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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를 대적하라 (벧전5: 8-9)

by 【고동엽】 2022.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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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귀를 대적하라  (벧전5: 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귀를 대적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중국 고대 손자병법에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마귀를 알고 우리 자신의 권세를 알면 마귀와의 싸움에서 항상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마귀와의 싸움
마귀와의 싸움은 어떤 것입니까?
말할 필요 없이 마귀와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영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전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수많은 종교를 가지고 와서 길을 잘못 들게 하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길은 한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는데 그 길 이외에 많은 길을 만들어 가지고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이 길이다. 이 길로 가라’고 해서 사람들을 그 길고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미신을 통해서 우상을 섬기고 사신을 따라 가도록 하고 귀신의 가르침을 쫓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도리를 듣지 못하도록 전력을 기울여 혼미한 역사를 베풀고 있습니다. 마귀는 질적으로 거짓되고 잘못된 정보를 가져와서 잘못 믿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거짓 정보인 것입니다. 참된 정보가 아닌 것입니다.
창 3: 4~ 5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거짓말이지요. 분명한 정보는 정보인데 잘못된 정보를 흘려 내려서 잘못된 길로 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보면 북한에서 우리 대한민국에 끊임없이 잘못된 정보를 흘려주고 대한민국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믿고서 잘못되도록 하려고 하는 것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면에서 마귀는 잘못된 지식,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서 결국 일이 그르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어떠한 정보가 들어오든지 성령에 비춰서 생각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거짓이 아닌 참된 말씀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온 세상 지식을 우리가 비평하고 판단하고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준에 어긋나면 잘못된 정보인 것입니다. 성경의 정보에 맞아 들어가면 올바른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고는 안돼요. 어떤 목사님이 간증하는데 들으니까 집사님이 몹시 몸에 병이 들어서 고생을 하는데 가보니까 욥의 환난을 당한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아이고 자매님 정말 욥의 환난을 당하시는군요. 욥기를 좀 읽어 보십시오.” 그러니까 집사님이 “그런 책이 있습니까? 그것 어디 가서 살 수 있습니까?” 교회 집사님이 되었으면서도 욥기가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잘못된 정보를 듣지요. 성경을 읽지 않으니까. 또 어떤 집사님은 할머니인데 성경 읽으라니까 마태복음 1장만 읽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를 낳고 유다가 베레스를 낳고… 그래서 “할머님, 왜 자꾸 그 성경만 읽습니까?” 그러니까 “나 이제 나이가 다 되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읽어봤자 소용이 없고 이름만 읽는 것은 천당에 올라가면 이분들 알아봐야 안 되겠냐? 그래서 이름이라도 내가 알아야 천당 가서 인사라도 드릴 수 있지 않느냐?” 그러더랍니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우리가 늘 읽고 진리를 알아서 그 진리에 서서 마귀의 잘못된 정보를 분별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창 3: 4~ 5에 보면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한 것은 질적으로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는데 마귀는 그와 다른 말을 했습니다. 너희가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했으니 똑같은 진리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은 참된 진리요, 마귀가 주는 정보는 거짓된 지식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감정적으로 우리를 억압합니다. 탐욕을 일으켜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하고 정서적인 억압을 가져와서 고통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아담이 마귀의 말을 들으니까 감정이 격했지요.
