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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의 사명(중앙노회 임직설교) / 요 10장 11절 ~ 15절

by 【고동엽】 2022.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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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0장 11절 ~ 15절

연세대 설립자의 손자인 언더우드 3세(원일한)에게 당신은 왜 낯선 한국 땅에 와서 대를 이어 일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소명 때문]이라고 대
답했다. 그의 할아버지 언더우드 1세는 1885년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상투튼 청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다. 서울에서 출생한 그의 아
들 언더우드 2세도 뉴욕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한국에 되돌아와 경신학교 교사, 연희전문 교장 등 교육사업에 몰두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 관
헌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와서 활약한 [맹렬파]다. 그런가 하면 영국인 베셀은 1904년 러-일 전쟁 때 런던 데일리 뉴스특
파원으로 입국한 뒤 아예 한국 언론인이 됐다. 국한문판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데일리 뉴스, 국문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일제 침략정
책을 신랄히 비판했다.

때문에 옥살이를 하기도 했으나, 굴하지 않고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 1909년 양화진(노량진) 외국인 묘지에 한국명을 남겼다. 입양한 장애아의 치
료를 위해 전역까지 단행했다는 어느 주한 미군 장교의 [국경을 넘은 사랑]도 꽤 감동적이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출신인 폴 토머스 소령은
지체부자유아인 한국인 입양아의 보다나은 치료와 교육을 위해 촉망받는 군 신분을 포기하고 예편을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처럼 시공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건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실현하는 것은 역시 가장 숭고한[인간승리]이다. 한마디로 사명감이 투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자이다. 목회자로 기름부음을 받는 순간부터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을 위한 목회가 되어서는 안 된
다. 지난날에는 나 자신을 위하여 살았고 나를 위하여 다녔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며 사
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이젠 주님만을 위한 삶이어야 한다. 여기에 내가 개입되면 안 됩니다. 몽땅 주님만이 개입하시도록
철저히 내가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희생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몽땅 버리고 희생만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1) 자신만을 위한 행동도 이젠 주님만을 위한 행동이 되어야 한다. 희생입니다.

2) 자신만을 나타내는 언어도 이제는 주님만을 위한 언어가 되어야 한다. 희생이다.

3) 설교도 자기를 나타내는 설교가 아니라 주님만 나타내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

4) 자신의 어떠한 노력도 대가를 바라지 말고 자신이 희생함으로 하나님께만 그 대가 가 돌려져야 합니다.

5)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것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해야합니다.

나 자신을 위한 행동도 말함도 설교도 어떤 대가도 있어서는 안 된다. 오직 목회자는 주님만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명감당해야 한
다.

무엇을 하든지 거기에 내가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 나를 기름 부어 들어 쓰시는 하나님만이 개입되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위하여 자
신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전부가 되시기를 원해서 날마다 자신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의 흔적만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고, 죽는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다음으로 목회자의 사명은 기름부음 받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양떼를 먹이고 치는 목회자이다. 목회자의 양떼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입니다.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 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기름부음을 받는 두 분은 의로운 소리인고로 명
심하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목사 자신의 부동산이 아닙니다. 목사 자신의 사업체도 아닙니다. 교회도 내 몸도 내 것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
입니다. 주님도 교회를 가리켜 내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명심할 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목회자가 되고나면 양을 치고 먹이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임직을 받고나서 양떼가 없다면 하나
님 앞에 엎드려 진액을 짜내는 기도가 필요하고 능력을 받고 성령충만받아 양떼를 낳아야 합니다. 죽어가는 저 혼들을 하나님의 양떼를 만들고
그 양을 치고 먹이는 것입니다. 목사는 되었는데 교회도 없고 먹일 양떼도 없다면 어찌될 것인가?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목자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받았다면 양떼를 치고 먹이는 처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모님 한분을 모시고라도 외쳐야 합니다. 1977년부
터 목회를 시작했습니다만 아무도 없는 빈 자리에 집사람 한 사람 앉혀놓고 방석을 교회의 빈 공간이 없도록 깔아놓고 힘 있게 설교를 했었습니
다. 한때는 잠실에서 월로 목사님 두 분을 모시고 사례비를 받으며 목회를 했었습니다만, 현재는 충남 연기군에서 조그마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는 내조의 헌신적인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넓은 서울에서 답답하고 조그마한 시골교회로 가자했
을 때도 거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야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불평불만 없이 헌신적으로 내조를 다하고 있으며, 내게는 훌륭한 동반자
요, 동역자이며, 좋은 아내입니다.

