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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하는 성결교회 (행 8:1-3)

by 【고동엽】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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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하는 성결교회   (행 8:1-3)

2007년도는 우리 한국교회에는 아주 의미 있는 해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 큰 이슈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평양대부흥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년 전 1907년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가 처한 아주 절묘한 어려운 시기에 성령부흥을 주셨습니다. 100년 전의 성령부흥은 그때 불운에 처해 있던 우리민족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 주셨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007년을 잊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2007년은 우리 성결교회가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일입니다. 이것 또한 우리들이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금년이 우리 성결교회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성결교단 100주년

100년의 역사는 큰 유산이고 동시에 자랑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때로 역사나 전통이나 뼈대가 소중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뼈대와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깁니다. 어떤 유대인은 “나는 아론의 자손입니다”하고 소개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유대인은 묻지도 않는데 “나는 레위지파 자손입니다“하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양반가문 자랑하던 그대로 유대인들도 역사와 뼈대를 중시합니다. 성경에서도 “네 선조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 “네 선조의 가르침을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 역사도, 뼈대도, 전통도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성결교단이 이제 100년의 역사를 맞이합니다. 성결교단이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작의 순수

19세기 말 시카고에서 무디를 중심으로 영적대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변화를 받고 교회로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1886년 시카고에 무디신학교가 설립되어 그 젊은이들을 양육합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 2만여 명 배출자 중에서 만 오천 명이 선교사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참으로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넓은 땅을 소유한 것도 복인데 그 많은 젊은이들이 복음을 들고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길보른, 카우만이 무디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 세계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졸업하자 1901년 무작정 동경으로 건너가 그곳에 신학교를 세웁니다.  

당시 우리나라 역사는 아주 흉흉했습니다. 1895년 민비가 시해당하고 10년 후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국가가 해체되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고종황제가 강제로 폐위당하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이 이루어집니다. 그때 우리민족은 희망을 잃고 미래를 잃고 공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 김상준 정빈 두 젊은이가 “이 시대에 이 민족이 살길은 오직 복음화 뿐”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선교사들이 세운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성령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가슴을 안고 1907년 공부를 마치자 귀국하여 거리에 나가 뜨겁게 전도를 합니다. 거리에서 북을 치고 외치며 예수 믿고 천국가라고 단순 전도법으로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먹혀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고 회심하고 거듭나면서 뜨거운 호응을 받게 됩니다.  

때로 너무 이론화, 제도화, 체계화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오늘은 전도법이 너무 이론화되고 제도화되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전도촛점을 흐리게 하고 변질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아주 단순방법으로 “예수 믿고 천국가라”고 외치는 것이 유일한 전도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먹혔습니다.

그 시대에는 길이 잘 안보일 때이고 미래가 불투명하였기 때문에 전도자들의 전파에 아주 쉽게 믿음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공허하고 또 마음이 순수하여 전하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성결교회는 그렇게 처음에는 결신자들을 이웃 교회에 그냥 보내 주었습니다. 그것을 15년 동안 순수하게 전도만 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많이 전도되니까 결신자들을 양육하고 체계적으로 훈련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마침내 교단을 조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15년 후 1922년에 비로서 성결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성결교회는 순수함이 있습니다. 큰 교단을 만들겠다는 욕심도 욕망도 없이 그냥 성령이 인도하심에 따라 순수하게 전도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결교회에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거리에 나가 북치고 전도하고 찬송할 때는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기에 그곳에서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방언이 터지고 신유의 기적이 수반되었습니다. 이것이 초기 성결교회의 전도하는 모습입니다.