창 3: 6 상반부를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보십시오. 감정적으로 욕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감정을 흥분시켜 가지고서 비정상적인 욕심으로 탐욕의 노예가 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와서 미움, 분노, 시기, 질투,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좌절, 절망 그리고 우울감에 빠지게 만들어서 정서적으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바위가 누르고 있으면 그 밑에 있는 풀들은 노랗게 떠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우리를 억압해 가지고서 우리로 하여금 정상적인 감정적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기쁨, 즐거움 이런 것을 다 빼앗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마음속에 미움, 분노, 시기, 질투 이런 것을 가져오면 마귀가 오는 줄 아십시오. 그리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이것은 얼씨구나 좋다. 마귀가 그것을 가지고 우리 마음을 짓눌러서 마음에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빼앗아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마귀는 우리를 의지적으로 인본주의에 서서 자기 고집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고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해요. 아담과 하와도 마귀에게 일단 속아 넘어가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 고집대로 그 열매를 따먹고 남편조차도 그 열매를 먹도록 고집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들어오면 사람이 완악해지고 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고집에 서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의 신앙의 실패는 마귀가 주는 이 의지적인 아집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되면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다. 설교 들으면 “이것은 이웃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구나. 내 말은 아니다.” 자기 길이 옳다고만 고집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 청종하고 내 마음에 괴로울지라도 하나님 음성이 들려오면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성경은 말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우상, 사진에 절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매를 맞고 징계를 당하는 대다수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고집 부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 번 하나님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시고 그래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고집대로 행하면 그때는 하나님이 채찍을 들어 때리는 것입니다. 아프게 때리는 것입니다. 큰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큰 몽둥이로 때려야 고집이 깨어지고 적은 고집은 적은 회초리로 때리면 깨어지는 것입니다. 혼이 나야 혼이 깨어지지 혼이 안 나면 안 깨어져요. 그러므로 의지적으로 마귀는 하나님보다도 자기중심에 서서 자기 고집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육체적으로 억압하여 약하고 병들게 합니다. 오늘 의사들은 말하기를 우리 육신의 병의 70%에서 80%는 스트레스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 조그마한 스트레스가 자꾸 쌓고 쌓이면 나중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짐을 보십시오. 조그마한 짐을 조금, 조금, 조금, 조금 더 짊어지면 나중에는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도 풀지 못하고 자꾸 쌓이고 쌓이면 스트레스 때문에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적으로도 아내가 감정의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자꾸 쌓아 놓으면 나중에 그 스트레스로 무너져서 좌절하고 남편도 사회생활에서 너무나 어려운 시련을 많이 겪고 스트레스를 겪으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평균 수명이 5살 차이가 납니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5년을 더 산다고 합니다. 그 주된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남자들은 세상에서 당하는 스트레스를 속에 꾹 참고 말을 안 하고 누르고 있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에 눌려서 병이 들어 죽지만 여자들은 스트레스 받으면 말을 해요. 싸움도 확 해버리고 하하하, 조잘조잘 전부 이야기를 하고 웃고 싸우고 울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에 여자들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남자들 여러분, 오래 살려거든 잘 우십시오. 그리고 여자들처럼 말도 수다를 떨고 속에 있는 것 다 털어 버려야 억압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억압을 하는 것입니다.
행10:38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보십시오. 예수님이 고친 병은 마귀가 와서 스트레스를 가해 가지고서 병든 것을 고쳐준 것입니다. 마귀가 스트레스를 가하면 심장병도 암도 폐병도 관절염도 온갖 병이 다 되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 마귀가 스트레스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어찌하든지 스트레스를 통해서 우리를 병들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환경적으로 와서 우리에게 분탕질을 합니다. 욥의 고난을 보십시오. 욥이 와서 욥의 재산을 다 적군들을 충동시켜서 빼앗아 가고 자녀들이 한집에 모여 잔칫상을 베풀 때 큰 바람을 일으켜서 기둥을 쳐서 집이 무너져서 다 비명횡사하게 만들고 욥의 몸을 쳐서 종양성 문둥병이 생겨서 잿더미에 올라앉아 기왓장을 몸을 긁게 만들고 부인 마음속에 들어가서 욥을 배반하고 저주하고 물러가게 만들고 아에 낭패를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좋은 일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마귀를 도적이라고 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2. 우리는 누구인가?
