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3:27~31
사람은 다 자기 나름대로 그 무엇으로 말미암아 살고, 그 무엇으로 말미암아 자랑하고, 그 무엇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고, 그 무엇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가집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습니까? 먼저 우리가 그 무엇으로 말미암아 자랑하고 있는지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인간은 다 자랑하기를 원하는데, 이 자랑은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랑은 어디에 있는가?
(1)세상적 자랑(육적 자랑)에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용모에 대한 자랑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키가 크고, 가슴이 떡 벌어지면 우쭐합니다. 여자들은 눈에 쌍꺼풀이 지고, 달걀모양의 얼굴을 가지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에는 다 사실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늙으면 영화에 나오는 그 유명한 배우도 아름다운 것이 없어집니다. 저는 로마의 카타콤에 가서 많은 해골을 보았는데 아름다운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죽으면 아름다움은 살아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가지고 자랑합니다. 많아봤자 인데 그래도 한두 가지 차이로 자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소유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지식이 많아도, 권력이 많아도 그것은 갈 때는 다 놓고 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단순히 재물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인데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은행의 행원이 고객이 맡긴 돈을 자기 것이라고 자기 것 인양 착각하여 자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또 배운 지식을 가지고 자랑합니다. 저도 책을 만여 권을 읽었고, 공부도 나이 40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자백합니다.
가장 가까운 눈썹의 숫자도 모르는 주제에 우리가 뭘 안다고 자랑합니까?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Know thyself(gnothi seauton).
또 가진 권력을 가지고 자랑합니다. 세무 십 년인데, 몸부림 쳐봐도 이승만처럼 쫓겨나고, 박정희처럼 암살당합니다. 진시황제는 자기의 권력을 영원히 누리려고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불로초를 구하여 먹고, 다른 한편으로는 흉노족을 막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국을 순회하는 동안 나이 49에 암살당하여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솔로몬이 탄식했듯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내가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바로 이런 헛된 것입니다.
(2)종교적 자랑(영적 자랑)이 있습니다.
먼저 율법자랑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진 것과 지킨 행위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참 자랑은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27절)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율법의 법이요 다른 하나는 믿음의 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법으로는 참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음은 직분 자랑입니다. 사실 직분은 봉사직 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직분이 벼슬이 되었고, 그것으로 남들을 누르려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부패되어 간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봉사하지 않으면 차라리 직분을 안 가지고 있는 것만 못합니다. 왜냐하면 달란트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계산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본질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오직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이방인들은 단순히 지옥의 땔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큰 착각 속에서 살았습니까? 지금도 종교인들 가운데는 이런 착각이 많습니다.
사실 종교는 가장 무서운 착각을 가져야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종교전쟁으로 변질되는 것도 바로 이런 착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은 단순히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29절) 지금의 우리로는 너무도 상식적인 말이지만 그러나 당시에 이 주장은 유대인들에게 매 맞아 죽을 소리였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주장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였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것은 그가 선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수24:14절).
여호수아서에서는 아브라함은 본래 우상 숭배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란 말은 하나님의 창조신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유대인들의 신앙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혈통적으로,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고, 바울의 신앙은 누구나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3. 놀라운 것은 30-31절에 보면 세 번이나 계속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은 [오직 믿음](sola fide)의 교리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효요 불필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은 세 가지의 중요한 기능이 있고(몽학 선생, 죄의 깨달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함) 또 율법은 오히려 믿음으로 완성되고 믿음으로 확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번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1)내가 구원받은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된 것인가?(믿음으로 말미암아)
(2)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귀한 직분은 맡은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된 것인가?(믿음으로 말미암아)
(3)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서인가?(믿음으로 말미암아)
(4)우리가 천국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가지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서인가?(믿음으로 말미암아)
(5)오늘도 우리가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서인가?(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렇다면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있다면 주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자랑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성도들이 되어 오늘도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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