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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 산의 제단 (이사야 37:30~32)

by 【고동엽】 2022. 9. 2.

모리아 산의 제단   (이사야 37:30~32)    

모리아 산은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린 곳입니다. 이곳에다 훗날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습니다(대하 3:1). 이스라엘 성지의 중심이 되는 이곳에 지금은 ‘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이라 불리는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황금색 돔으로도 유명한 이 건물은 팔각형으로 웅장하게 지어져 있는데 그 안에는 엄청나게 큰 바위가 있습니다. 오래도록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이 바위에다 제단을 쌓고 이삭을 번제로 드렸다고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 졌으며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믿음과 순종과 축복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이삭을 번제로 드린 이곳 모리아 산의 제단은 어쩌면 하나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을 요약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시험의 제단입니다.

본문말씀 1절에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도 시험이 있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사랑하는 독자를 자기 손으로 불태워 제물로 드리게 하는 참으로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1) 불완전한 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 할 때 아브라함은 의인이요 그의 믿음이나 행위에 있어서 거의 완벽하다고 할 만큼 표준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시험을 하신 것은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게 되는 경우 여러 가지로 마음속에 갈등을 빚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 하게 되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여러 가지 시험과 훈련을 통하여 성숙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힘든 시험과 어려운 시련을 통하여 연단을 받음으로써 인내력과 담대함과 용기를 기르게 됩니다(롬 5:3).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하여 신앙의 정도를 검증하시는 것입니다(신 8:2).

2)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창 12:1). 아브라함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목적 때문에 아브라함을 찾아가셨고 그를 선택하여 불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민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지상에서 그가 의도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역사를 이루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창 17:4-8). 창세기 18:19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목적수행에 적합하도록 맞춤형 시험을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3) 모든 성도의 표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선민의 조상인 동시에 오늘날 온 세계 모든 민족가운데서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의 조상입니다(갈 3:7).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義)와 공도(公道)의 표본으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창 18:19). 적어도 구약과 신약을 통 털어서 오고 오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신앙과 생활의 증거가 되어야 될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도 역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점과 실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인정하실 만큼 시험을 치르게 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욥이나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엄격한 시험과 검증의 과정을 거쳤습니다(욥 1:8-12, 삼하 24:1).

2. 헌신의 제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2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거기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놓고 그 위에 이삭을 결박하여 올렸습니다(9절). 이와 같은 장면은 아들을 바치는 아브라함이나 거기에 순종하여 제단에 올려진 이삭이나 다 같이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 번제(燔祭)로 바쳐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실 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뜻합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 가운데 번제는 가축 중에서 소나 양이나 염소 따위를 잡아 제단에다 피를 뿌리고 내장을 모두 빼 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 다음 제단위에 올려놓고 불에 태워 그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하는 것입니다(레 1:3-9).
이것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헌신(獻身)을 의미합니다. 신약 적으로 말하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뜻하기도 하고(히 9:14),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께 바쳐지는 성도의 예배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에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2) 가장 귀한 것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할 때 나의 형편이나 사정에 따라서 하겠다고 한다면 곤란합니다. 헌신 자체가 생명을 바친다는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한 존재라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헌신입니다. 히브리서 11:17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헌신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12절).

3) 기독교 신학의 근본입니다.

구약에 나타나는 인물이나 사건이나 교훈은 신약적인 의미에서 볼 때 모두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지게 될 구속사(救贖史)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류에게 죽음이 선고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원시복음이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선언하셨습니다(창 3:15). 이후 아벨에서부터 족장들과 역대의 인물들이 똑 같은 원리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예배의 형식을 취하였는데 그것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주시는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말씀 1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거기 수풀에 뿔이 걸려 꼼짝 못하는 숫양을 잡아 이삭 대신 번제로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죽어주시는 예수님을 뜻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두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요 1:20).

3. 축복의 제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무한한 축복을 선언하였습니다. 본문말씀 15-18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두 번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1) 시험을 이긴 상급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분부가 떨어지자마자 지체하지 아니하고 지시 하신 곳 모리아 땅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치켜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팔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12절). 이는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승리자의 영광을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욥도 견디기 어려운 시험을 참아 내면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였습니다(욥 42:10-17). 신약의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약 1:12).

2) 축복의 약속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이긴 아브라함에게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하였습니다(16-17절).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드러나게 된다는 것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번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길 데가 없을만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도 하였습니다(18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족보가 결국 인류에게 구원을 안겨주는 축복의 계통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마 1:1).

3) ‘여호와 이레’의 삶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이 된 것처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미 신분상의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의 보장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영생복락이 있으며, 세상에서도 오고 오는 후손들이 해와 달과 별과 같이 빛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모리아 제단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보장된 축복을 확신하고 이를 ‘여호와 이레’라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곧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 이레’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출처/손상률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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