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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누가복음 1:8-23)
오늘은「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사가랴 제사장과 그리고 그의 부인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세례요한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맞기 전에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드러낸 세례 요한을 생각하는 것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세례 요한 그는 큰자였습니다. 큰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만큼 한 큰자가 일어남이 없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는 과연 큰자였으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또 슬기에로 돌아오게 하는 그런 일을 행했던 자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례요한이 우연히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태어나서 이같이 좋은 일을 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우리들에게 적용시킬 유익한 부분이 손실될 것 같습니다. 이 세례요한이 나게 된 데에는 세례요한 이전에 그 아버지가 있었고, 그 아버지의 무엇이 있었느냐? 제사를 드릴 때마다 분향할 때마다 그 분향 대에 올라가는 연기 속에다가 간절한 자기 소원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소원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고 하면 "아들을 주시옵소서." 늙기까지 아들이 없는 제사장 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제사장은 제사장이 제사장 아들 낳고 아들이 또 이어가고 이렇게 하는데 아들을 주시옵소서 라고 합니다. 자기 자식이 없으면 제사장 그 직(職)을 물려주지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일이 끊어지는가' 하는 그런 생각에서 꼭 자식을 이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하려고, 그래서 간구로 연기가 올라갈 때마다 자기의 소원을 연기에 실어서 하나님 앞에 보냈습니다. 제사 때에 보면 그 휘장 안에 지성소가 있고 휘장 바로 앞에 향로가 있습니다. 향로에 향을 피우게 되는데 그 연기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커텐을 통해서 지성소 하나님에게로 스며갑니다. 가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면서 그 연기를 맞으시면서 연기 속에 담겨진 소원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때를 놓칠세라 이분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자기가 분향할 때마다 간구를 했던 것입니다. 그 간구의 내용이 "아들을 주시옵소서." 어떤 아들이냐? "온 이스라엘을 주께로 돌이킬 수 있는 그런 지도력 있는 아들을 주시옵시고 또 기왕에 아들을 주실지면 평범한 그런 아들이 아니라 아주 비범한 큰 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아들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있었었고 그 기도를 따라서 이 아들이 나타났다 라는 것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3절을 보실까요.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그럽니다. 지금 아들 소식을 전하면서 이 아들 소식을 내가 왜 전하게 되었는가 라는 근원을 따져줍니다. 근원을 따졌는데 "너의 간구함이 하나님 앞에 이미 들린지라. 그래서 네 간구를 따라서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아들은 이스라엘을 주께로 돌릴 것이며 그리고 큰 자가 될 것이다. 그런 자가 이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이제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응답을 갖고 와서 사가랴에서 말을 해 줍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이 사가랴가 말하기를 "나는 늙고 내 아내도 나이 많으니 어찌하여 지금 아들을 낳을 수 있으리이까?" 하고서 이제 불가하다 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보면 이 사람이 오래 전에 아이 낳을만할 때 열심히 간구를 했습니다. 그 간구를 할 때에는 즉시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뭐 자기 부인도 늙고 자기도 늙고 이제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됨에 따라서 그저 불가하다 생각하고 간구해 두었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된 이들에게 천사가 와서 "이제 네가 간구한 그 아들을 이제 곧 낳게 될 것이며 낳게 되면 너도 기뻐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도 너를 기뻐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중간에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나타났느냐? 그 천사의 해명이 또 묘합니다. 네 기도한대로 되려면, 그런 이스라엘을 주께로 많이 돌리고 또 큰 자가 되려면 네가 구하던 몇십 년 전에 났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을 주께로 돌리려고 하면 주님하고 비슷한 때에 와야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날 때쯤에 나타나야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구체적인 기도를 하지 않고 내용은 아주 훌륭한 자식이 되도록 했으니 그때 즉시는 안 왔지만 "때가 되매 이 일이 이루리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20절 한번 보실까요.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어디에서 믿지 않았다고 하느냐 하면 18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18절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눅1:18-20)
"때가 이르면…" 그러니까 때가 있습니다. 이 이루어지는 때는 나의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기도의 내용에 대한 정답으로 때가 차야 되는 것이지요.
