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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노래, 감사 (시편 100:1-5)

by 【고동엽】 2022. 8. 29.

기쁨, 노래, 감사   (시편 100:1-5)


오늘 주의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기쁨?노래?감사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또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삶, 하나님께 늘 영광 돌리는 찬송하는 삶이어야 한다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 성도의 삶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쁨으로 삽니다. 당연히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먹어서, 잘나서, 좋아서 세상에서 기뻐한다면 그 기쁨은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적어도 위로부터 하나님께로 내려오는 기쁨, 하나님이 주신 기쁨, 내 안의 기쁨, 영적인 기쁨 이 기쁨이 있다면 참으로 최고의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요사이 기쁨에 대해서 각 학자들이 분야별로 많은 연구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기쁨, 웃음이 굉장히 건강에도 효과가 있고 인생의 삶에 전반적으로 많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웃음은 참으로 중요하답니다. 웃음은 치료하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웃을 때에 분비되는 엔케팔린이라고 하는 이 호르몬은 진통효과가 있어서 몰핀의 3백배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엄청난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메모리얼 병원에서는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연구를 했는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양을 줄여주는 역할이 바로 웃을 때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 몸의 스트레스는 긴장과 병을 가져다 주는데 이걸 막아내는 약은 없으나 웃음을 통해서 치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우리가 한 번 크게 웃으면 2일을 더 살 수 있고, 15초만 웃으면 이틀을 더 살 수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시간 더 사는 게 얼마나 대단한데 한번만 크게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고 합니다. 한 번 웃으면 5분을 에어로빅 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에어로빅을 해서 우리가 여러 가지 몸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지만 내 마음, 내 정신, 영적인 것은 전달이 안 됩니다. 그래서 웃음은 근본적으로 안에 있는 가장 큰 뇌의 기능을 활발하게 움직여서 건강에도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메디컬센터에서는 웃음은 심장병을 예방하는데도 가장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고, 캘리포니아 로마린다 의과대학에서는 웃음과 면역체에 대한 연구에서 웃을 때에는 체내에서 병균을 막는 항체인 인터페론감마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동경의대에서는 만성통증 환자들에게 웃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불치의 병도 다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신경계에는 웃음은 신체 전 기관의 긴장을 완화시켜서 암환자의 통증을 경감시킨다고 합니다. 호흡기에는 웃음은 산소공급이 두 배나 증가되어서 머리가 좋아진다는 임상 결과도 있습니다. 소화기에는 기분이 좋을 때 소화호르몬이 촉진되어 음식물의 소화를 돕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는 웃는 이야기를 하라고 합니다. 밥 먹을 때는 돈 이야기하고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경질 난다는 것입니다. 웃는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밥 먹을 때는 여자 이야기를 하라고... 여러분! 남자 이야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소화가 잘 되고 건강에 좋습니다. 근육계도 물론이고 웃으면 우리 몸의 650개의 근육 중에 231개가 움직인다고 합니다. 얼굴 근육은 15개가 움직인다고 합니다. 내분비계는 혈액 내에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졸의 양을 확 줄여준다고 합니다. 웃으면 세포도 증가된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좋은 것이 웃음입니까? 우리 조상들도 여기에 대해서 이미 많은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문만복래’라고 웃으면 만복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일소일소 일노일노’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내면 한번 늙는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임금들은 장수를 위해 웃음내시를 두었다고 합니다. 궁궐이 늘 긴장하니까 내시 가운데 웃는 것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두었다고 합니다. 새의 깃털로 환자의 환부를 간지럼을 태워서 치료하는 일도 이미 우리나라에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박장대소’라고 해서 손뼉을 치며 크게 하하 하고 웃는 웃음을 말합니다. ‘파안대소’는 즐거운 표정으로 한바탕 크게 웃는 것을 말하고, ‘포복절도’라고 배를 안고 막 넘어질 정도로 어떤 분은 배꼽이 빠졌다는 말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웃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우리 조상들도 이미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웃는 웃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억지로 웃는 웃음, 세상에서 웃는 웃음 그런 웃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안에 안길 때, 주님께 돌아올 때, 주님과 만날 때, 창조주와 피조물이 만나고 아버지와 아들과의 만남, 나의 죄를 사해주신 구세주와의 만남에서 내 짐을 벗고 나를 자유케 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웃음이 나옵니다. 