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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전도자의 3대 자세 (누가복음 9장 1-6절)

by 【고동엽】 2022. 7. 15.

참된 전도자의 3대 자세 (누가복음 9장 1-6절)          

 

1. 능력과 권위를 가지라

 

 본문 1절을 보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헬라어로 능력은 두나미스라고 하고 권위는 엑소시아라고 한다. 두나미스는 이뤄내는 힘을 뜻하고 엑소시아는 쫓아내는 힘을 뜻한다. 성도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상황을 극복해내는 권위가 겸비된 존재다. 왜 예수님이 그런 능력과 권위를 주셨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기 위해서였다(2절).

 

 앓는 자를 고친다는 개념에는 육신의 병은 물론 마음의 병과 정신의 병과 인격의 병과 관계의 병을 고치는 것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흔히 전도자가 병 고친다는 것을 사람이 신비한 기운을 전달해서 기적적으로 직접 고치는 것을 의미하는 줄 안다. 그런 기적도 간혹 있지만 자기 맘대로 병을 고칠 수 있는 특별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능력과 권위의 원천은 복음이다. 결국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내보내신다는 말씀이다. 복음을 통해 성령님이 역사할 때 전인적인 치유가 나타나는 것이지 사람이 매번 자기 뜻대로 육신적인 치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기독교의 치유자는 특별한 치유 능력을 하늘로부터 받아 전해주는 무속적인 영매가 아니다. 그 사실을 오해하고 자칭 치유 능력자의 치유 사기에 미혹되어 몸과 마음과 물질까지 다 빼앗긴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한 교주는 허풍 섞인 거짓말을 수없이 하면서 대통령 출마도 했고 당을 만들어 국회의원 출마도 시키며 각종 허황된 공약을 내세웠다. 물론 다 떨어졌다. 언행만 봐도 진실함이란 찾아보기 힘든 그에게 왜 여전히 추종자가 많은가? 자기 강연을 듣고 매달 2만 원 이상 자동이체 후원금을 내면 특별한 에너지와 치유를 받는다는 선전에 속기 때문이다. 그 추종자들은 말한다. “총재님이 안아주면 업보가 없어져. 병이 나았어.”

 

 그는 치유한다면서 여자 몸을 만져 성 추행 논란도 있었다. 또한 자기 예언은 100% 적중하고 자기 말은 권능이 있어서 그대로 된다고 주장했고 자기 얼굴이 그려진 제품을 몸에 지니면 에너지를 받는다고 선전했다. 그 교주는 자기 예언이 100% 맞는다고 선전하지만 전 국민들은 그의 당 출마자들이 다 떨어진다고 예상했다. 결국 그 교주의 예언 적중률이 0%이고 국민들의 예상 적중률은 100%다.

 

 그런 행각만 봐도 금방 거짓된 교주임을 알 수 있는데 종교 자유를 명목으로 거짓말을 하게 계속 놔두니까 새로운 추종자가 생긴다. 일반인은 그런 행태를 호기심 차원의 가십거리로 가볍게 여기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피눈물이 날 것이다. 차후의 수많은 피해자 양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종교 자유를 내세워 벌이는 사기와 거짓 행각을 최대한 제재하고 명백한 거짓과 사기 피해자는 용기 있게 고발하고 법은 강력히 단죄해서 추가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왜 그런 명백한 거짓에 미혹되고 기독교인조차 그런 식의 이단 교주에게 넘어가는가? 치유는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기운을 전달해서 주는 줄 알기 때문이다. 치유의 원천은 복음이다. 사람이 치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성령님의 역사로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치유를 나타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의 아닌 복음과 말씀의 능력이다.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역사할 때 치유의 능력이 나타난다.

 

 갈등이 많았던 한 교단에서 총회장이 주요 회의 때 주일설교처럼 관련 말씀을 힘써 준비하고 잘 예배를 드린 후부터 화해의 역사가 나타나 교단 갈등의 병이 치유되었다. 명절 때마다 싸움이 많았던 한 가정은 명절 때 예배를 드리면서 화해의 기운이 임해 고질적인 가족 간의 명절 갈등과 다툼이 사라졌다. 치유에는 공동체의 병 치유도 포함된다. 선한 변화와 회복을 뜻하는 치유를 이교적이고 무속적인 치유로만 여기지 말라. 참된 치유는 복음과 말씀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랑과 용서의 영이 임할 때 나타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2. 소유에 연연하지 말라

 

 본문 3절을 보라.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예수님은 전도 여행을 할 때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시면서 먼저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마태도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기록했지만(마 10:10) 마가는 지팡이는 가져도 되는 것으로 기록했다(막 6:8). 마태나 누가는 아무 것도 의지하지 말라는 영적인 의미에서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했고 마가는 육신적인 피로를 덜어주는 단순한 의미에서 지팡이를 가져도 되는 것으로 기록한 것 같다.

 

 또한 예수님은 배낭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배낭이 ‘가방 주머니’의 뜻이라면 필요한 것을 챙기면서 너무 계산적으로 살지 말라는 암시가 있고 ‘동냥 주머니’의 뜻이라면 전도한다면서 탁발승처럼 구걸하며 다니는 구차하게 전도하지 말라는 암시가 있다. 전도자가 구차한 모습을 보이면 전도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소유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떤 성도는 십자가는 잘 지겠다면서 돈의 부담은 잘 지지 않는다. 저축도 해야 하지만 좋은 일에 쓰는 것도 잘하라. 특히 전도자가 소유에 집착하면 남의 영혼과 재산을 무섭게 탈취하는 이단 교주처럼 되어 나중에는 결국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 왜 이단 교주가 거짓말을 하는가? 궁극적으로 영혼과 돈을 빼앗기 위해서다.

