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44-46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시고 입성 하시자 모든 유대인들이 종려가지를 들고 와서 환영하였습니다. 2천년 동안 수 천 년 동안 메시야의 약속을 기다리며 목마르게 사모하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오신 것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고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호산나 목이 터져라 왕의 왕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늘 입성하신 다음 월요일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니 하나님의 성전이 잘못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장사꾼들의 시장과 다를 바 없는 이 잘못된 성전을 주님께서는 상을 둘러엎고 제사장들을 채찍질 하셨습니다. 성전 안에 양들이 들어와서 짐승들이 난장판을 부릴 정도로 성전은 모두 잘못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채찍을 가지고 때리면서 하나님 앞에 잘못된 성전을 청결할 때 유대인들의 마음은 어제 열렬하게 환영했던, 호산나라고 하던 그 소리는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어지고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제거해야 되겠다는 이런 음모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걸어온 그 길이지만은 유대인들은 그 마음속에 악한 마귀가 역사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들의 잘못한 것을 회개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서둘러서 하나하나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화요일은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복음서 후반에 나오는 많은 설교 메시지를 화요일에 주님께서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베다니에 가십니다. 주님께서 죄 많은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죄 많은 여인이 향유를 부어드리는 것도 이날입니다. 또 목요일은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베푸시고 그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금요일 새벽에 붙들려서 가야바의 법정이나 빌라도의 법정, 또한 헤롯의 궁전을 거쳐서 아침 9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3시에 운명하시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예수님이 걸어가신 이 복음서에 나타난 하나하나의 발걸음은 우리를 위한 발걸음이며 우리를 위해 오셔서 마지막 걸어가신 이 한 주간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2천년 동안 적어도 예수님의 고난주일이 되면 아무리 바쁘고 세상적으로 나가던 사람도 주님께로 돌아와서 묵상하고 회개하는 일에 전심전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죄에서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이렇게 고민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여러 가지 사건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은 빛을 잃어버리고 몇 시간 동안에 온 땅에 캄캄함이 옵니다. 그리고 무덤이 열리며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중에 오늘 읽어드린 말씀은 그중에 하나, 참으로 중요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게 됩니다. 아마 이 말씀은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아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운명하시면서 ‘엘리엘리’라고 소리 지를 때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우리에게 참으로 너무나 중요합니다. 휘장이 찢어지므로 오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휘장이 찢어지므로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휘장은 무엇입니까? 성소 안에 지성소와 성소사이에 있는 휘장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휘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소는 누가 들어갑니까? 제사장이, 레위지파가,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들어갑니다. 항상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곁에 있는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휘장이 있기 때문에 못 들어갑니다. 너는 들어오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사장이 들어가서 궁금해 커텐을 밑으로라도 들고 들여다보면 죽는다라고 민수기 4장2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올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지성소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만남이 있어도 거리를 두고 만나십니다. ‘너는 죄인이기 때문에 올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드리지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딱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전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7월10일 입니다. 