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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 (계 3:7-13)

by 【고동엽】 2022. 8. 29.

열린 문   (계 3:7-13)

오늘 설교제목을 ‘열린 문’으로 잡은 것은 오늘 본문의 중심어구가 바로 ‘열린 문’이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세요.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 볼지어다: 주의를 환기시키는 문구입니다. 영적인 눈을 열고 보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 내가: 문을 연 사람입니다. 1절에 보면 문을 여신 분이 누군지 밝혀주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쓰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신 주인입니다.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네 앞에: ‘열린 문’이 있는 장소입니다. 주께서 문을 열어두신 곳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 앞입니다. 그냥 빌라델비아 교회의 문을 주께서 열어두셨다고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어두신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선교(전도)와 섬김(봉사)의 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문이 어디로 향해 열려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문이 열린 방향은 세상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열린 문은 세상을 향해 열린 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잡아야 할 주제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칭찬만 받은 교회는 7교회 중에서 두 교회뿐이었습니다. 서머나교회와 여기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왜 칭찬 받았습니까? 주님의 뜻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시민들을 향해 문을 열고 나아가 선교와 섬김, 전도와 봉사의 사명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지역사회)을 향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1) 문단속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부정과 부패를 비판하고 질타하면서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의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만 주력하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다름, 세상과의 분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2) 전혀 다른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을 열고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역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을 나누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어떤 태도가 바른 태도라고 하십니까?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왜 그리하라고 하십니까? 세상을 향해 교회의 대문을 활짝 열어두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왜 주께서 교회의 대문을 여셨습니까? 교회로 하여금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대문을 여신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주께서 열어두신 대문을 거쳐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께 대한 불순종입니다. 존재목적과 사명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는 주님께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우리교회의 금년도 표어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새 출발 2004, 하나님을 향해 세상을 향해’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과 함께 세상으로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지금 우리 앞서 걸어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어디로 걸어가십니까? 그곳은 다름 아니라 세상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세상 끝을 향해 걸어가고 계십니까? 세상을 당신의 나라로 바꾸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세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확장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변질, 타락, 세속화를 막기 위해서 교회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 사람들만을 보호하기에 급급하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그 정도로 연약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들어가서 깨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강합니다. 교회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폐쇄적인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개방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세상의 변화를 위해 문을 열지 않는 교회는 세상과 함께 자신도 질식해서 사그라질 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성도와 교회를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부패해가는 세상으로 스며들어가서 부패를 막고 좋은 맛을 내는 소금으로 제 역할을 다하려면 교회가 먼저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에 생명과 사랑과 축복의 빛을 비추고 소금처럼 조용히 섬기는 봉사의 사명을 교회와 성도가 충실하게 감당할 때 세상의 한 모퉁이, 한 모퉁이가 아름다운 세계(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께서 교회를 이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세상을 향한 ‘열린 문’을 두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되려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한 선교(전도)와 섬김(봉사)의 사명을 활발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지역사회를 향해 선교와 섬김의 문을 여신 주님의 뜻을 잘 깨닫고 그 뜻에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칭찬 받았습니다. 8절을 다시 보세요. 하반절입니다.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어떤 행위를 칭찬하셨습니까? 그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능력은 적었습니다. 보잘것없었습니다. 아마도 교회의 규모가 작았을 것 같습니다. 성도의 숫자도 적었고 재정적인 능력도 약한 교회였다고 보여집니다. 세상적으로 평가해서는 별볼일 없는 교회, 보잘것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했습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그 작은 일이 다름 아닌 지역사회에 복음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거창한 프로젝트를 세우고 대량으로 선전하고 엄청난 인력과 재정을 투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으로 성실하게 그 일(선교와 섬김)에 충성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것은 복음의 순수성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절과 병행하여 보면 선교와 섬김의 사명에 최선을 다했던 벨라델비아 교회에 핍박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쳤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굳게 서서 복음을 변호했습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지역주민들을 섬겼습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단어의 뜻은 ‘형제사랑’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가 그 이름에 걸맞게 형제사랑을 실천했습니다. 핍박자와 원수를 향해서도 형제처럼 사랑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아가페 사랑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이러한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해 우리 주님은 축복의 예언을 하고 계십니다.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주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 최고의 축복권을 가지신 주께서 하신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루어질 언약입니다.

주께서 무엇을 약속하셨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세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 유대인들 몇이 그 열린 문으로 들어와 주님의 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9절).

