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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닫히면 (왕상 8:35-36, 눅 4:24-27)

by 【고동엽】 2022. 8. 30.

하늘이 닫히면   (왕상 8:35-36, 눅 4:24-27)


  캔사스 출신의 한 목사가 뉴잉글랜드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역에서 한 성도를 만났습니다. “고향에는 별일 없습니까?” “토네이도가 불어 저의 집이 무너졌습니다.” 목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전혀 놀랄 일이 아니군요. 그러게 제가 전에 똑바로 살라고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하고 얘기했습니다. 그 때 성도는 “그런데 목사님, 목사님의 집도 무너졌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 역시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군요”.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벌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다면 성할 사람이 없고, 남아 있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뜻은 인간에게 벌주시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벌주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멸망하게 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 지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홍수가 나게 하고, 모든 코로 숨쉬는 생물을 다 죽이고 나서 하나님은 신났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8:21에는 홍수가 끝난 다음 노아가 제사를 드릴 때 흠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그리고 또 말합니다.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9:11에는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또 9:15에는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고 합니다.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던 하나님은 홍수로 멸망하신 것도 한탄하십니다. 벌을 내리고, 멸망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근본은 선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브루스 윌킨슨은 ‘야베스의 기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복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복 주시는 것이지 벌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복 주시는 것이지 사람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혼나며 자란 아이는 머리가 나쁘답니다. 주 1회 이상 체벌을 당한 아이는 IQ가 8이상 감소하고, 성격이 위축되고, 뇌손상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벌은 아이들도 망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복과 저주를 두었습니다. 복과 저주는 우리가 선택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죄 지은 사람은 복 대신 저주를 선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열어두시고 복을 주시기를 바라시는데 사람들은 저주를 택하여 하늘의 문을 닫습니다. 닫힌 하늘은 열지 못하고, 열린 하늘 닫지 못합니다.
  신명기 30:19에는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저주를 택하므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프랑수아 바리용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벌을 주신다면 그것은 벌을 주셔야만 하기 때문이요 그분의 정의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벌은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하늘을 닫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늘을 닫는 것은 벌을 내리신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개천절로서 “하늘이 열리면”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닫히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형벌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하늘을 닫지 않기를 구하고,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우리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하늘이 닫히면 어떻게 되는지 보시고 하늘이 닫히지 않게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늘이 닫히면 흉년이 듭니다.

  25절에는 말합니다.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가나안은 비가 적은 곳입니다. 가을에 오는 이른 비와 봄에 오는 늦은 비에 의존하고 살았습니다. 신명기 11:14에는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라고 합니다. 적당한 비는 축복입니다. 가뭄과 기근은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성경의 족장들은 다 기근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아브라함도 기근을 당하여 애굽에 까지 피난을 갔습니다. 거기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어리석음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이 기근을 당했는지 아십니까? 시편 105:16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셨도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양식을 의존하기 때문에 하늘을 닫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은 벌이 하늘을 닫으신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야가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하늘을 여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구름 조각이 큰 구름을 이루어 그 땅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7년이나 하늘이 닫히는 흉년을 겪게 됩니다. 하늘이 닫힐 때에 하나님의 사람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늘을 여는 지혜입니다. 요셉은 하늘이 닫힐 때를 생각하고 준비했습니다. 흉년이 들기 전 7년 동안은 대풍년이었습니다. 이 때 요셉은 창고를 짓고 곡식을 비축했습니다. 하늘이 열린 축복의 때에 잘 준비해야 하늘이 닫힌 때의 저주를 잘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기우제를 드리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닫히지 않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량문제는 심각한 미래사회의 문제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120억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고 충분한 자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64억이 쩔쩔 매고 있습니다. 매일 35,000명의 어린이가 굶어죽어 가고 있습니다. 함께 사는 공존의 법칙만 알면 사는데 혼자 살려고 하는 욕심만 존재하면 모두가 모자랍니다.
  요엘 2:23에도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하늘 문을 여는 은총을 회복합니다. 하늘이 닫히지 않고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적절하게 은혜를 베푸시도록 기도하는 우리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늘이 닫히면 병이 많아집니다.

