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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옥한흠 목사님의 저서 로마서 강해 3권 <구원받은 자는 이렇게 산다> 295쪽에 있는 글입니다.
50. 긴급한 기도 요청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로마서 15장 30-33절
본문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과 또 그 일을 맡은 사역자들을 위해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배우려고 합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분초를 다툴 만큼 절박한 문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교를 위한 기도의 절박성, 이것이 본문 말씀이 주는 귀중한 교훈입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한 번도 대면한 일이 없는 생면부지의 로마 교인들에게 기도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급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유심히 한번 읽어 보십시오. 매우 다급하고 간절하게 기도 부탁을 하고 있는 바울의 심정이 금방 가슴에 와닿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30절).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해 달라고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이나 내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또 그는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성령은 기도하는 우리들의 연약함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와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 성령을 힘입고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다급한 기도이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은혜를 의지하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본문 중에 "권하노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단어를 보면 그의 심정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의 의미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한다'는 말은 우리에게 그다지 긴장감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원래 그렇게 맥빠진 의미가 아닙니다. "제발 해 주십시오. 꾸물거릴 시간이 없습니다"라는 팽팽한 긴장감과 강한 요청이 그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권하노니'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지 말고 "시간이 급합니다. 제발 기도해 주십시오. 간절히 소원합니다"라는 원래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한마디 말에서 너무나 급한 기도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바울은 "나와 힘을 같이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로마교회 성도들이여,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전력을 다해서 생명을 걸고 씨름하듯이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나를 위해 기도할 때 나와 같은 태도로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힘을 같이하여'라는 말은 전투 용어입니다. 사생결단을 하려는 사람처럼 전력을 쏟아 기도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내 힘으로 돌이켜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고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되 그 기도에 자기의 힘과 정성과 열정을 전부 쏟아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와 같은 기도를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런 기도를 요청했겠습니까?
세 가지 기도
바울이 이렇게 다급하게 기도를 요청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31절).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첫째로 바울은 자기가 여행하려고 하는 길에 무서운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방 교인들이 구제 헌금을 모아 오기는 했지만 그것을 전달할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사도 바울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그렇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늘 가슴 속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사를 제쳐놓고 자기가 직접 가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사자굴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다름이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교 열성 분자들이 도처에 숨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교회 밖에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활동하고 있던 소아시아 지역은 로마법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문 안에만 들어오면 바울, 그까짓 한 놈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왜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로마서를 통해 보아 온 것처럼 바울은 이방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습니다. 바울이 전한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구원받기를 원합니까? 죄 용서함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을 아무리 지켜도 구원 못 받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분만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율법 지키지 못해도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기쁜 소식이 바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언짢게 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백번 오해를 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야, 저놈 봐라. 하나님의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고 가르치는구나. 구원받는 데 율법이 전혀 소용이 없다고 하는구나. 저걸 가만히 두면 안 되겠다. 가만히 뒀다가는 큰일나겠다. 우리 율법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우리 유대인들의 체통이 말이 아니게 만들 위험이 있다. 저 위험한 놈을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하고 생각했을 것이 뻔합니다.
당시 바울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고 심각했는지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려는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앉혀 놓고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2-24).
죽을 각오를 하고 간다는 단호한 그의 결의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만약 천부장이 군사를 풀어서 바울을 군중 틈에서 낚아채듯 빼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군중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대소동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 많은 무리가 바울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짓밟아 죽이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를 한 40명의 결사대가 끼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이와 같이 끊임없이 사방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어떻게 다급하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는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일이 잘못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바울은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31절).
예루살렘에 구제금을 갖다 주는 일이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제금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말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매우 딱한 처지에 있는 예루살렘교회에 구제 헌금을 주는데 그것이 은혜스럽게 전달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생각에는 은혜스럽게 받도록 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주고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잘해 주고도 욕먹는 일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바울이 처한 입장이 바로 그와 비슷했습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의 헌금을 받지 못하도록 반대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을 받으면 그의 언동을 용납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온 돈은 구제금이 아니라 뇌물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받으면 그가 지금까지 다니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떠드는 소리에 우리가 동조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우리가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돈은 받지 말자. 그 돈은 절대 받으면 안 된다."
만일 예루살렘교회가 일단의 반대파 때문에 끝까지 헌금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지고 간 바울의 처지가 얼마나 딱하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먹을 것 안 먹고 한 푼 두 푼 정성을 모아 헌금을 보낸 이방 교인들의 감정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더욱이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교회는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관계였습니다. 한쪽은 헬라인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편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구제금을 갖다 줌으로써 이 둘 사이를 은혜스럽게 화합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화해를 시키기는커녕 더 악화시키면 얼마나 큰일입니까? 그래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자기가 생명을 걸고 성사시켜야 할 중요한 사역을 놓고 어찌 힘을 다해 기도해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세 번째는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마치고 로마에 가서 교인들과 좋은 시간을 갖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32절).
