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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성령으로 (요 3:1~15)

by 【고동엽】 202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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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성령으로  (요 3:1~15)

1. 니고데모의 질문

본문에서는 니고데모에 대하여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그는 바리새인이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금식하였고, 부림절 전날이나 속죄일, 예루살렘 함락을 기념하는 아빕월 9일에도 관례에 따라 규칙적으로 금식하는 사람들입니다. 감리교회를 Methodist church라고 하는데 그 뜻도 ‘규칙쟁이’라는 말에서 생겨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1절)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위층인 산헤드린의 70명 의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의결하는 유대의 최고 의결기관이었습니다. 지금의 국회의원이나, 장관에 해당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나 혹은 “나사렛 목수의 아들”정도로 부르며 절대로 랍비(선생)라고 부르지 않는데, 니고데모는 랍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2절)”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표적이란 바로 앞장인 요한복음 2장의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을 말합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큰 근심이고 걱정거리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돌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라고 하시어 물을 채웠더니 그 물을 떠다가 손님들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랍비(선생)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 영생에 관한 질문

그가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난외 주석을 보면 “위에서 나지 아니하면”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두 번째 모태에서 날 수 있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두 번째 예수님의 대답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절)”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는(중생) 방법을 ‘물과 성령으로’라고 하셨습니다.

① 물로 거듭남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물로 씻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씻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출애굽기 30장 20절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회막은 지금의 성전, 즉 교회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씻지 않고 회막에 들어가면 즉시 죽었습니다. 또 에베소서 5장 26절에는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하셨다고 했습니다.

죄를 씻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보혈로 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했습니다. 또 시편 19편 7-10절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도 소성케 하고 말씀의 능력이 우둔한 자도 지혜롭게 합니다.

또한 보혈의 능력으로 죄 씻음을 받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했습니다.

② 성령으로 거듭남

사람이 거듭나고 변화되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은 능력이 많으신 분입니다. 마태복음 1장 20절에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가 잉태한 것입니다. 또 에베소서 1장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너는 내 아들이며, 너는 내 자녀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들을 성령은 가능하도록 해주십니다.

마가복음 1장 8절에 세례요한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말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세례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성령을 물 붓듯 부어 주시는 시기입니다. 사모하기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도 성령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3. 성령으로 난 사람들

본문으로 돌아와서 6~8절에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DL 무디는 본래 시카고 거리에서 구두수선하며 구두 닦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성령을 달라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어떻게 강하게 역사하시는지 그의 1평 남짓한 가게에서 성령이 너무나도 강하게 역사하셔서 일곱 바퀴를 떼굴떼굴 구르며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았더니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자원하여 교회학교 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학교의 무디반은 날마다 늘어났지만 다른 반은 침체였습니다. 다른 교사들이 시기가 나서 그의 학벌을 문제 삼았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이 교회학교 교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습니다. 무디는 교회에서 쫓겨나서 거리 골목에서 교회학교를 계속했습니다. 무디 교회학교는 50명 100명 200명으로 자꾸 늘어났지만 교회 안에 교회학교는 겨우 10명 남짓했습니다. 무디는 학생들을 다시 데려오는 조건으로 교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사명을 감당한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 후에 그는 백만 명을 전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요한웨슬레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조지아 주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하여 실패하고 다시 영국의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런던의 한 거리(올드스케잇)를 지나는데 거리 부흥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참석한 웨슬레는 마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마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이 강림하시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웨슬레는 그날의 경험을 “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였다”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사람의 변화는 성령만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로 씻고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 받아 사명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시골 첫 목회를 하면서 오토바이를 2년간 탄 적이 있습니다. 시골이라 주유소가 없었는데 한번은 깜빡 잊어버리고 기름을 넣지 않아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여름에 오토바이를 끌고 가느라고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주유소로 다시 돌아가 기름을 넣었더니 얼마나 신나게 달리는지 여름에도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옷에는 공기가 가득 뒤로 날리는 것이었습니다. 성령 못 받으면 오토바이 끌고 가는 것 같은 인생이며, 성령 받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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