웃음은 그때그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늘 웃음을 주님이 주시고 웃음의 샘이 늘 솟아나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삭개오라고 하는 분은 세상에서 웃음을, 기쁨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지위도 높고 흔히 그렇게들 말합니다. 높고 많이 가지고 잘되면 기쁨이 오는 줄 알지만 삭개오는 다 가졌지만 기쁨이 없었습니다. 어디서 기쁨을 찾았습니까? 주 예수에게서, 그를 만나면서 삭개오는 춤추며 주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에 기쁨이 찾아 왔습니다. 즐거움이 감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과 만남에서 그의 품안에서 얻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그의 품안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만 가지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잠깐의 기쁨 뒤에는 쓰나미같은 새로운 태풍이 몰아쳐서 그 기쁨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유럽의 격언에도 “5분 동안 기뻐하고 30년 슬퍼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잠깐의 기쁨 속에서 일생의 고통을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범죄에서, 죄악에서, 하나님을 떠난데서 기쁨을 찾는 것은 오히려 기쁨보다는 불행을 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참 기쁨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내 영혼의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며, 죄의 짐을 벗겨주셔서 오는 기쁨, 안의 기쁨, 영적인 기쁨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임금이 되면 세 가지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은, 금을 많이 두지 말라. 이런 것을 많이 두면 오히려 근심이 더해집니다. “천석군은 천 가지 걱정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근심이 더 많이 옵니다. 또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많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살아보면 안 그렇습니다. 한 분도 우리가 이렇게 불안하고 긴장하는데 여럿이 있다?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여자를 많이 둔다? 절대로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임금에게 말합니다. 말도 많이 두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군대, 안전장치가 많을수록 긴장은 더 많습니다. 기쁨은 참으로 영적인 기쁨이고,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도 세상에서 모든 기쁨을 얻으려고 했지만 그는 기쁨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품안에서, 주님의 품안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부유해서 누리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기뻐할 사람이 몇 명이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어디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우리는 기뻐합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고 좋은 것 별로 없습니다. 특별한 장소, 특별한 집, 특별한 기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이 계신 곳에,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 기쁨이 있고, 주님이 내 짐을 벗겨주시고 내 형편을 아시며 나와 동행하실 때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두 청년이 길을 가다가 곰에게 쫓겨 한 사람은 도망쳐 나무위로 올라가고 한 사람은 굴속으로 숨었습니다. 그런데 굴속에 들어간 이 친구가 자꾸만 한 십분 있으면 뛰어나옵니다. 그 곰은 지금 나무에 올라간 친구를 보고 밑에서 지키고 있는데 이 친구는 자꾸만 나옵니다. 나왔다가 곰이 돌아보면 또 굴속으로 들어가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위에 있던 친구가 “야! 가만히 있어 그러면 곰이 갈 것 아니야.” 그러니까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야! 굴속에도 지금 곰이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굴속에도 곰이 자고 있습니다. 그래서 들어갔다가 또 뛰어나오고 나오니까 또 곰이 있고. 우리는 세상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면 저기 가도 어려움이 있고 직장에 가서도 힘들고 집에 오면 또 집에 곰이 있고, 어디 곰이 없는 곳을 찾아보면 없습니다. 다 곰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디가도 곰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신 선물, 내 마음 속에 있는 이 참된 기쁨은 아무나 빼앗을 수 없네. 만왕의 왕이 내게 주신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합니다. 늘 기뻐합니다. 이 기쁨은 참 기쁨입니다. 영원한 기쁨입니다. 안의 기쁨입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조금 전에 기뻤다가 슬펐다가 하는 일이 없습니다. 평생 기뻐하는 기쁨, 항상 기뻐하는 기쁨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참 기쁨, 저와 여러분이 누리는 기쁨인 줄로 믿습니다.

