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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값진 삶을 살려면 막8:36
필립 얀시, '내 영혼의 스승들'(Soul Survivor)(1)(좋은 씨앗)에서, 펀글 편집.
필립 얀시가 소개하는 '후회없는 감동적인 인생'이란?
폴 브랜드 박사는 1914년 인도 산골마을에서, Dr. Paul Wilson Brand(1914-2003)
그곳에서 사역하던 영국인 선교사 부모에 의해 태어났다.
그가 어릴 적, 그 평화롭던 산골 마을에 하루는 한센병 환자 3명이 찾아왔다.
선교사인 그의 부모들은, 그들을 먹이고 붕대를 감아 주는 등 환대해 주었다.
그들은 떠나갔고, 이런 일을 계기로 폴 브랜드는 커서 영국에 건너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으며,
의대에서 만나 결혼한 마가렛 사모님과 1946년 인도로 돌아와
한센병을 돌보는 의료선교에 남은 평생 종사한다.
▲대형화된 서구사회에서는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믿음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흔히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계급, 국적, 인종, 사회학적인 그룹으로서의
인간 집단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서로에게 꼬리표를 붙여놓고, 그걸 토대로 행동을 설명하고
그의 가치를 평가한다.
폴 브랜드 박사와 오래 교제한 뒤에야
내가 광범위한 인류의 문제들을
국민 총생산이라든가, 연봉, 사망률, 1천 명 당 의사의 숫자 따위의
수학적인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사랑은 수학이 아니다.
얼마나 커다란 사랑이 있어야, 세상의 모든 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 한 명을 찾아보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한동안 나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가지고 끙끙거리며 고민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잃으면 비로소 되찾는 진정한 삶
▲진심어린 환대가 뜻하는 것
1990년 폴 브랜드 박사(M.D.)와 인도를 여행했을 때,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콜리 말라이 산지의 집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탄 지프는 70번이나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희한한 간선도로를 따라 산을 올랐다.
지프는 야트막한 언덕을 기어오르고, 곧이어 눈앞에 놀라운 장면이 나타났다.
도로를 따라 150명 안팎의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벌써 네 시간째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모두들 차를 둘러싸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는
인디아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사를 해왔다.
열대 지방에 사는 새처럼, 실크 사리로 화려하게 단장한 여인들이
일행의 목에 생화로 엮어 만든 목걸이(화환)를 걸어주고는
바나나 잎사귀 위에 차린 잔칫상으로 안내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폴 브랜드 박사의 아버지가 지은 흙벽 예배당에 모여
한 시간 남짓 찬양과 감사의 말, 춤으로 환영해주었다.
▲어느 간호학 박사의 간증
특히 이 여인이 들려준 박사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산지에 사는 부족민들은 낙태라는 걸 몰랐습니다.
원치 않는 아기는 낳아서, 길가에 내다버리면 그만이었습니다.
브랜드 할머니(폴 브렌드 박사의 모친)은 이런 아이들을 데려다가
건강을 되찾도록 잘 돌보고 키워준 뒤에 공부까지 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역시 길가에 방치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원치 않는 아이'였습니다.
브렌드 할머니는 저처럼 버려진 아이들이 수 백 명이나 있었지만,
그 모두를 고아원처럼 관리하지 않으시고, 입양한 친자식처럼 보살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산지 부족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제가 공부를 곧잘 하자 상급 학교에 진학하도록 학비를 대주셨고,
결국 저는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 저는 마드라스 대학에서 간호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서 오늘 여기에 왔습니다.
브랜드 박사님 가족들이 저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신 일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부친과 모친의 선교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폴 브랜드 박사는 짧은 연설을 마치고 눈물을 닦은 다음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박사는 먼저 그의 아버지가 손수 나무를 켜서 지은 집을 가리켰다.
박사의 아버지가 산지에 세운 학교 아홉 군데와 목공소는 물론이고
병원도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모친이 특히 자랑스러워했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던
감귤 과수원이 퍼져 있었다.
