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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 (행 2:43-47)

by 【고동엽】 2022. 8. 28.

건강한 교회  (행 2:43-47)

  70년대만 해도 ‘건강한 교회’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았습니다. 7, 80년대는 ‘오직 성장하는 교회’ 그렇게 성장하는 교회가 바람직한 교회라고 했는데 근간에 와서는 세계적으로 건강한 교회라는 이 용어를 애용합니다. 그만큼 교회가 병든 모습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건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요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겉모습만 건강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건강은 아닙니다. 겉모습이 건강해 보여도 그 사람의 신체 안에 병을 가지고 건강치 못한 요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건강의 요건

  건강이라는 것은 그 요건이 있는데 첫째는 관계가 건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팔이 혼자 있지 않고 몸에 붙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구조는 관계적으로 정상적이어야 됩니다. 내 팔이 내 발을 도와주고, 내 발이 내 팔을 도와주는 이런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그것이 건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건강하다는 것도 교회가 지니고 있는 영적 관계가 건강해야 됩니다. 그냥 외부적인 모습이 아니고 그 교회가 지니고 있는 영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라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직분을 받았습니다. 이 직분이라는 것은 내 독자적인 직분이 아닙니다. 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고, 교회를 위해서 내 직분이 있는 것이고, 내 직분과 함께 일할 동역자가 옆에 있고 후배가 있고 선배가 있는 등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건강하다는 것은 내가 가진 사역의 사명이나 책임, 의무 이런 것이 올바르게 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일어나는 관계의 건강입니다.

  둘째는 나이나 경력은 질서입니다. 나이는 질서를 논할 때 중요합니다. 경력도 그렇습니다. 직장에도 직급이 있고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형성되는게 질서라는 것입니다. 관계는 질서가 형성됨으로써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질서가 파괴되면 건강이 손상을 입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역의 요건이 건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관계가 좋고 아무리 질서가 정연해도 일을 제대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영웅대접을 받느냐 하면 이 세 번째 문제입니다. 앞의 관계와 질서를 초월하는 요소가 이 세 번째입니다. 기업에서 찾는 사람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국가 사회에서 찾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나이는 어려도 일을 할 때 기발하게 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든지, 일을 잘할 때 그 사람의 나이나 지위를 초월해서 대접을 받습니다. 현대사회에 이런 현상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 사역의 요건, 이것이 발전이 있고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발전이 있고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실적을 요하는 이것이 어느 시대보다도 강렬하게 요구됩니다.

  어떤 기업체에서 사원을 채용하는데 이렇게 문제를 주었다고 합니다. 요즘 전단지가 많은데 여러분들이 지하철이나 길을 갈 때 그것을 받아서 보십니까? 전단지 받아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도 성의를 보아서 받기는 하지만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관심하게 받아서 폐기하는 그 전단지를 어떻게 하면 보게 할 수 있느냐? 거기에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내어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전단지를 보게 할까? 기발한 의견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대상을 받은 것은 한 대학생의 아이디어입니다. 그것은 전단지를 꾸겨서 준다는 것입니다. 너의 그런 아이디어가 우리 회사에 필요하다 해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요즘 세상이 그렇게 되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감동시키고, 안 된 일을 되게 하느냐 하는 아이디어의 전쟁입니다.

  외적인 칭송

  그런데 중국이 요즘 상당히 큰소리치고, 이 나라도 건드리고 저 나라도 건드리고, 고구려도 자기 나라라 하는데 하기야 우리나라를 한때 청나라가 지배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은 중국이다’라고 중국에서 그렇게 말을 하면 말은 성립됩니다. 그런데 중국이 떠드는 소리가 왜 감동을 못 주느냐 하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인류역사상 한번이라도 남의 나라를 사랑으로 도와준 적이 없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역사를 감동시킵니까? 인류역사를 위해서 무엇을 공헌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아무리 나라가 커지고, 아무리 국력을 가져도 저 나라의 기본심보는 ‘비단이 장사 왕서방’입니다. 돈 버는 것 밖에 모릅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 밖에 모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이런 국제적인 상황에도 교회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기 연관되는게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큰 교회가 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는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역사와 세상을 향해서 얼마나 봉사하느냐? 그것이 없으면 교회가 외면받습니다.

  본문에 보면 교회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교인들이 소유를 팔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무엇을 했느냐 하는 여기에 세상이 교회의 그 속성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건강한 교회라고 할 때 교회가 당회가 있고 제직회가 있고 전도회가 있는 이 구조만 가지고 건강하다고 하면 안됩니다. 저 교회는 질서가 있다, 싸우지 않는다, 어른은 어른 대접하고 교회가 질서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과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교회가 사역의 요건을 발휘해야 합니다.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일을 해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무엇 때문에 건강한 교회냐? 제가 세 가지로 말하는데 이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규정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작지만 큰 교회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가 뭐냐 하면 작은 교회인데도 큰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120명으로 시작한 작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왜 작지 않느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있었습니다. 이 예루살렘 교회 외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복음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니”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였습니다.

