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술과 성령의 새 술 (잠23:31∼35,엡 5:18)
술은 묘한 것이어서 술을 먹는 사람들에게 술을 먹은 티를 나게 한다. 술을 먹으면 1. 술 냄새가 난다. 술을 많이 먹었던, 적게 먹었던 술 냄새가 나므로 술 먹은 것을 보지 않았어도 술 먹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2. 얼굴색이 달라진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얼굴이 발갛게 되고 눈이 발갛게 되는 사람도 있고 창백하게 되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얼굴색이든지 술 먹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3. 용감해진다. 술을 먹기 전에는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던 사람도 술을 먹으면 달라져서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달라붙어서 용감하게 맞선다.
이처럼 술을 먹은 사람의 행동을 보면 술 먹은 것을 직접 보지 않았어도 술 먹은 사람임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그에게 성령이 임하였는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다. '나타나는 열매'로 알 수 있다. 행2:13을 보라. 성령을 받은 자를 가리켜 어떤 이들이 조롱하며 가로되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 하였다. 이는 성령 받은 사람을 비꼬는 말이었지만 성령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새 술에 취한 사람은 1. 새 술 냄새가 난다. 그 새 술 냄새는 예수의 냄새이다. 진정으로 악취를 풍기던 사람이 예수 사랑 냄새를 내면 그가 어디서 왔던지 간에 성령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술 취함 같이 새 술에 취한 사람은 2. 얼굴색이 달라진다. 기쁨과 환희의 얼굴색이다. 슬픔과 근심과 걱정에 얽매여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생일지라도 다 죽어가는 얼굴이 아니라 소망이 넘치는 얼굴색이다. 근심, 걱정에 물러간 환한 얼굴색이다. 이 사람은 어디를 보아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세상 술에 취한 사람이 용감하듯 3. 새 술에 취한 성령의 사람 역시 용감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도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는 비겁장이였다. 그러나 새 술에 취한 베드로는 담대해졌고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일어서는 자가 되었다.
이렇게 예수의 복음을 위해 담대한 자가 되면 그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성령의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 술은 먹으면 먹을수록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오늘 잠23:32을 보니 술의 피해는 "뱀 같이 쏠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잠23:33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라고 하였다. 그리고 술은 잠23:34 정신을 혼미케 하여 착각과 망각 속에 거하게 하고 더 나아가 잠23:35 술의 문제는 다시 술을 찾는 알코올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술을 받아드리면 안된다. 잠23: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것을 보지도 말지니라" 술 그림자도 얼씬 못하도록 보지도 말라 하였으니 얼마나 술을 금하는 말인가?
오늘 엡5:18을 보라. "술 취하지 말라." 술이 가져오는 잘못된 결과를 알기에 술을 금하고 있다. 그리고 술 취함이란 방탕한 것이라 하였다. 즉 육체의 일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크리스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바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이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령 충만은 받을수록 더 풍성한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겔47:3∼5에 기록된 강물은 더욱 깊어지는 물을 측량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이란 점점 풍성한 은혜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이란 어두움과 빛이 구분되듯 세상 술에 취하는 자와 삶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술 취함은 더러운 것에 지배를 받고 새 술에 취하는 성령 충만은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한 힘에 지배를 받게 된다. 스펄젼은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술 취함은 사람을 인생의 밑바닥으로 데려가 결국 짐승 같이 되게 하고 성령 충만은 사람을 높은 곳으로 인도해 마침내 하나님의 높은 곳에 다다르게 한다.
그렇다. 술 취함은 생명을 파괴하고 빼앗는 자해 행위요 새 술에 취함은 생명을 살리고 모두를 살려내는 행위이다. 오목천교회 성도 모두는 성령 충만, 새 술에 취하는 사람이 되자.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적시고 허리를 적시고 온몸을 적시고 헤엄치는 풍성한 삶을 누리자.
둘째, 성령 충만은 성경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엡5:18)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대로 하면 놀라운 일들이 나타난다.
1. 세상의 술을 버리고 죄에 대해 민감해진다.
지난날 과거에는 술을 구하며 다녔다. 그것이 어떤 삶을 이루어 가는지 알지 못한 체 살았다. 그러나 새 술에 취하면 세상 술을 버리게 된다. 더 나아가 삶의 더러운 티끌같이 작은 죄까지라도 예민하게 되어 죄를 죄로 보게 된다. 요16:8 성령은 죄를 책망하는 일을 하기에 영혼을 위해 천국을 위해 나라와 가정과 교회를 위해 죄를 죄로 보는 축복이 임한다.
2. 먹는 것이 달라진다.
술에 취한 자가 되어 살 땐 먹는 것도 담배 같은 것을 기회로 삼는다. 음식도 짜고 맵고 자극성이 강한 것을 먹고 자신의 몸을 헤치는 것을 주로 먹는다. 그러나 새 술에 취하면 먹는 것이 달라진다. 성경 말씀을 읽어도 말씀이 내 가슴에 와서 부딪혀 눈물이 되고 불이 되고 감격이 되고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 읽지 않던 말씀을 읽게 되고 듣지 않고 묵상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알고 자꾸 가까이 하게 된다. 그래서 시19:10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모한 말씀으로 되어진다. 먹는 것이 달라지니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은 해처럼 빛나고 아름답게 된다.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고 강건한 성도가 된다.
3. 신앙 생활에 부지런하게 된다.
