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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녀양육/엡 6:4

by 【고동엽】 2022. 8. 13.

아름다운 자녀양육

2002-05-14 16:42:06 read : 1119

 

6:4 // 2002-05-11

 

< 가족을 행복하게 하십시오 >

 

얼마 전, 어떤 분이 암으로 죽어가면서 이런 글을 남긴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살 수 있다면, 이제는 조금 적게 말하고, 더 많이 듣고 싶고,

모든 것을 나 중심적으로 살기보다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하며 살고 싶고,

아내의 짐을 더 나눠서 지고, 자녀들에게는 "사랑한다!"고 더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보면 사람에게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미운 사람들을 다 미워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매사에 아주 작은 일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금방 등을 돌리고 살면

언제쯤이나 존경받는 삶을 살고, 언제쯤이나 행복을 맛보며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되, 특별히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긴 사람입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가족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죽는다면, 가장 후회되는 일이 가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 부모가 보여주어야 할 3가지 마음 >

 

오늘은 어린이주일인데, 어떻게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3가지 마음을 가르쳐줍니다.

 

1. 센스 있는 마음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이 말씀은 아주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에서는 아버지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버지는 자식을 물건처럼 팔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상처는 많은 불행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 자녀들을 노엽게 만들까요? 3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1) 첫째, 부모가 욕심을 가지고 자녀에게 너무 많이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주려고 애쓰기보다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자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녀의 삶을 거의 착취합니다.

그런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분노를 가지다가, 결국 자기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얼마 전, 나이트 클럽에서 누드 댄서로 일하는 한 여성의 글을 봤습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춤을 출 때마다, 아빠 얼굴에 대고 춤을 춘다고 생각하고 춤추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권위적이고, 독단적이었는데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처럼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의 욕심과 독단은 자녀들을 이렇게 만듭니다. 우리는 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2) 둘째, 부모가 자녀들 앞에서 너무 의인인 척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의인인 척 하려는 태도는 어떤 태도로 표현됩니까? 대개 비난으로 표현됩니다.

의인은 실수에 너그럽지만, 의인인 척 하는 사람은 실수에 즉시 비난을 합니다.

또한 의인인 척 하는 사람은 명백히 자기 잘못인 경우에도 남을 비난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의인일 때는 존경하지만, 의인인 척 할 때는 존경심을 버립니다.

 

어떤 가정에서 한 아빠가 아이와 함께 매일 아침 7시에 성경을 읽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아빠가 아이를 깨워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아빠가 8시까지 자다가 아이의 인기척에 잠에서 깼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것을 보고 아빠는 아이한테 "왜 안 깨웠냐?"고 짜증냈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피곤하니까 더 주무시게 해야지!"하는 기특한 마음을 가졌는데

자기가 늦게 일어나고는 "왜 안 깨웠냐?"고 오히려 아이를 나무라면 되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권위가 깎이는 줄 압니다.

그러나 부모도 죄인입니다. 부모들도 예수님이 필요하고 복음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그런 부모의 솔직한 모습을 보면 오히려 자녀는 부모를 더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기도 복음이 필요한 존재임을 겸손히 인정하는 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3) 셋째, 우리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같은 잔소리를 끊임없이 하는 솔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분명한 이유는 부모 자신에게 믿음이 없고 두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잔소리하면 결과가 어떻습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셨습니까?

잔소리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우리는 가끔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주의를 시킵니다. "이것 하지 말라!"

그런데 아이들은 금방 그 주의를 잊어버리고 대개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일을 저지릅니다. 그러면 부모들은 또 화를 내면서 잔소리합니다.

"!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랬어!" 하고 했던 잔소리를 금방 또 합니다.

 

왜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기보다 무조건 잔소리부터 하게 됩니까?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즉 자녀들이 순종을 모르고, 바른 자녀로 자라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우리 자녀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을 것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자녀를 심하게 꾸짖고, 자녀의 체면을 깎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참 미안합니다.

