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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엡4:11-16)

by 【고동엽】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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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엡4:11-16)


창15:6절은“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하셨습니다. 요1:12절에서는“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합니다. 이는 바로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된 우리 모두에게 성경은 끊임없이 믿음을 요구합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입니다. 믿음 안에서 용서받고 믿음 안에서 구원받고 믿음 안에서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 믿음을 물으시던 주님은 이제 장성한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믿음을 넘어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들은 먼저 성경을 사랑합니다. 성경의 말씀이 송이 꿀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말씀의 맛을 모른다면 아직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들은 영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차원을 넘어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게 임한 용서,사랑,구원이 또 다른 나를 향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상대가 누구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면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종교인들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도 누구냐나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을 넘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차원을 넘어 교회를 사랑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안산빛나교회나 목사의 욕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마귀의 작전 중 하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두고 교회 사랑하는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교회에 실망하게 합니다. 교회와 갈등구조를 형성합니다. 교회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십니까?

교회는 제 2의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구원자요 메시야 된 그분이 구원역사를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33년의 생애에 많은 일들을 이루시니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덤에 가두었지만 예수님은 무덤을 열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이 다시오실 약속과 함께 하늘에 승천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늘로 승천하실 때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또 하나의 몸을 두고 가셨으니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을 대신할 정도의 의미요 가치가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신령한 공동체입니다. 그 가치는 무엇으로도 계산 할 수 없는 주님의 핏 값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 교회보다 더 귀한 공동체는 없습니다. 물론 신앙생활함에 있어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사이비성 교회도 있고 훈련되지 못한 목사로 인해 모범을 보이지 못해 세상으로 말미암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의 편에 볼 때 가장 귀한 존재이자 가치입니다. 문제는 주님이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 성도도 교회를 소중히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하여 주님의 여기는 가치만큼 성도들 또한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를 바라볼 때 가끔은 성도들조차 주님의 눈으로가 아니라 세상의 눈과 기준으로 교회를 판단하고 생각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가치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보면 교회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본질 가운데 왕성할 때에는 늘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겠다고 해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 합니다. 그냥 몸이 아니라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주님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수많은 지체들이 하나로 모두어 몸을 이루듯 교회는 주님을 구주로 고백한 수많은 성도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하나를 이루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한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반드시 머리의 지시를 받습니다. 주님을 머리로 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머리되신 주님의 원하심에 민감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성장할수록 주님의 원하심이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교회에 대한 원함에서 교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머리로 한 교회가 끊임없이 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하늘에서 주님의 뜻에 거역함이 없듯이 우리 안에서도 교회공동체가운데에서도 주님의 뜻이 온전하여지기를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가슴에 품은 성도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영광된 교회는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교회를 상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문제가 많다 합니다. 맞습니다. 교회 안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 문제 많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셨습니다. 이 영광된 교회안에 영광을 알았던 시편기자는 시122:6절에서 예수살렘의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성전중심의 사람 곧 교회의 평안을 위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시84:4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주의 궁정에서 한날이 다른 곳에 천 날 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시편기자는 또한 고백합니다.




   영광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생명체입니다.

본문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14절“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15절“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 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시라”하였습니다. 끊임없이 자라야 합니다. 목사의 기쁨은 성도의 성장입니다. 애가 애를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 생각하면 우리 성도님들께 감사할 거리가 많습니다. 철없이 목회해도 우리성도들이 많이 참아 주셨습니다.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의 특징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배로 움직이고 사랑과 용서로 움직이고 봉사로 움직이고 전도로 움직이는 교회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움직여야 할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베드로라도 잠시 그랬듯이 사단의 노리개가 되어 사단을 위해 움직이고 사단을 위해 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잘 자라는 아이나 건강한 아이의 특징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픈 것입니다. 가장 기본은 예배자로 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봉사가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됩니다. 봉사자가 먼저 예배자로 드려지지 않으면 어떤 봉사도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또한 예배자 다음에는 교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도신경에 보면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해 고백합니다. 이는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은 몸 된 지체들의 사랑과 용서의 교제를 원하십니다. 교제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단의 전략입니다. 신앙성장의 방법은 교제의 폭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 안에서는 철저히 섬김의 마음과 봉사자로 교회에 와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하고 교제는 서로를 향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나를 위한 수고와 헌신이 필요한데 이는 바로 섬김과 봉사자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합니다. 모든 직임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기에 다양한 직책은 있으나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교회 안에서 봉사자와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직분을 세우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에 있다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 이것은 목사만의 일이 아니라 온 성도가 함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출처/유재명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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