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가지 채우니 (요2:1-11)
요즘은 결혼잔치를 하고는 대게 뷔페로 대접합니다. 그래서 웨딩 홀에는 아예 뷔페가 있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할 때면 이동식 뷔페로 대접하곤 합니다. 그런데 뷔페라는 것이 대게는 인원수를 대충 짐작하여 만드는 법인데 어쩌다 늦게 가면 음식이 떨어지곤 합니다. 얼마 전에도 중동에서 제가 잘 아는 목사님 아들의 결혼식이 있어서 초청을 받아 갔는데 마지막에 뷔페가 떨어져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손님들이 돌아갔다고 합니다. 결혼식에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부조를 내고 음식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면 은근히 속상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서 저는 하도 많은 결혼 청첩장을 받다 보니 “못 갈 곳은 온라인으로 부조를 보내고 갈 것 같으면 일찍 가자!”그래서 결혼식 한 시간 전에 가면 일등으로 뷔페를 먹을 수 있어서 제일 맛있고 좋은 것을 골라먹고 옵니다. 그리고 결혼식장에는 꼭 참석해야 할 사람이면 끝까지 참석하고 부조만 하고 돌아 와도 되는 곳이면 음식만 먹고 옵니다.
오늘 본문은 잔치 집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가나에 예수님 친척 집이 있었고 꼭 참석해야 할 잔치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집에 갔고 예수님은 제자 몇 사람을 데리고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잔치 집에는 음식과 술입니다. 믿는 이들은 음료수 입니다. 음식은 있는데 술이 떨어졌거나 술은 있는데 음식이 떨어지면 곤란합니다.
가나의 혼인집은 포도주가 중간에 떨어진 것입니다. 주인집이 난처하게 생겼습니다. 포도주는 급히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올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어디서 빌려올 수도 없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잔치집의 곤란한 사정을 말하자 처음에는 반응이 냉담하였습니다. “여자여(귀나이: 귀부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2:4)여기서 때는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인 것을 드러낼 때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이미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일러놓은 상태 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어머니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채우라.”(요2:7)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요2:8)하시니 갖다 주니 연회장은 너무 맛있고 좋은 포도주라며 신랑을 불러 칭찬을 하였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처음 행한 표적이었고 이 일로 “제자들이 믿으니라.”(요2:11)고 하였습니다.
기나 혼인집의 물로 포도주를 만든 표적은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제일 먼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정하는 사건이었으며 표적을 통하여 제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게 하는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표적(기적)에서 아주 중요한 용어가 나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물을 채우라”(요2:7)하셨고 하인들이 “아귀까지 채우니”(요2:7)라는 용어 입니다. “아귀까지 채우라”는 이 말씀은 상황 론 적으로 보면 정결예식 때 쓰는 항아리 여섯이 있고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채워서 혼인잔치가 끝날 때 까지 마음껏 마시고 중간에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하려고 가득 채우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여섯 개의 항아리가 있는데 주님이 “세 개만 채우라” 아니면 “반씩만 채우라”고 하겠습니까? 가득히 채우라는 명령은 누구라도 그렇게 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귀까지 채우니”라는 용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많은 교훈과 의미를 제공하는 중요한 용어입니다. 그리고 아귀가지 채워질 때 기적은 일어난 다는 교훈을 우리들에게 던져 주시고 있습니다. 가득이란 말은 영어에서 full이란 말이고 일본말로는 잇빠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 아귀까지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경에 축복의 원리는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곳에는 100%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뱃고동 소리가 아닙니다.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로서 이적(異跡)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면 죽을 환경에서 살아났다든지, 망하게 되었는데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든지,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든지 하는 일들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기적이지만 하나님께는 기적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이 식탁을 옮긴다든지, 차를 운전한다든지 하는 일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집 주인은 그런 일들을 아무것도 아니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주 쉽게 이적을 베푸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며 상상 이상의 축복을 얼마든지 주십니다. 그런데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28:2)“내가 오늘 너희에게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에 너희가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요.”(신11:27) 라고 하였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순종하라는 말씀이 722회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순종이란 용어는 그 자체가 100%를 의미합니다. 즉 아귀까지 채우는 것을 뜻합니다. 하거나 말거나 90%, 80%는 순종이 아닙니다. 아니 99%도 순종이 아닙니다. 아귀까지는 100%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습니까?100%순종의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윗 쪽에 아람이란 나라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리아입니다. 수도는 다메섹입니다. 이곳에 유명한 장군이 한 명 있었습니다. 나만 입니다.(나만 아는 사람)이스라엘과 여러 차례 전쟁을 했고 이스라엘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당시 여러 나라가 나만을 무서워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순신, 계백, 을지문덕 같이 이름난 장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문둥병이 든 것입니다, 백약이 무효입니다. 고민은 깊어져갔고 백성들도 많이 걱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하인 여자가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를 찾아가면 고칠 수 있다고 전해준 소식을 듣고 절차를 갖추어 엘리사를 찾아 갔는데 생각보다 다른 대접에 실망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밖에 나와 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엘리사라도 적국의 장수가 왔는데 뭣 하러 나가봅니까? “요단강에 가소 일곱 번 씻으라.” 하는 것도 나만 입장에서는 感之德之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나만은 자신을 국빈으로 대접하지 않는다고 기분이 나빴던 것입니다. 국빈이기 전에 한 낱 문둥병자였던 것입니다. 거느리고 온 하인들을 명하여 아람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 그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장수에게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5:13-14)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일곱 번 몸을 요단강에 담군 것은 아귀까지 채운 것을 의미합니다. 가득 순종한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에 100%순종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방 나라 장군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아귀까지 채우니 죽을병에서 고쳐주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입니다. 내 생각은 언제나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되 100% 즉 아귀까지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하나님은 7일 동안 돌되 엿새 동안 하루 한 바퀴씩 돌고 일곱 째 날은 일곱 바퀴를 도는데 소리도 지르지 말고 떠들지도 말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듯 그렇게 돌고 마지막 날 다 돈 후에 제사장들의 양각나팔 소리에 맞추어 함성을 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명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습니다. 닷새, 엿새를 돌아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7일 동안 일곱 바퀴를 모두 돌고 난 후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아귀까지 채우는 순종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장소 어느 위치에 서 있습니까? 사업을 하고 있습니까?100%까지 최선을 다하여 보십시오, 공부하는 학생입니까?100% 아귀까지 채우며 공부해 보십시오.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습니까? 100%아귀까지 채워보십시오 사람과의 관계 속에 힘듭니까? 100%아귀까지 채워 보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컴퓨터에서 파일을 보내고 열 때 100%채워져야 보낼 수 있고 열 수 있듯이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100%의 순종이 있을 때 주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2) 고난도 아귀까지 차야 해결 됩니다.