   벨기에의 어떤 왕이 길을 산책하다가 어린아이 두 명이 자동차 앞에서 위기에 있습니다. 유럽의 왕들은 운동을 많이 합니다. 경마도, 스포츠도 많이 하는데 잽싸게 달려들어서 건져냈습니다. 그 다음 날 신문에 크게 났습니다. “왕이 두 명의 어린 생명을 살려내다.”라고 대서특필을 했습니다. 왕이 살린 아이라고 계속 신문마다 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그 벨기에 왕이 아닌 만왕의 왕이 십자가에 자기를 생명을 던져서, 영영 죽을 마귀에게 끌려가는 죄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를 건져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만왕의 왕이 살려 준 생명, 만왕의 왕이 구원하신 구원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이것이 해방입니다. 영원한 저주, 멸망에서 출애굽입니다. 엑소더스입니다. 애굽에서, 갈대아 우르에서, 하만의 간계에서 건지시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모든 저주와 멸망에서 건져주셨으니 우리가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뻐하게 되어 있고 기뻐해야 되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 다 같이 찬송가를 부르겠습니다. 138장 1절만 한번 부르겠습니다. 만왕의 왕이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만왕의 왕이 우리를 위해 주신 이 기쁨,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그래서 이 기쁨은 잠깐 웃는 그런 웃음이 아니기에 이 기쁨의 가치는 무한합니다. 세상에 없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이지 않습니까? 전도서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천 년을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오래 사느냐, 지위가 높으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날마다 근심하며 살 바에야 그게 무슨 기쁨입니까? 축복이 아닙니다. 어디 있든지 주님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가장 복 있는 성도이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는 가치 있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시편 37편 4절에는 “기뻐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쁨으로 기뻐하며 우리의 모든 삶이 늘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고, 이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참 귀합니다.

   베토벤은 서른두 살에 유서를 썼습니다. 그 유서의 내용은 “잠시 후면 나의 생은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 불온한 존재여!”하고 자기를 절망 중에 비관하면서 유서를 적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망 중인 인생이라도 주의 품안에 안기우면 저주는, 절망은, 불행은 물러갑니다. 주님 밖에 있었던 아픔과 상처는 그 품안에 오면 다 씻어집니다. 어린아이가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아이를 안아 보면 아무리 슬퍼도 어머니 품안에 안기면 울음이 끝납니다. 품안에 안기는 즉시 울음을 정리합니다. 그래도 조금 우는 애들은 엄마가 뚝! 그러면 뚝입니다. 그냥 끝납니다. 어머니 품이기 때문에. 약이, 돈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해도 그 울음을 그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의 품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을 품어 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주 예수 넓은 품 예수의 품안에 오면, 교회는 주님의 품안에 오는 것입니다. 주의 날개 아래 주 예수의 품안에서 영원한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베토벤은 주님의 품안에 안기면서 그는 새 생명을 얻었고 기쁨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작곡한 것이 바로 교향곡 심포니 No 9입니다. 베토벤이 은혜 받아가지고 새 사람이 되어서 예수 안에서 누린 그 기쁨이 바로 찬송가에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바하, 헨델이 지은 것도 있고 베토벤이 지은 것도 있습니다. 훌륭한 분들이 작곡한 게 있습니다. 베토벤은 이 세상에서 인기와 명예와 돈과 기쁨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허무함이 왔습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품안에 안겨서 그는 장수하고 그 이후에 불후의 작품들, 인류역사에 가장 문화적으로 훌륭한 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심포니 No 9는 곡도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입니다. 가사도 감동적입니다. 이 두 가지를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거기에 영감까지 같이 넣은 그런 곡은 인류역사에 많지 않습니다. 심포니 No 9은 정말 최고의 작품입니다. 우리 한번 같이 불러보십시다. 