  27절에는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라고 합니다. 하늘이 닫히면 저주의 병이 많아집니다. 하늘은 말라기 4:2에 의하면 “치료하는 광선”을 발합니다. 하늘의 광선은 치료하는 광선입니다. 그런데 그 광선이 막힙니다. 치료가 안 되고 병자가 많아집니다. 이것이 하늘이 닫히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최근에는 프레온가스 등의 영향으로 오존층의 파괴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오존층이 뚫리면 피부암을 비롯한 많은 병이 생깁니다. 오존층이 뚫리면 하늘은 막힙니다.
  성경에서의 병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입니다. 특히 한센병이라는 문둥병은 하나님의 벌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늘이 닫힌 증거입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건강과 장수는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입니다. 건강과 장수는 어느 시대나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에스겔 7:15에는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온역과 기근이 있어서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을 것이요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온역에 망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칼에 죽는 것도 저주이지만 기근과 병도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성경에서 병은 하나님의 심판이며 하나님의 저주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왜 병이 많아집니까? 왜 하늘을 닫으십니까? 하나님이 분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내리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9:15네는 “내가 손을 펴서 온역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라고 합니다. 병은 하나님이 치시는 손입니다. 하나님의 솥두껑만한 손으로 한번 맞아보세요. 세상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손으로 치시는 것이 병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손댈 수 없는 병이 많습니다. 옛날하고는 다르게 희귀한 병도 있습니다. 치료하기 힘든 변종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도 있어서 약이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이 연간 36조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내 총생산(GDP)의 7.6%에 해당되는 액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20명 중 1명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74.4세입니다. 그런데 건강수명은 64.3세라고 합니다. 평균 10년은 질병으로 고생한다는 말입니다.
  며칠 전 참 슬픈 기사를 읽었습니다. 92세의 할아버지가 93세 된 할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가난하게 살면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여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장례비 250만원과 함께 유서를 남겼습니다. 78년을 함께 산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 되었다고 유서에 적었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의 8.3%, 약 35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9%, 약 7만 명이 치매를 앓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정말 치매는 무서운 병이고, 가족들에게는 괴로운 병입니다. 이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이며, 공동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고령사회가 된다는 것은 약하고 병든 사람도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오래 사는 것은 복이지만 이렇게 장수라고 하는 복과 병이라고 하는 저주는 함께 인간 사회에 공존합니다.
  황우석 교수는 배아줄기세포의 배양을 성공해서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습니다. 그 실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99.99%가 실패한다고 합니다. 성공률은 0.01%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줄기세포 배양이란 배아의 세포가 분열하며 분화할 때 분화가 끝나지 않은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것입니다. 심장의 세포를 가지고 심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신장의 세포를 가지고 신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식과 치명적 질명의 치료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영생불사하겠습니까? 마르고 닳도록 살 수 있습니까? 그렇지도 못합니다. 또 신종 병들이 생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습니까? 옛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보기 싫은 사람이나 듣기 싫은 말을 들었으면 문 닫고 소금 뿌리하고 했습니다. 아마 하나님도 그러실지 모릅니다. “야, 천사야, 문 닫고 소금 뿌려라!” 하나님의 저주가 내리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지 않아야 우리가 건강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하늘 문을 닫지 않기를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늘이 닫히면 빌며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이 닫히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왕기상 8:35에는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이라고 합니다. 하늘이 닫히면 빌어야 하고, 빌면 하늘이 다시 열린다고 합니다. 하늘이 닫히면 그 죄에서 떠나야 하고, 그 죄에서 떠나면 하늘이 다시 열립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에 기도합니다. 맹세할 때 성전을 향하여 할 테니 들어주십시오. 전쟁에서 패했을 때 성전을 향하여 할 테니 들어주십시오. 하늘이 닫히고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성전을 향하여 할 테니 들어주십시오. 이것이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하늘이 닫히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다시 하늘을 열어주십니다.
  시편 84:6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시작하면서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늘이 닫히면 눈물의 골짜기로 통행해야 합니다. 이 말은 하늘이 닫히면 간절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물에 약합니다. 눈물 골짜기로 통행하면 이른 비로 은택을 입힙니다. 눈물 골짜기는 하늘을 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하여 하늘을 열고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벽을 향한 간절한 기도는 죽을병을 고쳐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었습니다. 이 땅에 기근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의 골짜기를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죽을병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의 골짜기를 요구하십니다. 눈물 골짜기는 비를 내리십니다. 눈물 골짜기는 생명을 연장합니다. 하나님은 눈물 골짜기를 보시고 하늘 문을 여십니다.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실 것입니다.
  332장 후렴에는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사하소서”라고 합니다. 물이든 불이든 내 죄를 사해달라고 간절히 빌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 문을 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어떤 어린이에게 어머니가 뒷마당에서 빗자루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밖은 깜깜하고 어두워 아이는 무서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예수님이 계시는데”라고 했습니다. 이 때 아이는 뒷문을 살짝 열고 “예수님, 계세요? 거기 빗자루 좀 가져다 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깜깜한 미래가 두렵습니까? 알 수 없는 장래가 절망입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여 하늘을 닫을까 걱정입니까? 이 땅이 저주를 받아 기근이 심합니까? 몹쓸 병이 창궐할까 무섭습니까? 이 때 하늘 문을 여세요.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을 찾으세요. 문을 열어달라고 하세요. 영혼의 안식을 달라고 하세요. 마음의 평안을 달라고 하세요. 죄를 씻어달라고 빗자루를 부탁하세요. 예수님은 어두운 거기에 계십니다. 우리의 아픔과 절망이 있는 깜깜한 곳에 예수님은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하늘을 열어주십니다. 이런 간절한 눈물의 기도가 있는 사람에게는 하늘은 닫히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찬송이 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하는 411장입니다. 2절에 이렇게 찬송합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닫힌 문을 열고 세상의 온갖 축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닫힌 문을 열고 하늘에 들어가는 축복 가운데 사는 우리와 우리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성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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