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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성공

성공한 실패자 (누가복음 12:13~21)

by 【고동엽】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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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실패자   (누가복음 12:13~21)

당신은 성공자인가?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분의 대답은 어떤 대답을 할 것입니까? 여러분은 진정 성공자로 살고 있는가? 혹은 여러분 주변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 나는 그 성공한 사람들과 어떤 교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성공한 실패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성공한 인물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공을 다룹니다. 그러나 성공 후에 실패를 또한 다루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성공자들

구약에 나오는 사울왕은 성공한 실패자 가운데 대표되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평민으로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진정 성공한 사람입니다. 누가 보아도 그는 성공자로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실패한 성공자로 우리 앞에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에 교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는 선지자의 충고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고집과 불신앙을 좇아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그 종말이 실패자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신약에 와서 초대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돈많은 크리스찬입니다. 그들은 부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은혜받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사도들 앞에 은혜 받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들이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서 그들 부부가 죽음을 당하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부자도 성공한 실패자 모델의 한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 사람은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밭에 소출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더 크게 짓고 더 많은 재물을 쌓아두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에서 보면 이 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크게 농사하여 창고를 더 지을 만큼 많은 소득을 얻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을 장사하는 사람에 비유한다면, 점포를 늘리고 확장하고, 많은 소득을 얻어서 더 많은 주식투자를 하고 더 많은 사업의 확장을 꾀하는 그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이 시대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결코 이 사람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는 이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성공한 실패자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 사람을 성공한 실패자로 우리에게 이야기하시는가? 이 사람에게 결정적인 두 가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실수

첫째, 이 사람은 영혼이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영혼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자,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재물을 쌓아두고 그 재물에 영혼의 위로를 구합니다. ‘영혼아, 이제는 즐거워하자. 수많은 재물을 먹고 마시고 평안히 쉬자.’ 영혼은 재물의 위로를 얻는 그런 영이 아닙니다. 영혼은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천국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혼이 천국에 가는 문제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혼이 천국에 가는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어야 성공자가 됩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영혼이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실패자입니다.
두 번째, 이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온 것은 나를 보내신 자의 일을 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러 이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가 이 땅에 사는가? 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가?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경에 명백하게 규정합니다.

하나님의 일

첫째로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0장10절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도적은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는 도적질하러 왔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도적질해 갑니다. 영혼을 도적질해가는 영이 마귀입니다. 그리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요” 마귀는 인간을 죽이고 멸망의 길로 이끌어가는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 이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살려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자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은 마귀의 수중에 있습니다. 마귀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이 마귀의 종노릇하는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하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서 우리는 죄 사함을 입고 하나님의 영생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8절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한 자요”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범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합니다. 태어난 우리는 원죄를 타고났으므로 사탄의 수중아래 있습니다. 이 사탄의 아래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살리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부리기 원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어가기를 원합니다. 이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부름을 주셨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일은 복의 근원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복 받은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을 복되게 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이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신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복의 근원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의 일을 전혀 모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욕심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만 재물을 쌓아둔 사람이지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없는 인생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드려야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명을 찾은 사람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은 역경의 열매라는 감동적인 간증을 우리 앞에 남기고 있습니다. 그가 대학교 4학년 때 병을 앓았습니다. 검사를 해보니까 근육무력증이라는 병입니다. 근육이 점점 힘을 잃고 몸에 힘이 자꾸 빠지는 병입니다. 설명에 보면, ‘이불이 무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잠을 자는데 이불이 너무 무거워 그 이불을 제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몸을 뒤척거릴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기도 너무 힘들다’ 옷을 한번 갈아입으려 하면 전쟁을 해야 됩니다. 옷 입을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너무 힘드는 지경으로 이 사람은 건강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루의 절반을 누워서 지냅니다. 겨우 기동하여 볼 일을 보고 주일이 되면 겨우 교회에 나가서 대학생들 집회에 참석하고, 대학생들을 만나고, 대학생들과 이야기하고 그리고 집에 와서는 늘 누워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읽는 일과 말하는 것,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에게 글 읽는 시력을 주시고 말하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읽고 말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병상에 누워서 그는 글을 읽기 시작합니다. 2년 동안에 3천권의 책을 독파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제가 추산을 해보니까 하루 4권만 읽으면 2년 만에 3천권을 읽습니다. 책의 종류는 여러 가지지만 얼마든지 독서에 몰두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성수씨가 병상에서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집중력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독서를 하면 잡념이 자꾸 생기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병상에서 책 읽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은 책 읽는 여기에 놀라운 집중력이 일어납니다. 병상에서 기도하면 집중력이 훨씬 강합니다. 그와 같이 이 사람은 3천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그가 읽은 책 가운데 사람을 키우는 일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키우는가? 라는 방법도 그 책속에서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병상에서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아! 사람을 키우는 일이 이렇게도 중요하구나!’ 그는 사람을 키우는 사명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1978년 2년 동안의 투병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되찾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자기 일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구나!’ 그때부터 이 사람은 젊은이들에게 평생을 투신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청년들을 키우는 청년선교에 열정을 불사릅니다. 그는 오늘도 자기가 가진 모든 은사를 다 기울여서 청년선교에 열정을 바치고, 인물을 키우는 일에 열정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의 헌신과 사랑이 오늘의 사랑의 교회를 일구는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한 성공