분향할 때마다 기도하면서 "아들 주세요. 그리고 큰 자로 주세요. 그리고 이스라엘 저 패역한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의인의 슬기에로 돌아오게 하는 그러한 지도자로서의 아들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으니 돌아가게 할 주가 안 보이는데 혼자 나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간구한 대로 주려면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되느냐? 주님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서 나야 때가 맞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막연히 구해 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직하시고 진실하신지라 구한 내용을 그대로 접수해 두시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잔뜩 지나가는 소리고 구해 놓고서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무엇을 구했는지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구하니 정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에 아주 곤란할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사람과의 약속도 그러하지 아니한데, 더군다나 무언가 얻으려고 하면서 이렇게 달라 하다가 저렇게 달라 하다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그 주님을 살아 계시다고 보겠습니까? '그냥 상상 속에 놓고 막 내가 말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적당히 믿는 사람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간구한 소리가 주께 들렸고 그것을 기억하고 계시는 주께서 간구의 내용대로 보내시니 때가 이르러야 됩니다. 언제라야 됩니까? 예수가 날 때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주께로 돌릴 자이니 예수가 없는데 어디로 돌릴 겁니까?그래서 예수님 나실 때와 맞추어서 아이를 갖게 만들어 주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간구한 내용들을 주께서 진실하시니 그대로 심각하게 받으십니다. 자녀들의 간구의 목소리는 우리가 건성으로 기도하고 기도 마치고 나올 때 뭘 구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주께서 그리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가랴에게 요한을 나게 하셨는데 이 사가랴는 자기가 늙었기 때문에 기도는 해 두었으나 이제는 그 기도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일을 알리요? 지금 내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더니 "때가 이르면 반드시 이루어지려니와 너는 믿지 못하였으므로 지금부터 이 일이 이룰 때까지 벙어리가 되어 벙어리로 있을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으시는데, 하나님께서는 도와주시는데 응답을 갖고 와도 '이게 내 기도던가?' 그래서 여러분이 많은 어떤 소원이 이루어질 수가 있을 겁니다. 뭐 건강이면 건강, 자녀문제이면 자녀문제, 여러 문제이면 여러 문제가 수 없이 수없이 해결이 될 것입니다.
주께 구하였고 주께서 간섭 안 하는 것은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 주께서 간섭하시는데 좋은 일이 있으면 나 잘됐다고 그저 친구들과 이웃들과 가족들과 즐거워하지 하나님이 손대어 주셨다는 것은 거의 생각하지도 않고 모릅니다. 그렇게 신뢰가 없으니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참 어려운 일이지요.
믿음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신의(信義)의 세계입니다. 의리(義理)의 세계입니다. 사람의 사이에도 의리를 지키지 못하면, 부모와 자식간에도 섬기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느냐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네가 보이는 것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안 보이는 하나님께 잘한다고 헛소리를 하느냐 그것이지요. 우리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자기가 구해 놓았습니다. 특히 구할 때마다 제사를 드릴 때 그 기도가 올려지는 향에다가 분향 때마다 구했습니다. 그것도 보통 기도한 것이 아니라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늙고 자격이 없어질 때에 끝났구나 생각하고 이제는 응답을 갖다주니 진실하신 주께서 갖다주니 웬일인가 싶어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내가 어찌 알리요?" "네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랬어요. 그는 벙어리가 됨으로써 이 일이 이룰 줄로 알았던 것이지요. 그가 벙어리가 됨으로써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자기의 벙어리는 이 일이 이루는 날에 풀어질 줄도 알았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지 못할 때 믿지 못할 때 벙어리 되게도 하고, 벙어리로 입 열리게도 하고 여러 가지 징조를 보여주실 때는 그 징조가 어떤 것으로 나타나든지 하나님의 약속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일하심은 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믿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사가랴는 벙어리가 된 채로 요한이 날 때까지 그리고 이름을 지을 때까지 있다가 그때가 이루어져서 유명한 세례요한이 나게 됨으로써 이 사람은 성공을 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또 다음 성경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상 3장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3장 1절-15까지 좀 긴 내용입니다만 읽어보겠습니다. 구약에 있었던 일과 신약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똑 같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신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제가 구약과 신약을 같은 내용으로 드릴까 합니다. 열왕기상 3장 1절부터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성에 두고 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이 필역되기를 기다리니라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1:1-13)
