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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기업 (엡 1:13, 14)
이번 주까지 4주 연속해서 에베소서 1장 말씀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설교하는 이유는, 대각성전도집회를 앞두고 우리가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기 위해 내가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깊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가슴이 타는 뭔가가 있어야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좋아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복에 대해 에베소서 1장은 3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광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으시고 용서해주시는 복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풀 수 없는 난제 중 난제는 죄 문제인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해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제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기업을 상속해주시는 복입니다.
우리가 이 큰 복을 가슴 속에 담고 기뻐할 수만 있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전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기업'이라는 말을 주목해 봅시다. 이 단어가 1장에서 3번 나옵니다. 우선 14절에 나오는 '기업'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리고 18절에도 나옵니다. '너의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물론 11절 후반절에도 이 단어가 나오지만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여기에서의 '기업'은 '선택 받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정을 입어 예수 안에서 선택이 되었으니.'라는 말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결국 14절과 18절에 걸쳐 2번 나오는 '기업'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말합니다. 또한 십자가로 승리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모든 영광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예수님과 함께 누리게 되는 영광을 일컬어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해주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도 말미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간단히 말하자면, 예수님이 하나님나라에서 누리는 모든 영광을 예수 믿는 우리도 같이 보면서 누리도록 해 주시기를 원한다는 기도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여 예수님과 함께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되는 복을 일컬어 '기업'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 받게 될 권한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권한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이요, 곧 기업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므로 예수님이 누리시는 모든 좋은 것을 다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우리가 믿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령이란 보증을 주셨습니다. 13, 14절 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마음에 와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와서 깨닫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 받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령을 모셨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성령으로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알다시피 도장은 자기 것을 확실히 보증하기 위해서 찍습니다. 무언가가 내 것임을 확증하기 위해 서류나 상품, 옛날 같으면 가축의 엉덩이에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었음을 보증하는 의미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14절) 이를 위해 성령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보증'이란 선불, 보증금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흔히 부동산을 사고 팔 때 선불을 주어, 그 땅이 내 것임을 확증하게 됩니다. 곧 상대방이 선불을 받았으므로 내가 구입할 수 있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기에서 말하는 보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모시고 사는 것은 선불과 같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영광스러운 기업을 나에게 주신다는 것을 미리 보증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에 살면서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내가 하나님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기업을 누릴 수 있을까 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사는 것은 선불을 받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광스러운 기업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대략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천국, 하나님나라입니다. 둘째는 영화로써, 우리가 영원히 썩지 않을 새 몸을 입는 것을 가리킵니다. 셋째는 상을 얻는 것, 상급입니다. 넷째는 동락입니다.
이 4가지를 한데 묶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린 영광, 영광스러운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상속시켜 주시는 하늘의 모든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을 하나씩 간단히 검토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천국, 하나님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는 타락했습니다. 세상 나라는 저주 받았습니다. 세상 나라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범죄로 인해 잘못된 세상 나라를 위해 만든 시나리오입니다. 타락, 저주, 심판. 아무도 이 시나리오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이 소망 없는 세상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종국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창세기 6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오래되지 않아 사람들이 계속 죄를 범하자 탄식하셨습니다. 온 땅에 악이 가득하고,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악한 것을 보시고는 그만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나중에 그 한탄이 극에 달해 사람들을 홍수로 심판하는 무시무시한 사건까지 일어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한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타락해있으며, 여전히 죄를 범하는 인간으로 가득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현실을 왜곡시켜선 안됩니다.
