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 (고린도전서15:58)
따라합시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자!” 고함을 친다는 마음으로 “일어나서 빛을 발하자!” 또 따라합시다. “한 사람을 꼭 전도하자!”
오늘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귀한 제목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전도서 2장 22-23절에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불쌍할 정도로 수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도 정년 58-60대까지 편안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제 50대 중반이면, 아니 50대 초반만 되어서 불안합니다.
‘언제 내 자리가 없어질까?’ ‘언제 내 책상이 없어질까?’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초조하게 그러나 직장에서 맡은 일에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농부들대로 참으로 마음고생까지 해가며 수고를 하지만 노력한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이번에도 배추값이 300원, 400원으로 떨어져서 다 갈아엎었습니다. 아니 갈아엎지도 않았습니다. 갈아엎을 돈도 없어서...
학생들은 입시를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너무너무 수고를 많이 합니다. 옛날 저희들 학교 다닐 때보다 5-6배는 공부를 더 합니다. 그래도 취업자리가 없습니다. 바늘구멍입니다. 수고한 만큼 얻지를 못합니다.
탤런트들도 참 편하겠다 싶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모릅니다. 몇 달 전 목사님들과 문경에 소풍을 갔는데 그곳에서 연개소문 촬영을 하더라고요. 앞에는 장군들이 말을 타고 서있고, 뒤에는 엑스트라 수백명이 창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성을 공격하는 장면인데 장군에 공격하니까 ‘와아’하면서 달려가더라고요.
그런데 ‘컷’하고, 또 다시 달려가고, 방송시간은 1분도 안되는 분량인데 1시간 이상씩 수고를 하더라고요.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고없이 쉽게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정주부들은 어떻습니까? 표시도 안나는 가사일, 밥짓고 빨래하는 일. 다음 날이면 또 해야 되고, 남편은 퇴근해서 돌아와서 “당신 집에서 뭐하노?”라고 합니다. 해도해도 끝도 없는 일에 수고하면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애들도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갓난 아기들도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자체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모든 사람들이 수고를 하면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헛된 수고를 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고하며 살았는데,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는데 그 수고가 헛된 수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는 이 말씀은 헛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땅위에서 수고하고 고생하며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게 수고했어도 헛된 수고가 되고 맙니다. 오늘 생각을 깊이 하면서 말씀을 듣고 이렇게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시편 39편 6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미국으로 프랑스로 온세계로 다니지만 헛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헛되다는 말은 목표를 두고 일을 했는데 그 노력에 결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법고시를 10년을 도전을 했는데 10년 열 번까지도 합격을 못했다라고 해서 헛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것 뿐입니다. 그 수고가 헛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헛되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명문학교를 나왔는데도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사는 것, 헛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법조인이나 의사들이 물질과 결탁되어서 재판을 그르치고, 올바르게 진료하지 않고 돈을 먼저 생각하고 진료했다면 그것은 헛되이 사는 것입니다.
헛되이 산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헛되다고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바로 된겁니까? 아닙니까? 잘못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면 그것은 헛되이 산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혼을 지닌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땅에 있는 것만 썩어질 것에만 가치를 두고 살아갔다면 그 사람은 헛된 인생을 살아간 것입니다. 분명히 이 두가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못하는 것이 헛된 것이고, 하늘 것을 알지 못해서 땅에 것만을 위해서 살았다면 그 사람은 헛되이 산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한번뿐인 우리들의 소중한 인생을 이렇게 헛되이 살지 않기 위해서 하루하루 우리의 사람을 조정해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만사를 제쳐놓고 이 자리에 나온 까닭이 뭡니까? 내 인생에 뭔가 혹시 잘못된 것이 없는가를 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찬양과 기도를 들음으로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겁니다. 한 주간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못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서 육신의 섞어질 것만을 위해서 추구하고 살았습니다. 내일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방향전환을 하기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 자리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 이 예배를 통해서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헛된 인생을 살아가고 말았다면 오늘 이 자리,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한번 방향전환을 하고 내 인생을 가장 가치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전향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고 가장 가치있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보람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올바른 믿음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오늘 말씀 처음에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이 말이 굉장히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견고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견고한 사람은 세상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름 뿌리를 깊이 내린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세상 유혹의 바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사람이 돈 바람에 흔들리고, 명예 바람이 흔들립니다. 온갖 바람에 흔들립니다.