고난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크게는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고난이 있고 해결 할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질병으로 인한 고난, 가난으로 인한 고난, 사회적 문제들로 인한 고난, 천재지변을 통한 고난, 전쟁이나 재앙으로 인한 고난, 그리고 사단의 시험이나 하나님의 연단으로 인한 고난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고난을 통해서도 연단하시며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 고난을 의미 있는 고난으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이렇게 받아 드렸습니다.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9-10)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그를 망하게 하는 시험을 주었지만 욥은 시험으로 받아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연단(단련)으로 받아 드리고 끝까지 인내 하였더니 결국 갑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내 고생이 언제나 끝이 날까?”하며 길게 한 숨을 쉬는 분이 있습니까? 좀더 인내하며 참으십시오. 아귀까지 차야 됩니다. 이런 때 성도가 취할 태도는 인내의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 되어 70년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일제에 36년을 살았습니다. 북한은 공산치하에서 59년 째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두 다 고난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귀까지 차야 해결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을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0-13)
이스라엘은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죽도록 종살이 하였습니다. 70년이 차매 하나님이 국제정세를 급진전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69년에도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70년이 차매 해방을 준 것입니다. 초등학교는 6년을 다녀야 졸업이 됩니다. 5년만 해선 안 됩니다. 중, 고등학교는 3년 씩 6년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 전에는 졸업이 안 됩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을 너무 길다고 자퇴한 후 검정고시를 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00년이 차 매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하기를 “너희 후손이 이방에 객이 되어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 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고 하였는데 정말 그 말씀대로 400년 만에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때가 차 매 그들을 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의 고난의 때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고난의 때를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하나님의 연단의 기회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겸손해 져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의 때에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여 주시고 더 큰 축복을 받는 그릇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고난을 거쳐야 이루어지며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한 민족과 개인이 고난 없이 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고난의 강을 건너고 고난의 높은 산맥을 넘고 고난의 사막을 건넌 후 하나님은 크게 축복하였습니다. 오는 고난 중에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 고난을 잘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인내하시길 추원합니다.
(3) 아귀까지 기도가 차야 기도응답이 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입니다. 불교적 색채가 강한 상징적 표현으로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 시 구절에서 시인은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지만 무엇이든지 때가 차고 양이 차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고 비행기는 시속 300킬로가 넘어야 이륙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양을 요구하십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40일 금식 했을 때 하나님은 십계명과 율법과 성막을 주셨고 예수님은 40일 금식 하실 때 천사가 수종 들고 마귀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그의 눈물과 통곡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한나는 오래도록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고(삼상1:15) 다윗은 부르짖어 기도하였고(시22:5)모세는 손을 들고 기도하였고(출17:12)예수님은 밤을 새워가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눅23:44)고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3일간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더4:19)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갔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죽기 살기로 기도하여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기도에는 시간과 량과 질과 간절함이 아귀까지 차야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기도하다 낙망하신 분이 있습니까? 중단하지 마십시오. 쉬지 마십시오. 조금만 더 고비를 넘기면 축복이 옵니다. 어떤 분은 금맥을 찾아 광산을 하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지자 포기하고 떠났는데 다음에 그 광산을 인수한 사람이 불과 한자 정도 파고 들어가니 금이 노다지로 쏟아져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기도 응답이 없다고 할 그 때가 기도 응답이 올 때입니다, 날이 새기 직전에 가장 어둡고 기도 응답이 오기 직전에 가장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주님은 낙마치 말고 기도하라고 한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스토리 입니다. 고약한 재판장이 억울한 과부의 고소를 빨리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매일 번거롭게 하였더니 재판장이 그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택하신 백성의 밤 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7)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기도하다 낙심한 사람들에게 최대의 희망입니다. 성도들이여 기도하기를 쉬는 조를 범치 말고 계속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귀까지 채워지면 응답이 옵니다. 하나님은 아귀까지 채워지기를 기다리십니다.
이제 서서히 결론을 내립니다. 헌금하는 일도 아귀까지 채워야 합니다. 봉사도 아귀까지 채워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일도 학문도 모두 다 아귀가지 채워야 합니다. 구원은 공짜 입니다. 은사도 공짜 입니다. 축복도 공짜 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입니다. 그러나 공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우리가 할 일은 아귀를 채우는 일입니다. 아귀까지 채우면 물이 포도주가 되고 거친 풍랑이 잔잔해 지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고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태양이 머물게 되고 하늘문은 열리게 되고 축복의 소낙비는 쏟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항아리가 있습니까? 몇 개가 있습니까? 여섯 개의 항아리에 순종의 물, 고난의 물, 기도의 물, 헌금의 물, 봉사의 물을 아귀까지 채우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아귀까지 채우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출처/박인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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