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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공경 어떻게 할 것인가? (잠언 23:25)

by 【고동엽】 2022. 9. 4.

부모공경 어떻게 할 것인가?   (잠언 23:25)  

<本文>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23:25)

<序言>  
  현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도 발달하고 있습니다. 자기와 돈 밖에 모르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부모공경에 대한 윤리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자기가 힘들면 자기 편하자고 부모도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노부모를 남의 집 앞에 버리거나 양로 시설 앞에 버립니다. 어떤 이는 제주도에 여행 갔다가 버리고 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동남아까지 가서 버리고 온다고 합니다.  아들이 하나인 보모는 골방에서 죽고, 아들 둘인 부모는 큰 아들집 작은 아들 집 왔다 갔다 하다가 길에서 죽고, 딸 둔 부모는 고무장갑 끼고 죽는다고 합니다. 아들 둘에 딸 하나인 집은 고무장갑 끼고 길에서 죽는다고 합니다. 아들 둘 딸 하나인 집도 "하나님 고무장갑 끼고 길에서 죽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가나안 농군 학교 교장인 김범일 교장의 말에 의하면 전에는 돈(동전)에 '효(孝)' 자가 씌여 있었고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속으로 보면 부모의 얼굴이 보였는데 이제는 돈에 구멍이 막혀서 돈 밖에 안 보이므로 부모를 몰라본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부모도 버립니다. 부모를 돈만도 못하게 생각합니다. 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를 배우자와 자식과 애완용 개 다음으로 생각하는 때입니다. 개도 안 방에서 재우고 비싼 사료 먹이고 목욕시키고 이발시키고 안아 주고 사랑해 줍니다. 서울성암교회 위윤재 목사님이 어느 교인집에 식사 대접을 받았는데 자기 밥그릇과 똑같이 생긴 그릇에 개에게도 밥을 주더라는 것이다. 그릇이 같이 사용된다는 생각에 식사기도가 안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어느 교인에게서 초상났다고 전화가 와서 가서 누구 죽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뽀삐가요....'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本論>
     1.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려면 부모의 행동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부모의 살아온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우리의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시대적 배경만 생각해 보아도 많은 부분 이해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순전히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물로 허기를 채우고 초근목피로 연명을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속담이 생겼겠습니까? 그들의 소원은 오직 배부르게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디오만 틀면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하는 노래가 나왔습니다. 오직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해결해 주면 다인 줄 압니다.

  정치적으로도 공포 속에서 살았습니다. 일제의 식민 통치와 6.25 동란과 무장 공비의 활동과 군부 독재를 지내 오면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갈등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생존법칙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배신 속에서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반전될 때마다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어떤 일에도 앞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극적인 삶을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속박되어 살아왔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유교적 관습 속에서 억눌려 살아왔습니다.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결혼할 수 없었고 아들을 낳지 못하면 쫓겨 나기도 했고 갖은 구타를 핍박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참아야 했고 아부해야 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편협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독교 선교의 초기에는 신학자와 선교사들이 교리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에게 배운 목회자들은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다양한 은혜를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를 지키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적 배려와 포용과 협력과 연합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시대적 배경입니다. 거기에 개인적 상황은 더욱 힘들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결정과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정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인 상황들은 그들의 인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의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은 우리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모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려면 부모를 이해해야 하고 부모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2. 구체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에게 육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일생을 희생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능력이 없어질 때에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요셉과 룻과 예수님은 그에 대한 좋은 모본을 보였습니다 (창45:9-11, 47:12, 룻1:18, 2:3,11, 요19:27). 늙어지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자식에게는 십만 원대 메이커 신발과 옷 사주면서 부모에게는 옷 한벌 안 사주면 안 됩니다. 자식에게는 피자 햄버거 치킨 사주면서 부모에게는 묵밥 한 그릇도 안 사주면 안됩니다. 그리고 늙었어도 혼자서 쓸 일이 있으므로 일정한 용돈을 드려야 합니다. 그 외에 부모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 드려야 합니다. 옷, 신발, 안경, 보청기 등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마련해 드리는 것도 큰 즐거움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랑거리를 드려야 합니다. 아이는 발목에서 소년은 무릎에서 청년은 허리에서 장년은 배에서 노인은 입에서 힘이 나옵니다.