그때 들어 갈 때에도 제사장은 두려운 마음으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연기를 자욱하게 만들어서 그 안에서 피만 뿌리고 잠시 기도하고 나 올 뿐입니다. 속제제물, 7월10일 대속죄일에 주님은 오셔서 우리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휘장을 죽으시면서 찢어버리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몸이, 생명이 찢어지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이 휘장을 찢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휘장을 찢으러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하나님 앞에 막힌 이 담을 헐기 위하여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 앞에 갈 수 없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심판입니다. 천 가지 만 가지 다른 길이 열려도 이 세상의 어떤 행복의 길, 명예의 길 ,출세의 길, 성공의 길이 열린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가는 이 길이 막히면 인간은 휘장 밖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휘장을 통과해서 아버지 앞에 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 있어도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삶, 아버지를 떠난 삶은 행복 할 수도 없고 축복도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저주아래 있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휘장을 찢어주신 것입니다 이 휘장이 제거되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물밀듯이 주님 앞으로 나와서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품안에 안기우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16절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좋으신 아버지를 이제 기쁨으로 아버지 앞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여자들은 못나옵니다. 몸에 상처가 있는 분도, 장애인도, 이방인도 나올 수 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휘장 찢어주심으로 누구든지 나오는 길이 열렸습니다. 아무나 나오라는 것입니다. 온 인류를 누구든지 다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거리 길로 나아가서 다리가 저는 분이 있든지 몸이 불편한 분이 있든지 고아가 있든지 어떤 분이든지 다 내게로 데리고 오라고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서10장 12절에 있는 말씀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어느 누구든지 다 부르시는 주님 앞에 휘장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축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우리의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것 하나 있고 없고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품안에 안겨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만남, 바로 교회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교회는 누구의 품안에 안기는 것입니까? 예수님 품안에, 아버지 품안에 안기고 아버지와 만남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예수님 앞에 나오는 이 축복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인류 역사에 아버지께로 나가는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남북의 이산가족이 화상으로 상봉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 있는 동안 뉴스를 보았습니다. 저도 제일 감명스럽게 본 것이 우리 남쪽에 있는 101세 할아버지가 북쪽에 있는 아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화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저는 보면서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아버지!’ 그러고 절하는 것입니다. 형제간의 만남도 있고 남매간의 만남도 있지만은 역시 제일 기쁜 가장 큰 만남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로 말미암아 마귀의 종 되어 아버지의 아들이지만은 이 세상을 불안하게 걱정 근심하며 살던 우리가 이제 아버지 하나님의 품안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휘장이 찢어짐으로 주님 앞에 나와서 이 평안 이 자유 이 축복 누리게 된 것입니다. 축복은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부유하신 아버지가 우리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검찰청 같은 곳으로 들어 갈 때 ‘출두하라’ 그래서 들어간 사람은 불안합니다. 아무리 회장이고 장관이라도 검찰청에 있는 대검에서 ‘잠깐 문의 할 일이 있으니까 출두하십시오.’라는 그 소리 들으면 잠이 오겠습니까? 힘듭니다. 날마다 불안합니다. 