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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를 본 받아 부흥하는 교회 (살전1:8)

by 【고동엽】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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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를 본 받아 부흥하는 교회  (살전1:8)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을 통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행 17:1,2)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당시 바울은 무시아에 이르러 소아시아의 북쪽 지방인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성령이 허락지 아니하심으로 유럽 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행 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에서 커다란 선교적 성과와 함께 큰 핍박을 받은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약 3주간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시기 하여 소동을 일으키자 유대인들에게 쫓겨 베뢰아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도의 결과에 대해 몹시 궁금하게 생각하고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보내 소식을 들은즉 그들은 바울을 사모하며 믿음에 굳게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바울은 기뻐하며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자기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어 확고한 믿음으로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로 퍼져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러워하게 하고 그들을 본 받으려는 마음을 일게 해서 훌륭한 전도와 격려가 되었음을 칭찬해 줍니다.
1907년 처럼 부흥하는 교회가 되되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 받아 부흥하는 교회가 되자는 실천 목표를 정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교회의 부흥의 모습은 어떠 합니까.

    많은 환난 속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입니다.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당시의 데살로니가는 헬라 문화의 중심지로 향락 산업의 발달로 인하여 도시가 부패하고 타락함이 극에 달했던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약 3주간 만 그곳에서 전도하고 유대인들에 의하여 베뢰아로 쫓겨 갔습니다.
(행 17:5-10)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환난은 언제나 함께 하므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을 말씀 하시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베드로 사도는 환난은 성숙의 단계라고 합니다.
(벧전 1:6-8)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독일군 비행기가 하루에도 수십대씩 날아와 런던 시가지와 해안을 폭격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 런던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상한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식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그 꽃은 뉴질랜드 해안에 많이 피어있는 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꽃씨는 바람과 물결을 따라 영국에까지 날아와 땅 속에 깊이 파묻혔다가 폭격으로 흙이 뒤집혀 묻혀있었던 꽃씨들이 싹이 나서 런던 거리와 해안근처에 꽃밭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파괴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던 영국인들은 이 꽃이 피어남을 보고 전쟁의 파괴 속에서도 반드시 일어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 재건에 힘써 오늘의 영국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에게 뿌려진 생명의 말씀은 환난의 시련 속에서 소생하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환난 속에서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에 굳게 서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은 실로 바울의 영광이요 기쁨이었습니다(살전 2:20).
(살전 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뜻하며, 단 3주간 만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다는 본을 보여 준 것으로 장차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 속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고 성령께서 역사 하셨기 때문입니다.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어 역사 하는 교회는 생명이 있는 교회로, 그들의 마음은 각처에 소문이 나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소유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도와 주님을 본받아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살전 1:6,7)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려운 환난과 고통 중에서도 복음을 받아 그것을 믿고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주를 본 받는 변화된 삶을 통해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 훌륭한 점을 칭찬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행동 변화는 세상이 생각할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성도 자신들의 변화였습니다.
다음의 글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글이라 합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진정 자신이 먼저 변화될 때 빛이 되고 소금되고 향기 되고 편지 되는 역사가 함께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획기적인 변화였습니다.
북 아메리카 동부의 캐나다와 미합중국의 경계에는 거대한 폭포가 있습니다. 바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입니다. 이 폭포는 약 1만년 전에 형성되어 높이가 48m, 폭 800-900m로써 50-60m의 급한 벼랑을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장관을 이루는 명물이라 합니다. 더우기 주변의 아름다운 전망은 이 폭포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또 야간에는 온갖 찬란한 조명구들로 폭포를 채색하여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합니다. 이 웅대한 광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관광객이 이 장관을 보기 위해 몰려들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과 캐나다 양국 정부는 이 폭포의 거대한 힘을 이용하여 큰 수력 발전소를 세웠으며 엄청난 전력을 이용하는 이익을 누리고 있다합니다. 어느 날, 그 곳을 찾은 한 관광객이 이 웅장한 모습에 감탄하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굉장하구면! 저 위대한 물줄기가 가진 힘을 100% 이용한다면 에너지 위기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텐데 말야. '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천만에 그것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네. 뭔지 아는가? 바로 성령의 권능일세. 성령의 권능이 세상 사람들에게 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면, 에너지 위기는 커녕 죄의 위기도 없을 것이고 저수력 발전소보더 더 막강한 영혼의 전기가 발생되지 않겠는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동하는 변화된 모습은 온 데살로니가와 아가야에 짧은 시일 안에 널리 퍼져서 모두 부러워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살전 2: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이와 같이 변화된 생활은 교회 부흥의 최선의 방법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변화된 삶을 실천하며 사랑하며 부흥의 역사를 이루라고 권면 합니다.
(살전 3:12,13)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프리카의 마마쿼란드라고 하는 지방은 험악한 곳으로 유명했다합니다. 그곳에서 힘 꽤나 쓰기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헷텐탓 이라고 하며 그곳 사람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악명이 높은지 케이프 타운 주지사가 누구든 헷텐탓을 체포하는 사람은 미화 500달려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헷텐탓의 일당은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같이 사라지곤 했기 때문에 잡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로버트 모팻이란 선교사가 케이프 타운에 나타나서 그 험하기로 이름난 마마쿼란드 지방으로 선교활동을 하러 들어간다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케이프 타운의 주지사는 로버트 모팻 선교사에게 “헷텐탓이란 자의 일당은 악한 사람이므로 선교사님을 잡아서 죽인 다음 해골로 잔을 삼아 술을 마실 것입니다.”라고 경고를 했습니다. 모팻 선교사는 마마쿼란드라고 하는 지방에 들어가서 선교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목적하는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고 마마쿼란드 주민들이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선교 활동을 한 지 여러 해만에 로버트 모팻 목사님께서 처음으로 케이프 타운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헷텐탓과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케이프 타운 지사가 그들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입을 벌려 하는 말이 “기독교의 복음이 기적을 생산했습니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기적을 만드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피차간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고전 13장의 사랑의 시를 행동으로 실천할 때 예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계시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 믿음을 소문내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최고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전파되고 믿음의 소문이 나는 교회입니다.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성도를 통해 나팔 소리처럼 각처에 퍼짐으로 바울 사도는 그들의 믿음의 소문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생활로 인해서 복음이 널리 요란하게 천둥소리와 같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과 헬라와 소아시아에 퍼졌고 그들의 변화된 신앙생활의 소문이 각처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 복음이 받아들여져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생활에 변화가 생겨서 그 변화된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부러움을 생기게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부흥의 비결은 주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믿음의 소문이 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주의 말씀과 함께 소문이 잘 나면 교회는 부흥되고 소문이 잘못 나면 교회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삶에 적용하며 아름다운 소문이 나게 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할머니가 속이 아파 병원에 가셨습니다. 병명은 위(胃)가 안 좋은 것으로 나왔고 그래서 의사는 잔탁(위장약)을 드시라는 처방을 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속만 안 좋으신 게 아니라 귀까지 안 좋아 잔탁을 장닭으로 잘못 알아들었고 할머니는 착실하게 의사선생님이 내려준 처방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가서 장닭을 큼지막한 놈으로 사와서 이왕 먹을 것 인삼까지 넣어 푹 고아 먹었습니다. 안 그래도 속이 안 좋은데 기름진 닭에 인삼까지 넣었으니 탈이 날 수 밖에 없었고 병이 오히려 더 악화되자 이 할머니 화가 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선상님이 하란 대로 했는데 속이 더 아프니 어찌된 일이요?” 그러자 의사선생님, “ 드시란 약은 드셨습니까?” “하모!” “어떻게 드셨는데요?” “인삼을 넣어 푹 고아 먹었지!” 잔탁에 인삼을 넣어 고아먹었다니 기절할 일 아닌가요?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목사님, “나이 들어서 말씀보고 싶을 때 눈 어두워 못 보고, 귀 어두워 말씀 못 들고 한탄하지 말고 젊었을 때 성경 많이 일고 주님 일 부지런히 하십시오.” 하셨답니다.

