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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시온의 딸아 (습3:14-17)

by 【고동엽】 2022. 9. 13.

시온의 딸아  (습3:14-17)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기에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딸"이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씀들입니다. 아버지가 자기의 딸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노래할찌어다, 기쁘게 부를찌어다,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습니다. 모두가 손에 태극기를 들고서 거리로 좇아나왔습니다.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눈물을 흘리면서 애국가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교회에서는 시온의 딸들이 모여서 찬송을 목이매인 채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광복에 대해서 우리는 전심으로 기뻐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형벌을 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원수를 쫓아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나라의 주인이 되셔서 다시는 우리가 원수의 손으로부터 화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일제치하 36년 동안 우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서러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나라와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말과 글도 빼앗겼습니다. 성과 이름도 빼앗겼습니다. 남자들은 전쟁터에 끌려가고 여자들은 정신대에 끌려가서 몸과 마음을 마구잡이로 짓밟혔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신앙조차도 빼앗겼습니다. 일본은 자기 나라의 왕을 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만든 신사에 참배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또 처형을 당했습니다. 더러는 작두에 목이 잘려 죽기도 했습니다. 제암리 교회에서는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던 성도들이 일본 순사들이 지른 불에 타서 죽는 참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린 아이들이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걸하면서 문밖으로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순사들은 잔인하게도 그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총을 쏴서 다 죽였습니다.
결국 일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1945년 8월 6, 9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원자탄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8월 15일 일본의 왕 히로이또는 낮 정오방송을 통해서 떨리는 음성으로 연합군에게 무조건적으로 항복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광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해방을 얻게 된 것은 우리에게 어떤 힘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벌을 제하여 주셨고,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를 쫓아내 주신 것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주변에 있는 열국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손을 늘어뜨린 채 기죽어 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나라입니다. 4강까지 올라간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이가 최근에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데 독일 사람들이 그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KOREA에서 왔다고 대답하지 않고, 손을 흔들면서 "대한민국!"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짝짝짝짝!"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젊은이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평소에는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물론 부끄럽게 여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의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그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또 그 사실에 대해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신문에 글을 기고한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를 귀하게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방을 주시고 또 특별하신 은총으로 우리를 지금까지 돌보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민족을 이 시대에 뛰어난 나라, 열국 가운데 제사장 나라로 삼아주신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물론 우리는 해방 후에도 나라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6·25동란이 있었습니다. 또 IMF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그 모든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방 직후에 총신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셨던 미국의 존 크레인 선교사님, 한국명은 구례인 목사님(具禮仁, Dr. John Curtis Crane)이십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종종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하나님께 특별하신 은총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조선이 아닙니까?"
조선 사람을 영어로 쓰면 "chosen people,"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뜻깊은 광복기념주일을 맞이해서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시온의 딸들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자유, 죄의 권세로부터 사탄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자유케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시온의 딸들인 우리에게 노래하라, 기쁘게 부르라,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면서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우리에게 세 가지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있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하나님은 유다의 모든 형벌을 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가운데 찰리 채플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하루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 분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갖가지 화장품을 발라놓아서 파리가 날아와서 자꾸 그의 얼굴에 붙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손으로 쫓아내면 날아갔다가 또 다시 날아와서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같은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니까 그가 얼마나 성가셨겠습니까? 급기야 화가 난 그는 파리채를 찾아 쥐었습니다. 그리고 파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때마침 파리는 책상 위에 얌전히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파리채를 들고서 내려치려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슬그머니 자기 자리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의아스럽게 여기면서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니, 여보게. 파리를 잡으러 갔으면 파리를 잡아야지 왜 그냥 돌아오는가?"
그랬더니 그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응, 파리를 잡으려고 했더니 그 놈이 말이야. 자기의 두 손으로 싹싹 빌면서 살려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애걸하지 않겠나? 그러니 내가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어. 용서해 주기로 했지."