그러나 초청을 받아서 또 검찰총장의 아들이 들어 갈 때는 당당하게 들어가고 자유롭게 기쁨으로 들어가듯이 우리는 죄인인 것과 죄인이 아닌 것이 그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휘장을 찢음으로 우리는 아들로 아버지 앞에 나가게 되고 휘장 전에 우리는 죄인으로 아버지 앞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죄인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휘장을 찢으심으로 우리는 아버지 아들로 살고 기쁨과 행복이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아버지 집에서 은혜를 주십니다.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무거운 짐진 자들아 오라.”고 했습니다. 상한 영혼, 병든 영혼, 굶주린 자, 버림받은 자는 다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이 우리를 채우시고 회복하시며, 아버지의 부유하심이 우리의 가난함을 채우시고 아버지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모든 추하고 더러운 것을 다 해결하여 주십니다. 비천한데서 우리를 존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어제도 우리 목사님과 식사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국에 가신 분이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미국에서 아들이 의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북한에 두고 온 딸이 너무너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밤낮으로 그것 때문에 웁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 딸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들이 북한에다가 많은 것을 지원해주고 딸 만나도록 길을 열어 줍니다. 북한에 갔는데 함경도 마을까지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잔치를 베풀고 집에는 못 가게 하는데 공동으로 이렇게 모입니다. 딸을 오래간 만에 만나도 무슨 이런 기쁨의 이야기를 못합니다. ‘위대한 어버이 수령님, 어버이 수령님은 태양이요.’ 자꾸 이런 말만 하고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밤에 한식구가 오랜만에 50년 만에 같이 잠을 자는데 엄마하고 이야기를 해야 되겠는데 감시원이 같이 옆에 자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화도 못하게 합니다. 의사 아들이 한방에 잠을 자는데 의사 아들이 지혜가 있어 돈을 주고 담배 사오라고 이렇게 보내니까 슬쩍 그냥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더니만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서야 이 딸한테 가지고 온 달라 5천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엉엉엉. 다 진실한 애기를 하더랍니다. 견딜 수 없는 어려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이야기 합니다. 또 돌아오니까 위대한 어버이 수령님 막 이러더랍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딸에게 주는 오천불이 얼마나 큽니까? 북한에서 얼마나 벌겠습니까? 오천불만 하더라도 북한 공무원이 30년 벌어야 얻는 돈입니다. 30년 그걸 한순간에 이불 밑으로, 교회 나오면 하나님의 사랑이 이불 밑으로 오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죄악 세상에 시달리고 피곤한 우리들, 마귀 수령한테 늘 종노릇 하는 우리들을 주님께서는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나라, 교회 나오는 민족은 지상에서 제일 부유합니다.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도 교육이든 무엇이든 천 가지 만 가지가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복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만남은 아버지 성전 외에는 만남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원래 영어로 meeting house라고 합니다. 회당이다, 회막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장입니다. 영원하시고 부유하신 아버지를 만날 때 우리에게 부유함과 평안과 능력이 주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비천할지라도 이 부유하신 아버지를 만나면 한순간에 다 해결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29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육적으로 뭐 좀 있다고 해서 아버지 전을 멀리하는 거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있어봐야 얼마 있겠습니까? 부유해봐야 얼마 부유하겠습니까? 잘나봐야 얼마나 부유하겠습니까? 배워봐야 얼마나 배웠습니까? 아버지를 만나는 기쁨과 축복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아무리 비천할지라도 아버지를 만나면 그는 부유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휘장을 찢어 주심으로 길이 열린 것입니다. 누구나 나올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어제도 저의 고향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주례해 달라고 그러는데, 그래서 제가 해 주었습니다. 고향에 있는 분이 우리 마을에 있는 분이 많이 오셨습니다. 버스를 타고 오셨는데 다 보니 옛날 알던 어른들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결혼식 할 때 가마타고 오는 거 봤는데 호호 할머니입니다. 제가 육십 넘었으니 그 어른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팔심 넘었습니다. 