이제 이 솔로몬에 대해서 또 말씀이 나오는데 이 솔로몬은 하나님의 전을 아직 짓기 전에 기브온이라고 하는 산당 성소에 가서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가히 멀지 않습니다. 이 솔로몬 궁과 그 위치에 가 보시면 기브온이 그렇게 멀지 아니한데, 그 산당에 있는 그 성소는 아주 컸다 라고 "성전이 아주 큼이라" 그랬어요. 그 큰 전에 가서 이제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일천 번제를 드렸다 라고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일천 번제라고 했으니까 천번을 드렸다 이렇게 보면 무난하겠습니다만 이 번제를 드릴 때에는 1년 이하 된 1년 된 수컷만 드려야 됩니다. 그래서 송아지든지, 양이든지, 염소든지 또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 그것도 낼 힘이 없는 사람은 산비둘기, 이렇게 해서 번제를 불태워서 그 연기, 또 우리가 고기 집에서 고기를 구우면 연기 나듯이 그것을 이제 하나님 앞에 올리는 겁니다. 그래서 분향을 합니다. 고기의 기름타는 살 익는 냄새로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번제라고 하는데 이 번제는 주로 어떤 때 드리게 되느냐? 분향을 하지요. 이 향이 올라가지요. 이 향이 올라가는데 향을 올릴 때는 주로 간구를 담아서 소원이 있을 때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제라든지 뭐 다른 화목제 이런 것을 드릴 때에는 번제로 주로 드리지 아니하고 또 다른 방법으로 곡물을 드린다든지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이 태워서 연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내 소원을 들어주소서' 하는 뜻에서 연기를 드리게 되지요.
그래서 이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 라고 하는데 사가랴와 다른 것 하나는 뭐냐하면 제사장 사가랴는 자기가 전에서 향이 올라갈 때마다 백성들을 위해서 향을 피워 올릴 때마다 자기의 소원을 구체적으로 담아 올렸습니다.
'아들을 주시고, 큰 자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는 지도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을 구체적인 것을 향에다가 담아 올렸었고 하나님이 받으셨고, 그 다음에 이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렸다고 하는데 일천 번일 수도 있고 아니면 큰 산당이기 때문에 또 부자지요. 굉장한 왕이니까 얼마든지 재물을 구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한꺼번에 한 백마리씩 드렸는지도 모르겠어요. 거창한 제사를 드렸지요. 그러니까 솔로몬이 오는 날에는 이 산당에서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걱정이 없어요. 예물이 좋으니까요.
그래서 이 강단에서 예물 바쳐질 때에도 보통스럽게 바쳐질 때가 있고 특별헌금이 있습니다. 또 누군가가 어느 기관에서 특별 헌물을 했을 때 그것을 함께 올려질 때에는 하나님이 특별히 받으시지요. 보통과 특별은 역시 다른 것이지요. 그래서 절기 때에 헌금하는 것은 반드시 구분할 때 거기에 모든 소원과 감사와 감격이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도 없이 헌금한다면야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그것은 뭐 성금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고, 우리는 하나 하나를 다 의미를 담아서 하는 것이지요. 찬송도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찬송을 부를 때에도 자기의 형편을 맞추어서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이지요. 가사를 다 찾아보면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곡으로써 띄워 올리지요. 찬송 부르면 벌써 천사들이 임한다 라고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찬송 속에 가사를 쫙 뽑아가는 것이지요. 그런 믿음이 없이 그냥 내는 사람은 그저 길 가다가 그냥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는데, 이 우리 예배 중에 드리는 것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는데 이 번제를 드리면서 큰 소원 하나 있다는 것만 분향해 올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천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이것은 무슨 소원이 있어서 이렇게 특별 번제를 드리는가' 해서 직접 찾아 내려오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자기 소원하는 바가 없었으면 '뭐 받기는 뭐 받아요? 그저 내가 왕이니까 제사지냈지요' 이렇지 않습니다. 당장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참 대단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성실하고 정직하고 그리고 공의를 일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에 합하셔서 그를 왕으로 세우셨고 또 그를 사랑하사 그의 위에 대신 앉힐 아들을 주셨는데 많은 아들 가운데 이 부족한 아이 같은 저를 그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아버지와 달라서 우리 아버지 다윗과 달라서 지극히 작은 자라."