파리도 잘못했다고 두 손으로 싹싹 비니까 채플린도 죽이지 않고 용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왜 용서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뿐만 아니고 우리에게 더 큰 복까지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는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선에 보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살인죄까지 범했습니다. 간음죄에 살인죄까지 더 더했으니까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기억조차도 아니하셨습니다. 그 엄청난 죄를 지은 다윗이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서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고 다윗이 죽고 난 뒤 다윗과 밧세바의 소생인 솔로몬을 다윗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때에 따라서 시온의 딸인 우리들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를 회복케 해 주십니다. 오히려 더 큰 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당시 유다의 왕은 요시아였습니다. 요시아는 8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어렸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매우 돈독했습니다. 아주 신앙심이 투철했습니다. 그런데 스바냐의 부왕이었던 아몬 그리고 그 위에 므낫세, 이 두 임금은 아주 사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지 않고 이방신을 아주 문란하게 섬겼습니다. 그래서 요시아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을 때 유다 전역에는 상단이 가득했습니다. 요시아는 스바냐 선지자의 말씀에 힘을 입어서 유다 전역에 있는 상단들을 다 허물었습니다. 바울과 앗세라 그리고 하늘의 일월성신들을 위해서 만들었던 그 재단을 다 불살랐습니다. 찢고 빻아서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강물에 다 떠내려보냈습니다. 그 자리를 다 더럽혔습니다. 거기에 다시는 그런 상단들이 들어서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철저한 회개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유다의 모든 형벌을 제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다 사하여 주셨습니다. 오히려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시아가 유다의 왕으로 재임한 31년 동안 유다는 부강할 수 있었습니다. 번창했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두 손 들고 하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회복해 주시고, 더 큰 복을 주시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용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온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키심이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계속해서 봅니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이 지키시니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를 쫓아내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해방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할 때였습니다. 그들은 아주 무서운 음모를 세웠습니다. 금강산에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들과 기독교 지도자들 약 20만명을 초청해서 대규모의 수련회를 가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금강산 부근에 큰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관광차에 그들을 태우고서는 사고를 위장해 20만명을 송두리째 생매장시킬 음모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D-day를 8월 19일로 정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해방을 조금이라도 늦추셨더라면 우리 민족은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8월 6일과 9일, 이틀 간에 걸쳐서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사상자 수가 모두 20만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 20만명을 죽이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자기들이 20만명이 죽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은 그대로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8월 15일을 기해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은 우리나라에서 모든 원수들을 쫓아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를 쫓아내실 뿐만 아니고 더 이상 원수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조오련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아시아의 물개라고 불리는 수영선수입니다. 조오련선수는 대한해협(부산 앞바다)에서 쓰시마섬까지 48km를 13시간 16분 동안 수영을 해서 횡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몇 해 뒤에 도버해협, 영국과 불란서 사이도 역시 수영으로 횡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그가 수영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보셨습니까? 그는 수영을 할 때 배를 이용해서 그 주변에 큰 그물을 쳐놓았습니다. 그물 속에서 계속해서 수영을 했습니다.
왜 그물을 쳐놓았겠습니까? 너무나도 먼 거리이기 때문에 행여 중간에서 기진맥진해 물에 빠져버리면 그물을 건져내서 구원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먼 바다를 수영하는 선수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상어떼입니다. 상어떼가 갑자기 습격하게 되면 아무리 힘센 수영선수라 할지라도 수영은 고사하고 상어의 먹이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수영선수로 하여금 상어떼에서 보호하고, 자유롭게 안심하고 오로지 수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큰 그물을 주변에 둘러 쳐놓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바냐 선지자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그물이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상어떼와 같은 원수나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그물이 되시고, 우리의 산성, 우리의 방패, 우리의 요새가 되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셔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온성까지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까지 반드시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릴 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 나오는 내용을 우리가 잘 압니다.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아람이 아무리 해도 이스라엘을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람이 대군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그 길을 미리 알고서 철통같은 경계를 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은 번번이 패했습니다. 그러자 아람왕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틀림없이 이것은 자기의 진영 안에 첩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아람왕의 신복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스라엘의 첩자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가운데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이기 때문에 왕께서 침상에서 사사로이 하시는 말씀조차도 다 듣고 자기 나라 왕에게 고해 바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아람왕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엘리사를 먼저 붙잡아 없애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왕은 대군을 보냈습니다. 밤중에 엘리사가 살고 있는 도단성을 빙 둘러 포위했습니다. 아침 일찍이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나가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 엘리사에게 고해바쳤습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그때 엘리사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훨씬 더 많으니라."