예수 안 믿는 사람 말고 예수 믿는 우리는 누구인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꼭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다 벗겨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무기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가지고 큰소리 합니까? 죄를 가지고 큰소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버림받았기 때문에 먼저 죄를 지은 마귀는 깡패 두목이라 우리에게 죄를 가지고 사슬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죄지었기 때문에 마귀에게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다음 마귀는 우리가 세속에 잡혀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완전히 등지고 세속으로, 세속으로 끌려가는 그 사슬을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소리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질병을 가지고 마음에 병, 육신의 병의 사슬로 묶어놓고 우리에게 저주를 가져와서 모든 일에 잘살아도 저주받고 못살아도 저주받아 행복을 빼앗아 가려고 하고 그리고 마귀의 최후의 무기는 죽음입니다. 육체의 죽음을 가져와서 파멸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 마귀의 무장을 다 해제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의 죄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깡그리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할 때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악을 다 청산했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묶고 있는 죄의 사슬이 철컹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세속은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등 돌리게 해서 멀리멀리 떠나게 했으나 예수님이 오셔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고 성령을 받게 하므로 세속의 사슬이 끊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으시므로 우리의 병을 다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병의 위력을 주님께서 멸해 버렸으므로 병의 사슬도 끊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므로 사망과 음부를 멸해 버리시므로 마귀의 최후의 무기인 죽음과 음부도 주님에게 정복당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6시간 동안 고난당하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우리 인류를 묶어놓은 마귀의 쇠사슬은 철렁철렁 다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골 2:14~15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로 율법도 패해 버리시고 마귀의 통치자, 마귀 권세자들을 무력화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모신다는 것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구주로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끌어안고 우리 옛사람을 청산해 버리고 십자가에서 새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태어난 자리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갈보리 산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옛사람이 청산되고 마귀의 종된 우리가 청산되고 거듭나서 보라 새것이 된 장소가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향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가 그곳에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찬송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다 더 위대한 곳이 없으며, 십자가보다 우리에게 더 다정한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하였는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끌어안고 우리를 다 청산해 주시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능력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모든 역사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항상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고향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천당에 올라가도 천당의 중심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천당에 올라간 모든 성도들은 십자가를 예배하고 찬미할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 십자가에 참여하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날 때 벌써 마귀를 이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고 했는데 능력과 권세가 차이가 있습니다. 마귀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은 헬라어로 ‘두나미스’라고 하는데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인 것입니다. 폭약처럼 쾅하는 굉장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원래 마귀는 굉장한 능력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사14:12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겔28:14에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마귀는 원래 계명성이었고 하늘에서 제일가는 천사 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좌를 지키는 그룹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가 교만해서 천사들을 데리고 반역을 해서 하늘천사 3분의 1을 데리고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능력은 ‘두나미스’고 권세는 ‘엑스시아’인데, 권세는 능력보다 강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아버님이 나이가 90이 넘어서 굉장히 쇠약해서 그릇하나 못 듭니다. 능력이 없지요. 이제는 힘이 다 빠졌습니다. 그러나 자식들보고서 젊고 팔팔하여 쌀가마니도 벌떡벌떡 들어 올리는 자식보고 “이리오라.”하면 옵니다. “저리가라.”하면 가고 “밥상 들고 오너라!” 하면 오고 “내 곁에 와서 안마 좀 해라!”고 하면 안마합니다. 저렇게 능력이 많은 자식이 무엇 다 죽어가는 할아버지 명령에 순종하는 것, 할아버지는 능력이 없어도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빼빼한 경찰관이 길거리에 서서 큰 건축용 트럭이 건축자재를 싣고 아주 욍욍 거리고 달려오는데 호루라기를 불러서 오라고 하면서 손짓하면 그 트럭이 가서 철컥 섭니다. “저런 바보 같은 것 어디 있느냐? 트럭이 저렇게 힘이 강한데 밀어 붙이면 될 것인데 왜 그 명령에 순종하는가?” 트럭은 능력이 있지만 경찰관은 국가가 준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권세는 능력보다 큰데 마귀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눅10:17~19에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원수의 모든 능력을 다 제거할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 안에서 태어날 때부터 권세를 얻어서 태어났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당신은 권세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세요. 너무나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권세가 있는 줄 모릅니다.
