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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리스도의 평강이여 (골로새서 3:12-17)

by 【고동엽】 2022. 9. 5.

오 그리스도의 평강이여   (골로새서 3:12-17)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누가 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아무리 안 되던 일도 사람을 잘 만나면 그 일이 살아나고 피어나며 열매를 맺습니다. 저희 집 주변에 어떤 가게는 사람이 열 번 바뀌어도 안 되었습니다. 그 가게에 오는 사람은 일 년 이내에 또 보따리를 싸서 몇 억 손해보고 나갑니다. 그러다가 주인이 또 한 번 바뀌었는데 새 주인이 오면서 이 가게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주인에 의해서 그 가게만 사는 게 아닙니다. 그 빌딩이, 주변이 사는 것입니다. 그 쪽에 오는 손님들이 많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맴돌면서 그 주변 전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십년 이십년 안 되던 가정도 사람 하나 잘 들어오니 그 가정이 살아납니다. 그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날마다 시험을 허가내서 하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던 교회들, 창피만 당하던 교회가 주의 종 한 사람이 바뀌면서 교회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국가도 그렇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땅도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해도 안 되고 저 사람이 해도 안 되던 땅을 한 사람이 들어가서 이 땅을 살립니다. 문전옥답을, 황금이 쏟아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들이 4 백 년 동안 사사시대를 거쳐서 얼마나 어려움을 당합니까? 열 두 지파가 나누어져서 아주 어렵게 살아가던 그 시대에 다윗이라고 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나라는 한 나라로 뭉쳐지고 힘 있으며 강대한 국가가 됩니다.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미국이라고 지도자가 늘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1대 워싱턴, 3대 제퍼슨 그 다음 16대까지 별반 특별한 사람이 안 나오다가 링컨이 나옵니다. 미국에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링컨 때문입니다. 그 기초위에 세워졌기에 이렇게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발전하여 세계 최고의 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 뿌리에 그 기초에 누가 있느냐 링컨이 있습니다. 링컨 없이 흑인들을 아직까지 그대로 두고 있었더라면, 링컨이 아니면 이 일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미국이 그것 때문에 큰 짐이 되고 오히려 미국은 역사에 부끄러움을 당할 민족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의 이 놀라운 그 손길이 나라를 살리고 인류에게 소망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이렇게 놀라운 일을, 사람이 모든 일을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사람은 아닙니다. 누구나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잘났느냐 못났느냐 어떤 환경에 있느냐 어떤 가문이냐 어떤 좋은 객관적인 조건을 갖추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류와 세계역사에 오늘 날까지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은 다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사람들,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도 살고 가정도 살며 나라와 민족과 인류와 세계를 살릴 수 있는 큰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보면 다윗이 능력이 있었습니까? 목동입니다. 온 몸에 양 똥냄새가 가득차 있는 전혀 교육과 대접을 못 받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할 뿐 만 아니라 어떤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좀 세상을 모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세상을 다 아는 사람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링컨도 어떻게 그렇게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합리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때 링컨이 그런 조건을 갖추었습니까? 일찍이 어머니가 여덟살에 돌아가시고 남의 어머니 밑에서 지내면서 배운것도 없고 교양도 없습니다. 링컨의 통나무집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누구보다 앞서고 모든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우리 인간은 놀라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만군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라를 살리고 인류를 살릴 줄로 믿습니다.

