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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를 본받아 부흥하는 교회 (행9:31)

by 【고동엽】 2022. 9. 9.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를 본받아 부흥하는 교회  (행9:31)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팔레스틴 지역에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행 13:45,46)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그러나 복음이 먼저 전파된 곳입니다.
(마 10:5,6)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온 이스라엘은 구원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롬 11:26,27)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갈릴리도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 한 곳입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사마리아는 빌립이 복음을 전파한 곳입니다.
(행 8:5,6)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이러한 지역에 교회들이 사울의 일로 어려움을 겪었으니 사울이 회심함으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마찰이 해소되고 부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1907년 처럼 다시 부흥하는 교회가 되되 유대와 길릴리 사마리아 교회를 본 받아 다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31절).
교회에 대한 외부의 박해가 없었다는 의미와 함께 교회가 성장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교회에는 이제 자유와 평화의 서광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 : A.D.37-41)가 자신의 동상을 성전에 세우려 하여 유대인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고 41년 1월 24일에 칼리굴라가 피살됨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상대적으로 감소해지고 사울이 회개하자 그가 선동하던 자들도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든든히 서 갑니다. 가장 거룩한 신앙을 확립했습니다.

  평안한 교회는 마음을 같이합니다.
(고후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스파르타에서 나온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왕이 자기 나라를 방문한 이웃나라 군주에게 스파르타의 성벽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군주는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 도 성벽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스파르타 왕에게 "당신이 그렇게 자랑하고 있는 성벽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스파르타 왕은 자기의 훌륭한 군대를 가리키면서 "이 사람들이 이 국가의 성벽이며, 모든 사람들은 이 성벽을 이루는 벽돌들입니다"라 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벽돌 한 장이 그대로 떨어져 있는 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벽돌이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될 때 요긴하게 쓰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한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유치원에 다니는 딸 하나를 키우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원인 모르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먹구름이 그 가정을 덮은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린 딸이 엄마를 땅에 묻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현관에서부터 시작하여 방, 부엌, 응접실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두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어두운 밤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딸을 침대에 눕히고 기도해 주면서 편히 자라고 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딸이 방에서 우는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가 가 보았더니 "아빠! 무서워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빠가 딸에게 타이릅니다."아무리 어둡고 무서워도 아빠가 있으니 무서워 말고 조용히 자거라."  그런데 어린 딸이 눈을 감고 한참 있더니 "아빠! 아무리 어두워도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라고 하며 안심하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하나님! 딸의 입술을 통해서 나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 감사합니다.  나의 주변이 아무리 어두워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므로 실망치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가정에 먹구름이 덮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같이 느껴지지만 내가 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고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그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그의 마음에 있던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을 그는 느꼈습니다.  그를 사랑하시는 면에서 만세반석이 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을 그 때에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평안은 주님께서 주십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농부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 부인은 늘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침에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엘 같이 가보자고 했습니다. 가보니까 그 닭장 둥우리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는 막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그 암탉은 죽어있었습니다. 농부가 말하기를 "저 머리에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이 암탉의 몸에서 피를 다 빨아 먹었는데 그 놈이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오, 저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움직일 수도 있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 생명을 구원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당신과 나는 멸망 받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위해 고난 받으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으니 이 평안이 진정한 평안입니다. (목회를 돕는 명예화집, 죠지 스코트)

  주를 경외함과
교회 부흥이 교회 구성원의 경건함에 있음을 밝힙니다. 경외는 두려움의 뜻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되 두렵고 떨리는 미음으로 진실한 행함 가운데 섬겼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교회는 교회들만이 마지막 까지 우뚝 서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이내함으로 감당하며 부흥하게 됩니다.