오늘 세상 나라는 하나님께서 탄식하시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살면 좋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당하지 않는 어려움이나 고통은 가슴속에 그다지 심각하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자연히 밝은 쪽, 좋은 쪽만 보게 되므로 세상 살기가 점점 좋고 평안해 진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눈 높이를 낮추어 그늘진 세상을 보십시오. 그러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최근 인혁당 사건과 관련하여 신문 기사를 보았을 것입니다. 유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연행하여 사형선고를 내리고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그들을 끌어다가 새벽에 남모르게 사형을 시키는 흉악한 정부 밑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합니까? 세상의 곳곳에서 빚어지는 악을 일일이 기록하려면 하늘이 모자랄 정도로 온통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 음란하고 포악하고 가진 자들이 욕심을 내고 횡포를 부립니다. 지도자들의 위선과 거짓은 낯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계속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실상인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굶주리고 탄압 받는 사람들이 수십 억이나 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조차 송두리째 빼앗긴채 살고 있습니다. GMP가 10만 불에 올라가도 이 세상은 하나님 앞에서 소망 없는 실체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듯 오늘 우리들을 시험하면서 속이고 있습니다. 사탄은 배고픈 예수님을 불러놓고 이 세상에 화려한 영광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진짜다. 이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이상이다. 그러므로 내 앞에 절하라. 그러면 이 세상의 영광을 네게 주마." 하고 시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오늘 이 세상에 화려한 영광으로 많은 사람들을 시험하며, 그 눈을 가려놓고는 죽음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을 봅니다. 특별히 사탄이 사용하는 도구 중 가장 탁월한 도구가 있습니다. 100만 명이나 1000만 명 중, 아니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들을 거의 사탄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 천재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상을 세상에 심고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나라에 대한 꿈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세상 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믿도록 그 생각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지난 150년 사이 가장 성공한 사탄의 도구는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간단합니다. 모든 만물이 진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점점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선하므로 개인의 노력이나 환경의 개선에 따라 점점 선해지고, 세상도 점점 좋아져서, 나중에는 이 세상에 유토피아가 온다는 사상이 그 근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상이 정치, 과학, 경제, 교육 등 얼마나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밑거름 노릇을 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다윈의 진화론이 정치에 영향을 끼친 결과 공산주의와 같은 혁명정치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실용주의 교육이 도입되어 학생들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밀어내는 역사를 일으켜 왔습니다. 또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파고들어 과학 만능주의에 빠짐으로 과학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든다고 큰 소리 치게 했습니다. 진화론이 사람들의 마음으로 이 세상의 것을 소망하게 하여 결국은 섹스의 자유를 부르짖고, 쾌락에서 인간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숱하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상낙원의 환상을 갖게 했습니다. 이것을 현대말로 바꾸어서 말하면 '에스컬레이터 신화'라고 합니다. 밑에서 타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처럼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화론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사상에서 하나님나라를 철저히 배제하도록 만들고 이 세상만을 추구하며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사탄은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한번 지성에 의해 양심적으로 대답해 봅시다. 세상이 정말 좋아지고 있습니까? 인간이 점점 선해지고 있습니까? 이 세상은 점점 지상낙원, 유토피아로 바뀌고 있습니까? 1, 2차 대전을 통해 자기들이 믿던 유토피아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지만, 지난 50년 동안 전쟁 없이 살면서 또 다시 사람들이 똑같은 유토피아 환상에 젖어 하나님나라, 천국에 대한 것은 신화처럼 생각해버립니다.
저는 문민정부가 시작되던 5년 전만 해도 마음에 희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호남에서 대통령이 나왔으니 우리 나라의 깊은 상처들이 치유함을 받겠구나. 그리고 군사정부가 남겨놓은 좋지 못한 유산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살맛 나는 사회를 이루어, 이제는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이 나라를 세계 열강의 대열에 올려놓게 되겠구나.'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정치계를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음 정권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지만 이 세상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믿을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 사람이 점점 선해진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필요가 없다.'는 말에 속아서 끌려 다닌다면 그 사람은 지성인도, 양심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악하고 믿을 수 없는 비참한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자기가 계획한 하나님나라를 주시려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쉬지 않고 그 계획을 추진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수 있도록 혈통의 길을 닦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혈통을 통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셔서 구원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심으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있고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이 세계 역사 가운데 국가는 수없이 일어나고 망했습니다. 문명도 수없이 나타나고 소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계획은 계속 진행되고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하늘도 땅도 예수 안에서 통일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0절)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교회를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통해 이 일을 완성시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시고자 지금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이사야가 보았던 환상처럼 너무나 황홀할 것입니다. 사막이 변해서 낙원이 되고 꽃동산이 되는 것처럼 황홀할 것입니다. 사자들이 어린양과 함께 뒹구는 너무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는 해함도, 거짓도 없고 평화, 사랑만, 찬양만 있습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에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원 되리라.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그 나라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의 영광에 눈을 팔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에서 '구하라'는 헬라어로 '제테오'(zeteo)이란 단어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얻고자 전력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그 나라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고 말씀합니다.
