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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사망의 땅에 빛이 (사9:1-2)

by 【고동엽】 2022. 8. 29.

  사망의 땅에 빛이   (사9:1-2)

(사 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몇 년 전에 고기잡이 배들이 뉴 잉글랜드의 동부 연안에 있는 한 작은 어항으로 부터 출어하였습니다. 오후에 그들은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밤이 되었을 때 그 어선들 중 단 한 척의 배도 항구로 들어 오지 못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그들의 부인들 어머니, 아이들, 그리고 애인들은 해변을 오르내리면서 손을 모아 하나님게 그들을 구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상황에 공포는 더하여 한 오두막이 불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모두 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집을 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기쁘게도 모든 어선들이 연안에 있는 항구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절망의 얼굴을 한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의 집이 불타버린 남자의 아내였습니다. 그가 육지로 올라 와서 그의 남편을 맞이했을 때 그녀는 울며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는 망했어요. 우리 집과 그안에 있던 모든 것이 불에 타버렸어요." 그러나 남자는 말하였습니다. "그 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오. 모든 어선들을 항구로 무사히 인도한 것은 우리의 불타는 오두막에서 나오는 불 빛이었다오!"(예화뱅크-오두막에서 나오는 불빛이)

이사야 선지자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췬다고 합니다.
흑암은 빛이 전혀 없는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절망 슬픔 고통 환난 등을 나타내며 사망의 그늘진 땅은 생명의 빛이 전혀 없는 상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아예 끊긴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땅에 빛이 비취리라 합니다. 빛은 흑암과 완전히 대조를 이루는 말로서 하나님의 임재 곧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인한 은혜와 복을 나타냅니다.

    개인 심령의 땅에 빛이
  성경은 우리의 심령을 땅에 견주고 있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눅 8:8)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합니다.

죄악된 심령에 구원의 빛으로 역사합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되는 역사가 임했습니다.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행 26:13)

  질병을 치료하는 광선으로 역사 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 4:2)

  사경을 헤맬때 들려온 한줄기 빛이라는 간증이 있습니다.
독방에서 30명이 함께 생활하는 감방으로 옮겨가며 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임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흥, 예수쟁이구먼”하며 아니꼽다는 듯이 대했다. 나는 그들의 비웃음에 아랑곳없이 매일 성경말씀과 찬송을 그들에게 들려줬다. 시간이 지나자 처음엔 성경책을 낚아채 내던지던 그들도 차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교도소 생활은 마음으로는 평온했지만 건강이 문제였다. 고문으로 망가진 몸을 2년 가까이 독방에서 운동을 하지 못한 채 내버려둔 탓에 내 건강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69㎏이던 체중이 40㎏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위궤양 십이지장궤양에 영양실조까지 겹쳤다. 교도소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다가 서울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사는 “며칠을 넘기기 어려우니 가족에게 임종이나 지키게 하라"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로부터 57일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나는 죽어갔다. 꿈속에서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빛과 함께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너는 너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려 하느냐? 용기를 내라.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깜짝 놀라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떴다. “이봐 980번, 정신이 들어?” 교도관의 얼굴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나는 양쪽 팔에 꽂혀 있는 혈관주사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교도관은 “어차피 틀렸으니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는 의사의 말에 주사바늘을 뽑았다. 팔이 자유로워지자 앙상한 손으로 성경을 쥐었다. 힘이 없어 가까스로 성경을 펼쳤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은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이 말씀에 번쩍 생의 확신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려 하시는구나”.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지만 57일간 물 한 모금 먹지 못했던 내가 살아났다.“죽었다던 사람이 돌아오다니 진짜 하나님‘빽’이 쎄긴 쎄구먼요”뼈만 남긴 채 걷지도 못하고 교도관에게 업혀 돌아온 나를 감방 식구들은 눈물겹도록 반겨줬다. 그들은 굳어진 내 팔과 다리를 주물러줬다. 그렇게 해서 나는 살아났고, 일어섰고, 또 걸었다. 혼자서 몸을 추스릴 수 있게 되자 다시 독방에 수감됐다. 교도소 측은 내가 감방식구들과 가깝게 지내자 딴 사람을 물들일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독방으로 돌아가면서도 기뻐했다. 이제부터 사는 일생은 하나님이 새롭게 주신 생명이니 모든 것이 다 그분의 뜻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후서3:10) 이 말씀에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쳤다. 그러나 정치범은 일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14일간의 단식 투쟁 끝에 변소청소를 맡게 됐다.“변소청소 선생’으로 통할 정도로 기쁘게 일했다. 그러면서도 성경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성경을 70번 완독했을 때 무기징역에서 15년으로 다시 감형됐다.
죽음의 절망 속에서도 주의 빛이 임하므로 영육간에 강건하여 헌신 하며 봉사하는 역사가 함께 합니다.