 

 왜 일부 유튜브 개인 방송인은 자극적인 거짓 뉴스를 계속 퍼뜨리는가? 그들 용어로 수퍼챗을 털기 위해서다. 수퍼챗이란 유튜버들이 맘에 드는 언행을 할 때 시청자가 즉시 보내는 후원금을 뜻한다. 유튜브 방송에서 가장 수퍼챗을 많이 털어가는 말이 정치적인 진영 논리를 자극하는 말이다. 그들이 수퍼챗을 터는 방법은 이단 교주가 설교를 빙자한 거짓말로 헌금을 터는 방법과 유사하다.

 

 지지하는 유명 정치인 이름을 파는 것을 유튜버 용어로 ‘아무개 팔이’라고 한다. 그렇게 유명인을 팔고 자기 진영에 대한 지지나 반대 진영에 대한 분노를 자극해 유튜브 구독자를 늘리고 수퍼챗을 터는 것에 눈이 멀면 허풍과 거짓과 막말이 심해진다. 또한 반대 진영의 공적 하나를 만들어 계속 때리거나 혹은 진영을 나누는 선거나 사건 등을 이용해서도 구독자를 늘리고 수퍼챗을 턴다. 결국 유튜버의 구독자 벌이 및 돈 벌이에 순진한 시청자들의 마음에 분노가 증폭되면서 점차 자신도 망가지고 돈도 털리고 공동체의 갈등도 심화된다.

 

 최근에 총선이 끝나자 같은 진영의 유튜버들끼리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이미 났기에 전체 수퍼챗 파이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수퍼챗을 더 많이 털려고 같은 진영도 공격하는 것이다. 그처럼 구독자와 돈에 눈이 먼 이단 유튜버들이 분노와 공포를 일으키는 페이크 뉴스를 자꾸 퍼뜨리는 행태는 이단 교주가 영혼과 돈을 터는 수법과 유사하다. 물론 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좋은 유튜버들도 많지만 순진한 시청자들의 분노와 열망을 이용해 수퍼챗을 많이 털어가는 이단 유튜버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후원금을 낼 때는 그의 말과 행사가 내 영혼과 공동체와 사회와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지를 깊이 생각해보고 후원금을 내라.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거짓으로 망가지면서 돈까지 털린다. 만약 가짜 전도자들이 소유욕을 품고 복음과 말씀을 전파하면 얼마나 많은 영혼이 돈을 털리고 피해를 입겠는가? 교회를 짓는다면서 수많은 가정 교회를 깨고 돈을 터는 폐단을 예수님은 이미 다 예견하시고 전도자에게 소유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셨다.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땀과 일을 통해 돈을 벌기보다 뱀처럼 세 치 혀를 굴려 남의 돈을 터는 식으로 돈을 벌지 말라. 이단 교주가 능력을 자랑하고 거짓 약속을 남발하면 과감히 그를 떠나라. 전도자는 물론 일반 성도도 소유에 연연하면 안 된다. 이단에 미혹되는 이유는 소유와 축복에 집착하고 능력 선전에 속기 때문이다. 명예에 집착하는 것도 주의하라. 소유와 명예를 따라가기보다 그것들이 저절로 따라오게 하라. 말보다 삶을 중시하고 열심히 땀 흘려 벌고 좋은 일에 많이 써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등 성도가 되라.

 

3. 잘 머물다가 잘 떠나라

 

 본문 4절을 보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전도 여행을 할 때 어느 지역에서 한 집에 들어가면 더 좋은 숙소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지 말고 그곳에 머물라는 뜻이다. 여기저기 좋다는 곳을 찾아 떠돌지 말라. 천국 순례자는 떠나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한 곳에 머무르는 것도 잘해야 한다. 우왕좌왕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나 헤매는 것은 인생 낭비다. 한 곳에 잘 머물다가 떠날 상황이 되면 단호하게 떠나라.

 

 본문 5절을 보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유대인들은 이방 지역을 지나친 후 이스라엘 지역에 들어갈 때는 발과 옷의 먼지를 떨어내고 들어갔다. 예수님이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성에서 떠날 때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게 한 것은 불신도 부정한 태도라는 암시다. 또한 전도가 거부될 때 제자들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전도할 때 한 곳에만 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필요하다면 다른 곳으로 단호히 떠나라는 뜻도 있다.

 

 머물 곳을 선택했으면 거기서 힘써 전도와 섬김의 삶을 행하라. 만약 그곳이 잘못된 길로 가거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곳이라면 신중히 기도한 후 과감히 그곳을 떠나라. 머무는 것도 잘하고 떠나는 것도 잘하라. 이별은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떠나도 가슴 아프지만 남이 나를 떠나도 가슴 아프다. 이병 상황이 벌어지면 내가 바른 길로 가는지에 대해 겸손히 성찰한 후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맡기고 마음의 평안을 찾으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고백을 자주 하면서 늘 마음의 대비를 하면 이별 상황을 비교적 잘 극복할 수 있다. 누군가 내 곁을 떠나면 저주하지 말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해 주라. 누군가 교회를 떠나는 상황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가 새로운 좋은 교회를 만나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빌어 주라.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운다. 그런 배움을 통해 지혜로운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점차 성숙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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