목회자는 헌신적인 내조가 필요합니다. 부부가 마음을 같이하여 천국가는 그날까지 발을 맞추어 가야합니다. 자동차의 바퀴가 네게 인데 그중 하
나가 펑크가 난다든지 빠졌다면 자동차는 균형을 잃고 말 것입니다. 목회자는 내조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균형을 잡아주는 내조자 거기에
힘을 얻고 목회를 잘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목사로서 임직을 받고 양 무리를 치고 먹이는 교회가 없다면 하나님 앞에 와 노회 앞에서도 직무
유기입니다. 목사는 양을 치고 먹이라고 세운 것이지, 불순종하라고 기름 부은 것이 아닙니다. 이를 임직자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서 기를 때 여자로서의 보람을 느낍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워본 여인과 아이를 키워보
지 않은 여인의 차이는 큽니다. 아이가 있는 어머니는 항상 그 아이에게 관심을 쏟습니다. 먼 길을 떠나 있다가도 아이 때문에 급히 집으로 돌아
옵니다. 그러나 아이를 길러보지 못한 여인은 생각이 아이를 둔 엄마하고 다릅니다. 어디를 갖다가 늦게 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자식이 배고프겠
다는 관심도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가 있고 양이 있는 목회자는 교회와 양들의 생각 때문에 천리 길 먼 곳에 와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교회와 양떼를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준비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하며, 그 말씀을 주일날
성도들에게 치고 먹이는 것입니다. 이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명심할 것은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목회자가 있다. 즉 세속적인 목회자와 영적인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 교회 목회자가 세속적이면 그
교회 신자들도 세속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영적인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세속적인 목회자는 양떼는 없고, 염소들만 먹이다가 끝
날 것이다. 양들을 치고 먹이는 것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 가지고는 안 된다. 지식으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양떼들은 두 무릎으로 꿇고 가야합니
다. 기도 없이는 안 됩니다. 설교를 들어봐도 기도가 있는 분과 기도가 없는 분의 설교는 다릅니다. 이를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명심할 것은 목사와 장로는 똑같이 기름부어 임직을 받지만 목사와 장로는 다릅니다.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지만
장로는 성도들이 뽑은 하나님의 종이란 점입니다. 분명히 말해서 임명권자가 달라서 목사의 일이 따로 있고 장로의 일이 따로 있다. 시간이 없어
서 다 말할 수 없지만 바울은 이점에 대해 늘 강력하게 주장을 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
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고전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
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골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딛1:1) 하나님의 종이요 예
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행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 (행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행16: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교회의 장로는 목사를 돕는 사람이요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오늘 요 10장 말씀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목자입니다. 목자의 사명은 지도력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도력은 한마디로 선한 목자에 있습니다. 선
한 목자의 반대 개념은 삯꾼 목자입니다. 목자의 사명은 양들을 잘 인도하고 꼴과 물을 먹이고 편히 쉬게 하며 잠을 잘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삯꾼 목자는 양들에게서 젖과 가죽, 고기를 얻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양들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대합니다. 사람이
돼지를 잡아먹기 위해 먹이를 주고 전염병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지 돼지를 사랑해서 정성을 쏟아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 10장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지도력의 전형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선한 목자의 사명은 구원하는데 있다.

영웅보다 사람을 살리는 자가 먼저 돼야 합니다. 목자의 사명은 양들에게 풍성한 꼴을 먹이고 희망과 꿈을 갖게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데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참된 목자는 우리의 정문으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들어오는 자
는 도적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선한 목자의 사명은 양 우리의 문지기도 안다는 것이다.

양 우리는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양 우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데리고 우리에 도착하면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는 목자를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며 목자는 자기 양들을 안전하게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선한 목자의 사명은 양들의 이름을 일일 알고 부른 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성경의 관심사는 양들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나 양들을 잘 관리하느냐에 달여 있습니다. 양들의
이름을 새벽 강단에 엎드려 불러가면서 기도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양과 목자의 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또 하나는 진실한 지도력이
란 물질 중심이 아니라. 인격 중심에 있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양들은 더 이상 목회의 성공이나 부의 상징이 아닙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간에 양떼들이 잘 양육 받고 꼴을 잘 먹으며 평안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좋은 교회요 좋은 하나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

넷째, 선한 목자는 양들이 믿고 따라간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참된 목자의 모습입니다. 양들이 믿고 따른다는 것은 신뢰성 회복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과 위주나 결과 중심주의로 일
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영적 안목과 마음의 여유, 그리고 목자와 양의 진실한 관계가 자신에게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서로의 관계
가 의무와 채무의 관계인가, 사랑과 헌신의 관계인가에 대해선 목자와 양들의 관계가 말해주는 것에서 자명해집니다.

결론적으로 양과 목자의 관계에서 누가 더 중요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지는 자는 목사입니다. 양들은 사
납고 거칠 수 있지만 그런 양들을 순하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은 목사에게 있습니다. 목회자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
다. 오늘 임직을 받게 될 두 분은 목회자의 사명에 대해서 명심하시고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다.

기름부음 받고나서도 섬기는 교회가 없고 양떼를 치고 먹이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 직무 유기입니다. 오늘 목사로 임직을 받으실 두 분과 이곳
에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 예식에 동참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중
앙노회 노회원으로서도 최선을 다해서 섬겨드리는 목회자, 선한 목자의 사명, 리더십이 투철한 능력 있는 주의 종이 되시기를 교회의 머리가 되
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J-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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