역사의 순수

성결교회의 지난 100년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일제 때 너무 많이 압제를 당하였습니다. 신사참배 강요가 너무 힘겨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신앙인들이 피를 흘리고 수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서 하나씩 손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것은 한국의 천주교입니다. 천주교회는 대원군 때 제사거부 문제로 1만 명이 순교를 당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일제 때는 신사참배 거부문제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런 고난이 계속되자 마침내 교황청에서는 1932년에 제사제도와 신사참배를 민간의식으로 수용하라는 칙령을 발표하였습니다. 마침내 항복한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장로교회가 1938. 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가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총회가 마치자 대의원들이 신사에 가서 참배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장로교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오점입니다. 그런데 성결교회는 그 후 5년을 더 인내하고 버티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목회자들이 수난을 당하고 활천이 폐간되고 마침내는 1943년 12월 29일에 성결교단에 해산령이 내려지고 교회는 폐쇄되어 가마니 공장으로 공출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결교회의 지난 100년 동안 걸어온 수난의 역사입니다.  

1945년에 비로서 해방이 되어 닫혔던 교회 문이 열리고 회복되는가 싶었는데 5년 후에 다시 6,25가 터지면서 또 한국교회는 수난의 시대 맞게 됩니다. 그때도 성결교회가 타깃이었습니다. 아현동에 있는 학사가 그때 서울에서 몇 안 되는 5층 건물이었습니다. 높은 위치에 5층 건물이었으니 서울이 다 내다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공산군이 그 건물을 접수해서 본부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퇴각할 때는 그곳에 교역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인물들을 선별하여 납북하여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의 생사를 아직도 모릅니다. 그리고 공산군이 퇴각할 때 그 5층 건물이 유엔군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아서 지금도 보면 총탄자국이 많고 그때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그 건물에 쌓아놓고 공산군이 퇴각했습니다. 성결교회는 그런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그런 수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은 너무 평안합니다. 오늘의 문제는 너무나 평안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최대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탄이 아니고 안일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이 안일은 영이 죽게 만들고 의지가 퇴색하게 만들고 뜻을 소멸시키는 최대의 적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이 땅에서 “기독교를 박멸하는 유일한 방법은 핍박이 아니고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지혜롭지 못한 독재자들이 기독교를 어설프게 박해한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박해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모른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적당히 긴장이 있어야 좋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예수 부활 후 제자들은 성령을 충만하게 힘입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에 힘입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은혜를 입습니다. 그래서 그 뜨거운 마음으로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전도가 너무나 잘 먹혔습니다. 한번에 3천 명씩 회심하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몰려왔고 변화되었고 눈물로 탄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예부터 호사다마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그렇게 신나는 일이 계속되도록 놔두질 않습니다. 곧 바로 핍박이 시작되었고 사울을 중심으로 해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고 살기가 등등하여진 사울의 핍박은 거세어져서 그리스도인들을 마구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침내 사마리아 땅으로 이방 땅으로 도피하여 숨어들어 갔습니다. 전도의 과정에는,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이와 같은 고난의 과정이 수반됩니다.

그런데 그 핍박도 후에 알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였고 은혜였습니다. 핍박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피하여 여러 곳으로 도망하고 피난하고 숨고 흩어졌습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경멸하던 사마리아 땅으로 까지 피신하여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피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이 잘 타는 장작더미처럼 너무 성령의 불길이 뜨거웠고 전도의 결실이 나타났고 제자들이 너무 신나게 전도를 했습니다. 잘 타는 장작더미에 몽둥이로 한번 내리치면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불길이 확산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면서 더 이상 퍼지지 않으니까 핍박을 주셔서 강제로 퍼지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핍박도, 환란도, 흩어지는 것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은혜이고 섭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예루살렘에 핍박이 주어지니까 피신한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 마다 복음을 전하는 바람에 복음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복음이 전국으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는 효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성결교회에도 이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성장한 교단이 형성된 것입니다. 물론 성결교회만 고난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결교회가 고난을 더 당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재림신앙입니다. 성결인들이 당시 교회에서 강조하였던 예수의 재림을 믿고 다가오는 고난을 의연하게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결인들은 재림의 예수께서 오셔서 일본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를 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더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교단이 폐쇄되고 강제로 해산당하는 아픔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핍박이 성결교회가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결교회의 역사를 보면 가시밭의 백합화처럼 고난을 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순수

