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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 기쁨 (사66:10-14, 빌4:4-7)

by 【고동엽】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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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 기쁨   (사66:10-14, 빌4:4-7)


기쁨은 사랑과 더불어 성령의 열매입니다. 기쁨은 사람이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좋은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을 성령의 열매라고 한 까닭은 일반적인 기쁨과 구별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쁨은 육적인 욕구가 성취되었을 때 오는 것이라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은 영적 변화를 통하여 얻는 기쁨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기쁨은 현실적인 성취와 관계가 있다면 성령의 열매로서의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얻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쾌락의 추구


구약에서 보면 추수 때에 사람들이 기뻐하고, 또 전쟁에서 이겼을 때 기뻐합니다. 병들었다가 고침을 받았을 때, 그리고 특별한 축일이나 희생제사를 드릴 때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직장에서 승진하였을 때,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가 나왔을 때, 자녀들이 그 어려운 대학입시에 합격했을 때, 대단히 기뻐합니다. 결국 기쁨은 소원이 성취되거나 현재보다 낳은 조건이나 어떤 일이 발생할 때 느끼는 감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끝없는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의 성취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더 큰 성취를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기쁨은 언제나 일시적일 뿐입니다. 욕망을 가지고 있는 한 영원한 기쁨은 가질 수가 없습니다. 자기 집이 없던 사람이 조그마한 집을 마련하게 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에서 살다 보면 점차 여러 가지 불편한 점과 불만을 느끼게 되면서 좀 더 크고 좋은 집을 소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집을 가졌을 때의 기쁨은 사라지고 또 다시 욕망의 포로가 되어 기쁨을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 멈추어질 수 있는 곳이 어딜까요? 그곳은 천국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만족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에 이를 때 사람들은 가장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며 더 이상의 욕망이 없기에 그 기쁨은 영원한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은 바로 천국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곳, 영원한 기쁨이 있는 곳 - 그곳을 사람들은 갈망하며 찾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곳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아 버려 그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여기에 머물지 아니하고 그 끝없는 욕망이 바로 머물 곳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데 더 큰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난할 때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면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철학사전에 보니까 쾌락을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한 감정"이라고 하면서 "쾌락은 주관적, 개인적, 우연적이며 시간에 따라 일정치 않고 객관적 법칙성을 갖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건전한 오락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쾌락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쾌락이란 일정한 법칙이 없고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여기서 온갖 향락적인 퇴폐문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나열된 육적인 일들 즉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 술취함과 방탕함이 모두 육적인 만족과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약 중독자처럼 현대인은 쾌락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진정한 기쁨을 얻지 못한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얻는 기쁨


우리가 기쁨을 얻는 길 가운데 하나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면 큰 기쁨을 얻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서 서로 아끼게 될 때도 우리는 큰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젊은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면 마침내 결혼하게 됩니다. 그 사랑을 오래 간직하고 그 기쁨을 평생 맛보기 위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하여 살다보면 권태가 오기도 하고 싫어지기도 합니다. 마침내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혼하게 됩니다. 죽도록 사랑하여 결혼하였는데 이제는 죽도록 미워져서 이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혼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고 해도 부부가 서로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고 불만을 가진 채 그냥 참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친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고 아끼고 감싸주는 친구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남에게 사랑을 주기보다는 받으려는 입장에 서게 되므로 결국은 사랑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맙니다. 진정한 사랑을 통해서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영원히 사랑할 수 있고, 또 나를 영원히 사랑해 줄 상대를 갖지 못했기에 우리는 영원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누구나 영원한 애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무한한 기쁨을 공급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죄악이 그 길을 막아 우리가 그에게 나아갈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참된 기쁨, 영원한 기쁨은 하나님을 뵈올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바로 이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창조 때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던 피조물의 삶이었는데, 거기에서 떨어져 나오므로 우리는 기쁨을 잃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그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우리는 참된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길을 알지 못하고 그 방법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바로 이런 인간의 갈망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를 나타내시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신 구원의 계획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시대입니다. 따라서 그 때는 기다려야만 했던 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선포된 사실만으로도 이스라엘은 기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이사야서 말씀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66:10, 13-14)