    모세의 손, 그 손 들면 나라가 이깁니다. 내리면 나라가 집니다. 반석의 샘과 홍해를 가릅니다. 그러나 그 손이 모세의 손이냐 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잡고 계시는 그 배후에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모든 지체를 하나님이 사용할 때 창세기 1장에 있는 대로 만물을 다스리고 보존하며, 땅에 충만하고 온 세계와 인류를 위하여 번영하고 발전하며 충만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참 귀한 것입니다. 아무리 귀할지라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같이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 하나님이 함께하는 가정이어야 됩니다. 그가 나의 친구가 되고 그가 나의 인도자가 되며, 그와 함께 걸어가는 발걸음 그 발걸음이 귀하게 되고 그와 함께 걸어가는 모든 삶, 행하는 모든 일, 그가 주장하는 모든 삶은 어느것 하나 남김없이 다 귀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성가대에서도 찬양을 했습니다. 위험한 세상 지날 때 언제나 어디서나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위험한 세상 지날 때 주께서 날 인도 하시니 변치 않고 두렴 없네♬ 위험한 세상 지날 때, 이 어려운 세상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 이것이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를 주장하게 하라” 주장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부락푸토’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중요해서 찾아보니까 ‘심판자’ 라는 뜻입니다. 너의 마음을 주님이 주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심판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농구나 배구할 때 심판이 있지 않습니까? 심판이 결정하면 따릅니다. ‘예수님이 옳다. 이렇다.’ 그러면 너는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길로 가라고 하면 그 심판자의 명대로 따르라는 것입니다. ‘너 이 사람과 결혼하라.’하면 주님의 결정대로 따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것 버리라.’하면 심판자의 명령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너의 몸을 네 마음대로 하지 말고 주님이 주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평강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면 여러분의 길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이끌어 가시면, 주님이 여러분을 주장하시면 여러분은 기쁨의 삶, 소망의 삶,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감사가 넘치는 삶, 사랑이 넘치는 삶 이런 생애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곧장 내가 능력이 많은 줄 알고 내 능력으로, 내 힘으로, 내 지식으로 살며 내가 이렇게 똑똑하고 가진 것이 많으며 능력이 있는데 내가 왜 주의 도움을 받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능력이 많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입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가 굉장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없이 태어나서 우리 인간은 마귀의 종이고 마귀의 소속이 되어서 죄의 지팡이를 짚으며 이 땅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인간 속에는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옷을 입었으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미움과 증오와 음란과 불의와 방탕과 악함과 핵폐기물과 같은 온갖 것들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의 삶과 인생은 내 마음에 천사가 있고 내 삶을 천사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에 의해서 우리는 엄청난 불행한 일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을 보십시오. 능력이 많은 것 같지만 이렇게 답답하게 살고 우울하게 살며 정신병자가 이 작은 나라에 3백만이 될 정도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가운데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대학생 3분의 1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교육을 받고 이렇게 좋은 혜택을 받고 있지만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주의 지배를 받을 때에 우리 마음에 주님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시고 주의 거룩하심과 주의 생명과 주의 은혜가 내 안에 거하여 이 모든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고 주의 빛으로 우리를 환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요사이 인터넷이 발달해서 정보화시대라고 합니다. 정보가 조금씩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하루에 만드는 정보만 하더라도 큰 책을 2천 5백 권을 만들 정도로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정보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람들은 그 좋은 정보를 접하는 게 아니랍니다.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 지식을 얻고 꼭 필요한 정보를 찾는 사람은 6.4퍼센트 밖에 안 되고 95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은 거의 다 쏟아지는 음란물들, 폭력적인 것들, 여기는 또 도박도 게임도 많답니다. 