선거철이 오면 권력의 바람, 정치의 바람이 사람은 완전히 흔들어 버립니다. 흔들흔들해서 헛된 길을 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악인의 길을 좇게 되고, 죄인의 길에 서게 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우리의 삶은 탐욕과 교만으로 흔들거리게 되고, 가치를 상실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확고히 믿고 내세의 영생의 소망을 확고히 가진 믿음의 사람은 어떤 환난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요셉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믿음이 견고하지 않으면 돈 몇 억으로 유혹하면 다 흔들리고 맙니다. 믿음이고 양심으로 뭐고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믿음에 굳게 서는 의혜의 자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는 길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두 번째,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헛되이 살지않으려면 주의 일을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의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인생을 헛되지 살지 않기 위한 주의 일이 무엇입니까?
목사가 되는 것이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까?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이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살든지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주의 일이 되도록 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이든지 주의 일이 되도록 살아가는 것이 성경적 올바른 신앙관인줄로 믿습니다.
운전도 주의 일이 되려고 택시 직업을 가진 분은 하루 택시를 운전하면서 이것이 주의 일이 되도록 기도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재판하는 사람도 이 일이 하나님의 재판이 되도록 살아가야 하고, 병원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일이 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내가 장사하고 살아가는 것이 주의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모든 일이 주의 일이 되도록 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예를 든다면, 제가 목사지만도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결코 주의 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어떤 봉사를 하더라고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하고 나를 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주의 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떡을 파는 할머니가 진실된 마음으로 떡을 먹는 사람들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 깨끗한 재료를 가지고 정성껏 떡을 만들어 팔고, 그 남은 돈의 일부로 선교사님을 위해서 선교헌금을 드린다거나 이웃을 도왔다면 이 일은 주의 일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하는데 어떤 것이 주의 일이냐는 것입니다. 주의 일이란 넓은 의미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다 주의 일이 된다는 사실을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 한번 명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주의 일이 될 줄로 믿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주의 일입니다. 어떤 고상한 일이라도, 제가 설교를 하고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면 주의 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농약을 쳐서 그냥 열매만 많이 맺어서 많이 팔자는 뜻으로 했다면 유해식품을 만들어서 판다면 그 사람은 돈을 억만금 벌어도 그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깨끗한 식품을 제공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주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이 되도록 자기 맡은 사명을 가지고 그 일이 주의 일이 되도록 힘쓰는 주의 종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헌신봉사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주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내 육체에 채우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내 육체에 채우기를 원하노라. 주의 일에 힘쓰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원하는 일이라면 헌신할 수 있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찬양대로 봉사하는 일, 식당에서 봉사하는 것, 꽃꽂이 하는 일, 차량봉사 등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 주의 일입니다.
서울의 큰 교회에는 교통정리를 하는데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저 멀리까지 가서 헌신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헌신봉사하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네 번째,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전도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서 전도해서 양육하는 것을 해산의 수고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은 그런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해산의 수고는 인생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수고입니다.
성도가 수고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전도하는 일에 수고해야 합니다. 저는 대흥교회 성도들이 영혼을 구원하는 이 일에 헌신함으로 주의 일에 헌신하시고 힘쓰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의 진정한 변화는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일어납니다. 이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무관심하지 마십시오. 잠언16장 10절에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열매를 거두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은 영혼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은 이와같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은 생애를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복음전하는 일에 삶의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내 모든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되도록 사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임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주의 일은 헛되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은 그렇게 말합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즉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하고 영혼구령을 위해서 하는 주의 일은 헛되지 않다고 하셨는데 왜 헛되지 않습니까?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주의 일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심은대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좋은 것을 심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의 일에 힘쓸 때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는 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헛되다는 말이 뭡니까? 그렇게 돈 벌어 보겠다고 수십년 인생을 다 보냈고, 뭔가 그럴 듯한 사업도 이룬 것 같은데 열매가 없는 거예요.