새댁 때 저보고 ‘도련님! 도련님!’ 이러던 분들이 다 할머니 되셨습니다. 어제 전부 이야기가 우리 마을이 모두 교회 안 나올 때 세분 여자분이 특별히 열심히 나왔습니다. 한분은 우리 김철안 장로님 어머니신데 그 아버지는 술 많이 잡수시고 여동생도 여기 다 헌금위원도 하고 집사님입니다. 헌금위원도 하고, 11남매 낳았습니다. 11남매가 하나도 안 죽고 다 컸습니다. 11남매 그 아버지는 늘 술 많이 잡수시는데도 어떻게 술 먹으면서 잘 태어나는지 11남매나 낳았습니다. 대단한 집안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딸 아홉 낳고 또 저 낳았으니 우리 아버지도 많이 낳았는데 아주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이 낳고 어려우니까 그 장로님 어머니나 우리 어머니는 극히 가난하니까 교회 와서 막 울고 늘 기도한 것입니다. 또 한분도 아들 4형제만 데리고 남편은 6.25사변 때 돌아가시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 세 어머님들이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복이라는 복은 이 세집이 다 가져간 것입니다. 그 때 그 육적으로 논 있다고 부자, 논 부자가 몇 푼합니까? 우리 동리는 지금 관광지가 되 그 산골에 ‘여기 김삼환 목사님 고향이다.’ 그래 가지고 외국 사람이 그 산골에 무엇 때문에 가겠습니까? ‘김삼환 목사님 고향이예요?’ 그리고 찾아갑니다. 수많은 사람이 찾아갑니다. ‘여기는 김삼환 목사 목욕하던데라.’ 그러고 보여주고 그 마을이 복 받은 것입니다. 누가 복이 있습니까? 아버지께 나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육적으로 좀 있다고 젊었다고 젊어봐야 얼마나 젊습니까? 잘나봐야 육적으로 자랑할거 없습니다. 아버지께 나아가는 축복이 가장 큰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께서 휘장을 찢어주심으로 누구나 나올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무슨 육적으로 이런 조건을 대면 우리 어머니는 꼴찌입니다. 못 나옵니다. 조건을 안 붙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드니 우리 어머니가 앞장서서 나가고 그러므로 저와 저의 앞날을 우리 어머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 나아가는 어머니, 아버지의 품안에 안기는 아버지, 아버지에 품안에 안기는 기업가 정치인이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는 것은 천하의 모든 것을 가져도 나중에는 다 탕자입니다. 아버지 없는 문화, 아버지 없는 권력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지켜주시고 사랑하시는 그 삶이 최고의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외국 그전에 미국으로 모두 많이 가서 육적으로 대단하거 많이 자랑하고 그랬으나 보십시오. 우리 축복받으니 그 분들 그전에 무슨 냉장고 좋다고 대단한 자랑했지만 지금 삼성, LG냉장고가 미제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게 자랑할게 못 됩니다. 그전에 가보면 가정들마다 외국 가서 일제 소니 텔레비전 보여주고, 삼성이 소니보다 10배났습니다. 지금 소니 그러면 ‘sorry야.' 그거 다 별거 없습니다. 예수 잘 믿는 게 축복이지 다른 좋은 거 가지고 자랑할게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누가 MBC기자로 있던 분이 와 한 20년 전에 일본가면 부인이 모두 그때는 전부 일본가 ‘밥통 사오라.’고 했습니다. 공항에 기자든 사업하든 전부 뭐 코끼린가 호랑인가 그 밥통 사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도 이 남편이 MBC 기자로 있을 때 밥통, 밥솥 사오라 그랬답니다. 그런데 밥솥이 아니고 밥솥도 있고 밥통이 또 따로 있었답니다. 그때는 두 개를 사와야 되는데 자기는 그걸 모르고 그 코끼린지 호랑인지 밥솥만 사 가지고 왔답니다. 그런데 부인이 보더니만 이것만 있으면 안 된다고 역시 당신은 밥통이라고 그랬답니다. 무슨 밥솥 자랑할거 없습니다. 그거 얼마 안 있으면 다 쓰는 건데 여러분이 이 세상에 육적으로 앞서 가는 거 그런 거 부러워할 거 없습니다. 아버지 성전에 나가는, 예수 잘 믿는 것 이거 하나 부러워해야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열어주신 이 길, 죽으심으로 온 몸이 다 찢어지면서 이 휘장 찢어주신 이 놀라운 은혜로 우리는 아버지의 복을 받고 아버지의 품안에 안기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모든 저주 받은 죄에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1940년 페니실린을 주사로 이렇게 치료를 하면서 수많은 전염병이 끝났습니다. 민족이 전염병으로 쓰러짐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의 공포의 대상인 온갖 전염병이 플레밍 하나로 말미암아 다 제거되었습니다. 1943년 미국 국립 나병연구소에서 답손이라는 약이 출연하면서 이 저주의 나균도 피란피쉰이라고 하는 이 약은 얼마나 강한지 나균이 온몸에 있는 썩어가는 사람도 이거 한 대만 딱 놓으면 99%가 전염이 안 됩니다. 즉각 치료가 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약이 발견되면서 지금은 나균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전염병과 나균과 같이 우리의 온몸을, 우리의 인생 가정을 다 파괴하는 온갖 사탄 저주 멸망의 세력을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 나균을 죽여 버리십니다. 온갖 전염병이 차단됩니다. 죄로 말미암아 온 가정이 망하고 멸망 받을지라도 예수님 믿으면 천만 가지 억만 가지 죄악도 능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쓰러집니다.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인줄로 믿습니다. 