“성결신앙”, 얼마나 순수한 신앙입니까. 이 성결신앙에도 두면 즉 소극적 면이 있고 적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소극적인 면은 개인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신앙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면은 행동하는 신앙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나 한사람의 개인적 신앙만이 아니고 모두를 성결하게 하기 위한 행동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결교회에서는 그동안 전자인 소극적인 면을 강조하여 왔습니다. 그 결과 개인신앙에 치중하였고 나 한사람의 성결한 삶 유지에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순교자는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자신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타협하지 않고 거부한 결과가 순교로 나타난 것입니다. 참 좋은 유산을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교단이 지금까지 배출한 순교자가 공식적으로 170명입니다. 이것은 참 좋은 유산입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순교자들은 모두 내재적 성결신앙과 재림신앙으로 그 상황을 극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좀 아쉬운 것은 좀 더 넓은 성결화를 이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 신앙의 완성도 중요하고 나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 끝까지 버티고 순교한 것도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나 한사람뿐이 아니고 더 넓은 세상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더 넓게 힘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교단이 사회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고 크게 공헌한 것이 없는 것이 아쉬운 문제로 남습니다. 그래서 오늘 세상 사람들이 성결교회를 잘 모릅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그래서 100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볼 때 이제는 적극적인 성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성결신학은 적극적인 행동신학입니다. 즉 성결은 소금이고 빛이고 누룩입니다. 웨슬레는 자신이 성령을 받고 중생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열심히 영혼구원을 위하여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웨슬레는 개인적인 신앙으로 끝나지 않고 세상구원을 위해서도 부단히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스스로 소금과 누룩과 빛의 역할을 다하여 이 세상을 정화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웨슬레는 성결을 개인의 신앙으로만 끝내지 않고 성결운동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당시 런던을 중심으로 산업부흥이 일어나고 공장이 들어서고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런던은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웨슬레는 나만의 성결을 외치고 가만히 앉아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 영적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노숙자가 만연할 때 웨슬레는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마련을 위해서 뛰어다녔습니다. 빈민구제를 하고 사회정화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웨슬레는 영국에 영적 혁명을 일으켜 사회정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성결신앙은 이렇게 세상을 향해서 광범위하게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 운동이 결국은 미국으로 건너가 인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노예해방 운동으로 번져갑니다. 특히 그 당시 미국의 문제는 노예제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성결운동은 마침내 노예해방운동으로 번져나갑니다. 그러자 노예제도 논란이 뜨거워 첨예하게 대립하였습니다. 미국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노예제도는 죄라고 규정하고 노예해방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렇지만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남부지역에서는 노예제도를 옹호하였습니다. 양 논란이 첨예화 되면서 마침내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남북전쟁은 성결운동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잘못된 제도가 개혁되고 폐지되는 곳에는 언제나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예제도를 고치는데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되었고 마침내는 링컨의 피까지 흘린 후에 이 악법인 노예제도는 철폐되게 됩니다. 성결신앙은 이렇게 넓고 광범위하고 파괴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할 일


이제 100년의 역사를 맞이하는 우리에게는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복음전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유언하신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은 복음 전파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복음을 전파하라, 세례주고 제자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것은 우리 성결인들이 평생 하여야 할 일입니다. 이제 100년 역사를 맞은 우리교단이 심혈을 기울여 할 일이 이 일입니다.

또 하나는 이 세상에 공헌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100년의 교회 역사를 자랑만 할 일이 아닙니다. 100년의 역사를 맞았으면 그에 걸맞게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인재를 육성하고 우리민족과 사회와 우리국가를 위해서 공헌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우리교회가 이 지역에 세워진 것도 이 지역을 위해서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모두 합심해서 나의 영혼도 구원받아야 하고 내 이웃도 구원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사회와 민족을 위해서도 크게 공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회의 사명이고 100년을 맞이하는 우리 성결교단의 할 일입니다.


출처/이정익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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