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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3) (마 16 : 13 - 20)

by 【고동엽】 2022.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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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의 열쇠(3)   (마 16 : 13 - 20)

예수를 믿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는 분명하고도 반듯한 목적을 가지고 믿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뜻밖에 예수를 왜곡된 목적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믿는 목적을 분명하게 하고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예수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가 이야기 하는 구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독교 신앙을 통하여 얻으려고 하는 구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핵심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빼놓고 구원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시오 축복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를 우리를 구원의 상태라고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상태를 우리는 사망의 상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세상을 다 얻어도 하나님을 잃으면 죽은 것이요, 세상을 다 잃어도 하나님 한 분 잃지 않았으면 그는 산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에서부터 만 가지 죄가 시작됩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유혹한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였습니다. 그 죄를 통하여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들에게 생명과 축복이 떠나고 사망과 저주가 임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되어있는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다시 자신의 주인과 하나님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과 삶 속에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다시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이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시간이 있습니다. 구원의 시간을 미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그것을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의 시간은 미래가 아니라 영원입니다. 영원은 미래가 아닙니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죽은 후에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영원까지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살아서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살아서 믿는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의 역사와 축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영역도 그런 면에서 하늘만이 아닙니다. 구원의 영역은 땅을 포함한 하늘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내세적인 것이며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죽어서 천당 가는 것’으로만 이해하여 왔습니다. ‘죽어서’라는 말은 내세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천당’ 또는 ‘천국’은 땅이 포함되지 않은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불완전한 구원의 이해입니다. 구원은 죽어서부터가 아니라 살아서부터이고 구원은 하늘이 아니라 땅과 하늘을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당’과 ‘천국’ 또는 ‘하늘나라’라는 표현보다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 더 완전하고 완벽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구원은 영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적인 동시에 육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셨던 것과 같이 구원도 영적인 동시에 육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고백에서 부활에 대한 고백을 할 때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육의 부활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완전한 기독교의 구원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구원관은 1세기와 2세기에 나타났던 영지주의 (Gnosticism) 이단의 구원관과 같은 것인데 영지주의자들은 세상을 물질계와 영계로 나누고 영계와 영적인 것을 선한 것으로 보았고 물질계와 육적인 것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 보고 죄악시 하였습니다. 때문에 저들은 이 세상을 악하고 천한 것으로 보아 이 세상을 창조한 구약의 하나님을 최고의 신이 아닌 낮은 신(the demiurgus)이라고 까지 주장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뜻밖에 우리들 중에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를 좀 열심히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은 그리고 열심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물질과 세상에 대한 욕심이 깨끗한 영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 속에 있는 물질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 위하여 그것과 싸웁니다.

그러다가 착각하여 물질과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싸우지 아니하고 물질과 세상 그 자체를 악한 것으로 보고 그것과 싸웁니다. 그리고 무조건 물질과 세상을 악한 것으로, 기만적인 것으로 보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질과 세상에 치우쳐서 그것에 대한 욕심을 신앙을 통하여 채우려고 하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들 속에는 물질과 세상에 대한 원죄적인 본능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의 신앙이 기복적인 신앙이 되는 것에 대하여 경계를 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에 대한 경계가 지나쳐서 우리의 신앙이 무조건 물질과 세상을 악하고 기만적인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적으로 빠지는 것에 대해서도 똑같은 경계를 하여야만 합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구원을 얻으면 우리의 영이 구원을 얻습니다. 영의 구원은 영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영을 불어 넣어 주시는 것을 통하여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과 생각과 철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점점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철학입니다. 결국 인생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삶의 문제는 결국 철학의 문제입니다. 인생관의 문제입니다.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저는 구원을 철학과 인생관과 가치관의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저는 영적인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철학과 관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육의 구원을 부정하거나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철학을 갖게 되는 영적인 구원을 육적인 구원과 비교하기 싫습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구원에 비하면 육적인 구원은 바울의 말과 같이 배설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수 믿는 것을 통하여 가장 욕심을 내는 것은 바로 이 영적인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얻게 되면 사실 세상과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세상적으로 성공하거나 부한 사람이 별로 부럽지 않습니다. 부럽지 않음으로 저들의 부한 생활과 성공에 대하여 시기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성공한 사람과 부한 사람 꼴을 보지 못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저들이 미워하는 비판하는 사람과 똑같이 세상과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복주의자들과 같이 물질과 세상에 대하여 연연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물질과 세상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악한 것으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육의 구원도 믿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육의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육의 문제는 건강과 물질 그리고 세상적인 성공과 형통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육의 구원은 세 가지 방법을 통하여 해결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첫째는 죽음입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완전한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 세상은 완전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배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죽음을 통하여, 역사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통하여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완벽한 육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애통하는 것이 없습니다. 고생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파하는 것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가난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육적인 불균형과 불완전이 회복될 것입니다.

둘째는 정신적인, 철학적인 극복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말 영적인 구원을 얻고 그 구원의 축복을 아는 사람은 모든 육적인 문제를 정신적으로 철학적으로 이미 극복을 합니다. 영원한 것도 아닌,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잠시 약하고 가난한 것에 대하여 저들을 별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불편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영적인 구원을 얻는 동시에 사실은 육적인 구원도 얻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구원을 얻어도 여전히 가난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구원을 얻어도 여전히 병약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영적인 구원을 얻은 사람에게는 그것들이 더 이상 큰 장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들은 믿음으로 육적인 문제들을 육적으로 회복하기 이전에 이미 극복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휠체어를 타고 매주일 출석하시는 오재호 장로님은 아무리 예수를 열심히 믿으셔도 아마 평생 휠체어에서 내려오시지 못하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이미 그 육체적인 문제에서 구원을 받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 휠체어가 오 장로님을 구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오 장로님이 영적으로만 구원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육적으로도 구원을 얻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셋째는 말 그대로 육적인 극복입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 예수를 믿으면 육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영적으로, 철학적으로,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그냥 육적으로도 회복이 됩니다. 저는 그것을 인정하고 긍정하고 싶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의 열쇠가 이 면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땅에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말씀 속에는 영적인 것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육적이고 물적인 것 까지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육적이고 물질적인 회복에 또 눈이 멀어 영적인 생활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조심한다고 무조건 그것을 부인하고 멀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축복으로 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로 알고 주님과 사람과 세상을 위하여 바로 쓰는 것은 옳습니다. 제가 책과 설교를 통하여 끊임없이 여러분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과 제 설교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그와 같은 은사들을 받으셔서 오천명분을 혼자 깔고 앉아 먹는 사람이 아니라 오천명을 먹이고 섬기고 축복하는 삶을 사시는 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천국의 열쇠는 바로 그 구원을 상징하고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미래적인 동시에 현재적인 것입니다. 구원은 하늘인 동시에 땅입니다. 구원은 영인 동시에 육입니다. 그것이 우리 기독교가 말씀하는 구원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욕심을 따라 함부로 살면 망하게 됩니다. 죽어서만 망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도 망하고, 하늘에서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도 망하고, 영적으로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망합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으로 자신의 주인을 삼으며 그 분의 뜻과 말씀으로 삶의 길을 삼고, 철학으로 삼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살면 삽니다. 구원을 얻습니다. 죽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도 삽니다. 하늘에서 사는 것은 물론이요 땅에서도 삽니다. 영적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도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예수를 잘 믿어서 이 구원의 복을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리고 영과 육에 충만히 받고 사시게 되기를 진심으로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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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김동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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