죄가 크지만은 죄의 능력보다 보혈의 능력은 천 배 만 배 더 큰 능력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로 말미암아 씻어지고 정결하게 되며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이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주의 몸 된 성전에 나와 우리를 구속해주신 주님을 세세토록 높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귀한 것 없습니다. 이 우주에, 이 세계에, 이 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습니다. 영원히 주를 높이고 찬송하며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겠네♬ 영원히 찬송 주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 주님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높일 때에 나는 휘장 안에 삶을 살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온갖 평안과 혜택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세상의 어떤 기관처럼 내 이름을 드러내고 나를 높이며, 교회를 통하여 무언가 챙기려고 하고 명예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축복받아 명예는 밖에서 얻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주신 축복을 얻어야지 교회 안에서 내 이름 드러내고 나 알아 달라 그러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는 예수님만 알아줍니다. 예수님만 높입니다. 내가 높아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섬기는 삶이지 내가 여기에서 내 이름을, 내 명예를 드러내고 내가 높아지려고 하는 이런 욕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가 새벽기도를 많이 해서 새벽기도가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억 만 배 중요합니다. 새벽기도는 안 해도 구원받습니다. 새벽기도해서 죄사함 받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을 더 잘 믿기 위해서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지 새벽기도가 예수님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것도 예수보다 귀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부흥이 되어서 부흥한 교회 이름이 나도 안 되고 성가대를 잘해서 성가대 이름이 나도 안 되며, 목사가 잘해 가지고 목사 이름이 드러나도 안 됩니다. 그것은 관리를 잘못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유명하고 주님이 낮아지면 안 됩니다. 나는 낮아지고 주님이 높아져야 됩니다. 세세토록 영광 받으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줄 믿습니다. 그가 교회와 함께하므로 교회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이지 누가 있어서 뭘 잘해서 교회가 유명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됩니다. 김삼환 목사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새벽기도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성가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토록 이 가운데 살아계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귀히 여깁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항상 교회생활은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늘 행복한 것입니다
장기려 박사는 북한에서 내려와서 ‘송도 앞바다를 바라보며’라는 시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수도꼭지에는 언제나 물이 나온다. 지난 겨울에는 연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쌀독에 쌀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끼 밥을 먹었다. 고양이 한 마리는 더 키울 수 있다. 보고 듣고 말하며 불편함이 없다. 슬픔에 울고 기쁨에 웃을 수 있다. 사진첩에 추억이 있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이 그리 밉지 않다. 밤하늘에 별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있다.’ 이게 감사의 조건입니다. 수도꼭지에 물 나는 게 무엇이 감사하냐? 그러는데 아닙니다. 먹는 거 뭐 감사하냐? 아닙니다. 먹는 거 너무 감사한 일이고 듣는 거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보고 듣고 말하는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보고 듣고 먹지를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주님이 내안에 거하시고 내가 아버지를 만나면 모두가 다 감사한 일입니다. 다 감사의 조건입니다. 교회에서도 감사하고 집에서도 감사 항상 감사가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연탄이 있다, 쌀독에 쌀이 있다고 있는 거 하나하나 거울 보면서 내 얼굴이 아직도 괜찮다 감사하다라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됐다 이 얼마나 감사하냐는 것입니까? 사진첩을 보면서 지난 추억에 모두 하나하나 감사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휘장이 찢어지므로 우리는 아버지 품안에 안기게 되고 아버지 품안에서 이 세상을 보니 보는 것이 다 감사,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마다 다 감사가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그리스도안의 행복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얼마나 모두 낙심하고 불행하며 좌절하고 외국신문에 이번에 난걸 저가 봤습니다. 