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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증 여인의 믿음 (막 5:21-34)

by 【고동엽】 2022. 9. 11.

혈루증 여인의 믿음  (막 5:21-34)

오직 예수!
우리 주님은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유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친히 모진 고통을 담당하셨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어가는 어린 아이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에 가득한 고통과 고난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특히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의 처지는 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병은 만성 출혈증으로서, 당시의 의술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고생하며 고쳐보려고 애를 썼지만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아무런 소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포자기하며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이 때 이 여인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자기 동네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여인은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 때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이 여인에게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 는 생각을 넣어주셨습니다. 여인은 사력을 다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옷 가를 만졌습니다.

  그리하여 이 여인이 가진 믿음은 주님의 능력을 이끌어 내었고, 놀랍게도 이 여인은 오랜 불치병으로부터 놓여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은 혈루증 여인을 동정하며 여인의 병 고침 받음을 축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여인의 혈루증과 같은 우리 영혼의 만성 질병이 없는지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그 질병을 찾아내어 진단하고, 예수님께 고침을 받자는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  우리는 본문에서 한 연약한 사람 속에 자리잡은 믿음이 어떻게 기적을 체험하게 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영웅적인 신앙인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 예를 보게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기적을 체험하는 시간, 믿음의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절망을 이기게 함
  혈루증 여인의 믿음은 그에게 닥쳐온 절망적인 환경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절망을 이기는 믿음’ 이었습니다.

  26절,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여러분!  이 여인의 상태는 한마디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병에 시달려 온 세월이 열 두해였습니다.
  12라는 숫자는 하늘의 수인 ‘3’과 땅의 수인 ‘4’를 곱한 수로서 완전을 상징합니다. 길고 긴 세월 동안 고난 가운데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의학이 발달한 요즈음에도 종종 오진이나 의료사고들이 일어나는데, 당시에는 잘못된 진단이나 비과학적인 진료, 터무니 없이 비싼 치료비 등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을 주는 경우가 더욱 많았을 것은 자명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혈루증에 대한 치료 방법으로, 마늘과 같은 식물에 포도주를 섞어 먹였다고 합니다.
  또는 환자를 놀라게 하며 ‘너는 혈루에서 일어서라’ 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 여인도 많은 의원들에게서 이같은 치료를 받았을 것입니다.

  본서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의사들의 치유조차 결과적으로 이 여인을 괴롭게 하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여인의 병은 인간적으로는 완전히 치유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26절, 27절에는 여인의 형편을 묘사하는 단어들이 모두 분사형으로 나옵니다. ‘괴로움을 받았고’,  ‘허비하였으되’,  ‘효험이 없고‘,  ’중하였던 차에‘ 등, 네 개의 분사는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자신의 병으로 인해 받았었던 고통을 현실감 있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또 그 이후에 계속되는 ‘소문을 듣고’,  ‘뒤로 와서’ 등의 분사는 예수님을 찾아온 경위를 설명해줍니다.

  26, 27절에서 단 한개의 일반 동사도 사용되지 않고 분사만 여섯 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한 여인이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지난 12년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를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긴 호흡으로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써버렸습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면서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습니다. 죽음 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망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병은 당시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병으로 간주되어 사람들로부터 격리될 수밖에 없는 병이었습니다(레 15:19-33).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 상태였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불치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물론, 모든 재산마저 잃고 심지어 사회로부터도 버림받는, 그야말로 마지막 한계상황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더라면 성경의 인물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체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어나 무리 가운데로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양 속담에 “결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치명적인 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절망은 믿지 않는 데서 오는 병입니다. 성도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절망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에게 닥쳐온 어려움은 어느 정도입니까?  혈루증 여인이 겪었던 절망적인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어떻습니까?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여인과 같은 믿음이 있다면 그 어려움이 여러분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주님을 믿음의 손으로 붙잡기만 하면 우리도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서현의 가족들은 절망을 이기는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함
  혈루증 여인은 믿음을 통하여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 여인이 취한 행동은 확실한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적극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은 12년동안이나 하혈을 했습니다. 아마도 주위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적극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냄새난다고 찡그리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옹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병이 곧 나았습니다.

  “그의 옷에 손을 대니”에서 ‘옷’은 원문 상 ‘옷의 가장자리’ 또는 ‘옷 가’(눅 8:44)를 말합니다.
  “손을 댔다”(헵사토)는 말은 부정과거형이므로 옷을 계속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단 한 번만 스치듯이 옷 가에 손을 댄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여인의 병이 떠난 것은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여인의 믿음과 그녀를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자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육체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3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섰습니다. 이것은 여인 속에 주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믿음을 크게 보셨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여기 ‘이는’ 에 해당하는 접속사 ‘가르’는 ‘왜냐하면 ...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됩니다.
  사실 여인이 예수께 다가가 그의 옷을 만지려고 하는 행동은 당시로서는 율법이 엄히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28절은 여인의 확고한 믿음을 묘사하는 문장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사회와 종교 공동체로부터 따돌림 받고,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불결하고 부정한 여인으로 냉대를 받았을 여인!
  이 여인이 이처럼 위험한 행동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스치듯이 옷 가에 손이 닿기만 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 등은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순전하고 결사적이었나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함일러라”(엘레겐) 라고 번역한 단어는 반복적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여인은 마음 속으로 ‘내가 그의 옷 가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계속해서 되뇌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적극적인 행동을 가능케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지고자 하던 사람들은 이 여인 외에도 당시에 많이 있었습니다. 막 3:10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피해 배에 올라서 말씀을 전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주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에게 탁월한 능력이 있어 그를 만지면 혹시 자기들의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여인은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굳은 신뢰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손 만을 댄 것이 아니고 자신의 간절한 마음과 신실한 믿음을 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인정하셨습니다(34절).  할렐루야!