  제가 어느 날 예배당 앞의 철물점에서 전지를 하나 사러 갔습니다. 철물점 안에는 동네 사람 세 사람이 계셨습니다. 서로 인사를 했는데 그 분들이 제게 뭐라고 하느냐면 “목사님, 도대체 교회가 무슨 힘이 있길래 이렇게 큰 건물을 짓습니까? 교인들이 얼마나 실력이 있길래 이런 큰 건물을 짓습니까?”라고 자기들은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입니다. “예, 그래요.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예배당을 짓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작지만 큰 교회, 크지만 작은 교회

  여러분, 교회는 작지만 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크다는 개념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날 때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구역이 작다가 아닙니다. 작은 구역이 큰 구역으로 역할을 할 때 그것이 큰 구역입니다. 작지만 큰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이적과 기사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하나님이 말씀이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지니고 있는 큰 무기입니다.

  두 번째, 예루살렘 교회는 크지만 작은 교회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이 계속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집에서 떡을 떼며 함께 교제하며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했습니다. 개인과 개인이 서로 만나고 교제하고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늘 목사만 상대하고 당회만 상대하고 제직회만 상대하는 그런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개인과 개인끼리 만나는 신앙생활, 이것이 바로 큰 교회이지만 작은 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작아지는 것입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내가 만나고 교제하고 서로 은사를 나누는 이것이 우리 자신이 스스로 작은 교회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천교회는 큰 교회지만 여러분의 구역은 작은 교회입니다. 그 작은 교회를 중요시하라는 말입니다. 그 작은 교회가 살아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전체교회는 규모가 크지만 우리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그 작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 가정이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영천교회가 건강할 줄 믿습니다. 병들은 수백 가정이 모인들 그것은 건강한 교회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교회다니는 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큰 교회 안에서 우리는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 됩니다. 전도회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고, 구역을 착실히 섬기고, 성도들 개인들을 만날 때 진지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야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루살렘 교회는 전 교인이 일군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한 사람도 은혜를 못 받은 교인이 없습니다. 한 사람도 안 섬기는 교인이 없습니다. 한 사람도 전도 안 하는 교인이 없습니다. 이것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입니다. 요즘 표어가 하나 생겼습니다. 현실교회를 염려하는 표어입니다. “늘어나는 구경군, 줄어드는 일군” 교회가 교인 숫자는 많아지는데 구경군은 늘어나고 일군은 자꾸 줄어듭니다. 진정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일하는 일군을 찾으려 하면 어디든 귀합니다. 교단에도 그렇습니다. 교회에도 그렇습니다. 어느 단체에도 그렇습니다. 확실한 일군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원은 늘고, 구경군은 늡니다. 전 교인이 일군이 되어야 건강한 교회입니다. 구경군이 많으면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부흥을 위해 기도한다면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하지 않고 교회부흥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위선이 됩니다. 그런게 어디 있습니까? 밥솥에 쌀을 앉혀놓고 불을 켜야 밥이 되는 것이지 쌀을 앉히지도 않고 밥이 되기를 바라면서 불을 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고 성전건축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말로만 하지 마세요. 말로만 전도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내가 전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교인으로서 교회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주는 교회

  본문에서 우리에게 강하게 암시하는게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서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전부 전도와 연관된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교인들의 물질이 나누어지는 거기에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고, 믿는 자가 더해가는 역사가 함께 동반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되기를 기도만 한다고 해서 부흥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은사가 나누어져서 복음전도에 소모되고 쓰여져야만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인상깊게 본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입니다. 쉰들러라는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서 유대인들을 구출해 내는 극적인 이야기인데 쉰들러가 1,200명을 구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해낼 수 없는, 이제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그 유대인 1,200명을 구출한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쉰들러가 영화 속에 암시는 되었지만 영화 외적인 자료를 보면 쉰들러는 유대인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해 내기 위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바쳤습니다. 첫째로 그는 자기의 지위를 바쳤습니다. 독일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을 전부 포기했습니다. 독일인으로서 유대인을 구출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그 위험한 일에 그는 자기 자신의 지위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거기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전부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시간을 거기에 투자했습니다. 밤낮으로 유대인을 구하는 거기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을 더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그 신념을 가지고 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투자했습니다. 그 투자가 1,200명을 구원해내는 능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쉰들러라는 사람은 자신의 생애에 모든 것을 투자해서 1,200명의 생명을 샀습니다. 그것이 그 영화가 주는 감동입니다.

  맺는 말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가 하신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자기 백성을 구원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긴다, 복음을 전한다 하는 이 일은 절대로 그냥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가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에 소모되어야 합니다. 에너지가 닳아져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일은 이 세 길 외에는 없습니다. 첫째는 전입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부흥하는 것입니다. 지상교회가 다 그렇습니다. 이사 오는 사람이 많아서 부흥하는 것입니다. 이사 오는 사람이 많은 동네가 신도시다 보니까 신도시 분위기가 구도시와 다른게 바로 그 점입니다. 또 하나는 안 믿는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많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야말로 초신자, 지금까지 예배한번 안 드린 사람들, 지금까지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이 우리의 전도를 받아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전도의 첫째 관심입니다. 세 번째는 생육자입니다. 아이들을 낳아 키워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자라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입니다.


출처/이용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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