여러분, 우리가 왜 성공을 추구합니까? 왜 배우려고 합니까? 왜 가지려고 합니까? 무엇 때문에 출세하려고 합니까? 목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어떤 것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건강을 구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운동하고 몸에 좋은 것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등 건강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합니다. 무엇하기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건강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려면 적당히 건강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데도 안 하는 것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안 하려면 우리의 건강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시간 없이 헌신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헌신이란 개념은 시간을 들이는데 있습니다. 헌신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몸이 건강해도 교회일 좀 하자 하면 시간을 못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시간을 안 들이면 헌신이 안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들이는 거기에 내 몸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못 들이면 몸이 안 따라옵니다. 아무리 건강이 좋아도 시간을 안 들이면 헌신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음에 물질로 합니다. 물질은 도구입니다. 병사는 총을 가지고 전장에 나가야 합니다. 총 없는 병사는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전도비가 필요합니까? 전도를 위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몸과 시간과 물질은 보이는 것이고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린 그것 위에 성령의 권능이 임함으로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으로서 거기에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자로 살아야 성공자로 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외면하고 살면 성공한 실패자가 됩니다. 우리의 생애는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습니다.

균형있는 전도

전도는 소중합니다. 전도는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교회에서 이 전도를 잘 가르치는데 전도는 반드시 세 가지와 함께 동역해야만 전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을 가르쳤습니다. 그 부흥의 결정적인 요건 중에 하나가 전도입니다. 그러나 이 전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세 가지가 반드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를 도박하면 안 됩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도 교회가 부흥하는 것, 내가 가만히 있는데도 전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박수쳐주는 그와 같은 전도를 기대하는 이것은 도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도는 세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 모이는 일입니다. 초대교회는 열심히 모였습니다. 이 모임, 곧 예배입니다. 은혜로운 예배생활을 동반해야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중요한 요건입니다.
두 번째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전도에 대한 교육과 훈련입니다. 우리는 전도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이 전도와 교육의 가르침,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받아야 되고 이 말씀으로 가르치는 교육이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교제입니다. 초대교회는 강렬한 교제가 있었습니다. 교제는 같이 만나서 차를 한잔 나누며 대화하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성경적인 교제는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서로 떡을 떼었다고 했습니다. 음식을 나누고 먹는 것을 나누는 잔치, 이것이 교제입니다. 먹는 것을 나누는 교제와 맨 입으로 교제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떡을 열심히 떼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서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서로 그들은 기도를 나누는 교제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기도의 교제가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진정 마음을 먹고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내가 줄 때 성령 안에서 다른 사람의 기도도 내게 오는 것입니다. 기도를 거래처럼 계산하지 마세요. 무조건 기도를 하면 성령께서 다른 사람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고 끝나는 잔치만 좋아하지 마세요. 기도를 서로 나누십시오. 세 번째는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곧 구제입니다. “물건을 서로 나누었다” 교회론적인 교제는 떡을 나누고 기도를 나누고 서로 물질을 나누는 이것이 동반된 것이 초대교회의 교제입니다. 이 교제가 전도와 함께 갔던 것입니다.
전도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니 믿는 자가 날마다 더 하더라” ‘믿는 자가 날마다 더 하라더라’ 이 말만 있는 게 아니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있었고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기에서 믿는 자가 날마다 더하더라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예배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서로 모여 떡을 떼고 기도하고 물건을 나누는 구제의 역사가 있는 거기에서 세상 사람으로부터 칭송받고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형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적인 교제를 게을리 하면서, 말씀의 가르침을 게을리 하면서, 예배를 열심히 드려 은혜 받는 일을 게을리 하면서 전도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도박입니다. 그런 사행심을 버리고 우리는 전도에 헌신을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와 함께 우리의 교회생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풍성한 삶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이 네 가지 중에 어느 부분이 지금 취약합니까? 이 네 가지는 개인생활에 순환이 되어야 합니다. 모여야 됩니다. 은혜 받아야 됩니다. 서로 교제해야 됩니다. 그리고 증거해야 합니다. 또 모여야 됩니다. 이것이 순환하는 게 교회입니다. 이 네 가지 싸이클의 순환이 개인의 신앙생활입니다. 이 가운데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하기 바랍니다. 예배생활이 취약하면 보완해야 됩니다. 말씀의 가르침이 취약하면 보완해야 합니다. 교제가 취약하면 교제를 보완해야 됩니다. 전도가 취약하면 전도를 보완해야 됩니다. 이것이 함께 순환하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구 중에 고린도후서 9장8절을 여러분들이 다 암송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이 구절은 최상급을 표현한 최상급 중에 최상급입니다. 이보다 더 최상급으로 표현한 성구가 없습니다. 제일 먼저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합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다, 최상의 표현입니다. 세 번째가 더 중요합니다.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모든 은혜를 넘치게 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가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해야 하는가? “모든 착한 일을 하게 하려 하심이라.” 착한 일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위하여 사는 일을 말합니다.

맺는 말

여러분은 모든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모든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넉넉하기를 추구하십시오. 뒤에 나오는 모든 착한 일,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의 넉넉함도, 우리의 은혜로움도 의미가 있다는 표현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은총을 누리면서 진정 우리는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는 이 준비는 갖추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압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뒤의 일을 위하여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넉넉하게 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이루어 드림으로서 성공한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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