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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귀한 분들 시118:5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두 분 다 약 6년 가까이 옥고와 고난의 세월을 보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목사님은 1938년(신사참배 가결한 해)부터 체포되셔서
해방되기 1년 전인 1944년까지
6년간이나 감옥을 드나드시면서, 모진 고난의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더 사시다가, 1년만 더 참으셨다가,
해방되는 것을 보신 후에, 소천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더 의문스러운 것은,
‘이왕 순교하실 것 같으면, 좀 일찍 순교하게 하시지..
왜 주님은.. 6년간이나.. 그 모진 고초를 다 겪게 하셨는가?’
라는 제 개인적 질문이 생겼습니다.
말이 6년이지,
옥고와 고난의 6년은.. 아마 수 십 년처럼 길게 느껴지셨을 것입니다.
‘이왕 순교하실 것 같으면, 6개월의 옥고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뭐 하러 완전히 진을 다 빼기까지 죽도록 고생을 시킨 후에, 순교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무슨 학대를 좋아하시는 분도 당연히 아니신데요...
▲손양원 목사님도 1950년 928 서울수복 되던 날에, 총살로 여수(미평)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 전에 1940~45년까지 감옥에서 약 5년을 보내시고,
해방되어 좀 행복한 날이 오는가 했더니, 1948년 여순반란 때 두 아들을 먼저 보내시고,
이어서 1950년 625때, 목사님도 한사코 피난가기를 거부하시다가
정말 애석하게 순교하셨습니다.
그럼 이왕 순교하실 것 같으면,
뭐하러 감옥에서 5년간이나 고생을 하셨는지요?
그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입니까?
이래도 순교, 저래도 순교.. 결론이 순교였다면,
차라리 감옥에서 6개월 정도 짧게 고초를 당하신 후에, 이 기간도 깁니다.
순교하셨더라면... 차라리 육신은 편하지 않았을까요?
제 의문은
‘그렇게 죽도록 고난을 겪게 하신 후에, 비로소 순교하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일이, 오늘 우리 주변에도 일어납니다.
순교는 아니더라도, A씨는 말기암에 걸렸습니다.
그는 병원도 다니고, 수술도 받고,
또 기도원에 가서 기도도 하고,
그런 와중에 여러 날, 통증에 오래 시달려야 했습니다.
경제적인 지출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혹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의 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3~5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서.. 그제야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안락사’도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왕 죽을 운명이면,
아무리 해도 낫지 않을 거라면,
좀 더 편하게, 일찍,
자기도 고생 덜하고, 가족도 고생 덜 시키고..
일찍 천국에 가는 것이.. 혹시 더 낫지 않을까요?
그렇게 온 가족이,
또는 교회 식구들까지,
열심히 기도하고 매달렸는데...
결국은 낫지도 못하고 죽을 사람을,
하나님은 왜 몇 년간이나.. 죽도록 고생하도록.. 섭리하신 것일까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결국 데려가실 사람은, 빨리빨리 천국에 데려가시는 것이,
그게 더 ‘사랑’이지 않을까요? 인간적인 생각입니다만...
▲이런 문제를 놓고 생각하던 중,
어디서 이런 문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지옥에 간 사람들이, 애타게 더 살기 원하는 하루이면서 동시에
천국에 간 사람들이,
애타게 하루 더 살기 원하는.. 그 소중한 하루!’
그러니까 천국에 간 사람들은, 지금 천국에서
지상에서 하루를 더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하루 더 진정으로 섬기고 헌신하고 싶어서!
주님을 단 하루만이라도 더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어서!
이제 자기가 천국에 와 있으니까,
그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자녀들이 진짜로 효도하고 싶은 마음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영원히’ 산다는데..
지상에서 ‘좀 더 오래’ 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주님을 더 섬기고, 사랑하고, 헌신하며 산다면..
비록 죽을 병에 걸려 고생스럽더라도,
그렇게 하루 더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천국에 하루라도 더 빨리 가서,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영원히 그렇게 사는 거니까..
그러나 지상에서의 삶은 제한되어 있고, 짧습니다... 그만큼 귀중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비록 고생스럽고, 환란과 고통이 많아도
지상에서 하루 더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께 기쁨이 된다면..
하루가 아니라.. 오래 오래 더 살아야지요.. 아무리 고생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이
6년간이나 오래 고생하시고, 극심한 환란을 당하신 후에
비로소 순교하신 이유는,
그 6년의 환란 과정이 너무나 소중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하루 하루를..
그 환란과 고통의 하루 하루를..
아니 그 한 시간, 한 시간을..
귀하게 카운트하셨고,
그 고난의 시간들은,
너무나 귀하고..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없었다면, 인류에겐 구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고통을 받게 하는 대신에,
예수님 한 사람을 정하여, 대표로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누군가의 고통/희생/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집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열매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다 고통을 당할 수는 없으니,
주님은 몇 분 순교자들을 정하셔서, 그들을 대표로 고통당하게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처럼...
그래서 그 고통은 6일도 아니고, 6주간도 아니고
기나긴 6년 세월이어야 했습니다.
(오늘 자기가 잘나고 유명해서 한국교회가 부흥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천국에 가서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 이유 없이 오랜 고통을 겪는 분들이 계십니다.
질병이든지..
가난이든지..
또 다른 이유에서든지..
이왕 천국 데려가실 것 같으면.. 좀 빨리 데려가시면 좋을 터인데..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그 고난의 세월을 다 겪게 하십니다.
이왕 고통을 면해 주실 것 같으면.. 좀 빨리 고통을 면해 주시면 좋을 터인데..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그 환란의 세월을 다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런 고통을 통해서, 본인이 성화되는 은혜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몇 사람을 택하여..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 하루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 가운데의 기도,
그 고통 가운데의 헌신,
그 고통 가운데의 희생... 그것이 꼭 필요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 기도, 그 절규가운데서
그의 가족, 그 사회, 그 공동체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혜택이 고스란히 타인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의 절규를 통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도 병상에서 눈을 떠서
‘오늘 하루, 깨어났구나. 내가 또 살았구나!’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를 속히 그 좋은 천국에 데려가지 않으시고, 늦추시는가 하면,
그 하루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그렇게 전심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날은,
(천국에 가면.. 이 세상에서 섬긴 것처럼은 섬길 수 없습니다. 차원이 다르니까요)
오늘 하루입니다. 하루가 귀한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하루를 귀하게 살고 있습니까?
지금 천국에 가신 성도님들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를, 정말 꼭 하루 더 살고 싶어 하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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