결혼식 할 때 혼수 적다고 아직도 그것 때문에 이혼하는 분이 많고 혼수 적다고 해 가지고 가정불화로 때리고 이런 일이 그렇게 많다는 것입니다. OECD국가 가운데 이 말이 됩니까? 여러분! 딸을 키울 때 얼마나 고생합니까? 딸 키우는 고생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만큼 키워 가지고 보내주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혼수품보다 사람이 몇 억 만 배 더 귀하지 않냐 말입니까? 혼수품 많이 가져오면 무엇 합니까? 나중에 잘 살아가지고 사면 되는 거지, 그거 가져 올 때 많이 가져오는 거 무슨 소용 있습니까? 왜 그런 것 가지고 모두 그러느냐 말입니까? 지난주에는 어떤 부부가 밖에 나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둘 부부가 식사를 잘하고 또 술도 한잔하고 들어오는데 분위기가 또 저녁에 해는 어두운데 이렇게 않아 둘이 2차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분위기에 또 둔하지 않습니까? ‘아~ 그렇게 잘 먹었으면 됐지 뭘 또 그렇게 가냐’고 ‘아유~ 그래도 커피 한잔 하자.’ 그래 가지고 기어이 말 안 듣고 들어옵니다. 들어와 가지고 부인이 신경질내고 속상해 그러고 ‘저렇게 여자마음 몰라준다.’ 그럽니다. 남편이 들어와 있으니까 막 화가 나 가지고 술도 취했겠다 그래서 화분을 갖다가 남편한테 방안에다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 가지고 남자가 일어나 부인을 막 때립니다. 화가 나 가지고 때리니까 여자가 또 때렸다고 막 달려들고 부엌에 가 가지고 칼을 들고 와 찔러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한순간에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여러분! 모두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커피 한잔 하자고 그러면 하면 될 거 아닙니까? 가자 그러면 그 말 왜 못 들어 주냐 말입니까? 서로서로가 이걸 다 교인은 넘어갈 수 있는 일입니다. 별것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모두 왜 이렇게 좌절하고 흥분하며 깨어지고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죽습니다.
늘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모두 낙심하고 좌절하며 잠 안와 그러고 속상해 그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가 없으니까 모두 마음이 안 맞는 것입니다. 아버지 없는 삶, 주님이 없는 삶 휘장을 통과하지 못하니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창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 창고를 채울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엇으로도 뽑을 수 없는 가시나무가 있습니다. 수많은 가시, 미움과 증오와 악한 정욕의 가시들이 꽉 박혀 예수님의 십자가의 손이 아니면 가시를 뽑을 길이 없습니다. 누구도 이걸 제거가 안 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도 밝힐 수 없는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밝힐 수 없는 어두움이 있습니다. 아무리 밝은데 가도 더 어렵습니다. 이걸 내 마음에, 이 밝은 빛을 환하게 켜 주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손이 아니고는 환해지지를 않습니다. 누구도 내 마음 밝힐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은 잡초가 우거지고 또 메마른 광야의 땅과 같습니다. 아무도 이 광야, 쓸쓸한 광야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광야가 꽃피는 에덴동산같이 됩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손이 와야 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우리 마음은 어떤 형사도 잡아낼 수 없는 강도가 내안에 있습니다. 무서운 강도 같은 악한 마음이 내안에 있습니다. 남을 해치는 마음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아니고는 이 강도의 칼을 떨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누구도 끌 수 없는 정욕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젊어서부터 이 땅을 떠나는 날까지 이 정욕의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아침, 저녁 종일 타 오릅니다. 갖고 싶고 온갖 음란하고 방탕한 길로 막 나갑니다. 어떤 소방대원도 끌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만이 끌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심령의 창고가 온갖 보화로 채워지고 가시나무가 다 제거되고 백합화가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강도들이 다 제거되고 백합화가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강도들이 다 제거되고 내 마음에 천사가 찾아오고 정욕의 불이 다 꺼지고 성령의 불이 타오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휘장을 찢어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서 아버지 자녀로서의 이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길이길이 교회에 축복 아버지와 만남의 축복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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