마귀의 외형적인 능력을 보고 겁을 내서 벌벌 깁니다. 그러나 권세가 있으니까 우리는 능력은 없어도 권세를 사용하면 능력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있을 당시 한 노인이 백악관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노인의 아들이 탈주병이 되어서 잡혀서 재판을 받아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얼마 있으면 사형이 집형되는데 대통령에게 특사를 구하려고 백악관을 갔으나 백악관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인이 벌벌 떨면서 울고 있으니까 한 소년이 오더니만 “할아버지, 할아버지! 왜 울어요?”라고 물으니까 노인의 말이 “대통령 각하를 만나고 싶은데 여기에 경비병들이 못 들어간데.” 그 소년이 말하기를 “저를 따라 오세요.” 그래서 이 소년을 따라 가니까 경비병이 노인을 중지시키니까 “아니, 들어오게 하세요. 우리 할아버지에요.” 그러니까 경비병이 탁 경례붙이고 그래서 바깥문을 통해서 안채 문을 들어오니 또 경비병이 이 노인을 중지시키니까 “그러지 마세요. 우리 할아버지에요. 오세요. 할아버지!” 그러니까 문을 탁 열어주거든. 그 손을 잡고 들어가서 링컨 대통령 앞에 섰는데, “그 소년이 누구냐?” 대통령 아들이에요. 그래서 대통령에게 읍소를 해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사형에 처한 아들이 특사를 받게 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대통령 아들은 문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에 대해서 능력이 없습니다. 군인들은 젊고 총포로써 무장하고 있는데 그러나 대통령 아들의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가 있으니까 우리 할아버지라고 속이고 들어오라고 하니까 문 다 열어 버리잖아요. 아들의 권세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 애들이 어릴 때 점심을 교회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고 제방으로 점심 먹으러 오는데 둘째 녀석은 언제나 와서 “너 엘리베이터 못 탄다.”하면 “우리 아버지가 목산데요.” 그러면 “타라. 타라.” 셋째는 항상 못 올라오고 엘리베이터 옆에 서있는 거예요. 들어가려니까 “못 들어가. 여기는 목사님 타는 것이어서 못 들어간다!”고 하면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해서 점심을 먹으러 못 와요. “왜 못 오냐?”고 그러니까 “집사님들이 못 올라가게 하는데”라고 합니다. 제가 답답해서 “야 이 녀석아! 조목사 아들이라고 하면 올라오는데, 왜 그 말을 못하느냐. 너는 조목사 아들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타고 조목사하고 같이 식사할 수 있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권세라는 것은 여러분 굉장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계명성 루시퍼가 얼마나 능력이 많습니까? 사탄이 굉장히 능력이 많아도 여러분 명령 앞에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은 여러분은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 1:12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와! 권세 있어요. 권세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있어요. 그러니 마귀대장도 겁날 것 없어요. 더구나 마귀의 졸자인 귀신들이야 한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치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자기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눅11:21~22에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마귀가 강한 자가 되어서 딱 자기의 소유물들을 지키고 있을 때 더 강한 자 여러분이 가서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예수 이름으로 내쫓으면 그것다 버리고 도망치고 여러분은 마귀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 주신 약속 있잖아요.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다. 법정에 가면 재판을 할 때 변호사가 대리권 행사를 합니다. 제가 직접 법정에 들어가지 않고 변호사가 가서 내 대리권 행사를 할 때 내 이름을 맡깁니다. 내 이름으로 대리로 말을 해주십시오. 오늘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셔서 대리권 행사를 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데 오늘날에는 하나님이 직접 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대리권 행사를 하도록 “내 이름 가지고 서라. 너는 하나님의 자녀고 내 백성이니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 대리권 행사를 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대리권 행사를 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으므로 마귀는 그것을 잘 압니다. 한번은 스게와라는 제사장이 아들 다섯 명이 귀신들린 자보고 바울이 지나가는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하니까 바울도 알거니와 예수도 내가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고 달려들어 다섯 아들이 다 발가벗고 도망을 쳤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권세가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귀신을 보고 물러가라니까 귀신이 바울도 내가 알고 예수도 내가 알거니와 너는 누구냐? 덤벼드니까 다섯 놈이 혼비백산하고 도망쳤습니다. 권세가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권세가 있고 더구나 예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대리권 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여러분 귀신을 대적하시기를 바랍니다.
