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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길 (벧전 3장 1-6절)

by 【고동엽】 2022. 8. 27.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길  (벧전 3장 1-6절)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운 2개의 신적 기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이고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교회만큼 중요하게 보십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성도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통해 가정을 천국 가정으로 만들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떻게 결혼생활을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그것을 위해 6가지 원리가 필요합니다. 이 원리는 교회생활이나 인간관계를 잘하는 원리도 됩니다.

첫째, 무승부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가정은 상대를 때려눕히고 이겨야 하는 링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승패의 개념이 없어야 합니다. 어항을 독점하려고 강한 붕어가 약한 붕어를 죽이면 얼마 후에 죽은 고기가 썩고 물이 오염되어 결국 강한 붕어도 죽습니다. 아내를 죽이면 남편도 죽고, 남편을 죽이면 아내도 죽습니다. 부부간에는 지려고 할 때 결국 이깁니다.

둘째, 화해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부부관계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두 강이 만나면 서로 상대방 물줄기를 휘어잡으려고 하니까 소용돌이가 생기고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상황을 잘 극복하면 두 물이 마주치는 곳에는 두물머리, 즉 양수리라는 최고의 경치가 생기고, 조금 더 내려가면 물줄기가 넓어져 결국 한강이 됩니다. 그처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잘 극복하면 더욱 놀라운 축복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셋째, 나눔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남편은 자기의 장점을 나누어 아내의 약점을 덮어주고, 아내는 자기의 장점을 나누어 남편의 약점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가정은 행복을 저축하는 곳이지 행복을 채굴하는 곳은 아닙니다. 받으려고 이룬 가정은 반드시 무너지지만 주려고 이룬 가정은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행복은 내 행복이 남에게도 행복이 될 때 다가옵니다.

넷째, 절제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가정은 참 단순하고 소박한 곳이지만 그 단순하고 소박한 곳에 진짜 행복이 있습니다. 살면서 즐겁고 신기한 것만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부부와 가족이 함께 계속 살면 신비감이 사라집니다. 그래도 배우자와 식구가 최고인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영웅이 되기보다 가정에서 좋은 식구가 되는 것이 더욱 소중합니다.

다섯째, 감사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부부는 서로 최대한 감사하고, 때로 배우자에게 약점이 보여도 그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최대한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사람을 현재 그대로 대하면 그는 점점 나빠지지만 그의 가능성을 바라보고 그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고 섬겨주면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최고의 배우자가 됩니다. 삶과 환경의 빛깔이 어두워도 서로 감사하고 격려하며 산다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여섯째, 사랑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주성분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배우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좋든지 나쁘든지 상관없이 그 상황에서 최대한 사랑해야 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서로 사랑해서 행복한 가정과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 아내를 값지게 만드는 성품 >

베드로는 행복을 가정을 만들기 위해 본문 1-6절 말씀에서는 아내에게, 그리고 7절에서는 남편에게 필요한 자세를 권면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아내를 값지게 만드는 4가지 성품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4가지 성품은 아내뿐만 아니라 값진 성도가 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성품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순복하는 성품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 구절에서 ‘이와 같이’란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 개념이 베드로전서 2장 뒷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즉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순복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하나님의 크신 뜻과 섭리 안에서 순복하셨습니다. 그처럼 아내도 남편과 동등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서 순복해야 합니다.

아내의 순복은 가정의 질서와 행복을 위해 주어진 명령입니다. 순복은 우열을 나타내는 표시가 아닙니다. 군대에서 하급자가 상급자보다 더 탁월해도 여전히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바로 질서 때문입니다. 그처럼 권위에 순복하는 것은 결코 수치스런 일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과 행복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요새 각 가정마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어느 날, 성남 예비군 훈련장에서 중대장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일을 결정할 때 혼자 결정하지 않고 아내 말을 듣는 사람은 오른쪽 의자에 않으십시오.” 그러자 예비군 350명 중에 단 한 명만 남겨 놓고 다 오른쪽 의자에 앉고 왼쪽에는 딱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중대장이 왼쪽에 혼자 앉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어떻게 아내를 꽉 잡았습니까?”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뭐가 부러워요? 제 아내는 항상 말해요. ‘당신, 사람 많은데 가면 큰일 나요. 항상 사람이 없는 쪽으로 가세요.’ 그래서 이곳에 앉았어요.” 그처럼 남편이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내는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은 남자는 여자 없으면 제 구실을 못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겉으로는 남편 중심적으로 펼쳐지는 것 같아도 남편은 아내 없이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내의 최대 의무와 매력과 교양은 남편을 돕는 모습 속에 있습니다. 아내는 재테크를 잘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때보다 남편을 돕고 자녀를 사랑할 때 가장 위대하게 됩니다.

