는데 “하나님, 교리수호에 이어서 사단의 무리들을  숙청하고 말씀과 신앙 중심의 교단을 세우려고 했는데 떨어졌으니 얼마나 그들이 비웃겠습니까?” 할 때에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에도 사탄이 이긴 것 같았고 악이 선을 이긴 것 같았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았지만 승리의 부활이 있었던 것처럼 너와 금란교회에 더 큰 복을 주고 온 세상에 더 큰 영광을 나타내리라”라는 음성이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이건 너무합니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지만 온 성도들이 그렇게 많이 기도했는데 교인들의 믿음에 손상이 가면 어떻게 합니까? 무슨 면목으로 강단에 섭니까?” 할 때에 “예수님도 십자가의 쓴 잔이 물러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십자가에 목 박히지 않았느냐 십자가의 고난 후에는 더 큰 은혜와 복을 주리니 참고 기다려라”라는 응답이 왔습니다. 과연 그 다음 번에 서울연회감독과 감독회장이 되었고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가 되었고 최대의 성전을 건축하고 2006년에 WMC대회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크게 쓰시고 크게 축복하시는 사람일수록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달콤한 것만 먹게 하시거나 안일하게만 두시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고난과 슬픔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면 큰 사명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극도의 고난과 슬픔을 당해도 예수님처럼 감사해야 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귀한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작년 8, 9월에 억울하게 40일 동안 구속당한 사건은 제 목회 40여 년 동안에 가장 큰 고난과 수치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 후 지난 일 년 동안 우리교회가 최고로 부흥되고 축복받았습니다. 출소하자마자 총력전도의 달 한 달 동안에 5,000명 이상 전도하여 등록했고 지난 10월총력전도의 달에 12,000명이 넘는 새신자가 등록했습니다. 아마 이번에 전도한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알곡신자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믿음으로 당하는 모든 고난과 슬픔에는 현세에든 내세에든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과 상급이 따를 것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처럼 감사해야 합니다. 결코 신앙의 절개를 굽히거나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 3장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죄로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들어가 타죽게 되었을 때에 마지막으로 왕이 회유하기를 이제라도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할 때에 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타죽지 않게 해주실 줄 믿지마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순교의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결국 세 사람이 들어갔는데 네 사람이 풀무 안에서 왔다갔다하면서 타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나오게 했습니다. 우리도 백절불굴의 신앙을 가지고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이요, 하나님의 큰상을 받을 사람이요, 귀한 그릇이 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① 지극히 작은 것에도 감사하셨고 ② 썩어 냄새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감사하셨고 ③ 처참한 죽음의 고통을 앞두고도 감사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때마다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영육간에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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