풀러신학교의 피터 와그너 박사가 쓴 ‘제 3의 바람’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설립한 레스터 섬랄 목사님이 필리핀에 선교사를 갔는데 5년 동안 복음을 전해서 다섯 사람을 주께로 인도했습니다. 1년에 한사람 주께로 인도했다구요.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는데 하루는 라디오를 들으니까 필리핀 교도소에서 한 무당 아주머니가 들어가 있는데 도저히 다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광폭하고 무섭고 또 목걸이에 저주를 걸어놔서 교도관이 그냥 손댔다가는 뻗어 죽고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라디오를 듣자 섬랄 목사님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권세가 있고 예수 이름이 있으니 가봐야 되겠다.” 그래서 섬랄 목사님이 교도소를 찾아갔습니다. 가서 그 여자를 좀 만나자고 하니까 교도관들은 “당신, 잘못 만나 그 여자가 저주하면 죽는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끄떡없다.” 그 여자를 만나니까 그 여자가 영어로써 “예수도 나는 믿지 않고 너는 어떤 놈이냐?”하고 욕을 하는데 유창한 영어로 하거든. 그 여자는 영어를 한마디도 몰라요. 모르는데 귀신의 입을 통해서 영어로써 섬랄 목사를 욕을 하고 예수님을 욕을 하기에 섬랄 목사님이 “이 원수 귀신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너에게 권세를 가지고 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나오라!” 그 자리에 자빠져서 거품을 물고 발버둥을 치더니만 귀신이 소리쳐 나가고 그 다음 단정하게 앉아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필리핀에 소문이 퍼지고, 신문에 대서특필하고 라디오도 나오고 사람들 입으로, 입으로 전달되어서 그 한 사건으로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이 15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오늘날 레스터 섬랄 목사님이 마닐라에서 큰 교회를 지금 가지고 있고 우리 한세대학교 김성혜 총장이 전번, 전번 주간에 그 섬랄 목사님의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온 것입니다. 굉장히 큰 역사를 섬랄 목사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마귀와의 실전
이제 우리가 귀신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귀신의 협박에 두려워 떨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단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부산 모교회에 부흥회를 갔는데 저녁 설교하려고 하니까 목사님 사무실에 불이 환하게 밝으면서 우는 소리가 들려서 목사님 사무실에 들어가니까 어떤 아주머니가 미친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목사님이 기도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목사님 기도가 가관이었습니다. “부탁한다. 귀신아, 나와라. 부탁한다. 이 과부 아주머니가 아들을 하나 데리고 사는데 네가 왜 괴롭히느냐? 부탁한다. 나오라! 제발 괴롭히지 말고 나오라!” 그러니 귀신이 더 광패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목사님, 귀신은 그렇게 다루면 안돼요. 귀신은 도둑놈이기 때문에 도둑놈보고 나가 주세요. 네? 나가 주세요. 그러면 나갑니까? 강하게 대적해야지요.” 제가 당장 손을 대니까 고함을 치고 “너는 싫다. 너는 가짜 목사다. 너는 싫다.” 그래서 “싫든 말든 네가 상관할 것 아니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나오라! 더러운 귀신아 나오라!” 그러니까 그대로 걸상에서 꼬부라지더니만 입에 거품을 물고 고함고함 치더니만 귀신이 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 이름과 보혈의 약속으로 단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신을 보고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두려워하면 벌써 귀신이 ‘아! 저것 가짜구나.’ 알고 얕잡아 봅니다. 여러분이 권세가 있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보혈을 의지하고 가슴에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귀신을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가서 복음을 증거 할 때 점치는 여자가 따라 다니면서 이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사자로써 구원의 도를 지나는 것이라고 자꾸 따라 다니면서 괴롭힙니다. 그러니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마치 사도바울 선생도 점쟁이 중에 괴수와 같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선생이 돌아보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 당장 그 점치는 귀신이 떠나가고 그 여자가 점을 못 치게 되자 그 여자를 통해서 돈을 많이 벌다가 돈을 못 벌므로 바울을 끌고 가서 얼마나 때리고 실라와 함께 감옥에 갇힌 기록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단호하게 대하면 귀신은 쫓겨 나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멜 테리 목사의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멜 테리 선교사는 인도네시아 사람인데 그가 토착신을 섬기는 마을에 전도하러 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마을에 들어가니까 토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 나와서 “만일 우리에게 예수 신을 전하고 싶으면 예수가 우리 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합을 하자” 그 토착신 제사장이 모든 천 여 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자리에서 “너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그러면 예수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멜 테리 목사님이 같이 간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예수의 보혈을 의지해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은 떠나갈 찌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그러자 맨 앞에 있던 토착신 제사장이 덜덜 떨면서 하는 말이 “선생, 나는 당신들이 섬기는 예수 신을 믿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왜 그러느냐?” 