편히 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바울은 빨리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로마에 가서 교인들과 좋은 시간을 갖고 그들로부터 위로도 받고 몸도 푹 쉬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간적인 소원이요 바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도라 해도 바울 역시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에게도 위로와 휴식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자들과의 교제가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여기에 하나의 조건을 붙였습니다.
로마에 가서 쉬고 싶고, 위로도 받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허락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가끔 인간의 소원과는 다를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로마에 가서 쉬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아니다 하시면 못 갑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인가를 또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마음대로 잘 안 될지도 모른다는 어떤 예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바울의 인간적인 소원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무엇을 보고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그는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 동안 옥고를 치러야 했으며, 로마에 간 다음에도 형제들과 나누고 싶었던 사랑의 위로와 교제는 물 건너가고 2년 동안 쇠고랑을 차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의 소원을 주님이 들어 주지 않으셨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잘 몰라도 하루 빨리 로마에 가는 것이 바울의 간절한 소원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다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라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긴급한 기도 요청과 그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가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본문이 가르쳐 주는 교훈은 대략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을 위해서 바울이 요청한 세 가지 기도를 반드시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요청한 세 가지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건져 달라는 것,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자기 개인적인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최일선에 나가서 일하는 선교사들에게는 이 세 가지 기도 제목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그들은 보이는 위험과 보이지 않는 위험에 늘 둘러싸여 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언제 어떤 병에 걸려서 어려움을 당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선교사들이 전도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나갈 때는, 혹시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가족들과 의미 있는 인사를 나눕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동남아, 적도 근방에 있는 지역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은 현지에 적응하기 위해서 말라리아 등 각종 무서운 질병과 싸우려 몇 번의 사선을 넘습니다.
70-80년 전만 하더라도 저 검은 아프리카 대륙은 백인 선교사들의 묘지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선교사로 가는 것은 곧 죽으러 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간 어린 철부지 자녀들이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그곳에 묻히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을 가 보아도 어린 나이에, 아니면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생명을 내놓고 죽으러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회교나 불교, 힌두교가 주종을 이루는 10/40 창문 안에 들어 있는 지역에 가면 선교사들과 그의 가족들은 항상 공포 분위기 속에서 긴장하며 살아갑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는 공산권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던 어떤 선교사가 비밀리에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나돈 적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는 얼마나 절박한 기도인지 모릅니다. 선교사를 위한 기도는 항상 긴급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원했던 것처럼 우리도 있는 힘을 다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선교사들은 각자 자기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구제 헌금을 전하고 그 다음엔 로마로 가겠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선교사들도 각자 가지고 있는 계획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가 파송한 정제순 선교사는 파푸아뉴기니에서 메께오 부족을 위해 성경 번역을 하는 것이 그의 꿈입니다. 그러므로 그 꿈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긴급하게 요청을 합니다. 이순임 선교사는 가냘픈 여자의 몸이지만 적도 지역 회교 국가인 말리를 복음화시키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서 긴급하게 최선을 다해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변재창 선교사는 세계에서 가장 선교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일본에 들어가서 일본 교회 목사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키고 일본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 꿈과 목표가 있습니다. 지금 그는 그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최우선에 속하는 기도요 시급한 기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사들은 누구나 인간적인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중요한 것도 있지만 사소한 것도 있습니다. 더운 지역에 가서 몇 년 고생하다 보면 가끔 시원한 동치미를 한 번 실컷 먹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바람이지요. 그런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고 해서 "선교사로 간 사람이 믿음이 이렇게 없어?"하고 욕하면 안 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런 바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동치미를 주셔서 실컷 먹게 하시든지 아니면 동치미 생각이 나지 않도록 그 마음을 붙잡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사들의 인간적인 소원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긴급하게 기도를 해 주어야 할 대상은 외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뿐만이 아닙니다. 복음을 들고 일하는 국내의 모든 사역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교역자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합니까? 유흥가 선교를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뛰고 있는 사역자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합니까? 구로 공단에 가 보십시오. 하루 종일 생산 공장에서 기계처럼 움직이는 우리 십대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 주려고 애쓰는 공단 선교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해 줍니까? 그것은 정말 다급한 기도입니다. 힘을 다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중보 기도의 능력을 믿으라
두 번째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합심 중보기도가 지닌 엄청난 효력에 대해 바울처럼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기도를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안을 놓고는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합심해서 힘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생전 보지도 못한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엄청난 효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모두는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로마 교인들이여, 나의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나 혼자 기도해도 되겠지만 여러분이 모두 합심해서 기도할 수 있다면 정말 놀라운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예루살렘이 사자굴처럼 위험해도 하나님이 그곳에서 나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내가 가지고 가는 구제금이 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을 반드시 하나님이 들어 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합심해서 기도하십시오. 힘을 다해 기도하십시오. 가급적이면 여러 명이 모여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바울이 지금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합심기도의 능력을 너무나 많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깊은 고뇌 속에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주님은 마태복음 18장 19절에서 우리에게 기도의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얼마나 멋있는 말씀입니까? 무엇이나 나 혼자 기도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영적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심해서 기도해 주어야 할 일을 보고도 못 본 체하고 자기 기도만 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입니다. 바울처럼 합심 기도의 막강한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부르짖는 소리보다 두 사람의 기도 소리가 더 멀리 울립니다. 두 사람의 기도보다 열 사람의 기도가 더 높이 올라갈 것입니다.
