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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야베스의 기도 (창3:16-19)

by 【고동엽】 2022. 9. 6.

야베스의 기도   (창3:16-19)


이 세상에 존재하는 타락한 인생에게는 그들의 나그네 삶이 수고와 슬픔과 고통뿐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수고와 슬픔의 세상에 살아가는 인생들은 자칫 운명론에 빠져 형편없는 삶을 살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난이나 슬픔이나 고통이 닥칠 때 내 팔자가 이렇게 나빠서 어쩔 수 없다느니, 타고난 운이 없어서 이러한 일을 겪게 되었다고 체념하며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 버리는 비뚤어진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운명론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습니다. 비록 죄인에게 슬픔과 고통과 죽음이 엄습한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성경만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수고의 땅에 거하는 우리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고, 또한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고통이 있고 슬픔이 메마르지 않아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늘의 기업을 주시는 이 축복이 있는 한 결코 성도는 운명론에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숱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의 삶을 누리며 살았던 신앙인 들이 많이 있음을 성경은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닥친 비운을 축복의 삶으로 전환시킨 믿음의 선조 들을 보면서 우리도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여덟 번 일어나는 불굴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수고와 슬픔'의 뜻을 가진 '야베스'가 그의 비운 적 삶을 축복의 삶으로 변화시킴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출생 때부터 「슬픔과 괴로움과 수고로 가득 찼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어머니가 지어 준 이름입니다. 그를 낳을 때 수고로이 낳았기 때문에 비극적인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만일 그 이름이 그의 일생을 지배했다면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형제보다도 존귀한 자"로 축복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야베스라는 인물을 통하여 운명론에 매어 허탄한 삶을 살지 않고 신앙 안에서 믿음 안에서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기도함 속에 축복의 운명으로 소망이 넘치는 은혜의 삶으로 바꾸어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Ⅰ.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가 「수고와 슬픔」의 사람에서 「축복과 은혜」의 사람으로 바꾸어질 수 있었던 놀라운 영적 비결

첫 번째는 전능자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야베스는 인생의 어려움과 고통 중에서 이방인의 어떤 신이나 피조물이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 참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자신의 소원을 기도로 아뢰었습니다. 야베스가 이렇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찾은 것은 오직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 되시며, 참 구주가 되시며 참 소망이 되시며 참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이렇듯 야베스는 야웨 하나님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수 있음을 유일신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여기 '아뢰어'란 말은 히브리어로 '카라'라는 말인데, 이 말은 보통 다급한 요구나, 고질적인 곤궁과 관련된 말로서 '크게 부르짖다'라는 말입니다.

야베스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찾아 소원의 기도를 드리되 조용히 점잖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불의한 재판장 앞에서 탄원하는 과부여인의 기도처럼,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며 당신이 나를 축복하시지 않으면 절대로 놓지 않겠나이다. 고 기도하였던 야곱의 기도처럼, 사력을 다하여 죽기살기로 간구하며 소원을 아뢴 기도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수고'와 '슬픔'의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축복의 사람, 존귀한 사람으로 전환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좌절할 수 있는 위치에서도, 불평과 원망으로 탄식하며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세월을 낭비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야베스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예레미야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덧입어야 합니다.


두 번째 복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도는 강렬한 서약이요, 열렬하고 욕망을 가진 탄원입니다. 여기 "원컨대"는 '내가 소원한다', '내가 바란다'라고 하는 간절한 소원과 소망이 섞인 기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하기 위한 간절한 기대와 소원이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충동, 마음속에서의 간절한 소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는 싸인(Sign)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 하나님, 나에게 복에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야베스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밑도 끝도 없이 복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너무 속 보이는 기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유다의 후손들이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야베스도 자신이 유다의 족보 안에 있는 그의 후손이니 나에게도 복에 복을 더 하사 풍성하게 하셔서 역사를 주도하며 이끌어 갈 수 있게 해달라는 목적이 선하며 분명한 이유가 있는 간구인 것입니다.

마치 나의 아들이 용돈이 떨어지거나 뭔가 아쉬운 것이 있으면 아버지인 내게 찾아와 체면 불구하고 당당하게 "아버지 용돈 좀 주세요!.... 옷 좀 사주세요!" 하고 요청을 하는 것처럼 야베스는 하나님과에 대한 관계가 너무나 친밀하고 확실한 나머지 당당하게 복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소원을 아뢰기에 앞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주시면 더욱 좋고 안 주면 그만이고」그런 영적 상태 가지고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세 번째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야베스의 기도 내용입니다. 이것은 곧 자기의 생존 세계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어디서든지 길이 막히지 않는 형통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도들의 활동 무대는 결코 제한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서남북이 성도들의 활동 영역이요, 활동 무대이기 때문입니다(창13:14-15).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가 받은 선교 사명의 영역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유다 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 끝으로 점점 선교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는 장막과 생활 영역이 넓어지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교회 적으로는 선교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작년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여러분의 지경이 넓어지시기를 소원합니다. 교회 적으로도 작년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선교의 영역을 더 넓히는 늘찬양교회가 되도록 성도 여러분들이 선교에 많은 관심과 기도와 물질을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이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요, 교회의 기도여야 합니다.

네 번째 환란과 근심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환난과 근심을 이기도록 하는 기도입니다. 인생에게는 수많은 환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약의 욥이 당했던 환난은 하루아침에 자식을 다 잃는 환난이요, 재산을 잃고, 건강마저 잃는 환난이었습니다. 환난이란 인간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환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의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인생의 길에서 환난과 근심을 아주 없애 달라는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인생에게는 환난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야베스는 환난을 만날 때마다 주님의 권능으로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받아야 되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는 영광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게 됩니다(행14:22). 그러므로 환난을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거나, 환난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환난이 성도에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주의 손을 의지하는 자는 넘어질 수가 없습니다. 근심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예수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가는 성도들은 환난을 이기며, 마음의 근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Ⅱ. 응답 받은 기도.

본문 10절에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허락하다' 란 말은 히브리어로 '야베'란 말인데 그 의미는 '필요한 것을 가져오다'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오셨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결국 야베스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기도응답을 통하여 축복과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과는 정 반대로 복에 복을 더하여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수고와 슬픔'의 사람이 넓은 지경을 얻게 되었으며, 주의 손이 날마다 함께 하는 은총과 아울러 모든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축복의 사람으로 바꾸어진 야베스를 오늘 성경에서 기록하기를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9절)라고 기록했습니다. 모든 형제들 중에서 가장 축복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러한 야베스와 같은 슬픔의 사람이 변하여, 축복의 사람으로 바꾸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이 야베스와 같은 축복의 사람으로 바꾸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 응답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생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신다는 확실한 증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실망을 당치 아니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는 결코 공수로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결코 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결코 절망의 늪에서 헤매이지 않습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유대의 역대 왕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부지런히 찾은 왕은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라가 평안했고 전쟁에서 늘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기도하지 않은 왕은 모두가 다 실패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야베스는 비록 고난 중에 태어났고 환난 중에 자라난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결코 망할 수가 없습니다.
야베스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슬픔과 수고의 사람이었습니다. 환난 속에서 근심에 빠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체험적인 산 신앙인 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낸 그는 더 이상 근심의 포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는 더 이상 수고와 슬픔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이제 존귀한 자로, 축복의 사람으로, 형통의 사람으로 간증되어지고 있습니다.
비참해진 인생이 하나님을 만난 뒤 변화되어 후세에 사는 우리에게 훌륭한 본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10절)

이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 제목마다 가져오시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출처/김영수 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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