창을 여는 곳마다 그냥 게임이랍니다. 그런 쪽으로 갑니다. 우리 인간이 위의 정보를 무시하고 또한 진짜 좋은 정보는 인터넷에는 안 나온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이 평범한 정보야 내보내 주지만 실질적인 소중한 것은 안 내보냅니다. 얻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것은 세상 정보를 얻으려고 오는 게 아닙니다. 그 정보는 아무리 보아도 구원의 정보는 나오지 않습니다. 생명의 진리의 정보는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은 천국을 향하여 신령한 창을 열고 위의 말씀을 듣고 구원의 말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정보를 어디 땅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으로 새로워지고 강건해지는 이런 축복의 삶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잘 길러서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가지고 좋은 집에 살면 그리스도가 없는 삶에 굉장한 기대를 하고 엄청난 일을 할 것 같지만 별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삶이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돈을 많이 벌면 아마 강남에 고급 룸싸롱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해외에 골프 치러 갈 겁니다. 뭐 그런 정도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갈 곳이 별로 없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 아닙니다. 그리고 답답해서 저녁에 술 많이 먹고 잠들 것입니다. 전화하면 ‘아~ 나는 지금 피곤합니다.’ 그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생이 다 괴롭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월트는 말하기를 ‘인간은 살고 고통하는 그대로 죽는다.’라고 말합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암 브레이크도 말하기를 ‘얼굴마다 슬픔의 그림자와 피곤의 빛이 끼어 있는 것이 인간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피곤하기 그지없고 이 세상을 근심 걱정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무거운 짐은 예수님만이 져 줄 수 있고 예수님만이 해결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국가, 그리스도가 없는 문화는 별로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총회를 몇 번 여기서 했습니다. 총회를 하면 전국에 있는 총대만 1천 5백 명이 지방에서 올라오십니다. 외국의 많은 지도자들이 와서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회의를 하는데 적어도 6개월 전에는 이 주변의 호텔과 여관을 다 잡습니다. 전부 와서 먼저 예약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곳 길동지역이나 천호동에 여관이 많은 대도 못 잡는 것입니다. 아무리 한 주일을 예약을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그리고 또 돈을 엄청나게 몇 배를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달라고 하냐 하니까 ‘아저씨! 그것도 모르세요? 우리는 하룻밤에도 두 탕 세 탕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나라가 이만큼 풍요롭게 엄청난 축복을 받아 늘어나는 것은 술집이고 늘어나는 것은 러브호텔이고 이 많고 많은 러브호텔이 하루에도 몇 탕씩 할 정도로 이 사회는 썩어 병들어있습니다. 사람이 돈 벌어가지고 잘 살고 성공해서 좋은 길로 가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길은 사망의 길,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그리스도가 주장하고 인도하는 발걸음,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심령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삶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평강이 있습니다. 이건 능력입니다. 헬렌켈러는 3중고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3중고가 무엇입니까? 못보고 말도 못하고 또 듣지도 못하고 대체로 안 그렇지 않습니까? 말을 못하면 보든지 또 못 보면 말을 하든지 그렇게 됩니다. 3중고의 어려움을 가지고도 누구를 만났습니까? 누가 함께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실 때... 오늘 눈을 가지고도 모두 어둡게 살고 있는 이 시대, 입을 가지고도 모두 불평불만 가득한 우리의 삶들, 귀가 열려도 생명의 말씀을 못 듣는 이 닫힌 귀들 속에 헬렌켈러는 행복한 삶, 능력 있는 삶을 살아 온 인류와 세계를 위하여 큰일을 하는 20세기 최대의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귀가 있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배워서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함께하시고 주장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벤허라는 영화 아십니까? 유다 벤허는 유대인으로서는 제일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 로마 총독이 들어와서 행군하는데 이 유다 가정의 식구들이 나가서 밖을 내다보는데 이 벤허의 동생 티자라고 하는 여동생이 이렇게 내려 보다 기왓장 하나가 총독의 머리에 떨어지면서 이 가정은 한순간에 불행해집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로마는 이 가정을 의심합니다. ‘총독을 죽이려고 이랬다. 로마를 대적하려고 이랬다.’ 이렇게 해서 마살라라고 하는 이 벤허의 친구는 예루살렘의 사령관인데 벤허를 불러 이 사랑하는 둘도 없는 친구를 노예로 완전히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정치인은 못 믿습니다. 비참하게 옷 다 찢어지고 벗겨서 노예선을 타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여동생하고 어머니는 감옥으로 들어가서 4년 만에 그곳에서 문둥병 환자가 됩니다. 온몸에 문둥이가 들려 썩어지는 이런 비참한 비극을 당합니다.