2. 정결한 성품

본문 1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남편의 구원은 아내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아내의 어떤 행위가 남편을 감동시킵니까?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이 구절에서 ‘두려워하며’라는 말을 보면 말이 많은 모습보다는 묵묵한 사랑의 실천을 느낍니다.

남편은 묵묵히 고난을 참고 사랑을 실천하는 아내의 모습에 감격하고, 속으로 아내를 존경하고 인정하며,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정결함을 느낍니다. 결국 아내의 사랑과 교양과 고결함에 압도되어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남편에게 설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의 설교는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로 변화되지 않고 아내의 행동으로 변화됩니다.

독일에 한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술을 좋아해서 밤마다 술집에 갔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그가 귀가할 때마다 항상 친절하게 맞아주고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때로 옷을 벗겨주고 침대에 눕히는 일도 했습니다. 가끔 아내도 마음이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그 상황을 이겨냈습니다.

어느 날, 그 남편이 술집에서 술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이렇게 술에 취해 늦게 집에 가도 아내는 문까지 나와서 나를 왕처럼 환영해주고, 내가 원하면 식사까지 차려주네.” 친구들은 그 술주정뱅이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집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의 아내가 문까지 나와서 정중하게 그들을 맞아주고, 그들을 위해 아무 불평 없이 저녁을 차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편히 쉬다 가세요.”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친한 친구가 술주정뱅이에게 “저렇게 천사 같은 아내를 천대하는 자네는 정말 몹쓸 사람이네.”하고 말하고 식사도 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도 비슷한 말을 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친구들이 다 가버리자 조금 후에 남편은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너무 잘못했구나!” 곧 그는 아내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고 그 다음부터 아내 못지않은 신실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남편을 구원한 것입니다.

아내의 정결한 행동은 반드시 남편의 마음을 얻습니다. 또한 그것은 자녀들에게도 무엇보다 소중한 교육이 됩니다. 성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로 회심했습니다. 회심한 후 그는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주님 모시듯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아버지를 지성으로 섬기는 어머니의 신앙이 그의 영상에 박혀 회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아내의 사랑은 어떤 설교보다 위대한 설교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사모님인 룻 그래함(Ruth Graham)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리를 사랑하는 것은 저의 일이고, 빌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처럼 정결한 마음으로 남편만 바라보고 사랑해주며 살아야 합니다. 논리적이고 예리한 비판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해도 정결한 성품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킵니다.

3. 단정한 성품

본문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이 말은 외모보다 마음의 단장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말만 많아졌다는 소리를 듣지 말고 마음이 넓어지고 겸손해졌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어떤 아내는 학력은 높지 않고 소유도 많지 않지만 마음이 넓고 현명합니다. 그러면 아내의 외모가 점점 예쁘게 보이고, 아내를 믿습니다. 반면에 어떤 아내는 얼굴은 예쁘지만 낭비벽이 심하고 가정을 잘 지키지 않고 마음이 좁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예쁜 얼굴이 점점 밉게 보이고 가정에 수시로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꽤 오래 전, 서울의 한 교회에 얼굴도 예쁘고, 옷도 잘 입고, 날씬한 여자가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목사님은 교양 있는 여자라고 좋게 생각했는데, 하루는 그 여자가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사님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남편이 살림이 엉망이라고 교회를 못 다니게 핍박해요.” 그러면서 솔직한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돈을 벌겠다고 중동에 가서 열심히 일해서 집으로 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미장원 다니고, 옷 해 입고, 마사지 하고, 계돈 띠고 해서 그 돈을 다 날렸습니다. 귀국한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바람이 들었다고 교회를 못 다니게 하자 “왜 교회를 못 다니게 해요! 부부끼리 종교의 자유도 없어요! 당신은 구석기 시대에 살아요!”라고 저항했더니 어제는 손찌검까지 하고 핍박이 너무 심해 울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다 끝내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 십자가를 어떻게 이겨내나요?” 그 얘기를 다 듣고 목사님이 간절히 기도해주었습니다. “주여! 사랑하는 성도가 하나님은 잘 섬기려고 했지만 가정은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남편과 싸우다 한 대 맞았는데 가정폭력은 절대 없어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맞을 행동만은 한 것 같습니다. 이제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잘 깨닫고 좋은 가정을 만들게 하소서!”