그랬더니 “당신이 지금 그 말을 하자마자 나는 마을의 제사장으로써 늘 신들과 대화를 해왔는데 당신들이 예수 이름으로 떠나가라고 명하자 이곳에 있던 가장 큰 신이 작은 신까지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예수가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달아나자. 내 앞에서 다 달아나 버렸는데 내가 그 사람들 믿었다가 무엇 하겠습니까? 날 좀 예수 믿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온통 온 마을이 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세상 귀신은 예수님을 보면 알아보고 고함을 칩니다. 예수님이 복음 전할 때도 회당에 들어간 귀신 들린 자가 고함을 쳐서 말하기를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쫓아내러 오셨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아나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귀신이 여러분을 알아봐요. 여러분이 가짜면 가짜를 알아보고 진짜면 진짜를 알아봐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 받은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권세를 활용하면 귀신은 절대로 그 앞에 설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단호하십시오.
계12:11에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다고 말했습니다.
약 4: 7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 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개인적인 삶속에 귀신이 억압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 귀신이 억압해서 애들이 울고 난장판을 치고 남편이 싸움을 걸고 혹은 부인이 화를 내고 가정이 음울하고 아주 저기압이 꽉 들어찬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냥 귀신을 쫓아낼 힘조차 없고 억압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제일 그때 귀신을 이길 수 있는 좋은 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모압, 암몬,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서 나라가 위태하게 될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 적군들 앞에 나가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대하20:22~23에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야훼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 죽였더라.”
우리가 찬송하면 천사들이 동원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천사들은 찬송 가운데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야곱이 들에서 기도할 때 꿈에 보니 하늘로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있는데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더라. 우리의 찬송이 바로 그 사닥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마음이 우울할 때 찬송하시고 가정이 우울할 때 찬송하시고 분위이가 침통하고 우울할 때 찬송을 하면 구름 떠나가듯이 떠나가고 안개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햇빛이 비취고 성령이 임하시고 승리의 영광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여러분 마귀를 이기는 굉장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직장에 나갈 때 마음이 우울합니다. 길거리에 서서 혼자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렇게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속으로 주를 찬미합니다.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할렐루야! 주를 찬미합니다. 주를 찬미합니다. 그러면 돼요. 부엌에서 일하다가 마음이 우울하고 화가 나고 뭐 이게 살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나면 ‘아, 마귀가 누르는구나. 주를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찬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미합니다. 십자가를 찬미합니다.’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찬송을 부르면 마귀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의 마음이 고통스럽든지 육체가 의외로 무겁고 고통스럽든지 환경이 침울하고 우울하든지 그럴 때는 찬송이 마귀를 내어 쫓는 제1의 효자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찬양을 늘 하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간단하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주께 감사드립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그것을 자꾸 몇 천 번이라도 해요.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나는 기도할 줄 몰라요.”라고 하는데, 찬양하면 되잖아요.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어떤 대학교수가 내게 와서 “목사님 나는 방언을 하는데 몇 마디만 자꾸 반복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듣고 아버지는 어휘가 부족한가보다. 방언을 왜 몇 마디만 자꾸 하느냐고 그러는데 이것을 해야 될까요 안해야 될까요?” 내가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이라는 것은 복잡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몇 마디만 하는 것이다. 주를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주를 찬미합니다. 주를 찬미합니다. 주를 찬미합니다. 주를 예배드립니다. 주를 예배드립니다. 주님을 높입니다. 주님을 높입니다. 주님을 높입니다.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그러니까 성경도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미할 때 몇 마디 말만한다 말입니다. 