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의한 기적 (잠언 18:20~21, 벧전 3:10~11)
엊그제 미국에서 우연히 TV를 켰더니 흑인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그 제목이 “말은 기적을 일으킨다”(Miracle out mouth)라는 것이었습니다. 참 멋있는 제목이었습니다.
말은 위대한 힘이 있을 뿐 아니라 기적을 일으킵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의 아버님은 건장하시고 튼튼한 체격을 가지셨는데 항상 “나는 환갑 전에 죽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환갑 전 해인 6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모친은 작고 가냘픈 몸매를 가지셨는데 항상 “나는 지겹게 오래 살거야”라고 하시더니 9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말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 생각해보십시오. 말은 기적을 나타냅니다. 어떤 사람이 한 열 살 난 소녀에게 장난삼아 “너는 시집도 못 가보고 30살에 죽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희한하게 그 여자가 서른 살에 죽고 말더랍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말이 눈에 안 보인다고 함부로 하고 밑천 안 든다고 아무렇게나 말을 합니다.
전에 우리 교회 여전도사 두 분이 차를 타고 가면서, 한 분이 “나는 남편 없인 살아도 자식 없이는 못 살아!”라고 하니까 다른 한 분이 “아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도 전에 그런 말을 했는데 남편이 일찍 돌아가셨어. 남편 없이도 못 살고 자식 없이도 못 산다고 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잠언 18장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즉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배부르게도 살고 가난하게도 살며 함부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평상시에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말이 기적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길 가시다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시고, 다음날 그 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죽은 것을 보고 제자들이 기이히 여겨 질문할 때 마가복음 11장 22~23절에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음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말하고 명령하면 태산을 옮기는 것 같은 큰일도 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1.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고, 마음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하는 말, 의심을 일으키는 말을 하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의 구속도 안 믿고 부활도 안 믿고 천국, 지옥도 못 믿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가 있는데 그런 사람은 교회는 다녀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있더라도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특히 믿음은 입으로 고백할 때 온전해집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구원이 완성됩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를 이겼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믿음이 확실해지고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수십 년 교회에 다녀도 입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믿음이 확실해지지 않고 구원이 확실해지지 않습니다.
2.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한 사람은 60만 명이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단 두 명밖에 안 됩니다. 그 이유는 걸핏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 중의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성읍은 철옹성벽 같고 그 곳에 사는 아낙 자손들은 기골이 장대해서 그들 앞에서 우리 모습은 메뚜기 같고 그 성읍은 견고해서 도저히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처자식들은 다 사로잡히게 되었고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간담이 녹아내리는 말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었습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절대 긍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긍정적인 말, 용기를 주는 말, 믿음을 일으키는 말을 했습니다. 이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부정적인 말을 하고 낙담시키는 말을 하고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말대로 다 죽은 다음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긍정적인 말, 용기를 주는 말, 믿음의 말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말의 위력이 이렇게 큰 줄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말이 복을 받게도 하고 불행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3. 칭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칭찬할 줄 모르고 남을 비판하고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가 나빠서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남의 장점을 알아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조용기 목사님이나 김장환 목사님을 만나면 언제 그렇게 저에 대해서 아는지 척 만나면 칭찬해주곤 합니다. 이분들은 칭찬의 천재라고 봅니다. 남을 칭찬해주는 것이 그들의 성공적인 생활의 비결이며 성공적인 목회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여러분, 부디 부탁하는데 남의 약점과 단점을 들추어내서 헐뜯고 깎아내리고 비판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서 칭찬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 부탁합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도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고 남을 칭찬하는 사람은 자기도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남을 헐뜯거나 비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들 목사나 사위 목사들에게 부탁하는 말은, 남의 단점을 후벼 파지 말고 잘못이 있어도 덮어주고 부드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4.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진실한 말을 해야 그 말에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는 법이지 진실성이 없고 거짓말을 떡 먹듯이 하는 사람은 아무리 웅변적으로 청산유수같이 말을 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시편 15편 1절에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라고 해놓고, 2~3절에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정직하고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함께 할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입니다. 마귀를 멀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거짓을 버리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진실되지 못하고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아서 낭패를 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2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진실해야 마귀에게 속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듯이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되고 미혹케 하는 영에게 속아서 영원한 운명이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이단 신학이나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 합니다. 다 사탄의 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믿어주지 않고 사람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잘하고 거짓이 몸에 밴 사람은 믿음도 거짓될 수가 있고 결국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믿음도 참될 수가 없어 지옥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도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울 때 한두 번씩 몹시 때릴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가 아니라 속이거나 거짓말했을 때입니다. 속이거나 거짓말을 잘하면 그 사람의 인격도, 신앙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류 대학을 나오고 아무리 IQ가 높으면 뭘 합니까? 다 쓸모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거짓말을 부득이 용납한 일이 있습니다. 애굽의 산파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목 졸라 죽이라고 했을 때 자기들이 가기 전에 낳았다고 했던 것과 여리고 정탐꾼이 왔을 때 기생 라합이 지붕에 있는 삼대에 숨기고 금방 왔다갔다고 체포하러 온 사람들에게 거짓말해서 돌려보낸 후 정탐꾼들을 살려 보냈던 일입니다. 이 두 경우는 다 사람을 죽지 않게 하려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진실되게 말하면 그들을 죽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거짓말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 51편 6절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가 늙어서 폴란드의 산림지대를 거쳐 고향인 실레시아(Silesia)로 가는 도중에 한 떼의 강도를 만나 있는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한 나이 많은 강도가 “이것이 가진 것 전부냐?”라고 물을 때 “그것이 전부요”라고 대답하고 돌아서서 오는데 옷 속에 꿰매어 숨겨둔 금덩어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강도들을 다시 불러 금덩어리를 내밀어 주었더니 아무도 감히 손을 내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리어 그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강도가 그에게서 빼앗았던 말과 지갑을 되돌려 주더랍니다. 이런 진실한 사람에게서 훌륭한 철학자가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란 철학서적도 사람들이 그렇게 고귀하게 여기는 이성(理性)도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순수이성비판”이란 어려운 책을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5.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불평하기 좋아하고 원망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미워하시고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반면에 감사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대인관계가 좋아지며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여자는 감사하는 말은 하지 않고 평생 원망하고 불평하기 좋아하며 혹독하게 비판하고 헐뜯기를 좋아했는데 이후 암병 수술을 몇 번이나 받고 몇 해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그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주님이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진실한 말, 감사하는 말을 하도록 자신을 길들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도 축복하시고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따라서 사회생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출처/김홍도목사 설교 자료 중에서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례를 주고 (마28:19-20) (0) | 2022.09.05 |
---|---|
허무한 삶과 영원히 남는 삶 (전1:1~3, 벧전1:23~25) (0) | 2022.09.05 |
창이 열려 있는 집 (다니엘 6:10-15) (0) | 2022.09.05 |
새 생명의 삶 (골로새서 3:1-14) (0) | 2022.09.05 |
예수님의 고난 (마태복음 27:27~31) (0) | 2022.09.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