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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 (마태복음 7:7-11, 야고보서 5:13-18)

by 【고동엽】 2022. 8. 26.

믿음의 기도  (마태복음 7:7-11, 야고보서 5:13-18)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보훈에서 기도를 진지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고 하셨습니다. 구하는 이는 얻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기도와도 통하는 원리입니다. 모든 기도는 믿음의 기도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기도하는 우리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므로 기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내 기도를 듣기 원하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좋은 것으로 주시고자 예비하고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강조하십니다. 이는 인내로서 기도하라는 교훈입니다. 찾을 때까지 문이 열릴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부르짖을 힘이 있는 한 계속해야 합니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면서 또한 구체적인 경우에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그 중에 야고보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는 약5:13 이하에서 기도를 이런 경우에 이렇게 하라고 까지 구체적인 기도의 원리와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의 기도교훈도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의 기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함께 교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고난 당할 때 기도하라

     언제 기도해야 되느냐, 오늘 성경에는 그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씀했습니다.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고난 당할 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왜냐 하면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다른 일에는 방해가 되지만 기도에는  방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우리 기도를 일깨우고 기도의 사명을 새롭게 해주는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을 가만히 보면 고난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을 몰랐습니다. 야곱이 잘 나갈 때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형과 더불어 장자권을 다투면서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고 외삼촌 집에 가서 자기 마음대로 될 때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는 야곱이 기도하여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일을 했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당할 때 기도하라는 이 말씀을 실천해야 됩니다. 왜냐 하면 우리에게는 항상 고난이 있기 때문에 항상 기도할 찬스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을 등지거나 멀리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병들었을 때 기도하라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언제 또 기도하라 했습니까? 병든 자가 있을 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 우리가 병들었을 때는 교회에 부름받은 일꾼들을 청해서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름을 바르면서 기도하란 말은 약을 먹으면서 치료를 받으면서 기도하라는 뜻하고 같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의미도 있지만 기름은 실제로 의약품입니다. 올리브 기름은 실제로 환처를 치료하는 의약적인 효과를 주는 약으로도 사용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들었을 때에 기도와 의약에 도움을 받고 약을 먹는 것과 병행을 해야 됩니다.  
     김정용 박사는 어느 주간지에 현대인의 건강수칙 열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다섯 가지는 우리가 항상 잘 아는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물을 끓여 먹어라, 과음하지 말아라, 적당한 휴식을 가지라, 적당한 운동을 해라, 손을 항상 깨끗이 해라,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라 이런 이야기는 학교 교과서에도 계속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분이 한 이야기 중에 세 가지는 우리가 좀 들어 둘만 합니다.
     첫째는 영약을 과용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 약이 특효약이다 라는 약을 과용하다가 건강을 해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답니다. 영약이라는 것, 용하다는 약,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음에 농축 식품이나 농축 약품을 환자에게 먹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농축식품을 참 좋아합니다. 엑기스다 하면 하루 한 스푼만 먹으라 했는데 좋은 것이라니까 반 스푼 더 먹자 이런 식이란 말입니다. 농축식품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한약을 복용할 때에는 신중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한약을 먹지 말라가 아니고 아주 적절할 때 한약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약을 과용을 해서 건강에 장애가 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보약을 치료약으로 자꾸 과용을 시키면 환자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보약은 훗날에 그것이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약을 치료약처럼 활용을 합니다. 이것을 먹고 나면 당장 무언가 좋아질 것이다 이런 식이니까 그게 곤란한 것입니다. 보약을 적절히 신중하게 쓰면 값싼 것을 먹어도 보약이 되는데 무조건 비싼 것만 가지고 과용을 하다 보니까 엉망이 되는 수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번 잘못 쓴 약은 평생 건강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약을 한번 잘못 쓰면 그 부작용이 평생 건강에 좌우가 됨으로 약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약이 너무 많고, 약국이 너무 많고, 약을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건강이 망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용 박사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 중에 제가 한 가지 더하고 싶습니다. 병들었을 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병들었을 때 건강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건중 하나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 의약을 활용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은사주의 자들은 약을 부정합니다. 먹던 약을 다 버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기름을 바르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고 기름도 바르라는 것입니다. 의약도 활용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라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본문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믿음으로 기도하라 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라는 말은 그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북한에 석유가 난다는 뉴스가 났지요. 99년부터 30만 톤이 생산된다는 뉴스입니다. 220만 배럴이 생산이 되는데 그것이 얼마나 많은 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공개했겠지만 북한은 벌써부터 나는데도 감추고 있다가 포착이 되서 보도가 됐습니다. 그 뉴스가 있은 다음 북한에 석유가 나는데 우리나라에도 석유가 나도록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기도제목에 그것을 포함시킬 의향이 있습니까? 기도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유인데 제가 그걸 기도하라고 목회적으로 권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때 박대통령 시절에 포항 앞 바다에 석유가 난다 그랬잖아요. 사실 안나는 석유인데 난다고 한 것입니다.
     어느 대학 교수님이 강의를 하면서 정부가 정직해야 된다, 안나는 석유를 나왔다고 해서 거짓말이 되었으면 이제는 죄송하다고 해야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여러분, 믿음의 기도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기도는 첫째 하나님을 제일로 하는 영적 우선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내게 유리하고 내게 필요한 것이 첫째 조건이 아니고 하나님께 항상 필요조건이 우선권으로 되어야 됩니다. 우리나라에 석유가 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도까지 하려면 기도제목이 너무 많아집니다. 믿음의 기도는 언제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기도는 표현 이상의 삶이고 행위이고 과정이고 역사입니다. 믿음은 역사적 현장과 과정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신화를 가지고 성립을 못시킵니다. 신화를 아무리 알아도 그 신화에 근거해서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믿음은 역사성입니다. 역사성이 없이는 믿음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믿었느냐, 내가 믿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역사성이 거기에 따라 와야 됩니다.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할 때 내가 기도한 그 과정 하나 하나가 다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하는 역사성이 있어야 됩니다.

