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이렇게 전하라(2) (행 17:22-34)

by 【고동엽】 2022. 9. 10.

이렇게 전하라(2)  (행 17:22-34)

총동원과 총력전도 주일을 한 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은 얼마나 기도하시고 노력하시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최선을 다하시리라 믿습니다. 설령 그날에 우리가 잃은 양을 단 한 명도 인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심어린 기도와 정성어린 노력만은 꼭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무슨 큰 결과를 기대하고 이런 날을 정한 것은 아닙니다. 흔히 인용되는 욥기의 한 구절처럼 지금은 우리가 미약하지만 나중엔 반드시 크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과보다는 동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합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질책을 받지 않기 위해서, 아니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 잃은 양을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바울을 통해 '전도 방법'을 배울까 합니다.



1. 호기심을 갖기까지 계속 전하라

오늘의 본문은 바울이 아테네에서 전도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도시에 왔을 때에 받았던 첫 인상은 사도행전 17장 16-18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아테네에 온갖 우상이 넘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문화재 제1호인 파르테논 신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전 438년에 완공된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여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에는 그리스 최대의 신전인 제우스 신전도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회당과 광장에서 모인 사람들이 날마다 토론을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온갖 종류의 철학자들이 모여들어 서로 토론과 논쟁을 즐겼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8절을 보면, 바울이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쾌락주의 철학이었고, 스토아 철학은 신이 우주를 지배한다고 믿었던 범신론이었습니다.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자, 그들의 반응은 상당히 격렬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말쟁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이 사람이 이방 신들을 전하는 것 같다."고 수군거렸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그들은 바울에게 요청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교훈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겠소? 당신은 우리 귀에 생소한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소." 아테네 사람들처럼 복음을 매우 생소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복음은 다른 종교와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온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더욱이 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죽은 자가 부활하였다는 것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복음은 매우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선교사들과 초대 교인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자연이나 조상 혹은 부처를 섬기던 우리 민족에게 예수는 매우 생소한 존재였습니다. 그렇다고 만약 복음 전도자들이 복음 전도를 포기했다면, 오늘의 교회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듣기 싫어도, 이해하지 못해도, 복음을 계속 전하면, 그리고 핍박과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계속 전하면,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기이하게 여깁니다. "예수쟁이에게 뭔가 특별한 게 있나 보다. 안 그러면, 어찌 손해를 감수하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를 믿으려 하는가?"하고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그들도 복음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사람들이 궁금히 여길 때까지 복음을 계속 전해야 합니다.      



2. 불신자를 존중하면서 전하라

바울은 아네테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드디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아테네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매우 생소한 것으로 여겼지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바울은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바울은 그들을 칭찬하였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당신들을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습니다. 내가 두루 다니다 보니,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글을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완전한 무식쟁이, 완전한 불신자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종교심을 인정하였고, 그들의 신앙심을 칭찬하였습니다.

온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세계 곳곳마다 제단이 없는 곳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만이 종교를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과 비슷한 동물도 종교 행위는 전혀 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사람을 잘 흉내내는 동물도 사람처럼 제단을 만들고 예배하는 법은 모릅니다. 오직 사람만이 종교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람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람에게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종교는 완전히 사라진다"고 장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꽁트가 바로 그런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종교는 더 성행합니다. 그러므로 꽁트의 예언은 틀렸습니다. 여러 나라마다 차이가 나는 것들은 많지만, 제단과 종교가 없는 나라가 없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사람들은 타고나면서부터 자신보다 더 큰 존재, 신적인 존재를 찾고 부르고 의지하고 예배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철학의 본산지인 그리스는 또한 종교의 본산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온갖 신들이 나오며, 그리스 사람들은 온갖 신들을 섬겼습니다.

우리 민족도 실로 종교성이 많은 민족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은 샤마니즘(무당 종교)을 섬겨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처럼 온갖 종교들이 들어오고 서로 섞인 나라도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 민족이 죽은 귀신을 섬기고 죽은 조상을 섬기고, 부처를 섬기고, 자연을 섬기곤 하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하나님 을 섬겨 왔습니다. 아무리 무당 종교와 불교와 유교가 성행해도, 비가 오지 않거나 큰 재앙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을 향해 제사를 드려 왔습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고 소리를 치면, 아무도 "하늘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가슴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깊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 선교사가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바로 그 때에 하나님도 선교사의 꽁무니를 따라, 혹은 선교사의 등에 업혀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오신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우리 민족 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애국가를 지으신 안익태 선생님이 기독교인이였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왜 애국가에 하느님이 들어가느냐?"고 따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세계가 놀랄 정도로 짧은 기간에 눈부시게 성장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우리 조상이 마음 깊이 섬기던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불신자를 말 그대로 불신자로 대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마음 깊이에는 무의식 중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스님도 물에 빠지면, "아이구,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처럼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인해도, 실제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 불신자를 불신자로 대하지 말고, 신자로 대하십시오. 아무리 입으로는 불신자라고 말하고, 부처를 믿고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우겨도, 그래도 "당신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해 주십시오.



3. 자세히 알리고, 회개를 촉구하라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의 종교심을 칭찬한 후, 그들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을 자세하게 알려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면서 섬기는 그 하나님은 바로 당신을 지으셨고, 당신에게 생명을 주셨고, 당신과 매우 가까이 계십니다. 당신은 그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모르고 섬기는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믿은 그 하나님입니다. 지금 그 하나님을 더 자세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불신자들이 잘 모르는 하나님을 자세히 알려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잘못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행위를 하나님께서 참아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잘 알지 못하여 우상을 섬기는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시고, 당신이 마음 깊이 갈망하는 참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 지도자들도 죽어서 다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장차 공의의 심판자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가정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하면, 어떤 이들은 비웃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누가 믿고 누가 안 믿을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면, 언젠가는 우리가 전한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그렇게 탁월하게 전도하지 못하더라도, 바울을 본받아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결실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십시오.

출처/이신건 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