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교회를 두신 이유 (행 2:36~47)
(사도행전: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러분! 지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마 심란하셨을 줄 압니다. 멀리 미국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 때문에, 그것도 범임이 한인 청년이기에 많이 착잡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며칠 동안 마음이 아프고 심란해서 혼났습니다. 한 인간으로, 자식을 기르는 부모로서, 같은 한국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목사로서 이런 저런 착잡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그가 한때 한인 교회를 다녔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 영혼을 놓쳤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의 무서운 범죄를 두둔해서가 아니라, 아쉬운 마음 때문입니다. 그 영혼이 얼마나 방황했을까,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러다 결국 사탄에게 사로잡혀 미치광이처럼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주변 사람들도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돌봐 주었을 텐데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원인은 하나입니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공허한 영혼 속에 죄악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다 한꺼번에 폭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착잡해 하던 중 문득 혼혈인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주한미군 흑인 병사와 클럽 여종업원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일찍 이혼했습니다. 가난하고 모든 게 서툰 홀어머니와 미국 땅에서 살았으니 그 성장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도 왕따 당하고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증오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을 딛고 당당히 일어났습니다. 일약 스타가 되어, 이제는 오히려 불우한 혼혈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살인범 조승희와 하인즈 워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오직 한 가지! 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난 그 차이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교회의 사명을 절감하게 됩니다. 세속주의 문명사회에서 점점 더 황폐화되어가는 영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님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물질이 부족해서, 지식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확실히 만나면 그 영혼이 참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고난이 있어도 이겨냅니다. 인생의 참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천국의 영생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전부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희망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다하면 이 세상에 희망이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그 본질과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에 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부디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가, 그리고 우리교회가 주님 앞에서 사명을 재확인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 행복을 나눠주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 신약 시대 최초의 교회가 설립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교회인데, 이 교회를 가리켜 초대교회(初代敎會 Early Church)라 부릅니다. 이 교회의 모습은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원형(原型 Prototype), 즉
모델입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모습은 이래야 된다고 기준을 잡아준 교회인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세워진 것은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신 후 오순절(五旬節 Pentecost) 절기 때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즉 예수님이 못 박힌 날 이후 50일째 되는 날인데, 그 날 성령님이 강림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절(聖靈降臨節)이라 부르는 겁니다. 성령이 강림하자 성령 충만 받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나가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무리들, 조롱하던 무리들, 무심했던 무리들이 이제는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쩔 줄 모릅니다. 그때 베드로가 안내해 줍니다. 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말을 들은 무리들이 어떻게 합니까?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41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말이 그렇지 3천 명이 얼마나 많은 숫자입니까? 3천명 회개는 정말 대단한 사건입니다! 기적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모이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이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이룬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교회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살펴봅니다.
[1] 교회의 정의 - 예수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나타내는 성경의 단어는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입니다. 에클레시아는 εκ(~로부터)와 καλεω(불러내다)의 복합어입니다. 그러니까 에클레시아는 세상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조직도 아닙니다. 사람들, 즉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肢體 Members)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특히 교회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고전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엡4:15 “ ...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또한 교회는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의 공동체이므로 세상에서 천국의 모습을 가장 비슷하게 보여주는 곳입니다. 비유하자면 교회는 천국의 대리점(Agency), 천국 대사관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 지체로서 예수님의 대리인(Agent)인 셈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손과 발 역할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교회에서 천국의 기쁨을 맛보고 예수님의 대리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르고 천국도 모르지만, 교회와 성도들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 성도들이 불완전한 것처럼 교회도 불완전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정말 천국을 닮은 좋은 교회를 만들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합니다.
[2] 교회의 중요성 -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
여러분, 교회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인간 존재의 특성 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적인 존재‘(Spiritual Being)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입니다. 한편 인간은 혼자 살지 않고 모여서 삽니다. 즉 사회적 존재(Social Being) 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도 중요합니다.
그러데 시대가 세속화되고 개인화되면서 점점 하나님과의 접촉, 사람들과의 접촉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고독하고 외톨이가 되어 갑니다. 군중 속의 고독입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가 없습니다. 가족 사이에 불화와 갈등이 있으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시카고 대학 내셔널 오피니언 리서치 센터의 조사 자료를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성인 남녀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친한 친구 한 명도 없는 사람이 1985년에는 10%이던 것이 2004년에는 24.6%에 달했습니다. 친구 있다면 몇 명인지 조사하는 질문에 1985년에는 평균 3명이었는데, 2004년에는 평균 2명으로 줄었습니다. 최근 신문을 보니까 미국 대학생 중 13%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도 심각합니다. 젊은 층에서 은둔(隱遁族)이 점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현상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늘어만 갈 겁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생활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함과 동시에 성도들과 잘 어울려야 합니다. 그게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3대 원리가 무엇이죠?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입니다. 교회 중심은 수직적 관계와 더불어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를 포함합니다. 그런고로 정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교회 생활에 충실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세요. 교회는 우리 성도 각자에게 마치 물고기에게 물과 같은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성도는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잘 안 됩니다. 좋은 물에서 노는 물고기가 싱싱한 것처럼 좋은 교회 성경적 교회를 만나는 게 축복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소속된 교회를 천국을 닮은, 정말 좋은 교회로 만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지상에는 완전한 교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3] 교회의 본질과 사명 - 나눔의 공동체
그러면 과연 교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일까요? 교회의 본질과 사명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하면서 신앙과 삶을 나누는 공동체!