7절 이하 8절에 보면 "지극히 작은 자라 나는 출입을 어떻게 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고 그리고 또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기 때문에 다른 백성들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아마 내가 왕자니까 이렇게 뭐…" 한국으로 치면 "색동옷도 입고 별난 옷을 입고 이렇게 돌아다니지 내가 바깥에 나가면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나는 차이가 참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잘 하였지만 나는 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8절에 보면 "나는 백성의 수효가 많아서, 우리 아버지는 그저 어느 족속 누구 밑에 누구, 어느 통장 밑에 누구 낱낱이 다 외우고 잘 처리하였사오나 나는 백성을 헤아릴 수도 없고 어디까지 우리 나라 사람이고 어디까지가 남의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런 형편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큰 직분은 받았으나 큰 영광된 위(位)는, 자기 어머니가 그저 잘해가지고서 받아 내기는 내었지만 이것은 참 괴롭습니다. 자격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지 자격 없는 사람에게 큰 직분 주어보십시오. 그러면 아주 그것은 지옥이지요. 실력 있는 사람이 해야지요.
그래서 이 솔로몬이 자기로서는 감당할 수 없겠고 그 어머니는 "네가 어찌해서 네게 온 왕위인데 이놈아." 자꾸 이랬겠지요. 그러니까 이제 일천 번제를 갖다 드리면서 그저 하나님이 내 번제의 향을 받으신다면 내가 소원하리라 해서 구합니다. 그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예, 나는 다른 것은 아무 생각 없고 그저 내게 마음의 지혜를 주시사 백성들을 재판하고…" 그때는 사법부가 따로 있지 않고 왕이 다 재판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백성들의 송사를 받았을 때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도록, 선악을 정확하게 판별하여 정확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치리를 할 수 있도록 내게 지혜를 주시옵소서."라고 구했습니다. 이 사람이 속에서 말을 하지 않고 소원만 아뢰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려 오셔서 물을 때까지 이 사람 속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딱 "내가 무엇을 줄꼬?"라고 하니까 즉시 나옵니다. "내게 지혜를 주옵소서." 이 사람은 왜 번제를 드렸습니까. 구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번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번제 속에 이 사람은 '내 소원을 반드시 하나님이 들어 주셔야 되겠다'는 그런 갈망함과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에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찬송하나 불러도, 기도를 한번 드려도, 헌금을 하여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해 보십시요. 그 마음이 주께 알려질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이 구한 내용이 무엇이냐? "지혜를 주시옵소서."라고 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충격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충격은 무엇인고 하니 "내가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을 간구를 들어보았으나 주로 수(壽)를 구하더라" 그겁니다. '오래 살기를, 건강하고, 장수하고, 어찌든지 안 아프게 해주시옵소서.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래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 부를 구했다 그겁니다. 그저 '사업이 잘되게 해 주시고, 더 큰집으로 가게 하시고 물질을 많이 주시옵소서' 그것을 구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식들도 대를 이어서 다 잘되게 해 주소서. 모두들 그것을 구하였으나 너는 뜻밖에 너를 위하여 구하지 아니하고, 벼슬도 단단하게 오래 있게 해 달라고 구하지 아니하고, 부귀를 달라고도 하지 아니하고, 오래 살게 해 달라가도 하지 아니하고 남을 위하여 구하는도다. 너의 구하는 내용이 내 마음에 맞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구하는 것을 어찌 지체하랴? 즉시 줄 것이며, 그리고 여기에다가 다른 사람이 구하는 부귀와 영화까지도 네게 주리니 지혜와 부귀와 영화가 전에도 너와 같은 사람이 없었거니와 이후에도 너와 같이 누릴 자가 없도록 내가 주리라." 해서 얼마나 바쁘게 응답을 해 버렸던지 돌아서는 순간에 이미 지혜가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읽어보면 바로 제일 컷 케이스가 뭐냐하면 아이 둘을, 16절 이하인가요?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한 계집은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저와 함께 집에 있으며 아이를 낳았더니 나의 해산한지 삼일에 이 계집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왕상3:16-18) 하면서 그 내용이 뭐냐하면 그게 오늘 주제가 아니니까 간단히만 설명하지요.