내가 죽음이 목전에 와서 돌아보니 열매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열매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주의 일에 힘쓸 때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실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헛되지 않아요. 그래서 주의 일에 힘쓰는 자는 헛되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냐? 좋은 열매가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의 일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도 우리 인생은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위에 것을 바라보며 영원한 것을 위해서 투자하고 살아가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의 육체만을 위해서 섞어질 육신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섞어질 것을 위해서 투자하고 수고한 사람은 다 섞어지고 마는 거예요. 아무 것도 천국에 가져갈 것이 없는 거예요. 아무 것도 없어요.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그러나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둡니다. 영원한 것을 거둡니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수고가 영원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따라합시다. “주의 일을 하는 자는 그 수고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영원히 남습니다. 그 공력이 불에 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며 남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주의 일에 힘쓸 때에 그렇습니다.
셋째, 주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의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상급으로 보상하기 때문에 그 수고가 헛되지 않는 거예요. 아무 사람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손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복을 정확하게 주십니다. 다 행한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저희 수고가 그치고 이제는 죽음으로 쉬게 되는데 저희 행한 일은 다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상급이 있고, 영광의 면류관을 쓸 뿐 아니라 땅에 남겨진 자손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좋은 투자를 하세요.
열매가 있기 때문에 헛되지 않습니다. 그 수고가 영원하기 때문에 헛되지 않습니다. 그 수고에 하나님의 보상과 축복이 있기 때문에 헛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헛되고 맙니다. 아무런 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두가지를 말씀드릴텐데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첫째,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바로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하는 의욕이 가슴속에서 밀려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막 용솟음쳐요.
내가 하는 가정에 일도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 되도록 하고 싶고,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고,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막 우러나오는 거예요. 성령이 충만하면. 그런데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예수를 믿어도 자꾸 내 마음대로 살고 싶고, 내 육의 생각대로 느낌대로 살고 싶어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마서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5절에도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했습니다. 생각이 다르잖아요.
오늘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해 질때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영의 일을 생각하는 영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3절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영으로 몸의 일을 죽이면 우리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성령 충만을 갈망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도 성령충만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받고 돌아가야 지요. 그래야 성령께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통제해 주실 때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고자하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날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왜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가 왜 예배에 정성을 드려야 하지요? 왜냐하면 성령충만을 받아 날마다 날마다 힘과 능력을 공급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여 성령충만을 받음으로 우리 인생을 헛되이 살아가지 않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맡겨진 일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힘을 다한다는 것은 사명에 생명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믿음을 지켰다”라고 했습니다. 목표를 정했습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생명을 전도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이런 마음이 우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일을 내가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리고 목표를 정하면 힘을 다하는 겁니다. 절대로 어려움이 있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해도 금천에서 목회했던 유석홍 감리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죽마고우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 다음 주에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눈이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친구집은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만약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가지 못했다”는 핑계를 되고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새벽기도를 마친 유목사님은 빗자루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친구가 사는 마을까지 눈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유목사님의 친구도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와 있습니다. ‘아이구야. 잘 됐다. 눈 왔다는 핑계로 교회 가지 말아야지.’ 그러고는 밖을 내다 보는데 저 멀리서 누가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쓸며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점점 가까워지는데 가만히 보니 자기 친구인 유석홍목사님인 것입니다. 이 친구가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안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그날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힘을 다해야 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축복된 일이지 않습니까? 한분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이 한주간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하나님께로 꼭 인도하는 이 일에 올인하는, 힘을 다 쏟아버리는,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한주간은 오늘부터 월화수목 계속 만나고 강청하고, 식사도 대접하고 온갖 좋은 것 다 나눠주세요. 그리고 토요일에는 마지막으로 약속하고, 의심스러운 사람은 주일날 집앞으로 찾아가서 기다렸다가가 자고 있으면 옷 입혀서 함께 와야 합니다.
다가오는 주일에는 전교인이 전도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모두가 한 영혼 전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할 수 있는대로 100%로 전도해야 합니다. 주의 일에 힘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남은 인생을 가장 가치있게 승리하는 우리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출처/최낙보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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