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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모르는 부자 (누가복음 12:13-21)

by 【고동엽】 2022. 8. 26.

행복을 모르는 부자  (누가복음 12:13-21)

동물이야기에 어리석은 원숭이 우화가 있습니다. 원숭이 한 마리가 냇가에 산책을 나왔는데 물 속에 물고기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원숭이는 물고기들이 서로 싸워서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내가 저 물고기들을 살려야 되겠다 생각하고 뛰어 들어가서 물고기를 냇가 바깥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한참 수고한 후 나와보니 그 물고기가 다 죽어 있었습니다. '내가 좀더 일찍 싸움을 말렸더라면 다 살았을 텐데 내가 너무 늦었구나.' 그래서 그 이튿날은 더 일찍 나와서 물고기들을 바깥으로 자꾸 집어 던졌습니다. 기진맥진하여 밖으로 나와 보니까 물고기들은 여전히 다 죽어 있었습니다. 이 원숭이는 물고기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원숭이 우화입니다.

      어리석은 부자

     오늘 본문에 보면 부자 한 사람이 소개되는데 어리석은 부자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창고가 비좁아서 창고를 확장하고 그곳에 곡식을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 부자의 행복관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네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부자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창고 가득히 곡식을 쌓아둘 만큼 그는 성공한 부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부자는 자기 스스로는 행복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행복을 모르는 어리석은 부자였습니다. 그는 신령한 것에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졌지만 재물의 진정한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어리석은 부자라고 하나님이 규정을 했습니다.

     행복의 개념

     행복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성경은 행복이라는 개념을 영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내 주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행복의 실체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해주신 은혜가 우리가 받은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보다도 더 앞서는 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에게 준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복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들에게는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라는 말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논하면 해석이 더 쉬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논하는 것은 이 땅에서 행복하자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행복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늘나라에 가지 않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늘나라에는 땅위에서 말하는 이런 행복의 차원이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늘나라에서는 영생으로 누려집니다. 우리가 누리는 영생은 완전한 영광, 완전한 거룩,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것입니다. 우리가 땅위에서 행복하다는 개념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평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모른다, 행복을 안다는 말은 지상에서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었지만 육신적으로는 행복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고통이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불행이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위에서 행복하지 못한 삶을 누리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최선의 삶은 아닙니다.

     성도는 더 복되게 살아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행복도 누려야만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함께 허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위에 행복이 불신자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땅위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땅에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복을 얼마든지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행복의 조건은 내가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믿는 자도 행복하고 불신자도 행복한 측면에서 행복의 조건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영적인 관점에서 행복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육신적인 측면에서는 행복한 사람이었느냐 그렇지도 못합니다. 이 사람은 육신적인 측면에서 행복한 여건을 갖추고 있지만 결정적인 조건을 놓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행복한 삶의 조건을 일반적인 측면에서 네 가지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람으로서 사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육체의 건강

     첫째는 건강입니다. 건강은 땅위에서 누리는 행복의 조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병상에 계시는 성도들이 계시고 또 건강에 장애를 받고 투병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 중에도 병상에 입원해보신 경험이 더러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병상에서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건강에 대해서 재인식을 하고 내가 건강할 때 무엇을 했는가? 건강할 때 바로 살지 못한 일에 대해서 자책하고 건강의 축복이 너무도 귀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시간이 됩니다. 건강은 이 땅위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조건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몸을 행복의 조건으로 인식을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내가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는 그 자체에서 행복을 누려야 되는데 오히려 건강의 에너지를 잘못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건강한대도 불행하게 생각을 합니다. 건강한대도 슬퍼합니다. 건강한대도 의욕을 잃고 삽니다.
     "건강한 사람은 불평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건강하게 살면서 불평하지 마십시오. 건강 하나만 가지고도 행복한 것입니다. 이 격언은 우리에게 상당히 교훈적이라고 봅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불평하고 근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몸이 건강한대 왜 불평하느냐는 것입니다. 불평할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건강의 복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족을 아는 마음