    또한 이 벤허는 이제 버림을 받아 배를 타려고 막 매 맞으면서 가는 그 순간에 물을 주는 한분을  만납니다. 나사렛에서 그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그때는 몰랐지만은 그 분이 주는 물을 먹고 난 다음 벤허는 이상하게 길이 열립니다. 자기는 자꾸 ‘운이 좋다. 운이 좋다. 나는 누군가가 내 길을 열고 있다.’ 그러지만은 주님이 이 벤허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첼리선이라고 하는 이 배에 올라탔지만은 그 배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배가 큰 몇 척을 이끌고 로마로 가는데 여기에 아리우스라고 하는 호민관이 탔습니다. 로마에 아주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타고 가는데 가다가 전쟁이 일어납니다. 노예는 노를 저어도 다리에 쇠사슬을 매서 젓습니다, 도망치면 안 되니까, 묶어놓고 하는데 ‘41번 풀어줘라.’ 그러는 것입니다. 벤허는 41번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를 젓는데 그만 이 전쟁에 아리우스가 탄 배가 침몰합니다. 다 죽고 물에 빠지고 하는데 아리우스도 물로 뛰어들어 자살합니다. 그런데 벤허가 바로 뒤를 따라서 물위로 헤엄쳐 건져냅니다. 한쪽으로 이러면서... 싹싹 올립니다. 그래서 아리우스가 물 위로 올라 와보니 자기나라 군대가 모두 죽었습니다. 어떻게 로마로 갑니까? 그 사령관이 칼을 빼가지고 자살하려고 그러는데 벤허가 막습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당신은 살아서 나라를 건져야지 죽으면 안 됩니다.’ 계속 바다로 뛰어들려고 그러는데 그것까지 잡습니다. 그런데 바다위에 배위에 떠있는데 저쪽에서 배 하나가 옵니다. 이렇게 보니까 무슨 배인지 살려달라고 이제 벤허가 흔듭니다. 발거 벗고 막 흔듭니다. 그런데 그 배가 로마 배입니다. 그래서 배 위에 올라타니까 막 경례하고 야단입니다. 왜 그러냐 그러니까 ‘각하! 각하의 군대가 전쟁에 이겼습니다. 각하 배만 침몰하고 나머지가 다 전쟁에 이겼습니다. 지금 각하 찾으러 해매였습니다.’ 아리우스 찾다 이 아리우스를 만났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래서 드디어 이 벤허하고 로마로 돌아와서 로마 황제가 대단한 환영식을 합니다. 수많은 로마 시민이 모여가지고 황제가 직접 나와 가지고 꿍짜작작 작작작작 파파박박 둥둥 뭐 이런 악기를 다 동원합니다. 뿡뿡~ 뿡뿡~ 이런 뭐 야단납니다. 로마로 들어갈 때 이제 황제가 있는 곳으로 가는데 황제는 이렇게 누워있고 이제 그 위로 올라갑니다. 계단으로 아리우스가 황제 있는 대로 열심히 올라가서 그리고 딱 지휘봉을 넘겨받습니다. ‘너 옆에 있는 저 젊은이는 누구냐?’, ‘전쟁에서 제 생명을 건져준 은인입니다. 유다 사람입니다.’, ‘그래 로마는 세계에 포로들이 많으니까 그러면 이 포로 너에게 준다.’ 그래서 아리우스는 큰 지휘자가 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영광으로 생명을 건져준 분이 벤허니까 벤허에게 자기의 양자됨을 허락하고 ‘너는 내 아들이다. 내 생명 건져주었으니까.’ 그래서 도장을 탁 넘겨줍니다. 그러나 벤허는 자기 가족이 지금 문제이지 않습니까? 로마에 있어라고 하는데도 기어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에 와서 친구 마살라가 예루살렘 사령관으로 있는데 찾아갑니다. ‘내 동생 찾아내라. 나 살아왔다. 나는 지금 아리우스 2세다. 네 힘으로 능력으로 나를 바다에 던져서 노예로 보냈지만은 나는 그 바다에서 살아왔다. 아리우스 2세로 살아왔다. 너 내 동생 어머니 찾아내라. 안 그러면 내 너를 가만히 안두겠다.’ 벤허는 그것만 가지고 칼을 항상 갈고 있었습니다. 벤허는 지금  주님을 만난 이후로 계속 주님이 같이 합니다.

    며칠 후에 예루살렘에서 전차 경기가 일어납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 세계 최고의 지도자들하고 마차 경기를 하는데 마차 경기에 벤허하고 마살라가 붙습니다. 마살라는 어쨌든 벤허를 못 가게 하려고 바퀴 옆에다가 톱날을 답니다. 그래서 막 하니까 다 죽습니다. 벤허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막 채찍 때리고 그러면 벤허는 뺏어가지고 막 이러면서 갑니다. 이 전차 경기에 벤허가 이겨 승리합니다. 승리하고, 마살라는 피투성이가 되어 죽습니다. 그리고 부상을 당해 총독부에 와있는데 벤허가 가서 말합니다. 끝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내 동생, 내 어머니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때 이 마살라가 말하기를 문둥이 촌에 가있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꺼내 문둥이 촌으로 보냈습니다. 문둥이 촌에 갑니다. 가서 보니까 누가 있느냐 에스더라고 하는 옛날 애인이 거기 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만납니다. 어머니가 오지 말라고 했지만 만납니다. 며칠 이후에 듣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분은 지금의 누구와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고 나환자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에스더와 티자와 함께 티자는 이미 문둥병으로 다 죽어갑니다. 여동생을 직접 안고 벤허가 예수님 계신 곳으로 은혜 받으러 가는데 그날이 세상에 예수님 돌아가시는 날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날 입니다. 십자가를 이미 지고 막 채찍 맞으면서 올라가는 것을 구경하는데 벤허가 예수님 십자가 지신, 쓰러진 자리에 가서 물을 그릇에 담아 부어드립니다. 물을 드리면서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5년 전에 자기에게 물 떠준 분임을 발견합니다. 저분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끊임없이 그분이 나를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 여동생과 어머니에게서 이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됩니다. 