  선교사 허드선 테일러(Hudson Taylor)가 처음 중국에 갈 때였습니다. 범선을 타고 항해하는 중에 식인 섬 해안 가까이 왔을 때 바람이 불지 않아 배가 멈추었습니다. 뱃길을 바꿀 틈도 없이 배는 해안선 쪽으로 서서히 떠밀려 가고 있었습니다. 야만인들은 열렬히 축제를 고대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장이 테일러 선교사에게 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달라고 간절히 원했습니다.
  “좋소. 바람을 잡을 수 있도록 돛을 펴시오.”
  선장은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돛을 펴는 것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돛을 준비하지 않으면 나는 기도하지 않겠소.”
  결국 두려움에 떨던 선장이 졌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돛을 올리고 기다렸습니다.
  선교사는 특별 기도실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선장이 기도실의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아직도 바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렇소”
  “이제 그만해도 되겠습니다. 배가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허드선 테일러 선교사 같은 적극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혈루증 여인이 가졌던 적극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기를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스런 형편이 닥쳐왔습니까?  더욱 적극적인 믿음으로 예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기도를 하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집회에 참석하시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전도를 하더라도, 봉사를 하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이 적극적인 믿음을 가질 때 기적이 일어나고, 주님의 능력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3. 믿음 위에 임하는 주님의 축복
  이제 이 믿음의 여인에게 베푸신 주님의 축복을 생각해 봅시다. 본서의 저자 마가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문학적이고 신앙적인 내용으로 여인의 치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9절,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혈루 근원’에서 ‘근원’에 해당하는 ‘페게’는 샘, 또는 우물이란 뜻입니다. 여인의 혈루증이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원인이 제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인은 이 사실을 즉각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여인이 자신의 옷 가에 손을 댄 사실을 즉시 아셨습니다. 수많은 접촉 가운데 여인의 행위만을 따로 구별하여 아신 예수님입니다. 여인의 믿음의 행위는 예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예수님은 여인의 고질병을 단숨에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은 짐짓 엄한 어조로 장본인을 추적하셨습니다. 주님이 누구의 행동인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사자를 곤혹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당시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여인을 통해 예수님과 치유 사이의 매개는 오직 믿음 뿐임을 분명히 알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많은 사람 가운데 나오게 하시고 그의 믿음을 강조하심으로써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나가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정하신 것입니다.

  둘째,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여인의 믿음의 간증을 듣게 하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자발적인 간증을 원하신 것입니다.

  여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33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공개적인 신앙고백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다 아시는데 구태어 입으로 고백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음 속의 생각과 공개적인 고백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인의 고백을 받으신 주님의 흡족한 마음이 다음 구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3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앞선 구절(25, 33절)에서 ‘여자’(귀네)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여인을 향하여 예수께서 직접 사용하신 호칭은 ‘딸’(뒤가테르)이었습니다. 다음 절에 나오는 회당장의 딸을 가리키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신 것을 보면, 예수께서 이 여인을 얼마나 정감 있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부르셨는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에 의해 딸로 불리워진 이 여인은, 외경에 의하면, 후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가실 때에 주님의 얼굴에 흘린 땀을 닦을 수건을 드렸고, 예수님 얼굴의 땀을 닦은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  혈루증 여인의 믿음은 주님의 축복을 받아내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사랑의 말씀으로 구원을 선포하셨고, 실제로 불치의 병을 완전히 치유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여인에게서 모든 고통의 그림자를 거두어 주셨고, 심령의 평안과 만족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주님의 축복을 받아내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여인의 믿음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이 여인이 가진 믿음은  1)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믿음,  2)만인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님께 나아와 옷 가에 손을 내미는 적극적인 믿음,  3)그리하여 주님의 관심을 받고 마침내 주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는 축복된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여인의 혈루증과 같은 영혼의 만성 질병이 없습니까?  
  아무리 고치려 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숨은 고질병은 없습니까?
  이 여인처럼 적극적인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와 고침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는 데에는 신앙생활의 연조를 따질 것 없습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이라도 속히 기적을 가져오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 읽기와 듣기, 공부하기와 묵상하기를 힘쓰는 가운데 우리 속에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어려움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 모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예수님께로 가지고 나아와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순오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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