여러분 방언할 때 몇 마디 말만 자꾸 나오는 것 있지요. 왜 내 방언은 말이 많지 않고 이렇게 간단 하냐. 찬양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성령도 몇 마디 말로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아 계실 때 보좌에 있는 네 생물들이 어떻게 합니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야훼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야훼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야훼여. 거룩하다는 말만 하는 것입니다. 찬양이라고 해서 온갖 수식어를 다 사용하고 유창하고 웅변적으로 하는 것이 찬양이 아닙니다. 단순한 말로 내 마음에 끌어 오르는 심정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광을 돌리며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종일 여러분은 시간만 있으면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주신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합니다. 자꾸 그렇게 찬양을 하십시오. 찬양하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고 찬양하는 사람 주변에 마귀는 붙어 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마귀와 싸워 이기려면 마음이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정적이 되면 마귀는 얼싸 춤을 춥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마귀의 온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이 되기 위해서는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에 굳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말씀을 생각하고 굳게 서는 것입니다. 마귀는 와서 병든 사람에게는 ‘너 죽는다. 너 죽는다. 너 얼마 있으면 죽을 것이다. 너는 백약이 무효다. 죽을 것이다.’ 그 말만 듣고 있으면 그만 완전히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노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노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노라. 말씀으로 대적하면 마음이 긍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웃 사람에게 가서 말할 때 절대로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말은 이웃 사람을 파괴합니다. 놀랄 만큼 파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만나서 보고 “얼굴이 그 모양이야? 요사이 영 혈색이 좋지 않은데?” 지나가는 말로해도 듣는 사람 속에는 그 말이 들어가서 ‘얼굴 혈색이 좋지 않다. 내가 큰 병이 들었나 보다. 아이고! 큰일 났구나. 이것 자식새끼 놔두고 죽겠구나!’ 여러 가지 망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 얼굴색이 좋지 않더라도 “얼굴이 아주 혈색이 좋은데요? 건강하게 보이는데요?” ‘아, 그러면 그렇지. 내가 혈색이 좋고 건강하지.’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말씀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묶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서로 격려하고 힘을 주어 긍정적이 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마귀에게 눌려서 우울할 때 목사님을 찾아오던지 구역장이나 전도사님들과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말씀에 서서 긍정적이 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나 혼자 긍정적이 되려고 하면 언제나 말씀에 서서 말씀으로 대적하고 말씀을 자꾸 입으로 시인하고 그래서 마음이 긍정적이 되면 마귀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를 부정적으로 만들어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죽는다. 무력하다. 이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살아있는 말씀에 서서 여러분이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감사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마귀는 알게 모르게 항상 우리를 노립니다. 대적하지 않으면 희생이 됩니다.
벧전 5: 8~ 9 말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말세가 되니까 마귀는 기승을 부릅니다. 어느 곳에 가나 기승을 부립니다. 마귀는 귀신들과 함께 텔레비를 통해서 라디오를 통해서 잡지를 통해서 소문을 통해서 또 남편을 통해서 아내를 통해서 부모를 통해서 자식을 통해서 형제를 통해서 이웃을 통해서 어찌하든지 우리의 마음을 억누르고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가져오고 고집을 세우고 죄를 따라가고 세속을 따라가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인도와 기도에 서서 마귀를 끊임없이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상을 떠날 때 유언을 남겼는데 유언의 제일 첫째가 ‘네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도 죽을 때 중요한 말 남기지 않아요. 예수님 천당 가기 전에 제일 마지막 남긴 말이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그 다음 새 방언을 말하고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했으니 마귀, 귀신 쫓아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면 왜 그렇게 주님이 마지막 유언의 제일 첫째 번으로 그렇게 말을 했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마귀를 등한이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속에 영적으로 심적으로 감정적으로 의지적으로 육체적으로 마귀에게 도적질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자꾸만 마귀를 대적하여 쫓아내고 자꾸 주님을 찬미하고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 속에 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조용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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