자신을 계속 성찰해 보면 항상 내가 조금 더 지혜롭게 할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곧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빠도 너희들처럼 예수님이 필요해!"라고 하면

아이들은 금방 "아빠 괜찮아요."라고 하면서 어깨를 으쓱이며 참 흐뭇해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믿어주고, 아이들의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처럼 우리는 아이들을 노엽게 하지 않으려는 '센스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균형 잡힌 마음

 

4절 말씀 하반부를 보십시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를 양육할 때는 '사랑의 교양''엄격한 훈계'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자녀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그들의 영혼에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격려하고, 꿈과 믿음을 주고, 확신을 심어주고, 그 사랑을 표현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사랑을 먹지 못하면 몸은 멀쩡해도 정신은 불구로 자라게 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누구보다 사랑이 많아도 그 사랑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시대는 그랬지만 우리 자녀들에게는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과 더불어 훈계가 없으면 역시 자녀는 정신적, 사회적 불구가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훈계'의 원어적인 의미는 '매를 드는 것'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미국 같은 곳에서는 잘못 매를 들면 경찰이 달려와 부모를 잡아갑니다.

이 장면은 '뉴 에이지 운동'의 영향으로 가정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장면입니다.

 

'뉴 에지지 운동'에 물든 사람들은 '매를 드는 것'을 반대합니까?

'매를 드는 것'을 자녀가 저지른 '죄와 잘못에 대한 벌'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부모들이 매를 드는 것은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다 벌받아야 할 죄인이기에 논리상 부모는 자녀를 벌할 권리가 없고,

사실상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은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왜 매를 듭니까? 벌 때문이 아니라 자녀의 앞날을 위해서 드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뉴 에이지 사상'을 가진 부모로서 매가 나쁘다고 여기고

매를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평생 고통스런 삶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녀들은 자기만 알다가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 아이들이 예배당 안을 뛰어 다니며 강단까지 기어오르니까

보다 못해 장로님이 야단을 쳤습니다. 그 모습을 이 아이의 엄마가 보았습니다.

이 경우에는 "내 아이 잘 되라고 저렇게 해 주셔서 참 고맙다!"라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장로가 사랑도 없이 왜 아이들 기죽여!"라고 투덜대며 교회를 떠났습니다.

 

'아이를 마음대로 하도록 하는 것'이 기 살리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 그럽니다.

아이 기를 살리려면 반듯하게 살게 하고, 개성을 살려주고, 꿈을 가지게 해주고,

그 꿈을 성취하도록 성실하게 살게 해야지 싸고돌면 어떻게 기가 살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로 교회를 떠난다면 어느 공동체에서 잘 적응하며 살겠습니까?

 

어렸을 때 사랑의 매를 모르고 자란 자녀들은 대개 자존감이 낮고, 불평이 많고,

부모가 자신을 진짜 사랑했는지 평생 의구심을 가지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의 시대 사상을 따르지 말고 성경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잠언 1324절은 말합니다.

"자식이 미우면 매를 들지 않고 자식이 귀여우면 채찍을 찾는다."(공동번역)

 

우리 부모들은 자녀의 특성과 상태를 잘 파악해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가 게을러도 그냥 놔두고, 버릇없이 다녀도 그냥 놔둡니다.

그것은 자녀에게 평생 고통스런 삶을 주는 '부모의 책임 회피' 중의 하나입니다.

반대로 어떤 부모는 자녀가 마음이 약해진 상태인데도 야단부터 치고 봅니다.

그러한 모습은 자녀의 영혼을 더 병들게 하고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녀의 마음 상태를 잘 파악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잘 이끌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차를 타고 가는데 애들이 이상한 노래를 하며 너무 시끄럽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주의를 주었습니다. "애들아! 너무 시끄럽다. 이제 그런 소리 내지 마라!"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몇 분 지나니까 아이들이 또 시끄럽게 굴었습니다.