그리고 엘리사는 게하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게하시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가 보니까 산 위에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했습니다. 그 수많은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빙 둘러서 보호해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데 감히 누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시온의 딸들입니다. 저 시온성까지 하나님은 반드시 안전하고도 무사히 우리를 인도하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주와 더불어서 매일매일 기쁘고 즐겁게 찬송하면서 걸어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기뻐하시는 것도 그냥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실 정도로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기뻐하십니다. 지극히 기뻐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시온의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다른 아이들이 아무리 잘해도 부모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옆집에 있는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분, 기뻐하십니까? 오히려 화가 나서 부부 사이에 싸움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다른 아이는 공부 잘하는데 왜 우리 아이는 공부를 못하냐는 등, 왜 교육을 그렇게 시켰느냐는 것입니다. 서로 남편 탓, 아내 탓을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 공부 잘하고 내 자식이 선생님 칭찬을 받아야 부모는 기쁜 것입니다. 내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로 인하여 기뻐하십니까? 천사들로 인하여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나라 여자 골프선수들이 LPGA 투어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한나라당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의 딸들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인해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보통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실 정도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어떻게 사랑하셨다고 했습니까?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요란스럽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아침마다 확성기 틀어놓고 "야, 아무개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떠들면서 사랑하십니까? 그러지 않습니다. "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쓰여 있는 플랜카드를 걸어놓고 포스터를 붙여놓고 사랑하십니까? 안그래도 부모는 잠잠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돈 백만원을 주는 것은 아깝습니다. 그러나 내 자식에게 수십억, 수백억을 유산으로 물려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더 물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지 않습니까? 내 자식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실 때 소란스럽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니까 도도히 흘러가는 깊은 강물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이 서부를 개척할 당시였습니다. 어떤 시골 외딴 마을에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가 차서 학교 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산을 넘어야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속에는 아주 울창한 숲이 있고 사나운 맹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무서운 곰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곰들은 사람을 해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아들에게 이렇게 다짐을 주었습니다.
"얘야, 네가 꼭 학교에 가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그러나 이 아빠는 네가 어릴 때부터 사내 대장부답게 용감하고 씩씩하게 자라주길 바란다. 그러니 너 혼자라도 학교에 갈 수 있다면 허락하겠다. 어떠니? 갈 수 있겠니?"
아들은 너무나도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에 자기 혼자서라도 학교에 가겠다고 단단히 다짐을 했습니다. 물론 혼자서 울창한 수풀을 지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언제 사나운 맹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아들은 조심조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몇 일 다니는 사이에 조금 담력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데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큰 곰 한 마리가 사나운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앞을 막아섰습니다. 아이는 너무나 두려운 생각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정지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뒤에서 "탕!"하는 총소리가 들리더니 아이를 위협하던 곰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누가 서 있었겠습니까? 아버지가 총을 들고서 빙긋이 웃으면서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튼튼한 두 팔로 사랑하는 아들을 꼭 껴안아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괜찮지? 이 아빠는 네가 학교 갈 때도 너의 뒤를 따라갔었고 또 네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너의 뒤에 숨어서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아빠는 그저 네가 어릴 때부터 사내 대장부처럼 용감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들인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믿음의 대장부로서, 이 세상을 이기되 넉넉히 날마다 이기면서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십자가의 군병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잠잠히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제일 끝에 보면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친히 즐겁게 노래를 부르실 정도로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비록 환난이 많고 어려움을 당하면서 사는 이 세상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생각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찬양하면서 살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늘 함께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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