고난 당한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장차 나타내실 위로를 바라보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장차 나타내실 위로를 바라보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의 회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온 인류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은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에 의해 전하여졌습니다. 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탄생은 정말 온 인류가 기뻐할 큰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오심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왔다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갈망해 오던 영원한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원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천국을 선포 하셨습니다. 물론 그가 선포하신 천국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생각하던 어떤 이상향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으며,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켜줄 그 어떤 것도 갖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천국이야말로 참된 기쁨을 인간에 주며, 그 천국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소원을 만족케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천국의 진행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가 오셔서 지극히 작은 자로 고난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또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다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시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부활하시므로 죽음을 극복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시므로 죄와 죽음을 극복하여 이제는 죄와 죽음이 문제되지 않는 천국이 실현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그 욕망은 모두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죽음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최후의 장소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바로 우리의 욕망의 최고의 성취는 아닌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이런 모든 욕망이 깨어져 나갈 때 그것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영혼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육적인 욕망이 사라질 때 진정한 영혼의 갈망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그 갈망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충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육적인 욕망은 사실상 보다 깊은 속에서 일고 있는 영혼의 갈망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혼의 갈망은 내버려둔 채 육적 욕망을 좇아 아무리 그것을 만족시켜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겉으로 나타난 인간의 모든 욕심을 제거하시고 영혼의 갈망을 채워줄 것들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소원은 이 땅에 있는 어떤 것들로는 채워질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늘에 속한 영적인 양식들만이 우리의 영혼의 소원을 만족시켜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가져오신 썩지 않을 양식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의 죄를 사하시므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햇빛처럼 쏟아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남김 없이 와 닿을 수 있도록 그 사랑을 가리우던 모든 죄의 구름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 저 사람에서 찾던 참된 사랑을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것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로써 가장 큰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리라." (요 16:22)


하나님을 만난 기쁨,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기쁨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던 천국, 우리가 만나기를 원하던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천국,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는 풍성한 사랑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기쁨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결국 이 기쁨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져오신 기쁨입니다. 성령께서 이 모든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믿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므로 그 안에 간직된 생명의 비밀과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깊은 기쁨의 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천국을 소유하였고, 지금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기쁨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 기쁨은 이제 우리 삶의 바탕에 깔린 것입니다. 다만 이 기쁨의 샘이 항상 솟아나도록 우리 영혼의 우물을 깊이 파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도의 어느 마을의 크리스찬들이 선교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우리의 우물은 이미 말라 버렸고 앞으로 넉달동안 비가 내릴 가망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 선교사가 대답했습니다. "보다 깊은 곳에 물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물 한복판을 더 깊이 파 보도록 하시오." 그래서 그들은 엿새동안 그 우물을 더 깊이 파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 그들은 기쁜 소리로 외쳤습니다. "우물에는 두 길쯤 물이 괴어 있습니다." 그들은 단단한 바위를 부수고 깊이 우물을 파 내려가 숨은 물줄기를 찾아 낸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 우물은 한번도 말라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이 우물에는 물이 풍족하였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주위에 모든 것이 마르고 바싹 탈 때에도 이 우물에만은 항상 물이 가득히 고여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졌습니다. 기쁨의 물줄기가 이미 우리 생의 깊숙한 곳에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깊이 파 내려가지 못하므로 때로 우리의 삶이 기쁨을 모르고 쓸데없는 근심 걱정에 휩싸여 메말라 있는 것입니다. 기도로 기쁨의 샘을 파 내려가십시오. 말씀으로 기쁨의 우물을 파 내려가십시오. 거기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기쁨의 생수를 길어 올리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삭막하고 아무리 메마른 바람이 불어온다 할지라도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는 기쁨의 생수가 여러분의 영혼 속에서 솟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삶의 표면만을 보면서 거기에 부는 삭막하고 건조한 바람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좀더 우리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간직된 기쁨의 샘물을 마시면서 표면에 부는 가뭄의 시련들을 극복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기쁨이 메말라 버렸지만, 성령이 가져오시는 기쁨의 샘이 우리 속에 있기에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이미 우리는 기쁨의 우물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그 우물에서 기쁨을 길어 올리십시오. 우리는 어리석게 이미 파 놓은 기쁨의 우물이 있는데도 그것을 퍼 올리지 않으므로 해서 목말라 하는 것입니다. 기쁨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근심 걱정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매일 우리가 생수를 마시면 우리 체내에서 모든 더러운 찌꺼기가 빠져나가듯이, 기쁨의 생수를 매일 마실 것 같으면 근심 걱정의 찌꺼기들이 다 빠져나갈 것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금년에 우리는 부지런히 성령께서 마련해 주신 기쁨의 우물에서 기쁨의 생수를 퍼 올립시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 있는 슬픔과 염려들을 씻어 냅시다. 우리 교회 안에 모든 거치는 것들을 말끔히 걸러 냅시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는 우리의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굳어진 얼굴에 활짝 웃음을 머금고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십시다. 그래서 기쁨의 물결이 모든 사람에게 퍼져 나가도록 하십시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신 증거가 될 것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유경재목사님 설교자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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