그러자 이분이 벌컥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만! 너희들 정말 말 안 들을 거야!"

 

그처럼 아빠가 신경질을 내니까 아이들이 그만 기가 죽어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한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한 아이는 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들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애들을 재워주면서 사과했습니다.

"얘들아! 슬펐니! 아빠가 미안하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있으면 남도 생각해야지.

아빠가 조용히 하라고 했으면 아빠 말도 들어야지 또 떠들면 어떡해 해!"

그러자 동생이 말했습니다. "아빠! 저는 아빠가 노래만 하지 말라는 줄 알았어요."

 

아빠는 애들이 아빠 말에 불순종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야단을 쳤는데

아이들은 자기들이 노래를 그쳤으니까 아빠 말에 순종한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 사이에 이런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고

자녀들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잘 이해하고 그들을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 중심적인 마음

 

4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왜 바울은 "주의 교양과 훈계"라고 말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자녀를 가르칠 때 말씀 중심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녀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욕망과 마음의 두려움을 잘 살펴서 그들을 가르치되

결론적으로 "그래서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필요하단다!"라고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교육은 지금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믿는 사람들조차 이 가장 필요한 교육을 교회에 맡깁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가장 좋은 신앙 교육의 장은 바로 우리 가정입니다.

신명기 67절에서 하나님은 자녀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잘 이해해주고, 대화도 해주고, 여행도 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기회를 잘 포착하여 하나님 말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보면 대개 부모들에게 "왜 그래요?"라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그때 "하나님 때문에"라고 즉시 대답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왜 하나님께 순종해야지요?"라고 물으면 즉시 대답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야."

우리는 자녀의 "?"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할 책무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확실히 심어주어야 합니다.

친구가 놀리는 일, 살면서 실망하는 일, 심지어는 장난감이 부서진 일에까지

그 일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있다는 담대한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는 예수님이 꼭 필요한 존재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이 노엽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런데도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 많이 요구해!"

자녀들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을 먼저 인정해주고 곧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 너도 할 수 없고, 나도 할 수 없어!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해!"

 

지금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없으면 매일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사실보다도 중요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 부모는 자녀의 신앙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

 

부모는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그의 아버지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자녀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알고 믿기가 참 어려울 것이다."

이 말은 부모가 믿는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큰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들을 가지고 그날 주일학교 설교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이 목사님에게 자기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무지개를 그렸고, 어떤 아이는 큰손을 가진 분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딸이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왔는데

그 그림에는 '양복과 넥타이를 맨 어떤 남자'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그리라는데 사람을 그렸네!"라고 하니까 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긴 분이지 알 수 없어서 대신에 그냥 아빠를 그렸어요."

자녀들에게 부모는 이런 존재이기에 우리의 말과 행동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 전 서로 잘 지내던 어떤 분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 사람이 왜 그러지?"하는 말이 거의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식탁에서 종이접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벌써 귀를 쫑긋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수군대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다 들으려고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성이 있어서 그런 말이 있으면 귀를 쫑긋 하면서 들으려 합니다.

그런 은혜의 낌새를 눈치 채고 저는 입에서 나오려는 말을 바로 주워담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들 앞에서 누군가에 대해 좋지 못한 말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자기 아이들을 망치게 하는 아주 나쁜 약을 그들에게 먹이는 셈이 됩니다.

잘 키워도 자녀들의 죄성을 통제하기 힘든데 나쁜 약까지 먹이면 되겠습니까?

자녀들이 그런 소리를 자주 들으면 어른을 우습게 알게 되고 통제불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녀 앞에서는 싸우지도 말고, 남을 욕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자녀들 앞에서 최대한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여주는 좋은 모습은 자녀의 일생을 지켜주는 위대한 영상을 남깁니다.

특히 부모가 예수님 믿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은 자녀의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항상 자녀를 잘 양육하게 위해 힘써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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