브랜드 박사의 부친 제시 브랜드 선교사는 20개 가까운 농장을 개척하고,
뽕나무, 바나나 나무, 사탕수수, 커피, 타피오카 따위를 재배했다.
브랜드 박사는 70년 전에 아버지가 심은 재커랜다 나무가
얼마나 크게 자랐는지 이야기했다.
나무에서 떨어진 라벤더 꽃들이 지천으로 땅에 깔려 있었다.
떠날 시간이 다 됐을 무렵, 박사는 부모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가 자란 목조 단층집에서 비탈을 따라 조금 내려간 곳에 있었다.
“그분들의 몸은 여기 묻혔지만 영혼은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알 수 있어요.”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낸 폴 브랜드 박사는
후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이번에는 폴 브랜드 박사가 남긴 유산을 살펴보기 위해
그가 이전에 치료했던 환자들을 찾아가 보았다.
▲나모의 간증
나모라는 옛 환자는 ‘폴 브랜드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내 안에서도 살아 움직이시기를!’이란 글과 함께
박사의 스무 살적 사진을, 자기 집무실 벽에 붙여놓았다.
젊은 시절, 나모는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센병 특유의 반점이 피부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손까지 갈고리 모양으로 오그라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고향, 그리고 마침내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나모는
젊은 의사가 실험적인 방법으로 손을 수술한다고 알려진
인도 남부의 한센병 요양소로 찾아갔다.
인도만 해도 4백만 명의 한센병 환자가 있었고
세계적으로는 1천5백만 명을 헤아렸지만,
환자들의 기형을 치료하려고 덤비는 정형외과 의사는
폴 브랜드 박사 한 명뿐이었다.
나모는 그 암울하던 시절을 이렇게 떠올렸다.
“당시 제 처지를 생각하면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듬거리며 브랜드 박사에게,
이제 손은 아무짝에도 못쓰게 됐노라고 말했습니다.
머잖아 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요.
그러니 손발을 잘라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모의 예측은 빗나갔다.
약물은 질병이 더 번지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그리고 5년에 걸쳐 몇 차례 정성스러운 수술 절차가 진행된 뒤에는
손발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모는 물리 치료 훈련을 받고 다른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으며
훗날 전 인디아 물리치료협회 대표가 되었다.
▲자단의 간증
다음으로 나는 브랜드 박사의 또 다른 옛 환자인 자단을 찾아갔다.
자단은, 발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가 매끄럽고 둥그스름한 통나무처럼 잘린
자기 발을 보여주었다.
“브랜드 박사님을 너무 늦게 만나는 바람에 발가락을 살릴 수 없었죠.
하지만 두 분은 제게 걸을 수 있도록 신발을 마련해주셨어요.”
자단은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지난 날 자신이 버림받았던 뼈아픈 얘기를 들려주었다.
학교에서 자신을 놀려대던 같은 반 친구들,
우격다짐으로 버스 바깥으로 자기를 집어던졌던 시내버스 운전사,
적절한 훈련도 받았고 재주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주지 않았던 고용주들,
“문둥병은 여기서 취급하지 않아!” 라는 무뚝뚝한 한 마디로 내쫓던
병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브랜드 박사님 댁 툇마루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달리 어디 갈 만한 곳이 없었어요. 게다가 옛날에는
한센병을 앓는 사람들 얘기를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잖아요.
병균에 감염돼서 피가 흐르던 제 발을 손으로 덥석 잡던 브랜드 박사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까지 수많은 의사들을 만나봤습니다만,
몇몇만이 제 손발을 검진해주었습니다. 그것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말입니다.
과감하게 저를 만져준 의사는 폴 브랜드 박사님과 사모님이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전까지 인간의 접촉이 주는 느낌을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 저를 누군가 잡아주었을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 감격스러웠던 것은, 박사님 내외분이 저를 자택에서 재워주셨던 일입니다.
한센병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의사들조차 끔찍하게 생각할 만한
일이었는데도 그렇게 하셨던 겁니다.”