마귀는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보고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 사람이 뭉쳐서 기도하는 것을 보면 안색이 파랗게 질립니다. 그 기도가 큰 역사를 이루는 것을 마귀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간청하는 기도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짖는 기도를 서둘러서 들어 주십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이 사실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 가운데 문모세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회교 국가인 P국을 복음화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그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자를 받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나라는 선교사에게는 절대 비자를 내 주지 않습니다. 특별한 방법을 쓰지 않는 한, 비자받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우리 교회에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특별히 문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 주는 그룹이 있습니다. 황광섭 집사 부부가 그의 기도 후원 담당자입니다. 황 집사는 우리 교회 여자 19교구와 59교구 다락방에 긴급히 연락해서 합심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기도회에 나와서도 이를 기도 제목으로 내놓았습니다. 모두들 문 선교사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어느 날, 문 선교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 중에 감동어린 내용이 있었습니다. 문 선교사가 비자를 받으러 가는 날, 대사관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여리고 성을 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대사관 주변을 빙빙 돌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비자 좀 내주십시오." 이렇게 수십 번 기도하고 난 뒤 대사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를 본 그곳 직원이 며칠 기다렸다 오라며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나 문 선교사는 물러서지 않고 즉시 발급해 달라고 간청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참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밀고 당기는 말을 주고받았나 봅니다. 결국 오후에 한번 들르라고 했습니다. 기도로 마음을 강하게 다지며 오후에 다시 대사관에 갔더니 한마디 질문도 없이 한 푼의 통행료도 받지 않고 1년짜리 비자를 내 주더라고 합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 상황을 잘 모르니까 그까짓 비자받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우냐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뒤에서 열심히 기도해 준 덕분으로 그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합심기도가 큰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또 어떤 선교사의 이야기를 잠깐 소개합니다. 그 선교사는 뇌진탕으로 3주 동안 병상에 누워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두개골이 깨졌기 때문에 몇 시간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고통을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선교사의 부인이 고국에 있는 기도 후원팀에게 기도 요청을 하기로 하고 무선 통신기 앞에 앉았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마침 목사 사모가 기도회에 나가려다 그 통신을 받았습니다. 사모로부터 그 내용을 전해 들은 교회에서 기도가 폭발했습니다. 중보기도가 폭발한 것입니다. 그 선교사를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선교사에게 더 이상 진통제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합심해서 기도하면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위력을 체험한 사람들은 조그만 일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 남이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면 열성적으로 기도해 줍니다. 또 남이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면 열성적으로 기도해 줍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해도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이 기도해 주기를 원합니다. 합심기도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능력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 능력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전투적으로 기도하라
세 번째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복음 전하는 일과 관계되는 기도일수록 힘과 정열을 다 쏟는 전투적인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전도하기 위해서 기도합니까? 복음 전하는 것과 관계되는 기도는 힘없이 하면 안 됩니다. 사력을 다해서 힘을 쏟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귀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잠자고 있는 마귀에게 가서 일부러 발로 차서 깨우는 것과 똑같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서 나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은 영적 전투요, 도전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달린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해도 힘없는 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면 군대 마귀가 일어섭니다. 선교사 한 사람이 준비해서 나가려고 하면 마귀가 얼마나 갖가지 야비한 수단으로 방해를 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믿게 되면 마귀는 자기 백성을 빼앗기는 꼴이 되기 때문에 몹시 화를 냅니다. 마귀는 그 사람을 끝까지 죄와 사망의 사슬에 묶어서 질질 끌고 다니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전도하는 사람을 보면 발악을 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할 때는 보통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에 적당히 예배에 참석하고 오후에 들어나 산에 가서 실컷 놀다가 돌아오는 그런 사람에게는 마귀가 계략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마귀하고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마귀는 자기 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이웃에 있는 안 믿는 사람을 꼭 예수 믿게 하려고 체면 불구하고 자존심 꺾어 가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면 마귀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를 이기는 길은 힘을 다해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선교사 한 분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 시계를 두 개씩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선교사가 일하는 지역을 시각에 맞추어 놓은 시계, 또 하나는 이곳 시각을 가리키는 시계입니다. 이렇게 양쪽으로 시계를 맞추어 놓고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준다고 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 죽어 가는 소리로 기도하면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가슴에 품고 성도들이 하나같이 뭉쳐서 기도하면 틀림없이 마귀는 물러갈 것입니다. 아무리 마귀가 두 손에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발악을 할지라도, 내 남편을 거기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유흥가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바울처럼 힘을 다하여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합심하여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아프리카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동남아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불교권, 회교권에서도 큰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도 기도 안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긴급한 기도입니다. 분초를 다투는 기도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지옥에 던져 넣느냐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여보내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힘을 합하는 기도, 더 열심을 쏟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마귀는 절대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합심해서 하는 기도를 당할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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