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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의한 청지기의 지혜 (눅 16:1-13)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청지기(관리자, 일군)로서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청지기> 하면 교회 안에서의 직분만을 연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교회가 대체로 그것만을 강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불 의한 사회 속에서의 교회와 성도들의 역할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사명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정에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로 세우지 말라는 권면도 있습니다.가정에서는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교회에서는 직분 자로서, 성도로서, 사회에서는 직장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넓게는 세계의 일원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상에 우뚝 세우신 것은 가정과 사회와 전 세계가 하나님 중심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서입니다. 그런데 만일 교회와 그 안에 속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는 암흑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어떠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살았습니까?
좋은 남편이요 아내였습니까? 훌륭한 부모요, 효성스러운 자녀였습니까?
모든 이웃들에게 정직하고 친절한 이웃으로 살았습니까?
얼마나 어려운 이웃을 돌보았으며,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까?
혹시 나 자신의 부귀와 안일함을 위하여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불 의한 청지기일 것입니다.
1.하나님께서는 불 의한 청지기를 책망하십니다.
사람들은 남이 보이지 아니하면 불 의한 일을 쉽게 행하려 합니다. 저는 운전자로서 교통법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몹시 바쁘고 교통경찰이 눈에 뛰지 않으면 유턴하지 못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유턴 했던 몇 번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 숨어 지키던 경찰에 적발되었는데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 다음에는 위반한 경험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법질서를 지킨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때때로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에서도 주인이 그에게 모든 집과 종들의 관리를 청지기에게 맡기고 먼 곳으로 출타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사이에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하였습니다. 주인이 모르는데 내 마음대로 좀 하면 어떠냐?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인들의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부정하고 주인의 돈을 착복하여 방탕하게 지내었습니다.
청지기로서의 우리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를 맡기셨고, 직분을 맡기셨고, 재능과 시간과 능력과 재물과 권력까지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청지기로서 그것을 주인의 뜻대로 합당하게 관리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멋대로 정욕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모르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생활을 알고 계십니다.
본문 1절의 비유에서도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라고 하여 모든 그의 행위가 들어 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주인은 책망합니다.
눅 16:2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관리하던 장부를 정확하게 다른 사람에게 인계인수하고 사표를 내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금까지 착취하였던 사람들로부터 보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제멋대로 하고, 불 충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심판 날에 당할 고난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인의 경고에 대하여,
2.불의 하였던 청지기는 주인의 책망에 매우 지혜롭게 대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잘못된 생활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어떻게 행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지적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하는 경우와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잘못을 계속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팍하였던 이스라엘백성들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안타깝게 호소합니다.
사 1:3-5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그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회개하고 다시 돌아와 새로운 은혜의 생활을 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롯유다와 베드로와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청지기는 분명히 악을 행하였으나 그는 새로운 행동으로 나중에 주인의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는 어떠한 면에서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까?
1/그는 주인의 책망의 중요성과 화급함을 깨달았습니다.
눅 16: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는 졸지에 실업자가 되게 되었습니다. IMF로 인하여 직장을 잃은 분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면서 우리는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애처로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청지기도 실직의 위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봅니다. 아--! 이대로 끝난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펜대만 놀리던 내가 막노동을 하기에는 감당치 못할 것이고 거지노릇을 하는 것은 더욱 창피하고...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까?
다행인 것은 본문의 주인이 금방 그를 파면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가 계속하여 일을 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비로운 주인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수많은 잘못을 범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잘못에 대하여 반드시 책임을 물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슬퍼하며 이를 감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회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탐욕과 이기적인 만족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선적인 신앙의 탈을 벗어야 합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깊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불의 하였던 청지기는 주인의 진노의 엄중함을 깨닫고 미래의 자신의 바라볼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오늘의 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그는 자신의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눅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그는 자신이 살아 남을 수 있는 <할 일>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일은 그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주인의 것을 가지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주인의 권력을 이용하여 소작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갈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을 망하게 한 것을 주인의 책망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이제 자신이 살길은 주인의 것을 가지고 나누어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 말을 빚진 자를 불러 오십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밀 백 석을 빚진 자를 불러 이십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언뜻 보면 더 나쁜 놈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매우 중요한 진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청지기와 같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지기입니다. 구제한다는 것은 나의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준 재물을 이웃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가지고 우리 자신 뿐 아니라 남을 위하여 나누어주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 일은 자신의 영혼을 위하고 미래를 위하는 매우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청지기의 이기적이고 약삭빠른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면 비유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떠한 물질 관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본문에서 주인이 불 의한 종의 나중한 일에 대하여 지혜로웠다고 칭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지혜로운 청지기로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나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이란 불의한 세상에서 통용되는 모든 물질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물질을 두려워하거나 멀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것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그들을 친구로 사귄다면 그들이 여러분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선행으로 구원함을 받는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마음에 소유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하나님의 청지기라면 사랑과 자비로움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들과 같은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그는 할 일을 깨달은 후 즉각 실천에 옮기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결심하기는 쉬우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는 그렇게 쉽지 아니합니다. 적어도 생활비의 십분의 일은 구제 비로 써야 되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실천하고 있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일생을 살았던 청지기가 주인의 말한 마디에 하루아침에 남을 위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결코 변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그가 변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주인의 것을 가지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자기의 것을 가지고 나누어준다고 생각하였다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것이라 생각하니 아까울 것이 없었습니다. 뚝 잘라서 탕감하여주고 나누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진 것을 진정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구제하고 나누어주는데 그렇게 인색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지혜로운 청지기가 됩시다.
본문 불 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다음 말로 끝맺고 있습니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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