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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누가복음 2:40~52)

by 【고동엽】 202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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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누가복음 2:40~52)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예수님처럼 완성된 인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 된 성도들이 모두 예수님의 성품으로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비록 소년 시절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이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의 특징적인 요소를 찾아보고 예수님의 성향을 닮고자 하는 성도들의 모범을 삼아야 되겠습니다.

1. 성장하는 모습입니다.

40절에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라고 했습니다. 52절에도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자라고 발전해야 됩니다. 디모데전서 4:15에 보면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상태를 어린아이로 비유하고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 3:2). 성도는 모름지기 예수님의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고 발전해야 됩니다(엡 4:13).



1) 신체적인 성장입니다.

여기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라는 말이나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라고 하는 말을 보아 우리 예수님도 어린 시절 정상적으로 성장하며 또 건강한 몸으로 성장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3년 생애 중 몸이 아프거나 병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될 때까지 사가에 계실 때는 목수 일을 하시며 가족을 부양했을 것입니다(마 13:55). 그리고 공생애 3년 동안은 여러 사람을 만나시고 먼 거리를 이동하며 전파하시고 고쳐주시고 교훈과 능력을 행하시는 등 분주하게 활동하시고도 지치지 않았습니다(막 3:20). 신체적인 성장은 외적인 발전을 뜻합니다. 성도의 신앙은 날마다 발전하고 자라가야 됩니다. 가정도 복을 받고 교회도 부흥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2) 인격의 성장입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같이 자랐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성장과 함께 지혜가 충족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건강한 육체의 성장에 못지않게 지혜와 인격의 성장도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나 지식은 교육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교육으로 지식과 기술을 배우게 되고 건전한 가정교육을 통해서 인간성을 기르게 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인간이 갖추어야 될 가장 근본적인 지식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 지식을 뜻합니다(잠 1:7). 이 지식이 갖추어졌을 때 올바른 가치관과 사려 깊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이와 같은 지식의 가치를 진주보다 귀하여 그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잠 3:15).

3) 영혼의 성장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영혼은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도리를 말씀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요 3:6-7).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항상 예수님과 마음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갑니다(롬 8:9). 빌립보서 2:5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빈 마음(마 5:3),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마 5:8),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마 11:29)을 가진 사람은 항상 영혼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멀리하고 성령과 교통하면서 건강한 영혼으로 신령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은혜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40절에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모하는 모든 은혜의 근원이 되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할 때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엡 1:2).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요 1:14). 오늘날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은혜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1)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때 부모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는데 거기서 율법학자들과 성경 진리를 논하고 질문에 대답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6-47에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의 사역 가운에 무리들에게 말씀을 강론하신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삶을 통하여 말씀을 증거하셨고 또 말씀으로 언제나 승리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받았을 때도 말씀으로 물리치셨고(마 4:4), 유대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도 언제나 말씀으로 자신을 변호하였습니다(마 12:18). 오늘도 은혜 생활을 하는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입니다(시 1:1-3, 계 1:3).


2)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였습니다(눅 2:48-49).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시거나 가르치시는 일을 하였습니다(눅 4:16).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하늘나라에 대한 도리를 말씀하시며 천국 백성으로서의 소양을 쌓게 하였습니다. 특히 ‘천국 시민의 대 헌장’이라고 불리는 산상보훈에는 세상적인 욕망보다도 하늘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을 강조하였습니다(마 5:3-12). 제자들 중에 서로 자기가 큰 자라고 다툴 때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할 것을 가르치셨고(마 18:1-4), 그들 중에 세상 영광을 탐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십자가와 고난의 길을 가도록 요구하셨습니다(마 16:24-26, 20:22).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사람은 세상의 유행이나 쾌락을 멀리하고 예수님처럼 경건하게 사는 자입니다. 야고보서 4:3에는 “간음하는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였습니다.


3) 성령과 함께 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시는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기도 하셨고 우리가 겪는 모든 수난을 체험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무한한 능력을 행사하시는 분이었지만 오히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았습니다(마 4:11, 눅 22:43).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죄악의 홍수가 범람하고 자기 속에서 육체의 정욕이 발동할지라도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됩니다. 로마서 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3. 사랑의 사람입니다.



52절에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습니다.


1) 사랑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사랑이야 말로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세상에서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와 같은 조건들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참 사랑은 다른 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최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4-7에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특징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행복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그 사랑을 받는 것으로 최상의 축복을 실감하게 됩니다. 귀여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여 이를 모성애(母性愛)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어머니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위대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9:15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하였습니다(요1서 4:9).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그것만으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된다고 하였습니다(롬 8:32).


3)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행복은 받는 자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모는 평생 동안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자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거나 거부하는 경우 서글퍼하며 사는 재미를 잃게 됩니다.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요한1서 4:11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다는 것은 사랑의 행복이 완성되는 것을 뜻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집에서는 가족 간에, 교회에서 성도들 간에 실천해 나가게 될 때 그 사랑이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출처/손상률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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