세상 술에 취한 사람은 예배와 기도의 맛을 모른다. 더 많이, 더 크게 부어라, 마셔라의 삶이 전부인줄 알고 살던 사람이라도 성령 충만하게 되면 예배 드리는 일에 마음이 향한다. 신앙 생활에 늦을까 서두르고 춤을 추듯 교회로 달린다. 예배 생활이 기다려지고 일찍 문을 나선다. 그리고 기도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부르짖는다.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이 즐겁기에 기쁘게 성전을 향한다. 예배 생활에 늦고 지각하고 기도 생활에 무관심하고 도움을 주께 요청하지 않는다면 세속적인 것에 부지런한 것이다. 성령 충만은 예배와 기도 생활을 부지런하게 한다. 모든 일의 우선이 예배와 기도이다.
4. 성도를 거룩한 삶으로 바꾼다.
성령 충만은 내면 세계 속의 기어 장치가 바뀐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예수의 거룩한 성품이 삶에 나타난다. 그 동안 세상 술에 취할 땐 더러운 욕설을 퍼붓고 싸우고 복수하는 더러운 악한 성품이 드러났다.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경멸하는 교만의 성품이 나타났다. 그러나 새 술은 거룩한 삶의 열매가 나타나게 한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갈5:22에 기록된 성령의 9가지 열매이다. 그래서 추한 삶이 거룩한 삶으로 바뀐다. 누구든지 품성에 나타난 열매가 거룩하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아내와 딸을 배반하고 다른 여자에게 바람난 남편을 그의 딸은 증오하였다. 어려운 살림을 살아가며 모녀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일생을 살았다. 늙어 병든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드릴 수 없었다. 길 밖에서 고꾸라져 죽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이 모녀에게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침상에 누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웃집에 사는 성도에게 전도를 받게 되었는데 무심코 교회를 나가서 말씀을 듣다가 회개가 터졌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셔서 눈물나게 하시고 새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질병도 나음을 받게 되고 밉고 보기 싫던 남편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결국 이 모녀의 가정은 남편의 전체를 받아드리고 새로운 용서의 사람이 되었다.
내 품성 속에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인 성령의 열매가 있으면 그는 성령 충만한 성도이다.
5. 삶이 언제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바울은 빌1:20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입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하였다. 내가 나타내려고 하던 삶이 성령 충만하게 되면 오직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돈을 벌었을 때도 땅을 찾았을 때도 친구를 사귀고 삶의 미래를 결정한 때에도 모든 분야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범사에 주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것이 성령 충만의 결과이다. 살든지 죽든지 주께 영광을 돌리는 것, 바로 성령 충만의 모습이다.
6. 능력이 나타난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외적 사역이다. 그러나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서 능력이 초자연적으로 나타난다. 그 능력은 방언, 신유, 영분별 등 여러 가지이지만 그 능력은 증인이 되게 한다. 행1:8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증인이 되리라" 하였다. 성령은 예언으로도 능력을 나타내고 앞을 인도해준다. 삶 속에 초자연적 능력이 나타나면 그것이 성령의 세례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유지할 대 성령 충만에 이른다. 새 술에 취하려 하자. 약한 내가 나타나는 능력으로 인해 큰 일을 행할 수 있다.
7. 교회를 위하여 산다.
교회의 건강은 성령 충만에 달려 있다. 사람의 허물과 비난을 덮어주고 결점과 모자람을 이해하는 사랑의 삶은 성령 충만에 있다. 교회의 지체가 된 성도를 사랑하고 주의 것을 사랑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를 사랑하고 거룩한 사역을 사랑하는 것은 성령 충만이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 좋은 나무인지 좋지 않은 나무인지 그저 열매로 나무의 됨을 안다. 마7:18∼20의 말씀 그대로 크리스챤이 교회를 위하여 사는가 교회를 헐면서 사는가 그것은 바로 나무의 열매가 결정한다.
오늘 우리는 세상 술에 취하여 피폐된 인생으로 사는지 아니면 새 술에 취하여 풍성한 인생으로 사는지 우리의 삶의 나타나는 것으로 점검할 수 있다. 오늘 점검에서 새 술에 취한 자의 모습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세상 술만 마시는 신앙이 아니겠는가? 아무쪼록 성령 충만하여 풍성한 생명으로 살자.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준비하면 성령을 받는다.
영어 단어 중에 Ready란 단어는 R-Repent 회개하라, E-Expect 기대하라, A-Ask 구하라, D-Demand 받아들이라, Y-Yieid 맡기라. 그러면, 새 술에 취한 크리스챤의 일곱 가지가 나타난다.
셋째, 성령 충만은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엡5:16)
악을 이기고 선으로 바꾸는 것, 악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악을 변화시키는 것, 악을 묶어두고 성도가 승리하는 것 그것은 오직 성령 충만에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풍성한 생명을 만들며 살 수 있는 여건이 많지 않다.
오늘 당신은 두 가지 비교된 술 앞에 있다. 두 가지 질문 앞에 있다.
세상 술을 즐겨 마시며 살 것인가?
새 술을 즐겨 마시며 살 것인가?
두 가지 술 취함 속에는 분명 동일하고 비슷한 공통점이 있지만 그 술 취함의 결과는 전혀 다르다. 망하느냐, 흥하느냐, 못되느냐, 잘되느냐, 파괴하느냐, 건설하느냐, 피폐한 인생이 되느냐, 풍성한 인생이 되느냐, 사단을 기쁘게 하느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느냐 죄의 종이 되느냐, 의의 종이 되느냐. 우리는 오직 성령을 마시자. 성령의 새 술에 취하자. 성령이 내 속에서 역사할 때 거룩한 열매를 가득히 맺는 진짜 성도가 되자. 능력이 나타나는 초자연적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출처/김철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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