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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위대한 신앙은 마음의 결단

by 【고동엽】 2022. 9. 8.
 
 

잠4:23

지난 주일에는 “형통의 사람 형통의 새해”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통의 사람이 되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결단한 만큼 됩니다.
위인들은 보통 범인들과는 다른데가 있습니다. 우선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용기가 다릅니다. 위인은 지혜롭게 결단 내리면서 잘 풀어 나갑니다. 보통 사람들이 머뭇거리고, 우물쭈물 하고, 주저 할 때 위인들은 빨리 결단 내리고, 한발 앞서 가고, 용기 있게 일어서서 나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인이 되려고 하면 우선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 사업, 무슨일이나 .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결단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고향에서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 하실 때 아브라함은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고향을 떠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5세 였다고 했습니다. 사람 나이 75세가 되면 심리적으로 보아서 안정을 추구할 때 입니다. 더 좋은 일이 있다고 해도 새삼스럽게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때 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약점을 극복하고 과감하게 일어나서 고향을 떠납니다. 거기다 다 늙은 아내와 어린 조카를 데리고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고난의 길인 나그네의 길을 떠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위인됨을 말해 주는 모습 입니다.
이런 용기와 결단력은 다른 사람들 보다 언제나 한발 앞서 나가게 만들어 줍니다. 세계의 역사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진행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언제나 그 뒤를 좇아가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무슨 결심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나쁜 방면으로 결심을 자주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듯이 좋은 방면으로 결심을 자주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심을 하느냐는 인생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생은 한순간의 결단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인생은 스무살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추앙을 받는 것은 젊은 시절 ‘6대 생활수칙’을 정하고 그것을 성실히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1. 아침에 일찍 일어나 5분씩 기도한다. - 아침기도는 정신을 맑게 합니다.
2. 불필요한 잡담은 금한다. - 말이 많은 사람은 적이 많습니다.
3. 겸손한 태도와 열정적인 행동, 진실한 대화의 자세를 갖는다.
4. 매일 성경 네장씩 묵상한다. - 성경은 영혼을 살찌우는 자양분이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의탁한다. - 의지할 구석이 있는 사람은 매사에 너그러운 법입니다.
6. 이 수칙을 하루에 두번 이상 큰소리로 외친다.
인생은 결단에 따라 달라집니다. 젊은 시절의 좋은 습관이 멋진 인생을 만드는 것입니다.
1. 신앙은 결단이다.

신앙은 한마디로 “결단(Decision)”이라는 말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란 그리스도를 향해 혹은 위해 결단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결단이란 말은 이것을 택하기 위해서 저것은 버려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저 사람은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포기 할 줄 아는 결단이 지혜로운 결단입니다.
폼페이시의 최후라는 영화를 보면 한참 연회가 무르익어 가는 시간에 도시의 뒷산에서 화산이 터져서 용암이 흘러 도시를 덮어 옵니다. 사람들이 모두 피하여 도시를 탈출하려고 야단 입니다. 그때 어느 여인은 용케도 잘 피신하여 도시를 잘 빠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오다 생각해 보니까 금고 속에 들어 있는 보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나오던 길을 되돌아서 다시 사람들을 비집고 집으로 달려갑니다. 가서는 금고를 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보물들을 끌어안고 황급히 달려 나오지만 이 여인은 그만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벽에 깔려서 한줌 보물들을 가슴에 안고 죽고 맙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은 바로 지혜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종으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삽니다. 외롭고 고달픈 종살이를 하는 동안 주인집 아주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습니다. 이것이 유혹으로 변합니다. 아마 요셉은 외로운 마음에서 누구보다도 쉽게 그 유혹을 받아들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고생도 덜 하고, 편안히 살아 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단호히 뿌리칩니다. 그 결단이 마침내 요셉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캔들러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이 사람은 코카콜라 창업자인데 그 전에는 본래 알콜 중독자였답니다.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의지력이 약해서 늘 결심하지만 그 모양 그 꼴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술에 취해 귀가하는데 도중에 이상하게 마음에 큰 벼락 소리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자기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해야 성공한다!” 그는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 ... 바로 그 시간 남편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감동 받은 캔들러는 아내와 손잡고 기도했고, 그 순간 신앙의 결단을 합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의미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도 결단합니다. 그 후 알콜 중독이 저절로 끊어졌고, 마침내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때로 버려야 할 때는 과감하게 버리고, 미련 없이 떨쳐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런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유혹이 많은 시대입니까. 이런 시대에 이런 결단력이 없이 어떻게 이기고 살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
과감하고도 분별력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신앙의 사건에는 이러한 결단의 아픔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기 위해 나를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만 사는 길이요, 우리가 희생되어야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이 활동하는 처소는 마음입니다. 마음의 결단을 분명히 할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활발하게 역사하심으로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는 우리 마음의 결단으로 시작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역사를 허락하시기 전에 반드시 마음의 결단을 시험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습니다!”라고 기도는 하면서도 마음에 결단을 내리지 않고 양다리를 걸쳐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한편으로는 세상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믿음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게가 있는데, 게는 두 개의 구멍을 뚫어놓고 적이 침입하면 요령껏 도망갑니다. 그래서 게를 잡으려면 한 쪽 구멍을 막아놓고 다른 쪽 구멍으로 파들어 가야 합니다. 게가 두구명을 만들어 놓고 필요에 따라 이 구멍 저구멍으로 도망을 가듯이 신앙생활을 이렇게 양다리를 걸쳐놓고 하면 믿음이 자라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의지하던 통로를 막아 버려야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전진도 후퇴도 못하니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밀고 나감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주님을 믿기로 했으면 뒤를 돌아다보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지 그러치 않으면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는 너무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너무나 굶는 것이 무서워서 어머니는 어린 록페러를 바다에 던져 죽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외삼촌이 말렸습니다.
“누나! 내가 기를 테니까 아들을 바다로 던지지 말아요.”
그래서 그는 외삼촌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어머니가 록펠러를 특별한 애정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어머니 사랑에 감동을 받은 록펠러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다른 여자와 결코 다른 살지 않겠어요.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살겠어요”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53살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결혼하였습니다.
결심은 지켜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그대로 사는 사람들을 쓰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열 두 정탐군을 가나안 땅에 보내 40일 동안 정탐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민13:1-16).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대해 모르셔서 정탐군을 보내라고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 결단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결단을 내리지 아니한 사람을 통해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열 두 명이 40일 동안 정탐을 하고 돌아 왔는데 그 중의 열 명은 마음속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악평해서 보고했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1-33)
열 명의 정탐군들의 이런 부정적인 결단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도록 울고 난 다음 결단을 내립니다. 그들도 부정적으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 .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7-9)고 백성들을 안돈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열 명의 정탐군들은 그 자리에서 재앙을 내려 죽이셨고(민14:37), 열 명의 정탐군으로부터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광야로 회귀시켜 40년 동안 방황하게 하다가 사막에서 모두 죽게 하셨습니다(민14:34-35). 그들의 결단대로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결단을 잘 내려야 합니다. 말대로 됩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0-21)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그 사람의 입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결단에 따라 긍정적으로 역사하든지 부정적으로 역사하든지 하시는 것입니다.