   주를 경외함이 지혜입니다.
(욥 28:28)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어린 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곰은 어떻게 걸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곰은 어미 곰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엄마, 내가 걸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왼쪽 발부터 먼저 뗄까요? 그렇지 않으면 오른쪽 발부터 먼저 떼야 할까요?  앞발들이 먼저 나가야 하나요, 아니면 뒷발부터 옮겨야 하나요? 아니면 왼쪽 두 발이 먼저 나가고 그 다음에 오른쪽 두 발이 나가야 하나요? 그것도 아니면 네 발을 동시에 다 나가야합니까?" 이 질문을 가만히 듣고 있던 어미 곰이 아주 지혜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것 다 걱정할 것 없고 어서 걸어 보기나 해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문제 저 문제를 계속 생각하며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고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 근심하고 주저하고 있으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전심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길을 걷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눈앞에 비치는 계단을 하나 하나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를 경외함이 진리 위에 서게 합니다.
(시 86:11)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한 여인이 꿈에서 시장에 갔습니다. 새로 문을 연 듯한 가게로 들어갔는데 가게 주인은 다름 아닌 하얀 날개를 단 천사였습니다. 여인이 이 가게엔 무엇을 파는지 묻자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무엇이든 팝니다." 그 대답에 너무 놀란 여인은 생각 끝에    인간이 원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결심하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 지혜와 행복, 그리고 두려움과 슬픔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 그 말을 들은 천사가 미소를 지우며 말했습니다. "부인 죄송합니다. 가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이 가게엔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단지 씨앗만을 팔 뿐이죠."
주를 경외하는 심령으로 나아가기를 원 할 때 진리 되신 하나님 안에서 복된 열매를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거룩을 이룹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중세기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자기는 굴속에 들어가 은둔 생활로 고행을 했습니다. 하루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신 고치는 노인만 못하다> 하는 말이 들리었습니다. 그 길로 안토니오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신발 고치는 노인을 방문했습니다. 노인에게 묻기를 노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갑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노인의 대답이 우리는 생활이 극히 가난함으로 매일 신발을 고쳐 생활비로 하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배워주는 것으로 과정을 삼습니다라고 합니다.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초대 교회의 성장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위로'(파라클레시스)는 '격려', '권면'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보혜사(파라클레토스) 성령의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이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이 '주를 경외함으로' 걸을 때에 '성령의 위로'가 함께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신앙 안에서 신실하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기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길만 걸으며 노래 부르며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고통과 환란의 때뿐만 아니라 휴식과 번영의 때에도 성령의 위로에 의지하며 근거하여 살았습니다.

   성령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심장 절개 수술을 한 어떤 사람이 쓴 경험담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술을 받기 전 날 멋진 간호원이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손을 잡고 꽉 잡아보라고 했습니다. 그 간호원이 참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자, 보세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내일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당신은 당신의 심장과 분리된 상태에서 오직 기계의 도움에 의해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당신의 심장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당신의 심장 기능은 다시 정상으로 연결되고 당신은 마침내 회복실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약 6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놓일 것입니다. 당신이 비록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못하고 심지어는 눈을 뜨고 싶어도 뜨지 못하는 상태일지라도 당신의 의식은 완전한 가운데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듣고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 비록 당신이 어찌 할 바를 확실히 알지 못하는 가운데 빠질지라도 당신이 내 손길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호원이 말해 주었던 일들이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몇 시간 동안 손을 잡아 준 간호원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려움을 경험하는 동안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계속 임재 해 주실 것이란 약속은 그가 즐겨 사용하신 보혜사란 말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우리 옆에 와 계셔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약속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도록 합시다.(예화뱅크-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

  성령은 성도의 기업에 보증이십니다.
(엡 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김진홍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몇년 전에 어떤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이 사장님이 큰 집회에 갔다가 불을 받아서 성령체험을 하고 뜨거워져서 눈물을 흘린 모양인데 그 뒤에는 다시 그렇게 뜨겁게 해주는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목사님께 와서"목사님, 제가 전에 뜨거운 불 체험을 했는데 그 뒤에 그 불이 식어 버렸습니다. 사업이 무척 바빴지만 다시 그 뜨거운 불 체험을 하려고 집회가 있다면 모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전에 받은 체험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그래서 "사장님, 하나 물어 봅시다. 전에 뜨거운 체험, 성령받은 뒤에 무얼 했습니까?" 물었더니 "감사드리고 기뻐했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건 당연히 은혜 받아서 기쁜 것이니 감사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생활 속에서 달라진 게 뭐 있습니까?" 했더니 "목사님, 뭘 말씀하시는지요?" 되 묻길래, "사장님, 회사 종업원들 대우를 더 잘해주고 세금 잘 내고 종업원 휴가도 잘 보내 주고 제품도 진실하게 만들고 그런 걸 했습니까?" 했더니 "그런 것 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하길래 "증인이 안 된거죠" 라고 말해주었답니다.(행동하시는 하나님, 김진홍)
성령께서 신령한 기업의 보증이 되시니 성령 받고 권능을 받았다면 자기 기업 속에서 증인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 받고, 권능 받은 뒤에 종업원들에게 영적으로 대하고 나라에 대해서 세금도 바로 내고 진실한 기업인이 되고 있는 자리에서 순교한다는 생각으로, 손해 봐도 진실하게 일하고 남이 욕해도 진리대로 기업을 경영하며 성령 받은 변화가 생활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이 증인 생활이며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 성령께서 더욱 충만한 은혜로 함께 할 줄 믿습니다.

   성령은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십니다.
(롬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시카고의 어느 상점이 화재가 나서 다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그 상점이 이제는 폐업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잿더미가 된 상점 앞에 간판이 나붙었는데,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집의 모든 것은 다 타 버렸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와자식들과 희망은 타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영업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모든 사람이 실망하고 슬퍼할 때에도 성령의 사람들은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언제나 새로운 소망을 주시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믿음을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와 갈릴리아 사마리아 교회에 함께하시어 평안 가운데 든든히 서가게 하시고 주를 경외하게 하시고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게 하시어 숫자가 더하게 하사 부흥케 하셨던 역사가 함께 하도록 협력하고 앞장서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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