그 당시에 아이 하나 낳아서 제 아들 하나 갖는다는 것 참 중요한데, 한 집에 두 여자가 살았는데 아무도 볼 수 없는데 서로 둘이 이제 해산을 도와가면서 낳은 것 같습니다. 한 2-3일 후에 한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랬더니 죽은 아이의 엄마가 그 아이를 자기 아이가 죽었다 하면 아주 손해가 불이익이 많으니까 죽지 아니한 아이를 끌어다가 '이것 내 아이다' 하면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생모는 아이를 빼앗기고 죽은 아이의 어머니는 남의 아이를 갖다가 내 아이라 하고 싸우게 되는데, 요즘처럼 유전자 감식을 한다든지 등등하면 찾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기술이 없지 않겠습니까? 내 것이라 하면 내것 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하필이면 분향하다가 지혜의 응답을 받고 돌아서자마자 두 계집이 와서 한 아이를 놓고서 서로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참 다른 때 같았으면 어떻게 판결했을지 모르지만, 이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가지고 가만히 듣다가 "안되겠구나. 둘 다 어미로다. 그러니 어찌할꼬? 이 아이를 누구 편에도 줄 수가 없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하리라." 하면서 그저 군대장관, 힘쎈 사람에게 큰 대칼을 가져오라 해가지고서 "이 아이를 둘로 쪼개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한쪽이 더 가지 않도록 똑같이 딱 쪼개어서 똑같이 나누어줄지니라. 그것이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니라."
해서 근엄하게 소리를 지르니까 그냥 칼을 뽑아가지고 이리 대어보고 저리 대어보고 이제 막 치려고 하니까 한 여인은 말하기를 "왕이여, 참으소서. 이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소서." 했고 하나는 "왕이여, 정확한 판단입니다. 쪼개 주소서. 갈라 갖겠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그 어머니의 참 사랑과 정을 보고 "이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소서." 하는 바로 그 어머니에게 이 아이를 돌려주었던 첫 심판을 하게 됩니다.
만약에 이 지혜를 받지 않았으면 솔로몬의 이 지혜로움이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즉시 주시므로 이같이 복을 받은 것을 바라보면서 세례요한이란 유명한 자가 난 것도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있었고 분향 중에 실어 올린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기도를 해 놓고 그 아버지는 믿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셔서 하나님의 때에 편리한 때에 그가 큰 자가 될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던 것을 기억하시고, 예수님께서 때를 따라 우리 가운데 전부 오셨어도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심을 기다리고, 오셔서 우리 가운데 평화를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모든 행할 것을 했을 때 여러분의 요청에 따라 오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적과 같이 강도와 같이 쳐들어간다 하지 않았습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일천 번제라는 특별 제사를 드리면서 그 향에다가 그냥 향만 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원이 있기 때문에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 제사에 실어 올린 그의 소원이 하나님 앞에 올라갔는데 소원의 내용이 하나님 앞에 알려지지 아니하니 찾아 내려오셔서 "무엇을 줄꼬?" "주여,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의 구한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주께서 지혜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도 더하여 준다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해가 가면서 우리가 헤아려 볼 때 많은 기도들이 있었는데 많은 기도들의 내용이 나의 수(壽)를 위한 겁니까? 또 나의 건강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나의 재물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내 자식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나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나의 유익보다도 남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 했습니다. 믿음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솔로몬은 귀한 것을 구하여 하나님 마음에 들었으므로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사실상 부귀와 영화는 주지 않아도 재주만 있으면 사는 것 아니겠어요? 지혜와 지식만 많으면 이 세상 누구든지 다 대부분 하나님이 막지 아니하시는 한 이기면서 살수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마침 성 씨(氏)에도 교육에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마태복음 6장을 한번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제 6장 30절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0-3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여러분 한번 가만히 1년을 돌이켜 보면서 그동안에 많은 기도가 있었는데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하셨는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얼마나 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과 명예를 가지고 전부 날 도우라고 했는지, 여러분 한번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구하고, 수를 구하고, 입을 것 마실 것 살집을 구하는 그런 사람들, 더군다나 그런 사람들이 중언부언하듯이 그렇게 계속해서 한말을 또 하고 또 그렇게 자꾸만 구한다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누가 구하는 것이라고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여러분, 여기에 이방인이라고 하니까 비 이스라엘인 비 유대인 이렇게 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뭐 유대인들 이스라엘인들은 그런 것 안 구하고, 저 무슨 이방나라 사람들은 구하고 그 뜻이 아닙니다.