초대예루살렘 교회를 보면 세 가지 모습을 가진 공동체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도 여전히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① 은혜의 공동체 :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이 열심히 모였습니다. 성전에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말씀을 배우고, ... 이런 모임을 통해 그들은 신령한 은혜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놀라운 기사와 표적들이 생겼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문제가 해결되고 등등 ... 42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 ”
그렇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영혼이 기쁘고, 생활에서도 축복을 받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열심히 모여야 됩니다. 혼자서도 은혜를 받지만 모이고 접촉하고 나누면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② 사랑의 공동체 :
초대교회는 물론 특별한 상황에 처한 시대였지만, 완전히 사랑으로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44절~45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절. “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한 마디로 말하면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역사(役事)가 나타난 겁니다.
당시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 문제 때문에 쫓겨나고 박해받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 나누고 위로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재분배가 이뤄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령의 은혜로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분배를 강조하지만, 강제로 개인의 소유를 빼앗아서 분배하려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칼빈은 교회를 가리켜 이렇게 비유합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품이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고 나누고 사랑하고 ... 이게 교회의 모습입니다. 헌금도 그런 겁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고 모아서 교회의 공적인 일에 사용하고,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복음을 전하는 데 쓰는 겁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 조심해야 됩니다.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는 예수님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의 비폭력 무저항 정신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유래한 겁니다. 그런데 그는 교회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번은 친구 영국인 선교사의 권면으로 큰 맘 먹고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유색인종이라고 문 앞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로는 영영 교회가 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런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그 안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위로 받고 격려 받을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③ 사명의 공동체 :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성도는 그 지체 손과 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상에서 하시던 일, 하고 싶으신 일을 우리가 성령의 권능 받고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 증거입니다. 47절. “ ...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복음 증거로 믿는 성도의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복음 증거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 전도(傳導 Evangelism)는 동일 문화권(同一文化圈)에서의 복음증거를 말하고. 선교(宣敎 Missions)는 타 문화권(他文化圈)에서의 복음 증거를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초대예루살렘교회가 다 좋았는데 한 가지 선교에 취약했습니다. 그들은 행1:8 선교 명령을 예수님께 직접 받지 않았습니까?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도 예루살렘 안에 머물며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스데반의 순교 사건(사도행전 7장)을 허용하심으로 예루살렘교회를 흩으십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비로소 선교하게 됩니다. 그 기록이 행8:1입니다. 행8:1 “사울이 그(=스데반)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교회와 협력하여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개인의 인생이 변화됩니다. 영생 얻고 복된 인생 됩니다. 가정이 변화됩니다. 사회가, 국가, 민족이 변화됩니다. 얼마나 큰일입니까? 공허하게 애국 애족이 어떻고, 인류 평화가 어떻고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복음 증거는 그 모든 것의 실제입니다.
[4] 교회의 지체 - 성도와 직분자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가 일꾼이 되어 협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리더가 필요합니다. 직분자들입니다. 목사나 전도사 등 교역자도 필요하지만, 성도들 중에 직분자가 나와야 합니다.
초대예루살렘교회가 좋은 교회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사도행전 6장) 구제하는 일로 불공평 시비가 생겼습니다. 사도들 몇 사람이 많은 성도들을 섬기다 보니까 손이 모자라 생긴 일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웁니다. 집사(안수집사) 7명이었습니다. 직분자를 세워서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자 교회가 평안하고 더욱 부흥했습니다.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 ” 이래서 직분자들이 필요한 겁니다. 계급도 감투도 아닙니다. 섬기는 일꾼으로 앞장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성도들이 많아지면 질서가 필요합니다. 조직도 필요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제각기 일을 하면 혼란이 생기고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려 가십니다. 신정주의(Theocracy)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사람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동참하는 민주주의(Democracy)가 좋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정주의이면도 동시에 민주주의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일하되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고 교회를 운영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신정적 민주주의(神政的 民主主義 Theocratic Democracy)인 것입니다.
신정적 민주주의는 곧 대의제도(代議制度 Representative System)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교회를 운영하도록 하는 겁니다. 장로교회(長老敎會 Presbyterian Church)는 대의제도를 갖고 교회를 운영하는 교회입니다.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민주주의 대의제도를 채택하고 잇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장로교회에서 유래한 겁니다.
특별히 직분자 중에 장로가 중요합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대표 기관이 필요합니다. 치리회(治理會 Governing Bodies)! 이것이 곧 대의 기관입니다. 개 교회에는 당회(堂會 Session), 지역의 여러 교회에는 노회(老會 Presbytery), 전국 교회에는 총회(總會 General Assembly)가 치리회로 교회를 이끌어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위해서는 치리회로 당회를 주신 겁니다. 당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됩니다.(당회장=목사, 당회원=장로) 교회와 교인을 대표하므로 모두 투표로 선택하는 겁니다. 사실은 목사도 장로입니다. 교훈장로라고 부르죠. 목사(Pastor)는 교훈장로서 교훈권과 치리권을 행사합니다. 장로(Elder)는 치리장로(시무장로)로서 치리권만 행사합니다.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목사가 하고, 교회 운영은 목사와 장로가 협력하여 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로 직분은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의 거의 모든 문제들이 당회의 결의를 통해 이뤄집니다. 당회는 배가 항해함에 있어서 뱃머리와 같은 겁니다. 뱃머리가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배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당회를 통해 교회 전체가 움직이게 됩니다.
오늘 새로운 장로님들을 세우는 선거를 실시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현재 장로님들과 새 장로님들이 교회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합시다. 위에서 말씀드린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으로! 물론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순종하고 따라가며 협력해 주셔야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선거를 통해서 우리교회가 더욱 더 성경적인 교회, 천국을 닮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개개인이 은혜와 사랑이 풍성한 신앙생활 하면서 많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복음의 사명을 함께 감당함으로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상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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