  말씀의 전도는 열매를 맺습니다.
널리 알려진 영국의 대중전도자 스펄전(1834-1892)이 어느 날 택시를 탔을 때 기사가 '손님. 아주 오래 전에 손님을 모신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전 기억하지 못해 미안하군요.' 스펄전의 말에 기사는 주머니에서 빛바랜 신약성경을 꺼내며 정중히 말했습니다. '10여년 전이었으니 기억하시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요. 그때 손님께서 이 조그마한 성경을 주시며 읽어보라고 하셨지요. 저는 이 성경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전도하되 칭찬받고 존경받는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전할 때 모든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칭찬받게 된다는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당나라 장안에 송청이라는 소문난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약을 잘 지어서 소문났을 뿐 아니라, 약값이 없는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차용증만 받고 약을 지어 주어 소문이 난 것입니다. 먼 곳에서 온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차용증이 천장에 닿도록 쌓여도 찾아가 독촉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차용증을 연말이면 불태워 버리고 두 번 다시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안 사람들은 송청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기도 하고, 또 대단한 인물이라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송청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리석지도 않고 큰 인물도 못 된다. 약을 팔아 처자를 기르고 사는 한낱 약장수에 불과하다. 내가 약방을 시작한 지 40년, 차용증을 불태운 것이 수천 장에 이른다. 그 가운데 후에 고관대작으로 출세한 사람들이 비일비재하여 약값에 비해 분에 넘치는 보답을 해오기도 한다. 반면에 약값을 떼어먹고 도망친 사람도 적지 않으나 우리 식구들이 먹고 사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송청이라는 한 약장수를 통해 어떤 소문을 내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 차용증을 불태우는 소문난 약장수)

우리는 미디어를 의식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매스 미디어가 대중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를 위해 인쇄물과 테이프, 녹음기와 비디오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세상을 복음으로 흠뻑 적시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옳습니다. 원칙적으로 어느 누구도 이러한 야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것은 복잡한 전자 기계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조직화된 것도 아니고 전산화된 것도 아닙니다.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그것을 '거룩한 소문'(Holy gossip)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영향을 흥분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게가 하나님을 믿고 완전히 변화된 것을 아세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대요.'

  환난 가운데서 복음을 받고 본이 되는 삶을 살며 말씀을 전파하는 소문난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받아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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