둘째로, 주님이 주시는 기업은 우리 몸이 영화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몸은 신령한 몸이었습니다. 시공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거룩한 몸이었습니다. 우리도 나중에는 그런 몸으로 바뀐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8장 30절 말씀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곧 우리를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게 해 주신 다음, 우리의 몸을 완전히 바꾸어서 예수님의 신령한 몸을 입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3절 말씀입니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라.' 이것이 영화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몸을 가지고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 행복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사실상 별것 아닙니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40대가 되면 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50대 되면 지식의 평준화가, 60대가 되면 건강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70대가 되면 재물의 평준화가, 80대가 되면 죽음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늙고 병들고 죽는 이 몸을 가지고는 인생의 행복이나 자랑도 한계가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덧없고 헛된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무슨 소망을 주시겠습니까?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몸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0장 34절 이하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새 몸을 입으면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몸이 되고, 장가나 시집도 안 가게 됩니다. 그런 영광스러운 몸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이 주시는 기업은 상급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성경에 보면 상에 대한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상인지, 누가 받고 받지 못하는지, 또 받는 사람은 천국에서 얼마나 그 신분이 달라지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에 대해 굉장히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상들을 예로 살펴 보면 생명나무 과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 생명의 면류관, 감추었던 만나, 흰 돌 위에 새겨진 새 이름,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새벽별, 흰옷, 이름을 알아주는 명예, 새 예루살렘 이름, 보좌에 예수님과 함께 앉는 것 등등의 상을 주님께서 준비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비록 우리는 이 신비에 가려진 상의 실체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예수 믿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간 사람들 중 주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상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ꡓ고 말씀하십니다.(히11:6)
지난 주 저는 연변과학기술대학 10주년 행사에 참석했었습니다. 퍽 은혜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제일 감동시켰던 것은, 10년 전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 누구 못지않게 살 사람들이 모든 것을 내동댕이 치고 연변 연길 시에 왔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영하 35도로 떨어지는 무서운 추위와 싸우고, 연탄 가스를 마시고 살면서 기관지를 상하고, 황토 물이 쏟아지는 수돗물을 마시고 고생하면서, 박봉으로 10년간 학교를 위해 충성한 교수만도 10명이 넘는다는 사실입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그곳에 와 고생하면서 10년 동안 일군 열매들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을 자원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에 가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상이 있음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삶을 포기하고 그 상을 얻기 위해 보람되게 자기를 헌신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넷째로 주님이 주시는 기업은 복락입니다. 복락이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자동적으로 우리가 영원히 누리게 되는 모든 행복을 가리킵니다. 어거스틴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는 쉬고, 쉬면서 보고, 보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찬송할 것이다."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지 모릅니다.
요즘에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자 노동자들이 굉장히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쉰다는 것이 일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이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도 쉰다는 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ꡓ(계14:13)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을 가리켜 하늘나라에 가서 쉰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쉬면서 천국에 있는 모든 영화로운 것들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또 보면서 사랑합니다. 사랑하면서 찬양합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 3절, 4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다시는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 우리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영원토록 행복하게 만드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복락입니다.
제가 모시던 훌륭한 목사님이 40대 후반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떠나시자 사모님이 견디지 못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통 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목사님이 나타나서 "여보, 슬퍼하지 마. 너무너무 좋아. 너무너무 좋아."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 다음날부터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락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좋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고통은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 차겠네.
우리의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영원한 기쁨 있겠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다고 하는 이런 복락이 지금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광스러운 기업은 천국이요, 천국에 들어가 살 신령한 몸이요, 그리고 거기서 받아 누릴 수 있는 상급이요, 그 속에서 영원토록 즐길 복락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 어색해 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영광을 더욱 많이 알길 원하고 날마다 사모해야 합니다. 멀리 떨어진 생소한 것이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8-19절)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백성들과 함께 들어가고 싶어서 간절히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너는 못 들어간다. 네 은혜가 족하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모세는 마음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저 옆에 느보산으로 올라와라. 내가 산 꼭대기에 너를 세우고 백성들이 들어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샅샅이 들여다보게 해주마."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영적인 환상을 열어 주었습니다. 브엘세바로부터 헐몬산까지, 지중해로부터 유브라테스 강까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을 전부 구석구석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모세는 황홀해 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날마다 느보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려고 하는 영광스러운 기업을 믿음의 눈으로 날마다 보는 것입니다. 느보산 꼭대기에서 말씀을 들고 날마다 구석구석 살피면서 내 앞에 이런 영광스러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이 세상의 슬픔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바라보며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주십니다.
얼마 전 친일파 명단이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명단을 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일본이 이렇게 빨리 망할 줄 알았더라면 친일파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 동안 옥에 끌려가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명예와 권세를 다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고생을 감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좌절해 있는 국민들에게 "좋은 날이 반드시 온다. 얼마 후 반드시 나라가 독립할 것이다." 하고 격려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그렇게 빨리 독립할 줄은 몰랐기에 타협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들이 현실로 드러나는 은혜의 날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빨리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내다보면서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좀더 힘있고 영광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축복들, 곧 하나님 아들 되심, 죄 용서하심, 영광스러운 기업을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알고만 있으면 안됩니다. 이것만큼 좋은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만큼 좋은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만큼 사람을 들뜨게 하는 이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좋은 복음이라면 아직도 듣지 못하고 세상에 속아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 좋은 이야기를 우리 가슴에만 묻어두지 말고 이웃에게 전합시다. 그리하여 이번 대각성전도집회 때 수많은 심령들이 함께 이 복을 누리며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해 주시고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기업을-마치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들여다 본 것처럼-볼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거짓된 세상 영광에 마음이 어두워질 때가 있고 눈이 가리워질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사탄에게 속지 말게 하시고, 세상 영광에 속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기업을 우리가 내다보면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축복을 주시고, 이 아름다운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기쁨으로 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입을 열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옥한흠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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