이제 벤허는 늦게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니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마차 경기도 아닙니다. 저도 대한극장에도 70년대에 세 번 가 봤습니다. 열 번 이상 봤지만은 우리는 항상 마차 경기에만 맞추었습니다. 문둥병 낫는 데만 맞추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뭔지 아십니까? 마지막 순간 이 영화 끝맺는 게 뭔지 아십니까? 어머니를 안고 벤허가 새사람 된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놀라운, 내 마음에 있는 무서운 증오심, 칼이 빠져나간다는 것입니다. 전차경주에 이겨도 칼을 못 버렸습니다. 아리우스 2세가 되어도 증오의 칼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의 평강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 안에 그 많고 많은 인간적인 온갖 욕심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사라진 것입니다. 벤허가 새 사람이 되면서 세 사람이 부둥켜 안으면서 END, 이게 끝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는 교회 나온다고 해서 이 증오의 칼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를 주장해야 됩니다. 이번에 우리 조승희 사건을 보면서 이게 딱 하나입니다. 인간의 증오심입니다. 섭섭한 마음, 소외감, 좌절감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살인 사건이 있었는데 살인 사건의 100%가 전부 이런 증오심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김대두는 17명을 희생시켰습니다. 75년 8월부터 55일 동안 노인부터 3개월 된 아이까지 막, 그게 딱 하나입니다. 소외의식,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이었습니다. 지존파는 여섯 명이 사람의 인육을 그냥 베어 먹었습니다. 집 방 안에 앉아 사람을 불태워 죽이면서 같이 앉아 구경하고 담배피우며 술 먹고 있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막가파는 96년에 산 사람을 구덩이에 직접 집어넣으면서도 그렇게 살려 달라 그러는데도 히히 웃으면서 그랬습니다. 모두 증오심 때문입니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이나 살해해서 11명을 그냥 전기톱으로 토막을 내서 죽이는 이런 비참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유영철도 다 비관입니다. 좌절감, 부유층에 대한 세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 마음에 가득찬 이 미움과 증오는 스스로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못 이깁니다. 이 마음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버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가정에서도 잘 살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백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주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우리를 주장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장하는 인생, 그리스도께서 주장하는 인격, 마음, 생각, ‘네 손을 주님이 주장하신다.’ 그러면 이 손은 능력의 손이 됩니다. 축복의 손, 보통 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함께하는 손입니다.

    이번에 미국에 조승희 사건을 보면서 얼마나 우리가 많은 것을 깨닫지 않습니까? 한국이 낳은 아들 하나가 유학 가서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죄를 엄청난 범행을 할 수 있습니까? 딱 이유는 하나입니다. 섭섭한 마음입니다. 증오하는 마음들, 문제를 자기에게서 찾아야 되는데 너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미국 사람들 보십시오. 그 많은 유족들이 대학에도 원망하지 않고 경찰에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같으면 경찰 살아나겠습니까? 경찰서 습격을 할 것입니다. 아마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한명만 그래도 습격합니다. 사표 또 다 내야 됩니다. 국무총리부터 몽땅 사표 낼 것입니다. 미국은 사표 하나 없습니다. 누구보고 원망을 도무지 안 합니다. 우리 같으면 장례 지내겠습니까? 사흘만에 장례식 다 끝났습니다. 우리는 서른 세 명의 시체를 갖다놓고 전 국민이 다 모일 것입니다. 우리끼리도 그렇습니다. 미국 사람이 우리나라 와서 이런 일 했다 하면, 아니 다 안 죽이고 한명만 죽였다 그러더라도 미국 사람은 살지도 못 합니다. 미군 부대에 있지도 못 합니다. 지난번 효순이는 미국 군인들이 우리 때문에 와서 이 교통사고 난 것도 전 나라가 일어나 촛불 집회 다 해서 온갖 미국 성조기 다 태우고 미국 대통령 불 다 태우고 그랬습니다. 만약에 이번 사건 가지고 미국 정부나 미국에 있는 방송사 언론들이 ‘이거 한국 사람은 이렇게 악질적이다.’ 한마디만 하면, 미국의 언론은 세계를 지배하니 우리는 전 세계 가는 길이 다 막힙니다. 이렇게 잔인한 민족이다, 그러면 자동차 타겠습니까? 그 귀신이 다 들어와 있는데 타겠습니까? 우리 자동차 수출한 거 누가 사겠습니까? 그 사람들 보십시오. 한국 사람하고 조승희 하고는 관계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배웁니까?

    이 사회를 누가 주장해야 합니까? 그리스도가 주장해야 합니다. 똑같은 일, 천분의 일도 안 되는 일도 우리가 주장하면 막 증오와 미움과 악한 마음뿐입니다. 우리 사회에 증오심을 일으키는, 온 국민을 선동하는 사람들 배후를 다 찾아가 보면 그 배후에 목사들이 있답니다. 우리나라 목회자들, 정말 악한 목회자들 많습니다. 굉장히 많습니다. 들어 가 보면 다 교인들이 있답니다. 그래서 되겠습니까? 배워야 될 거 아닙니까? 교회에 나와도 그리스도가 주장하지 않으면 교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을, 내 마음을 주님이 주장하여 주셔 평강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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