  정신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는 당신들이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 고통을 우리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려고 온갖 비위를 다 맞추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잠언15:20, 23:25).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여 생각한다면 말을 잘 들어드려야 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잔소리를  잘 들어 드리는 것이 힘을 주는 것입니다. 또 설명을 잘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는 무엇이든지 궁금해 합니다. 모를 때는 답답해 합니다. 그러므로 하찮은 것도 차근 차근 설명을 해 드려야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또 자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아는 것도 부모에게 물어드릴 때 부모는 위치가 확인됩니다. 또 작은 일거리를 드려야 합니다. 일거리가 있을 때 존재의식이 유지됩니다. 또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라면 부모가 결정한 사안이라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부모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들이 부모로 하여금 의문감과 소외감과 고독감과 불안감 등을 없애 주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줍니다 (1절, 골3:20). 어느 시골 농부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어머니로 하여금 자기의 발을 닦도록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가 사역자라면 부모를 위해 기도해 드려야 하며, 부모가 일반 신앙인이라면 신앙 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의 바램이 헛되지 않도록 신앙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룻1:16-17). 그리고 부모가 불신자라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전도를 해야 합니다. 유황 불못에서 영원한 극형을 당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눅16:19-31, 계21:8,10).

     3.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부모공경에는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자기 쓸 것 다 쓰고 남은 것으로 하려면 못합니다. 자기 것 손해 안보고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공경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일정 부분을 할애해야 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는 우리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부모는 우리를 낳아 주신 분들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피를 서말 서되를 흘린다고 했고 기를 때 젖을 여덞섬 너말로 키운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먹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먹였고 입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입혔고 자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재웠습니다. 그들은 공부를 하지 못했으나 허리 띠를 졸라 매가며 우리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만일 우리 생각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부모에게 그럴 만한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한 가족이 여행에서 돌아오다가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빠와 딸이 다리를 다쳤는데 아빠와 딸은 두 개의 보조 다리 없이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딸은 사춘기를 보내며 죽고 싶을 정도로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사춘기를 넘기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식 날, 차도로 한 어린 꼬마가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보조다리도 없이 아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딸은 그 모습을 보며 놀랐습니다. 아빠가 보조 다리 없이 그 아이를 안고 인도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딸이 놀라 아빠를 불렀지만 아빠는 못들은 척 보조다리를 양팔에 끼고는 서둘러 가 버렸습니다. 딸은 옆에 있는 엄마에게 "엄마 엄마도 봤지! 아빠 뛰는 거!"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담담해 하며 말했습니다. "놀라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되리라 생각했어. 아빠는 사실 보조다리가 필요없는 정상인이야. 그 때 아빤 팔만 다치셨어. 그런데 4년 동안 보조다리를 짚고 다니신 거야. 같은 아픔을 가져야만 아픈 너를 위로할 수 있다고 말이야"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그에 비하면 너무 잔인할 정도로 부모에게 희생하지 않습니다. 지금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지만 부모는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한달 내내 일하고 백만 원대를 벌어옵니다. 그런데 수십만 원대인 핸드폰, 디카, 엠피쓰리를 사야하겠습니까?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학생들도 희생해야 합니다. 정신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희생없이 자녀 기를 수 없는 것처럼 자녀도 희생없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습니다. 내가 싫어하더라도 부모가 기뻐하는 것이라면 일정부분 양보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結言>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조건없이 공경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저주하셨습니다. 레위기20:9에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신명기21:18-21에는 아비나 어미의 말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고, 잠언30:17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경하는 자에게는 친히 후대에까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출애굽기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고, 신명기5:16에도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라고 했고, 본문 에베소서6:2-3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출처/차용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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