찬송가 13장을 1절은 성가대가 일어나서 부르고 2절은 우리 교인들이 일어나서 부르며, 3절은 다시 성가대가, 그리고 4절은 성가대와 다 같이 부르겠습니다. ♬(1절)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 같아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 구름 걷히니 변함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2절) 땅과 하늘 만물들이 주의 솜씨 빛내고 별과 천사 노래 소리 끊임없이 드높아 물과 숲과 산과 골짝 들판이나 바다나 모든 만물 주의 사랑 기뻐 찬양하여라. /(3절) 우리 주는 사랑이요 빛과 진리이시니 삶이 기쁜 샘이 되어 바다처럼 넘치네 아버지의 사랑 안에 우리 모두 형제니 서로 서로 사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4절) 새벽 별의 노래 따라 힘찬 찬송 부르니 주의 사랑 줄이 되어 한 맘 되게 하시네 노래하며 행진하여 싸움에서 이기고 승전가를 높이 불러 주께 영광 돌리세.♬ 이 얼마나 귀합니까?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우리가 왜 하나님께 경배합니까? 기쁨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그를 경배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기쁨이 없어집니다. 세세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33편 1절에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바로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시편 64편 10절에도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시편 97편 12절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찌어다.” 시편 30편 11절 “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사야 61장 10절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감사는 것입니다. 그가 내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나의 베옷을 벗겨주셨습니다. 슬픔을 옮기셨습니다. 영원히 기뻐하는 기쁨, 천국 가서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 주님이 주신 기쁨인 줄로 믿습니다. 이 기쁨을 주신 주님을 끊임없이 섬김으로 기쁨이 옵니다. 신명기 12장 7절에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6장 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우리는 성전, 주의 전에 나와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을 인하여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이 있을 때에 즐거움이 옵니다. “네가 즐거움으로 나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너희 기쁨이 떠나갔다. 너희는 기쁨으로 살려고 해도 기쁨을 찾을 수 없고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너희 모든 가진 것이 날아갔느니라.”고 했습니다. 기쁨이 아버지 집에,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기쁨이, 즐거움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3백만 명이 우울증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군에 있는 젊은이들도 얼마나 우울증에 빠진 젊은이가 많은지 모릅니다. 대학생들도 우울증에 빠진 학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군에서도 군인들에게 한 마디 말을, 꾸중을 못합니다. 자살해 죽어버립니다. 집에서도 말 못합니다. 이들이 그걸 소화를 못 합니다. 학교에서도 그런 말 못합니다. 너무 연약합니다. 우리가 군 생활 할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납니다. 개 자가 항상 들어갑니다. 그래도 우리는 밥만 잘 먹고 건강하며 신경을 안 씁니다. 부모님들도 무섭게 우리 자녀들을 향하여 꾸중하셨습니다. 자나 깨나 만나면 꾸중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트레스가 안 됐습니다. 주님을 믿으니까 우리는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너무 기계를 의지합니다. 산업화시대를 살아갑니다. 너무 과학을 의지합니다. 너무 지식을 믿습니다. 믿어야 할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는 멀어지고 너무 과학적으로 살아갑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너무 지식이 앞섭니다. 요건 먹으면 안 된다 요건 몸에 나쁘다 그래서 고기도 먹으면 안 된다 그러고 설탕도 넣으면 안 된다 쌀밥도 먹으면 나쁘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쌀밥을 먹고 죽어야 얼굴도 희지 무엇 때문에 쌀밥을 안 먹습니까? 저는 영원히 쌀밥을 먹으려고 합니다. 너무 먹을 음식이 없습니다. 계란도 노른자는 못 먹고 흰 것만 골라먹고 성경에 보면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독수리를 보십시오. 다 썩은 것 거기에 구더기, 벌레, 병균이 이글이글해도 먹으면 소화가 다 됩니다. 아무 탈 없습니다. 악어가 오물 구덩이에서 진흙 구덩이에서 고기를 먹어도 소화가 다 됩니다. 삶아먹지 않아도 소화가 다 됩니다. 어디 훼스탈을 먹습니까? 아무 부작용이 없습니다. 고기를 왜 안 먹습니까? 잘 먹고 그 대신 열심히 운동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면 깨끗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근심이 없기를 바랍니다. 먹는 것도 맛있게 잘 먹고.