3. 결심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해마다 1월이면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1월이면 담배 판매량이 대폭 줄어듭니다. 1월이면 보통 3억 8천만 갑 담배가 팔립니다. 그러나 2월이 되면 5억 5천 3백만 갑으로 급증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결심은 좋은 것이지만 결심을 지속적으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청년이 년초에 결심하였습니다. 금년에는 매일 15장씩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매일 15장씩 성경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하루에 매일 15장씩 읽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성경을 1시간씩 읽어야 했습니다. 그 청년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너무 과하게 목표를 세운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하루에 5장씩은 꼭 읽겠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5장씩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달 지나고 나니 그 것도 지루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장으로 줄였습니다. 그 것도 세월이 지나고 나니 지루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더 이상 결심을 변하지 않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말자 성경을 펴겠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말씀을 짚겠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그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살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 말자 손가락으로 성경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짚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절이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물러가 목메어 죽으니라”

그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늘 자살하라고 그러시겠느냐? 하나님 !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시 펼쳤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나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 청년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 뽑겠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다시 성경을 펼치고 손가락을 짚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 5절이 보였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래서 그 청년은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세 장씩을 읽어 나갔습니다. 한번 결심한 것을 꾸준히 할 수가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에 보면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흉년이 들어서 부득이 흉년을 피하여 모압땅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 곳에서 비참한 아픔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이 이 세상에 없는 동안에 두 아들을 결혼시켜 두 자부를 맞이 하였습니다. 10년 가량 새로운 시절이 흘렀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또 생겼습니다. 두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세 과부만 남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남편 생각, 두 아들 생각, 고향생각 모두가 아픔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5-17)

이렇게 결심하고 시어머니를 따라 갔더니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 주셔서 나중에 보아스라는 부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리고 또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방여인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4. 복된 결심은 결단한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마음에 결단을 내렸으면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행진을 시작하다가 환경을 바라보고 그만 환경에 눌려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뒤로 물러가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3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기로 마음에 결단을 내렸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부여잡고 걸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지 않는 믿음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을 내리고 행진을 한다고 해서 만사가 형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할지라도 환경에 수없이 역경이 다가옵닏다. 그 때마다 인내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가는 길에 첩첩이 장애물을 설치하고 우리의 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5. 마음의 결단은 마귀를 이깁니다.
마귀도 마음의 결단을 먼저 살핍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도 마음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마음에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으면 마귀는 결코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한 예로, 아담과 하와는 마음의 결단을 내리지 않음으로 마귀의 유혹에 빠져 타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귀가 처음 하와에게 유혹했을 때 마음의 결단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때, 하와가 마음의 결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었습니다.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함으로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다는 희미한 대담을 합니다. 결단이 안된 마음입니다. 그 때 마귀는 이 찬스를 놓치지 않고 유혹의 쇄기를 박아 넣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하와가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단호하게 “천만에!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면 마귀가 틈을 타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요지부종의 결단을 내리심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40일 금식으로 몹시 주리고 쇠하신 예수님에게 마귀가 다가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도 단호했습니다. 마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었습니다. 세가지 시험 모두 다 단호한 모습으로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단호한 결단을 내리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귀가 틈탈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시고 복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출처/임경택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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