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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1-5

by 【고동엽】 2022. 8. 17.

요한복음 17:1-5


오늘도 너무 감사합니다. 이 예배시간에 여호와를 앙망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새 힘이 쏟지는 은헤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보약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신령한 보약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보약을 먹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첫째는 정성을 다해서 먹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서 시간을 맞춰서 먹어야 보약이 효험이 있습니다. 둘째는 믿고 먹어야 합니다. 이 약이 정말 좋은 약이다라고 믿고 먹어야 합니다. 의심하고 먹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셋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약의 효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이와같은 마음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말씀이 여러분에게 보약이 되는 겁니다. 보약이 되면 영혼이 살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고 형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요즘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전까지 40일의 시간을 정해서 예수님의 고난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자는 뜻에서 오래전부터 지켜왔습니다. 이 기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금식하고, 구제하고, 특별히 경건생활에 힘쓰는 귀한 절기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 주일까지 4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이 네주동안 요한복음 17장을 강해하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은 대제사장의 기도라는 별명을 가진 아주 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가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한 것같이 너희들도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섬기는 자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13-16장에 걸쳐 다락방 강화라는 긴 설교를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 전날 밤에 이렇게 긴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설교가 끝난 후에 이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하심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기도는 정말 놀라운 기도입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존 낙스는 병이 들어 힘이 들 때 매일 이 기도를 읽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어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루터와 함께 개혁에 참여했던 멜랑흐톤은 본문을 가르켜 “이제까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린 이 기도만큼 거룩하고 고상한 기도는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통해서 공적인 사역을 마무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끝을 내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공적 생애는 기도로써 시작되고, 기도로써 끝을 맺음으로써 잘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성찬을 마치시고 나와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십니다.
바로 다음날 십자가를 앞에 두고 다시한번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더불어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하라”고 부탁하시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며 사명완수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기도내용은 이렇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육신을 입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온전히 아버지께 복종하여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또 다시 피눈물 나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드디어 잡히셔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십자가 상에서 또 기도하십니다. 어떤 기도했습니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밖은 그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해서 이럽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다 이루었다하시고 운명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로 준비되어지고, 기도함으로써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기도함으로써 승리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기도해야 승리한다.” 오늘 이 기도, 17장의 대제사장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때가 이르렀다고 하시면서 기도하십니다. 여러분 이 때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할 때가 왔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17장의 대제사장의 기도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드린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저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 어떤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병으로 내가 2-3일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 떠날지 모르잖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죽음앞에서 새삼스러운 기도를 절대 하면 안됩니다. 죽음 앞에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기도가 또 반복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기도,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기도가 마지막 순간에 또 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그렇습니다. 죽음 앞에서 어떤 기도합니까?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그렇게 사셨거든요. 그렇게 기도하셨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도 그것밖에 기도할게 없었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기도로 아룁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 들어보면 알고, 기도의 내용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가, 얼마나 좋은 그리스도인인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가 기도를 통해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서 그 사람의 수준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속에는 예수님의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짧은 생애지만 메시야로서의 생애를 사시면서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그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나를 보내신 그분의 뜻을 내가 이루어서 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수님의 생애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도하는 목적이 뭡니까? 이제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내 생애를 마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내 생애를 마칠 수 있게 하옵소서.” 여러분 이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 위대한 사람이지요. 기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 그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도 강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런 기도의 능력을 아는, 예수님께서 왜 기도하셨는가를 알고 주님을 본받아 기도하기를 원하는 기도의 종들이 많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의 사람이 많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레리 넬슨이라는 세계적인 프로 골퍼가 있습니다. 그는 1983년 미국 오픈 경기에서 우승을 해서 세계적인 골퍼가 되었습니다. 그 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그가 16번 홀에서 공을 치기전에 갑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공을 쳤는데 홀에 들어가서 우승을 햇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우승을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우승권에는 들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경기가 끝난 후 그의 친구가 물었습니다. “너 아까 기도했는데 뭐라고 기도했는냐? 우승컵을 달라고 기도했니?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하셨니?” 그 때 레리 넬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내 마음속에 우승트로피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도 구해서 이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오늘 여기게 두 가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어떤 면에서 보면 자기를 높이려고 뭔가를 구하는 것같은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끝까지 들어보면 그게 아닙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내게 주시면 내가 그 영광을 받아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는 겁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아버지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죽으실 겁니다. 죽음으로 끝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광을 내게 주셔서 내가 다시 부활함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나게 해 달라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해야 되는가? 여러분들도 삶의 현장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사는데 어떤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까? 어떤 설교자가 설교를 너무 잘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나가면서 “우리 목사님, 참 설교 잘하지” 그렇게 말한다면 그 설교는 실패한 설교입니다.
찰스 스펄전이 설교를 하는데 많은 목사님들이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전에 미국의 굉장히 유명한 목사님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날 오전에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나오면서 “야, 굉장하지, 미국에 이렇게 유명한 설교자가 있다니!”라고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스펄전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나오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펄전의 하나님은 살아있습니다. 스펄전이 전한 하나님은 살아있습니다. 스펄전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하십니다.”
설교한 목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높여 졌어요. 그 설교를 통해서 누가 높아졌어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졌어요. 어떤 기도를 했겠습니까? “하나님, 내게 하나님의 영화를 임하여 주셔서 나의 이 설교를 통해서 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할때 마다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제일 경계해야 할 부분이 뭡니까? 우리의 기도에는 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하는 모습이 들어있더라는 겁니다. 그것은 주님과는 상관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는 부족하잖아요. 정말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내 자신을 보면, 내게 하나님께 영광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냄새나는 것들, 못된 것들이 얼마나 많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경건한척 앉아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썩은 것들이 얼마나 많지 않겠습니까? 내게서 자연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만한 것이 나올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영화를 내게 입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내게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내게 입혀주셔서 부족하고 못난 나지만 이 종이 주의 도구가 되어서 나를 통해서 당신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분입니다. 그분 마지막으로 죽으시기 전에 원했던 것은 숭늉 한 그릇 먹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어셔 십자가의 길을, 순교의 길을 간 것이 아닙니다. 고문을 당할 때는 못을 밖아 놓고 그 위를 걸어가게 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짊은 같은 고생이나” 찬송하며 갔습니다.
목사님 생애 말미에 이런 설고를 하셨습니다. “나의 5종목의 기원” 순교를 결심한 분이 다섯 가지 기도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둘째,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셋째, 노모와 처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넷째,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 다섯째,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주기철 자신을 알기 때문에 내게 하늘의 영광을 입혀주셔서 나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여러분, 하나님의 영화가 임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영화를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원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해 집니다.