부자인 부모를 둔 자식은 구하지 않습니다. 부자인 부모를 둔 자식은 이런 것 구하지 않습니다. 바깥에서 지나가는 객이 구하는 것이지요. 나그네가 구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지 제 자식은 이런 것 구하면 그것은 약간 이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의 백합화도 키우고 꽃피우고 공중에 나는 새들도 농사하지 않아도 곡간에 들여놓지 않아도 다 입히시고 먹이시거늘 하물며 자기 백성 자기 자녀일까 보냐?" 하나님께서 부요하시고 지금도 충분히 역사하시는 것을 믿는다면 어떻게 제 자식이면 당연한 것을 그것을 기도하겠느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이방인들이 자기 성씨의 아버지도 아니고 자기 집도 아니고 길 가다가 혹시 망해가지고서 머슴으로 들어온 사람은 하루하루 눈치보면서 열심히 충성하지요. '이렇게 열심히 하면 오늘 저녁에 먹을 것 주고 또 1년치 삯을 주겠지' 열심히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열심히 합니까? 먹고살려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이방인이 하는 겁니다. 그것은 머슴이 하는 것이지요. 종이 하는 것이지요.
자녀는 어떻습니까? 밭에 가라고 했는데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갈 수도 있는 게 자식입니다. 그리고 또 안 간다 한 놈이 나중에 또 생각이 변해가지고서 아비가 가라는 말도 안 했는데 가는 게 자식입니다. 여러분, 이것 잘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방인으로 삽니까? 자녀로 삽니까? 믿음이 작은 자는 하나님을 두고도 '먹을 것 주세요. 입을 것 주세요. 건강주세요' 그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과 나 사이라면 믿음이 없는 자라는 것이지요.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이방인이라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로 말미암아 이방인이 아닌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방인이 아니면서, 자녀이면 때로는 게으름 부릴 수도 있어요, 아버지가 하라고 해도 '아버지 싫소이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방인은 '가겠습니다' 해 놓고 안가는 수가 있다 그겁니다. 우선 겁이 나서 그저 대답만 해놓고, 그러나 자녀는 안 가겠다 해 놓고 나중에 가서 한다는 겁니다. 왜 하는 겁니까? '아버지 일이니까 해야지 뭐. 우리 집 일이니까 내일이니까 해야지' 하고 간다는 겁니다. 그러나 많은 이방인들은 집에 들어와서 종으로 사는 사람들은 '열심히 하면 삯 주겠지' 물론 열심히 하면 삯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열심히 해서 받은 삯으로 부요해졌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는 이방인의 관계입니다. 그 정도에 그치지 마시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 인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방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건강을 지키시고, 내 출입을 지키시고, 내 자녀를 지키시고, 내 수를 지키시고, 나의 모든 일을 지키시는 것은 내가 걱정하기보다도 누가 합니까? 아버지가 걱정하는 겁니다. "그는 능하시니 모든 것을 걱정하니 내가 무슨 걱정을 하리요?" 그러나 걱정하여 매일 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이방인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닌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만 염려함으로 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더 필요하면 '주시옵소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떠나갔던 둘째 아들이 "내 분깃을 주시옵소서." 그것은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종은 결코 그리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다 망가뜨리고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그런 아들이 그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지, 집안에서 끝내 떠나가지 아니하고 열심히 했던 종들은 마지막 때에는 상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이방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자녀인 것처럼 확실하시고 평강에 차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처하든지 나의 문제를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걱정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교회가 성정해야 할텐데, 주의 종들이 어려움 없이 영감 충만하게 목회를 잘 해야 할텐데,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아주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야 할텐데…' 그런 기도가 1년 중에 가득 차야 했을 터인데 솔로몬 때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모두 다 자기 유익을 구했으니 하나님은 항상 슬펐던 것입니다. "어찌 나는 저를 낳았거늘, 나는 저를 아들이라 딸이라 하거늘, 나는 나의 참 아들 참 딸이라고 하건만 어찌 저는 기도할 때마다 남으로 알고 있는가? 믿음이 없는 자가 많으니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 이방인의 관계가 아닌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마시고 이해를 마감하시고, 염려하지 말고 내년을 맞이해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는 소소한 내 문제는 아버지가 미리 다 알고 계시니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상으로 충분히 주실 겁니다.
염려함으로 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겨우 먹을 것만 주시겠지만 염려 없이 일하는 자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하고 주시기 때문에 내 문제는 걱정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나라의 일을 함께 염려해 보는 기도를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으면 주께서 솔로몬에게 하심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부분을 응답해 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부귀와 영화도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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