자단은, 손가락에 이식된 힘줄들이 제 기능을 발휘해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53개 이동 병원을 통해 실시되는 무료 한센병 검진 프로그램의
경리 업무를 맡아보고 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 그는 얘기를 계속했다.
최근에는 딸아이를 출가시키면서 행여 손님들이 놀랄세라 멀찍하니 세워둔
자동차 안에 혼자 앉아, 딸아이의 결혼식을 지켜봐야 했다.
▲영국에서 박사의 부모님 흔적
이틀 뒤 박사와 나는 영국으로 왔는데,
인디아에서 받았던 극진한 접대와 뚜렷하게 비교되는 대접을 받았다.
나는 영국에서도 박사 부모님의 옛 흔적들을 조사하고 다녔다.
먼저 박사의 부친과 모친이 선교사 안식년을 보내곤 했던 집을 찾아갔다.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저택이었다.
박사의 모친은 부잣집 출신이었으므로, 친정집이
런던의 상류층 주거 지역에 자리 잡은 저택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폴 브랜드 박사는, 주인의 허락을 받고, 나를 방방마다 안내하면서
60년 전에 그 저택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박사의 의사 재직 시절 흔적
그날 오후에는 박사가 레지던트 시절 근무하던 병원에 갔다.
화환을 걸어주는 이도 없었고, 에워싸고 찬양을 불러주거나
옛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들도 없었다.
병원 경비원이나 직원들에게 박사는,
그저 성가시게 구는 이상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았다.
병원 사무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본관 좌우에 이어지은 부족 건물들은 다 헐렸고 증축되었다.
자기가 처음 의사 생활을 시작했던 자리에 와 있으면서도
박사는 오히려 어딘가 모르게 그곳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병원 접수창구에서 우리는 이 직원 저 직원을 붙들고
과거 박사의 동료 의사들의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누구요? 철자를 정확히 불러주시겠어요?” 라는
틀에 박힌 대답만이 되돌아왔다.
결국 우리가 찾아낸 것이라곤 박사를 가르쳤던 스승들의 사진이
어두컴컴한 복도에 줄지어 붙어 있는 모습뿐이었다.
▲비교
‘폴 브랜드 박사가 런던에서 의사로 계속 살았더라면
그는 지금 어떤 위치에 올라 있을까?’ 갑자기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의사로서 사회적 지위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엔 어떻게 되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어두컴컴한 복도에 걸려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한 사진들 틈에
박사의 초상도 그 속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인디아의 시골에 머물며,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 틈에서 일하면서
그는 영국의 명예는 못 얻었는지 모르지만, 사랑을 얻었고, 사람을 얻었다.
인디아에서 의료선교사로서 그가 시행한 수술은
수백 명의 또 다른 나모와 자단 같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열매를 맺었다.
인디아에 살든, 영국에 살든, 아니면 미국 조지아 주(얀시의 집?)에 살든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진정한 기준은
평생의 이력서라든가 남기고 떠난 유산 따위가 아니라
세상에 사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미친 정신적인 영향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주신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교훈은
복음서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구절이다.
어느 쪽으로 경력을 쌓아가든지 각각에 합당한 상급이 있다.
그러나 나모와 자단의 집과 (따뜻한 사랑의 환대)
영국 왕립 의과 대학 명예의 전당을 둘러보고 나서는 (사진 액자)
어떤 상급이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인지가 분명해졌다.
▲폴 브랜드 박사의 회상
헤어지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박사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의술을 펼쳤던 지역 특성상 큰돈을 번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과의사로서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한때 환자였던 수많은 친구들에게 억만금보다 더한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고통스러워하고 두려움에 떨던 시절에 그들을 처음 만났고,
담당 의사로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그 친구들의 사랑과 감사야말로
내 인생 길을 환하게 비춰주는 등불이었습니다.
고통이 극에 달한 곳에 스스로 뛰어들었던 한 인간이
바로 거기에 기쁨의 실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라다니.
참 뜻밖의 일이지요.”
-필립 얀시, '내 영혼의 스승들'(Soul Survivor)(1)(좋은 씨앗)에서, 펀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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