기독교는 자신이 잘못해서 당하는 어려움을 ‘핍박’이나 ‘십자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란 잘못이 없는 사람이 남의 잘못의 대가를 대신 받는 ‘의로운 희생’이지 잘못을 면피하려는 ‘교인의 변명도구’가 아닙니다. 남편이 중동에서 열심히 살면 자신도 열심히 살겠다는 성실함과 현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놀 때는 열심히 놀고, 겸손과 온유와 감사와 절제로 무장한 단정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값진 사람입니다.

4. 소망적인 성품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사라는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남편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한다고 이사를 많이 다니는데 사라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사하면 남자보다 여자가 더 힘듭니다. 그러나 사라는 묵묵히 아브라함의 뜻을 주님의 뜻처럼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원하십니다.

인천에서 목회할 때 어떤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착해 보이는데 술을 좋아합니다. 가끔 남편이 술을 먹고 귀가하면 아내가 대뜸 욕합니다. “이 인간아! 또 술 먹고 왔어!” 그 말에 남편도 화가 나니까 술김에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남편을 먼저 무시하니까 남편이 술을 먹는지, 아니면 남편이 먼저 술을 먹으니까 아내가 무시하는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말을 조심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내가 새벽 3시에 술에 취해서 교회를 찾아와 울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도 화가 나서 술을 먹었어요. 제가 과거에 술집에 다녔어요. 그 일 때문에 제가 이렇게 죗값을 받는 것 같아요.” 현실이 힘들다고 과거와 상처와 허물을 꺼내고 다시 깊은 죄책감에 빠지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살면 삶이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꺼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과거가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 복음이 위대합니까?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더 이상 그 죄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어도 하나님께는 그 과거가 없습니다. 과거를 털고 자신을 격려하며, 남편이 힘들게 해도 사라처럼 남편을 주라 칭하며 섬길 때 남편도 반드시 변화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뜻이라고 국경을 넘는 이사를 계속 하니 얼마나 짜증납니까? 그러나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최선을 다해 아브라함의 뜻을 따랐기에 결국 아브라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만약 이사 갈 때마다 사라가 투덜댔다면 아브라함은 큰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처럼 위대한 인물 곁에는 대개 묵묵히 순종하는 위대한 아내가 있습니다.

어떻게 사라가 그렇게 순복할 수 있었습니까?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에 사라는 순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면 남편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얼마든지 격려하며 살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격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남편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마십시오. 남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라는 말입니다. 남자의 자존심을 꺾어서 좋은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습니다. 천하의 미인이라도 남편의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으면 그 아내를 좋아할 사람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잘 통제하고 성공시키려면 먼저 자존심과 명예를 높여주어야 합니다.

남자의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아내로부터 자존심의 손상을 입는 것입니다. 남으로부터 자존심이 손상당하면 참을 수 있지만 아내로부터 무시당하면 남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처럼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남편이 어디 가서도 살 곳이 없습니다. 못난 남편이라도 내 남편이 귀중한 줄 알고 최고로 대접하면 그런 아내의 격려와 사랑을 먹으면서 남편은 진짜 최고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교회 규모보다 선교를 훨씬 많이 감당합니다. 넉넉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교회도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교회 입구도 수리해야 하고, 교회 차량도 너무 고장이 자주 나서 새롭게 사야 합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그것을 못하면서 선교사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목회자의 비전과 결정에 말없이 따라주는 성도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새 문서선교를 하는 미션퍼블릭을 통해서도 많은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운영비는 항상 모자랍니다. 이번 3번째 책 출판비용인 450만원도 처음에는 저축하다가 어려운 선교사들과 목사님들에게 재정을 자꾸 보내다 보니까 막상 우리는 원고를 다 탈고해놓고도 출판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김 목사님 이하 모든 사역자들이 묵묵히 따라주고 가끔 “목사님! 힘내세요. 조금 늦으면 어때요?”라고 위로해주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또한 선교를 강조하면서 제가 솔선수범해야 되니까 저도 최선을 다해 선교에 동참하면 자연히 가정 경제에 소홀하게 됩니다. 지난 1월에 아이들 학원을 끊을 때, 선교헌금을 끊으면 아이들 학원을 끊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결국 고민하다가 아이들 학원을 끊으면서 아이들에게 비전을 도전하며 스스로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남편의 비전과 결정에 말없이 따라주는 아내에게도 감사합니다. 남편에게는 남편의 비전을 따라주는 아내의 후원이 큰 힘이 됩니다.