둘째, 예수님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4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그 일을 내가 이루어 이 세상에서 내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여기 두가지를 생각하세요.
첫째는 우리 모든 각자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 뭐겠습니까? 오늘 그것을 깨닫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교회와서 예배드리고, 생업에 살고, 좀 부자되기를 바라고, 이렇게만 살라고 구원해 주신 것 아닙니다.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있다는 겁니다. 2절에 보니까 아주 귀한 말씀이 나옵니다. 2절을 보세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뭘 주셨어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4절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각자에게 여러분이 해야 할 사명을 주신줄로 믿습니다. 이 사명을 성취할 권세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반드시 권세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절대로 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할 때는 반드시 그 일을 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도 주신줄 믿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내 힘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내게는 나올 영광이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 영광받으시기 위해서 내게 사명을 주셨을 때는 내게 그 사명을 성취할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여기서 깨어나야 합니다.
일본의 마가오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그리스도인이 한명도 없는 불교가 성행하는 가나사와 부근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한달, 육개월, 일년이 지나가도 교인은 한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예배를 거르지 아니하고, 설교를 듣는 사람은 아내와 어린 자녀들뿐인데도 계속 예배를 드렸습니다. 무려 오년동안 아내와 자녀를 앉혀 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나가오 목사님은 “이 지역에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있다. 여기에 나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라고 생각하며 버텨나가는데 5년만에 누구 한 사람이 왔습니다. 그 사람은 폐결핵에 걸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고 폐결핵에 걸린 그 청년을 돌보며 치료시켰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가가와 도요히꼬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일 이 청년은 일본 빈민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가와 도요히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나가오 목사를 그곳에 보냈는데 나가오 목사님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깨달았기 때문에 삼년, 사년이 걸려도 사람이 모이지 않지만 그 자신를 믿음으로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왜 조금 하다가 포기합니까?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뭐냐? 생각하세요.
두 번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하나님께 내게 주신 일을 이루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첫째는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고, 두 번째는 그 일을 깨달았을 때는 거침없이 그것을 나의 삶의 목표로 정하고, 달려나가는,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달려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애를 마쳤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생애였습니다. 여려분이 돈을 많이 벌고,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그냥 그대로 갔다고 하면 무엇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드립니다.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뜰 때마다, 잠자리에서 딱 깨면 기도할게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4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잠에서 깨면, 바로 무릎 꿇고 먼저 이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나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마귀는 여러분의 시간을 빼앗고, 여러분이 엉뚱한 것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얼마나 역사합니까? 이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밤에 잘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침소에 들기 전에 또 다시 무릎을 꿇으세요. “하나님 오늘 하루를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에 내가 집중했습니까?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일 새 날을 맞이할 때 이 말씀대로 내가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침소에 드세요. 이것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요, 십자가를 바라보는 구원받은 백성의 참된 모습입니다.
여러분들, 아버지께서 여러분들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뭔지 알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주신 일은 굉장히 단순하고, 여러분 생활속에서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잇는 일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부모님 살아계신 분 계시지요.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 뭡니까? 내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까?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가난한 자에게 다가가서 빵 하나를 주는 것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금 하라고 주신 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선교사로 나가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날마다 나의 삶의 현장에서 내 옆에 가난한 사람이 보입니까? 그 가난한 사람 배부르게 하라고 나를 여기 있게 하신 줄로 깨닫기 바랍니다. 무슨 거창한 일을 한다는 겁니까?
많은 선교사들이 열방에 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뭡니까? 나는 여기 있지만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게 하신 일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인 줄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각없이 여러분이 사시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지금 하라고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도 응답도 없이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만 살아가겠습니까? 그건 잘못된 인생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불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를 모르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뭡니까? 그분들에게 전도하는 겁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주변에 있는 이웃들에게, 가족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일이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하세요.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이 소리치지만 그 양심을 소리도 죽여 버리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괴로워하면서도, 힘들어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길은 실패의 길이요, 부끄러움의 길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맙니다. 여러분, 정신차리고 삽시다.
이 기도 해보셨습니까? 아침마다, 눈을 뜰 때마다, “오늘도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을 일을 이루어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 기도에 생명을 걸고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위대한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오늘도 이루어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의 삶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더라는 겁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는 사순절입니다. 감상적으로 십자가를 생각하지 맙시다. 십자가는 뭡니까?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자신을 드리는 겁니다. 오늘 17장 말씀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아버지앞에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오늘 이 귀한 시간에, 우리 모두의 기도가, “아버지의 영화로써 나를 영화롭게 하사 나의 삶을 통해서 아버지의 영광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자기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실패자입니다. 조금도 드러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너무나 귀한 일을 해도 “내가 잘 한 일은 빨리 잊게 하시고 예수의 영광만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게 하옵소서”라고 하세요. 이것이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 4-5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출처/최낙보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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