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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전도

영혼 구원을 위해 드리는 강청 기도 (창 18:22-33)

by 【고동엽】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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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구원을 위해 드리는 강청 기도  (창 18:22-33)

승리의 비결은 집중력에 있다.

인생 승리의 비결은 집중력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힘을 한데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을 산만하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습의 비결도 집중력에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지혜롭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롭게 공부한다는 것은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만하게 오래 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집중해서 짧은 시간 공부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집중해서 공부할 때 연구하는 분야의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체계를 잡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통달할 수 있습니다.

강청기도를 배우려면 강청 기도에 집중하라.

기도를 배우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강청 기도를 배우기 원한다면 강청 기도를 집중해서 배워야 합니다. 침묵 기도를 배우기 원한다면 침묵 기도를 집중해서 배워야 합니다. 저는 침묵 기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침묵 기도의 중요성만큼이나 강청 기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강청 기도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강청 기도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주셨을 대 강청 기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사람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청 기도의 사람을 연구하다가, 하나님은 강청 기도를 드린 사람들을 존귀하게 사용하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청기도의 대표적인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영혼 구원을 위해 강청 기도를 드렸던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기도와 믿음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 3:7)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증언한 것처럼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볼 때 제일 먼저 그의 믿음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믿음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을 산 사람들을 연구하게 되면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강청 기도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기 전에 믿음에 대해 배우고, 믿음을 강화하는 원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강청 기도는 강렬한 믿음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강청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강렬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믿음은 바라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란다는 것은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매우 중요하게 바라본 것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 항상 바라본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만 바라보았고, 아들을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바라본 것을 얻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것이다.

믿음은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반응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약속을 의지했습니다. 바랄 수 없을 때에도 그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9-22)

믿음의 기도를 드림으로 상을 받으라.

믿음에는 대상이 분명합니다. 그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15:1-2절을 보십시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창 15:1-2)

아브라함은 정말 아들을 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방패요, 그의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이 큰 상급이 되신다는 데 무엇을 제게 주시렵니까?” 아브라함이 아들을 달라는 이야기를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아들을 안 주실 것 같으면 제 종 엘리에셀로 상속자를 삼겠습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결국 아들을 얻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소원한 것이 인간적인 소원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소원을 주시고, 바라는 것을 주실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소원한 것은 하나님의 큰 구속의 섭리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아들 이삭은 예수님을 예표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씨라고 말합니다. 그 씨가 이삭입니다. 그 이삭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표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이삭을 바라보았을 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갈라디아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아브라함은 믿고 바라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상을 받았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결국은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창세기 18:20-33절은 아브라함이 강청 기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통해 우리는 아브라함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드린 기도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친밀한 자에게 비밀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로 작정하시고 그 사실을 미리 아브라함에게 알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밀을 말해주십니다. 사랑하면 비밀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숨은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됩니다. 창세기 18: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8:20-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창 18:20-21)

그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조용히 시작한 그 기도는 강청하는 기도로 발전합니다. 창세기 18:22-23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창 18:22-23)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적인 강청기도인지 배우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강청 기도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독백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8:2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강청하는 기도는 처음에 조용히 시작합니다. 하나님 앞에 멈추어 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기도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서서 잠잠히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편 62:1절을 보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힘을 얻습니다. 영혼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할 때 독수리처럼 하늘을 비상하는 기도의 힘을 얻습니다. 이사야 40:31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아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출처/박광현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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