< 남편을 존중해주십시오 >

아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남편을 무시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의 무시하는 말은 남편에게 독약이 됩니다. 아내가 해야 할 최선의 일은 남편을 존경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남편의 최고의 팬이 되십시오. 남편은 아내가 말하는 대로 사람들에게 평가가 됩니다. 그렇다면 최대로 평가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평가를 받은 남편에게 사람도 달라붙고, 물질도 달라붙고, 행복도 달라붙게 될 것입니다.

남편들에게는 칭찬 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그런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도 칭송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칭찬은 행복을 만들어가는 하나님이 주신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말로 상처를 주지 말고, 남편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을 열심히 개발하고, 때와 상황에 맞게 칭찬해주는 예민한 영성을 가지십시오. 남편은 아내의 칭찬이 필요합니다.

남편을 칭찬하면 아내도 칭찬받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가치를 남편의 소중한 아내가 되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목사님한테는 친절하게 대하면서 자기 남편에게는 수시로 인상만 쓰고, 목사님에게는 말을 조심하면서 남편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만 하면 그것은 결코 돕는 배필의 모습이 아닙니다. 부족해도 자기 남편이 가장 소중한 줄 알고 격려할 때 남편은 삶의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남편들은 대개 순진합니다. 심리의 깊이 면에서는 여자보다 훨씬 어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주 속이 뻔한 유치한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 남편들은 아내로부터 칭찬받기 위해 많이 노력합니다. 그런 노력을 보면 속이 뻔하게 보이지만 그 유치한 행동조차 넉넉한 마음으로 잘 받아주어야 합니다.

미국에 짐 헨리(Jim Henry)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결혼생활이 계속되면서 아내가 점점 말수를 잃고 표정이 너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 문제로 상담가에게 찾아가자 상담가는 그에게 아내를 좀더 사려 깊게 대해주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그는 귀가하면서 옷을 잘 차려입고, 몸에 향수를 뿌리고, 손에 꽃다발과 캔디 박스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 벨을 누르고 아내를 기다렸습니다.

문이 열리자 그는 아내에게 꽃다발과 캔디 박스를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저는 정말 이런 현실을 믿을 수 없어요. 요즘 아들 자니는 말썽을 부리고, 조금 전에는 접시 닦는 기계가 망가졌고, 이번 주에는 당신의 부모님이 방문한다고 해서 마음이 분주하고 힘든데, 이렇게 당신까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니까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평소에 얼마나 아내를 안 챙겨주었으면 사랑의 표현을 술 취한 것으로 오해합니까? 반대로 각박한 현실과 자신의 우울한 감정 때문에 남편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내도 문제입니다. 이제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어도 배우자와 자녀와 부모에 대한 꿈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가족을 품어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인슈타인의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사모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세요?” 그때 아인슈타인의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상대성 이론은 이해하지 못해도 닥터 아인슈타인은 이해해요.” 그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교우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서로의 꿈을 후원해줄 때, 하나님은 그 공동체에 큰 축복을 주시고, 큰 인물이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내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실 때 남편을 믿는 믿음도 가지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어야 할 대상은 예수님 다음으로 바로 자기 남편입니다. 남편이 부족해도 남편을 믿어주십시오. 그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목사님도 믿어주어야 하지만 남편을 더 믿어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믿어주면 남편도 아내를 믿어주고 존경할 것입니다. 그런 아내는 남편도 필요로 하고, 하나님도 필요로 하고, 우리 교회도 필요로 하고, 이 사회도 필요로 하는 값진 아내입니다. 아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그런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순종과 충성을 앞세우고, 단정하고 정결하게 행동하며,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가족과 교우를 사랑하고 격려함으로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값진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한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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