     믿음의 어머니

     저는 값진 자료를 하나 발견했는데 이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어머니라 하면은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를 항상 예를 듭니다. 우리나라 크리스챤 가운데 기도의 어머니가 정말 없겠습니까? 기도의 아버지가 정말 없겠어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작고한 동양화가 운보 김기창 화백에 대한 간증입니다. 이 분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화가입니다. 이 분이 남긴 신앙고백이 있는데 그 고백을 들어보면 운보 김기창의 어머니야말로 한국 사람들이 자랑해야 될 기도의 어머니입니다. 김기창 화백이 남긴 글이 있습니다.
     "내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다면 귀먹은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앉아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기도하셨고. 입으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손으로 기도하셨다. 내 평생 기복이 심한 가시밭길에서도 실망치 않고 꾸준히 한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었다."
     한 귀먹은 아이를 붙잡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야말로 화가답게 표현했습니다. '어머니는 앉아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기도하셨고, 입으로 기도하신 게 아니라 손으로 기도하셨다.' 그 어머니의 생활이 기도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발걸음이 기도였다.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은 그 어머니의 행동 하나 하나가 어머니의 정성과 삶이 그렇게도 아들을 아들 되게 만든 기도의 향취가 묻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손으로 기도하셨다.' 어떤 문학가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입으로 하는 기도는 감동이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손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손으로 기도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기도한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기도한대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우리에게 남긴 명언 중 '노동은 기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너무 부도를 많이 냅니다. 우리는 입으로 기도하고 앉아서는 기도하는데 걸으면서 기도가 되고 손으로 기도가 되는 이 자리까지 못 가는 기도가 많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걸으면서 기도하고 손으로 기도하는 역사성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삶입니다.  

     신앙고백적인 작품

     운보 김기창 화백은 유명한 동양화가입니다. 세계화단이 공인하는 화가입니다. 그런데 이분의 작품을 볼 기회가 별로 없는데 제가 금년 봄에 고려신학대학원 도서관에서 그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그림인데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그림이 상당히 많습니다. 정확하게는 몰라도 몇십 편 될 거예요. 제가  그림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 그림이 얼마나 나를 사로잡는지 내가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한장 한 장 넘기는데 탄복을 하였습니다. 김기창 화백이 성경에 있는 사건을 순수 우리 한국적인 풍속도로 그림을 그렸어요. 예를 들면 예수님이 탄생하는데 한복입은 요셉과 마리아를 그렸는데 얼마나 잘 그렸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신기한 자료입니다. 이 그림은 외국 손님이 오면 꼭 보여 주는데 보고는 탄복을 한답니다. 그만큼 김기창 화백은 깊은 신앙, 귀가 먹고 농아이며 말도 잘 못하지만 그의 깊은 영성으로 성경에 있는 사건을 그림으로 그렇게 남겨주고 갔습니다. 한 장 한 장마다 감동을 시키는 그림입니다. 미술에 대해서 전혀 상식이 없는 사람도 그 그림을 보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신기한 작품입니다. 그런 작품을 기독교 유산으로 남기신 고 김기창 화백이 되게 했던 역할이 바로 어머니의 기도의 역할이었다는 것입니다.

     맺는 말

     우리는 기도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부모의 기도하는 소리를 직접 들으면서 커야 됩니다. 아이들 듣는데서 기도하는 것은 신앙 교육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모님의 기도를 들은 기억이 있다는 것은 영적 교육의 아주 중요한 교훈입니다. 부모 기도를 듣고 컸다. 또 아버지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자녀들이 보고 성장하는 것도 큰 교육입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한테 기도의 말을 들려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너희들도 우리처럼 기도하면서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믿음의 후대들에게 기도를 입력시켜 주고 가야 됩니다. 고난 당할 때 기도하는 믿음, 병들었을 때 기도하는 믿음,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의 습관이 몸에 배고 기도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은혜로운 기도의 말을 들려줍시다.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줍시다.


     출처/이용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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