     두번째는 만족을 아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속에 만족함이 있어야 합니다. 한계를 아는 만족입니다. 만족이 있는 마음이라야 진정한 감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족을 아는 마음은 평안히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것 중의 하나가 평안입니다. 물질을 가지고 있는데 정신적으로 평안이 없습니다. 만족을 아는 마음이 없습니다. 가진 자들의 도덕성 문제가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왜 도덕성이 망가집니까? 만족하는 마음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료선교사로 가 있는 미국인 한 사람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의료선교에 애로가 많고 일이 잘 안 되어서 그만 좌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집 앞에 아이들이 무슨 난리가 난 것처럼 막 떠들고 있었습니다. 창 밖으로 보니까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서 빈 깡통을 차면서 축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 깡통을 차면서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면서 즐거워하면서 만사를 잊어버리고는 축구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교사가 큰 깨달음을 가졌습니다. 그 깡통은 자기 집 쓰레기통에서 아이들이 주운 것입니다. 그 빈 깡통을 발로 차면서 소리가 나니깐 그게 재미가 있어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자기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애들은 고급 장난감을 가지고도 불평을 하는데 저 애들은 빈 깡통을 가지고 저렇게 재미있어 하는구나.' 자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만족을 잃어버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속에서 진정한 평안을 발견했다는 고백입니다. 만족을 아는 것이 행복의 조건입니다. '하나님, 이만해도 행복합니다.' 그 고백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적당한 재산

     세번째 조건은 적당한 재산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육신의 행복인 또 하나의 조건입니다. 어떤 이는 재산을 이렇게 분류했습니다. 필요한 재산이 있고 여유 있는 재산이 있고 불필요한 재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필요재산은 일용할 재산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남에게 도움을 줄만한 여유가 있는 재산과 또 하나 우리 사회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게 불필요한 재산입니다.
     요즘 용인시에는 뜻하지 않은 문중소송사건이 자꾸 일어난다고 합니다. 지역이 개발되니까 문중 재산이 몇억 하던 것이 지역개발 붐을 타고 심지어 백 억까지 되는 재산을 나누다가 그만 문중 안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게 소송으로 한 이십여 사건이 있답니다. 용인시는 올해 문중소송의 해가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없던 돈이 생기니까 이런 지경이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필요한 돈입니다. 어떤 집은 가족끼리 심각합니다. 어떤 가문에는 시집간 딸들도 우리도 권력이 있다고 들고 나옵니다.
     여러분, 현대문명 가운데 하나가 복권문화인데 복권으로 행복하고자 하는 심리는 버리기 바랍니다. 복권으로 얻은 돈은 불필요한 재산입니다. 도박으로 행복하려고 하는 일도 부질없는 일들입니다. 행복은 재미있게 벌어서 재미있게 소유하고 재미있게 쓰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생략되어버린 불필요한 재물을 추구하다가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잃어버립니다.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삶의 지혜입니다. 남기고 가는 것은 유품입니다. 유품을 남기지 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적극적인 사고

     또 하나의 행복의 조건은 적극적인 사고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인식되어져 있는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적극적인 사고가 이 땅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정서가 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고는 우리의 삶 속에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더라도 적극적인 사고가 없으면 그 사람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고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열린 사고를 말합니다. 노만 빈센트 필이 우리 앞에 강조하는 게 열린 사고를 하라는 말입니다. 생각을 열라는 것입니다. 사고가 닫혀 있으면 좋은 일이 와도 그 사람한테 오면 나쁜 일로 상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부딪혀도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돌아가는 공장이라는 것입니다. 공장이 부실하면 아무리 원료가 좋아도 좋은 제품을 못 만듭니다. 인간은 결코 외형적인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조건 가운데 적극적인 열린 사고는 우리에게 오는 고통이나 어려움, 심지어 나를 비난하는 말을 들을 때 왜 그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을 이해하는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특징은 상대방이 움직이기 전에 자기가 움직여 준다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움직이지 않으면 자기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자기 앞에 한 걸음 오면 자기도 갈 생각을 하는데 적극적인 사고는 남들이야 오든 안 오든 자기는 한 걸음 나아가는 행동과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고를 하는 것과 실천은 직결됩니다. 실천이 없다는 것은 사고가 닫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타적인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부자가 자기 스스로 하는 일인칭이 여섯 번 나옵니다. 무엇이든지 '내가'라는 자기가 초점입니다. 남을 향하여 닫아버린 마음이고 자기 자신에게만 열려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사고는 이타적입니다. 밖을 향하여 열려 있고 타인을 향하여 열려 있습니다. 부자는 그게 안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교훈으로 가르치는 조건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물질세계에서 살려면 이 네 가지가 있어야 됩니다. 건강, 적당한 재물과 만족한 마음, 그리고 적극적 사고 이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맺는 말  

     우리가 땅위에 사는 동안에는 땅위의 행복을 반드시 추구해야 합니다. 왜 불신자가 추구하는 행복을 우리도 추구해야 되느냐. 거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명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는 거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복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가는 목적이 연결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내가 이 땅에 불행해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 가 영생을 누리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더 행복하게 사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자는 그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 부자의 어리석은 삶을 결코 흉내내는 흔적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용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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