   이스라엘 땅에 빛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방으로 인한 흑암과 사망에 그늘진 상황에 처할 때 마다 해방과 자유의 빛이 임하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사 9:4)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는 B.C 735년경으로 강대국 앗시리아 시대였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연합하여 앗시리아를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남 왕국 유다의 왕은 ‘아하스’로서 20대 젊은 왕인데, 세상 지혜는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어두워서 인간적 생각으로 당시 강대국 앗시리아의 ‘디그랏 벨라셀’왕과 연합하여 국가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결국 앗시리아의 유대 정치에 간섭을 초래하게 했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를 포함한 해안 변경의 갈릴리 지방은 그 개방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서 유달리 외세의 침입과 압제에 시달렸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은 늘 이방의 군대들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사야 당시에는 앗수르의 압제와 횡포 아래서 괴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압제의 그늘 아래는 늘 절망과 공포, 그리고 궁핍과 무기력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외세의 압제뿐만 아니라 본토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이라고 종교적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유인즉 주민들 대부분이 이방 혼혈인으로서, 우상 숭배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사 9:4) 합니다.
선지자가 '미디안의 날'을 말하는 것은, 지극히 적은 수효로 많은 대적들을 물리친 그 사건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합니다.
'멍에'와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는 모두 노예를 다룰 때 사용하는 도구들입니다.  특히 '멍에'(수발로)와 '그 압제자'(하노게스 보)는 애굽에서의 속박을 연상시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출 2:11)합니다.
성경적 표상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을 속박하는 어두움의 세력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해방 사건은 애굽에서의 구원인 유월절과 연결이 됩니다.
바벨론을 대항하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588년에 멸망당한 시드기야 왕은 그의 아들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고 많은 백성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왕하25:1-21). 6세기말 고레스의 바벨론 정복에 뒤이어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하여 주전 520년에 세웃 있도록,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주후 70년 망한 이스라엘이 1948.5.15.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의 고역 속에서도 사사 시대의 흑암에서도 바벨론 포로 생활의 암울함 속에서도 나라를 잃고 흩어졌던 절망의 자리에서도 빛이 비추는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땅에 빛이
이상화(李相和) 시인은 지난 날 우리의 암울한 상황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위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므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10 일제가 한일합방을 강행함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항일 투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대표적 사건 가운데 하나가 신민회의 105인 사건입니다. 이 신민회는 숭실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이 항일운동을 하다가 발각이 되어 체포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이 123명이었는데 그 중 93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선교사만도 24명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은 범 민족적으로 일어난 항일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봉에는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33명의 민족대표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0.9% 밖에는 안 되는 정말 미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3.1운동으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절반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전국 교회가 이 일에 분연히 일어나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임시정부 수립의 모체는 신한청년단이었습니다. 이 신한청년단은 상해한인교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신한청년단의 대부분의 인사들이 상해한인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상해한인교회를 두고 “기독교를 이용해서 독립운동을 선전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계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당시 미미했지만 독립운동의 무시 못 할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또한 일제시대에 한국 땅에 놀라운 기도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1884년 시작된 한국교회에 본격적인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03년이었습니다.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가 기도에 관해 설교를 했습니다. 그 때 선교사들이 먼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신자들에게 그 은혜가 번져서 그 다음 해까지 하디 선교사의 전국 순회 집회로 무려 1만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더 놀라운 부흥의 역사는 1907년 저 평양에서 일어났습니다. 1907년 정월 첫 주간 북한 전역에서 700명의 신자가 평양 장대현 교회에 부흥회로 모였습니다. 8일 주일저녁 예배 때 일이었습니다. 당시 장대현 교회 길선주 장로가 일어나 회중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자기는 아간과 같은 자로 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집회에 복을 주시지 않는 것이라고 통회했습니다. 이 때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은혜의 역사가 물밀 듯 회중에게 밀려들어왔습니다. 무거운 죄책감이 통회로 다 날아가고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저들이 은혜의 사람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때 정치적으로 기독교를 이용하려던 무리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신앙적 열정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새벽기도회를 시작했고, 철야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도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기도의 운동이 구국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심으로 이 민족에게 빛이 비추는 광복을 허락 하신 줄 믿습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한 주축으로 아시아에서 침략 전쟁을 일으키자 한국은 일본에 상대가 되지 못했고 임시정부가 중국 땅에서 활약하고 독립군이 나름대로 저항운동을 펼쳤지만 일본과는 맞설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중국도 국민당의 장개석 정부나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가 일본을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필리핀을 위시해 아시아 그 어느 나라도 당시 일본과 맞설 나라가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나라치고 스스로 일본과 맞서서 독립을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이 나서게 하셨습니다. 아시아 지역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던 나라들이였고 독일과 전쟁하는 일만도 벅찬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연합국은 1945년 7월 포츠담 선언을 통해서 일본에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응하지 않자 미국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그리고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원자폭탄은 당시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신무기로 아직 한 번도 전쟁에 사용된 일이 없던 폭탄이고 그 위력도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 피해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일본 천황은 아무런 조건 없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이 땅에 해방과 자유의 빛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북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이 되어 탈북 동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으로 개성공단으로 트인 물꼬를 6자 회담으로 정상회담으로 확장시켜 이북에도 빛이 비추는 역사를 허락 하실 줄 믿습니다.  
개인 심령에 빛이 이스라엘 땅에 빛이 이 땅에 빛이 비추게 하사 광복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서 통일의 빛도 허락 하실줄 믿고 기도하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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