그 당시 교회를 대적했던 핍박자들 가운데 가장 완악하고 끈질긴 세력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단의 회’라고 부릅니다. 사단을 섬기는 집단입니다. 그들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은 자’입니다.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또한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추종하는 자들, 진리에서 떠난 자들, 세상을 미혹하는 자들, 진리에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서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물론 주께서 주신 사람들이기에 그런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몇을 네게 주어’). 하지만 그렇게 완악한 그들이 회개하고 교회의 한 식구가 되기까지에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섬김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이 변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 유대인의 회심은 교회의 최종적인 승리를 약속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구원의 순서를 밝혔습니다. 먼저 교회의 열린 문으로 이방인들이 들어와 그 예정된 충만한 수가 차게 될 때 비로소 유대인들 가운데 뒤늦게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될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델비아 교회에 유대인의 무리가 들어와 교회의 한 식구가 될 것이라는 주님의 예언은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의 밝은 전망을 확고하게 피력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 마지막 날에 모든 족속들, 특히 유대인들까지 하나님 앞으로 모아 들이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구원 받을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 구원의 방주인 교회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교회는 종말에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마지막 축복의 기관입니다. 이 특권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주께서 또 어떤 축복을 약속하셨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에 시험(환난과 시련)의 때를 면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0절).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진리를 발견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으로 들어가서 선교하는 교회와 섬김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만이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교회의 생존과 승리는 세상을 향해 들어갈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선교(전도)하는 교회,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만이 환난과 시련의 때를 극복합니다. 그런 교회에 주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을 향해 들어가지 않는 교회, 문을 걸어 잠그는 폐쇄적인 교회는 결국 쇠약증, 위축증에 걸리고 맙니다. 온갖 질병에 허우적거리는 약한 교회가 됩니다. 대체로 성도들 간에 서로 헐뜯고 싸우는 교회를 보면 선교와 섬김을 소홀히 하는 교회입니다. 선교와 섬김에 주력하지 않을 때 교회는 남은 정력을 서로 싸우는 일에 소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건강한 생존과 활력이 세상을 향한 선교와 섬김에 달려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와 성도가 보다 건강하려면 선교와 섬김의 사명에 더욱 주력해야 합니다.

3) 주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약속하신 마지막 축복이 무엇입니까? 끝까지 선교와 섬김의 사명에 충실한 교회와 성도에게 주께서 영광스러운 상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12절).

크게 두 가지 상급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세 가지 이름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세 가지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여기에 담긴 뜻을 조목조목 헤아려볼 수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간단히 요약하면 ‘너희가 내 이름을 높였기 때문에 나도 너희의 이름을 높이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모든 교회들 가운데 우뚝 높여서 영원히 칭송을 받게 하고 기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잊지 않으시고 더욱 분발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11절을 보세요.『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속하여 선교와 사명을 완수하여 약속하신 상급을 네 것이 되게 하라고 주께서 당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권면을 1세기 말의 빌라델비아 교회에만 주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오고 오는 모든 교회를 향해서 동일한 심정으로 당부하고 계십니다. 13절입니다.『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교회들(복수)입니다. 이 교회들 안에 우리 서울중앙교회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들 대신에 서울중앙교회와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본문을 제대로 읽은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제 자신과 우리교회에 적용하면서 적어도 세 가지 중요한 기도제목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 우리 각자에게 ‘Mission Mind’를 주소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선교와 섬김의 정신으로 우리의 마음이 무장되게 하소서! 먼저 우리부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열린 마음을 갖게 하소서!

여러분, 우선적으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주께서 이미 열어두신 것을 감지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이 열린 자입니다. 동시에 세상을 향해서도 마음의 문이 열린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얼마든지 품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하거나 타협해서는 안되지만 항상 세상을 긍휼히 여기고 세상의 변화를 소망해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먼저 세상 사람들에게로 다가서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미션 마인드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선교와 섬김을 생각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항상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제목 가운데 우선적인 것이 바로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선교 마인드입니다.

2) 주님, 서울중앙교회 앞에 열어두신 선교와 섬김의 문을 보게 하소서! 우리교회에 주신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선교와 섬김의 사명에 주력하게 하소서! 주님의 축복으로 더욱더 선교와 섬김의 영역이 확장되게 하소서! 종로를 넘어 서울과 남한과 북한과 세계로 더 넓게 확장되게 하소서!

저는 우리 서울중앙교회에 주께서 선교의 문, 섬김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우리교회는 2010 비전의 5대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 중에서 세 가지가 바로 선교와 섬김의 사명에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 조국의 통일을 대비하는 교회, 국내외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

사실 이 비전을 세우고 4년 가까이 지나오면서 선교와 섬김의 영역이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지 말고 더욱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연차별 비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좀더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공간 특히 복지관이 지역사회를 향한 선교와 섬김의 열린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헌신이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대로 적은 능력이라도 헌신하기만 하면 기대 이상의 결실과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주께서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이 약속을 믿고 먼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중앙교회가 선교와 섬김의 사명에 더욱 충성하도록 기도하십시다!

3) 마지막 기도: 우리 모두 가정에서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주께서 호되게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축복의 통로를 가로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사랑과 평화와 기쁨 등 하늘의 축복을 마음껏 받아 그 축복을 지역사회와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자가 복된 성도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향해, 옆으로는 이웃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받은 축복을 열심히 나누는 자가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폐회찬송으로 우리는 ‘축복의 통로’를 부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통로로 살 때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주께로 돌아와서 주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선교와 섬김의 사명에 충실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교회는 10월 중에 새생명 전도축제를 벌일 것입니다. 지난 봄에 태신자 작정카드를 제출했는데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몇 주간 태신자 품기를 재개합니다. 2004(이천사) 운동으로 명명했습니다. 적어도 두 명의 이웃에게 천사가 되어주는 운동입니다. 사랑과 섬김의 천사로 그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의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두 명의 전도대상자나 새생명축제에 모시고 올 분들을 정하십시오! 멀리서 찾지 마시고 늘 만나는 사람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정한 사람들의 이름을 오늘 주보에 끼어있는 태신자카드에 적어서 다음 주일에 제출하면 되겠습니다. 다음주일 예배 시간에 기록하는 시간도 드리겠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동참해 주세요! 오늘 설교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시고 모두 참여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최우선적인 사명은 선교와 섬김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에 충성하지 않으면서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에는 좀 모자람이 있어도 오늘 말씀처럼 선교와 섬김에 있어서는 항상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와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와 교회에 주께서 크게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끝) 찬송가 268장


       출처/곽창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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