   저는 두 가지를 잘 합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먹습니다. 잠을 또 맛있게 잡니다. 27년 동안 명성교회를 목회하면서 그래도 한 번도 입원을 안 하고 너무 바빠도 이만큼 건강하게 지내온 것은 이 두 가지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우리는 늘 대화 속에 많이 웃습니다. 저는 집에 가져가는 선물은 없지만 저녁에 가면 웃음을 선물하고 집 사람을 파안대소, 요절복통, 넘어지도록 만듭니다. 아내에게 제일 좋은 선물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없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좋은 게 없습니다. 웃음을 선물하기를 바랍니다. 남편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 되느냐? 자녀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 되느냐? 만나서 웃자라는 겁니다. 웃기는 것입니다. 같이 웃는 것입니다. 이 세상 잠깐이면 다 끝나는 세상이고 우리 선배들도 다 가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가셨습니다. 안 가는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지나놓고 보면 다 잠깐 왔다 가는 나그네인데 왜 우리가 긴장하고, 왜 미워하고, 왜 이렇게 욕심내고, 왜 이렇게 불안해하고, 날마다 날마다 나 혼자 사는 것처럼 이렇게 고통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를 믿어도 예수로 기뻐하지 않고 주님이 주신 한없는 은혜가 있는데도 은혜쪽으로 보지 않고 이 세상으로 바라보니 우리는 고민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쁨이 충만하여 가정과 심령과 삶을 천국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일에 우리는 왜 교회에 나옵니까? 우리는 주일을 기쁨의 날로 알고 감사함으로 나와서 오늘 말씀 시편 100편에 있는 대로 그 궁정에 와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의 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기쁨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낚시를 그렇게 좋아해도 주일은 낚시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낚시가 주는 기쁨과 하나님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후버 대통령도 주일은 반드시 오락을 하지 않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다고 합니다. 멕켄리 대통령은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고 관광을 좋아해도 주일만큼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훼스타가필드도 파리에서 경마 경기가 있었는데 그렇게 경마를 좋아하는데도 주일은 안 갔다고 합니다. 윌슨 대통령은 주일에 일하지 못하도록 온 국민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우리나라에 와서도 최전방에서도 주일예배를 반드시 드린 것이 카터 대통령이었습니다.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주일을 지켰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든 어떤 경우에든 이 날은 거룩한 날, 생명의 날, 구원의 날, 축복의 날로 알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시간을 내어야 하고 다른 것은 못하고 나오는 게 이 날입니다. 어느 것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힘들여서 나옵니다. 좋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을 지킴으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이 날을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열심히 빨리 걸어 나와야 됩니다. 뛰어 나와야 됩니다. 옛날 찬송가에는 “날래게 뛰어나와” 그렇게 곡이 되어 있습니다. 날래게 뛰어 나오라 했습니다. 우리 주님 앞에 날래게 뛰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 기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쁨은 예배드리는 것, 봉사하는 것,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 기도하는 것 이 네 가지를 늘 기뻐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주 앞에 나올 때 우리 맘이 기쁘고♬ 기쁨니다. 감사함으로 나아갑니다. 내 기도하는 한 시간이 기쁨니다. 봉사가 기쁜 것입니다. 성가대를 섬긴다면 기쁨으로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제가 한번 현대 아산병원에 입원하신 장로님께 갔는데 이 분은 장관도 제일 오래 하시고 대통령 안보담당보좌관도 하시고 이 장로님이 빨리 좀 기도해 달라고 저를 불러서 갔습니다. 장로님이 수술을 하시고 가스가 안 나오니까 배가 이만큼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보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보름이 되었는데 조금 더 가면 돌아가신답니다. 정말 돌아가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가스가 나가는 길을 열어주십시오. 다 길은 있어도 지금 안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기도하고 왔습니다. 얼마 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가스가 나가는데 총소리, 지진이 일어나게 방귀가 나가는데 천지가 진동하듯...” 여러분! 기도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안 나가는 가스도 빠져나갑니다. 모든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걸 늘 즐거워하고, 주님을 섬기는 걸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한 번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님”이라는 찬송가 375장을 부르겠습니다. 찬송가는 540장 모두가 기쁨의 찬송가입니다. 기쁨이 없는 분은 이걸 부를 수 없습니다.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우리가 명령을 좇으리다 베푸신 은혜를 감사히 알고 진실한 맘으로 섬기겠네 구주의 은혜 주시는대로 영원히 받들어 섬기겠네 찬송하겠네 찬송하겠네 생명을 주시는 구주로다 /(2절) 구주를 높이고 잘 공경하여 온유한 맘으로 섬기리다 주 예수 안에서 즐거워하며 충성을 다하여 섬기겠네 구주의 은혜 주시는대로 영원히 받들어 섬기겠네 찬송하겠네 찬송하겠네 생명을 주시는 구주로다 /(3절) 예수를 믿고서 늘 사랑하여 즐거운 맘으로 섬기리다 온 맘을 드리고 순종한 후에 구주를 영원히 섬기겠네 구주의 은혜 주시는대로 영원히 받들어 섬기겠네 찬송하겠네 찬송하겠네 생명을 주시는 구주로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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